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27화 (127/180)

# 127

127화.

“에라이 씨, 렙업한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싸움이 붙어 버렸기에, 세현은 이들을 모두 쓸어버리기로 마음먹고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붉은 뱀의 검과 세이메이의 포박술을 활용해 적의 퇴로를 막아 백 명 정도씩 가둔 후, 두 룩과 에D츄를 앞으로 밀어내며 진영이 엉키게 했다.

그러자 아베네 병사들은 앞으로 나오지도, 뒤로 빠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태에서 서로의 발과 무기가 엉켜 버렸다.

이후 세현의 소환수들에게 남은 건 일방적인 학살뿐이었다. 채 두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세현은 수천 명에 달하던 아베네 병사들의 씨를 말려 버렸다.

[‘여신 아테네의 미움을 받게 된’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지능-3 / 체력 +10

“……뭐야, 스테이터스가 떨어지는 타이틀도 있어?”

의도치 않게 얻은 타이틀 때문에 지능이 3이나 떨어졌다. 체력 스테이터스가 10씩이나 올랐기에 그닥 손해는 아니겠지만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세현은 투덜대면서도 채집의 단검을 이용해 병사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재료 아이템을 파밍했다. 잠시 후, 그들의 시체가 녹아내리며 그 자리에 별별 잡 아이템들을 드랍했다.

[#. 퀘스트 아이템 / 아베네 병사의 가죽]

-아베네 병사에게서 벗긴 가죽.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인다.

[#. 퀘스트 아이템 / 아베네 병사의 머리]

-아베네 병사의 머리를 잘라 냈다.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인다.

[#. 퀘스트 아이템 / 아베네 병사의 피 묻은 병장기들]

-아베네 병사가 입고 있던 갑옷과 무기.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인다.

“으, 비위 상하네, 비위 상해.”

세현은 역한 듯한 얼굴을 하면서도 재료 아이템들을 꼼꼼히 인벤토리에 모두 집어넣었다.

그 개수가 거의 수천 개를 넘었는데, 이 퀘스트가 재료 아이템 열댓 개만 가져가면 클리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과한 개수였다.

일단은 곧장 문지기에게 돌아가 이 물건들을 앞에 와르르 쏟아 버렸다.

“미, 미친. 이 많은 숫자의 전리품이 혼자서 녀석들을 잡아 얻은 것이라고?”

문지기가 경악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전리품의 숫자가 절대로 허세현이 혼자 사냥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혼자는 아니고, 여기 설희 씨랑 세이메이, 내 애완동물이랑 같이 잡았는데.”

“허, 헛소리! 네놈 정체를 밝혀라!”

세현이 너스레를 떨며 대꾸하자 문지기는 전신을 덜덜 떨며 무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옆에 함께 있던 다른 문지기들도 함께 주변을 둘러쌌다.

‘어라…… 뭐가 꼬인 것 같은데?’

믿음을 주기 위해서 아베네인들과 싸웠던 것이, 도리어 문지기에게 세현을 더 수상한 인간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라곤 꼴랑 세 명 있는 파티가 아베네인 수천 명분의 전리품을 챙겨왔으니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아니 문지기 양반. 그게 말이야, 내가 이러려고 한 게 아니라.”

“닥쳐! 썩 꺼져라! 아니면 여기서 목이 날아갈 테니까!”

횡설수설 늘어놓아도 문지기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도리어 세현을 적으로 인식하는 듯 보였다.

그때 바위절벽 위로 향하는 계단에서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내려왔다.

“자, 잠깐만 멈춰!”

“무슨 일입니까?”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

“저분, 저분께서 우리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셨다.”

“네? 그게 무슨.”

“에이 아둔한 것들!”

계속 되묻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그들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문지기들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자 그는 세현의 앞으로 성큼 다가와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전서구를 통해서 소식 들었습니다. 저희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 입주자님이 맞으신지요?”

“어… 그럴걸?”

세현은 한 쪽에 잔뜩 쌓아둔 전리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을 뒤늦게 발견한 남자가 히익-!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벌벌 떨더니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와, 왕께서 입주자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오케이. 갈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흔쾌히 대꾸하고, 돌계단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 올랐다. 왕궁으로 가기 전, 잠시 절벽 끝 쪽에 들려 이곳에서 보이는 장엄한 풍경을 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 † †

“오오, 자네가 우리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영웅인가!”

판테온 뒤편에 위치한 왕궁으로 향하자, 전신이 근육으로 우락부락하며 문신을 곳곳에 새긴 대머리의 남자가 세현 일행을 반겼다.

레타스라는 이름의 남자로, 전사들의 나라인 파르타스를 통치하는 호탕한 성격의 거주자였다.

그는 세현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호화스러운 연회를 곧장 열어 줬다.

시즌2에서 술탄에게 술을 받아먹고 사형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어 괜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번 메인 퀘스트는 이미 스토리 흐름을 알고 있기에 레타스가 준비한 술과 음식들을 깨작깨작 먹는 시늉이나마 할 수 있었다.

“주군! 이곳의 음식은 또 각별한 맛이 있군요!”

“츄우우! 치즈! 치즈가 있어요, 쭈인님!”

세이메이의 경우는 이전에 당했던 것에 전혀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식욕이 이성을 이긴 건지, 이미 다섯 사람은 족히 먹이고도 남을 양의 음식을 입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저렇게 마른 몸에 어떻게 저 정도의 음식이 들어가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연회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레타스 왕은 자신의 본심을 슬쩍 꺼내 말했다.

“대영웅 허세현 입주자여! 그대가 우리에게 준 전리품을 신께 바쳐도 되겠나?”

말인 즉은, 세현이 아베네 병사들을 죽이고 주워온 수급이나 전리품들을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위해 공물로 바치겠다는 소리였다.

‘이것 봐라? 내가 주겠다는 소리는 한 적도 없구만.’

은근슬쩍 공짜로 가지려 드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인간의 시체나 다 낡아빠진 병장기를 가지고 있어 봐야 쓸데도 없기에 세현은 흔쾌히 전리품을 모두 넘겨 버렸다.

“역시 대영웅답게 호탕하구려! 자, 그럼 같이 헤카톰베(제사)를 드리러 가십시다!”

연회가 끝나고 몇 시간 후, 세현은 딱히 쉴 틈도 없이 판테온에 끌려가 헤카톰베에 참석해야 했다.

“?κατ?μβη! ?μβ?κα!”

세현이 가져온 전리품을 병사들이 판테온 중앙에 있는 제단에 한가득 쌓아 놓고, 제사장이 다른 신관들의 도움을 받아 기도문을 외우며 의식을 진행했다.

그렇게 헤카톰베가 한창 진행되자, 제단에 푸른 기운들이 맴돌더니 제물들이 하나둘씩 공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오! 신께서 제물에 기뻐하십니다! 아폴론 신? 헤르메스? ……아니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군요.”

제사장은 잠시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계속 의식을 이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제단 위와 근처에 쌓여 있던 산더미 같은 전리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술병 하나가 제단 위에 남겨졌다.

제사장은 그 술병의 뚜껑을 열어 향을 음미하더니, 왕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신께서…… 신께서 넥타르를 내리셨습니다!”

넥타르, 인간은 한 잔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회춘의 효과가 있으며 많이 마시게 되면 급기야 불로불사하게 된다는 신들의 술이다.

왕은 그들의 신이 넥타르를 하사한 것에 크게 기뻐하며 주변의 병사들에게 술잔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그러곤 이를 잔에 한가득 따라 세현 일행과 헤카톰베에 참여한 모든 인원에게 나눴다.

“과연, 신의 술이로다! 대영웅, 자네도 어서 들게나!”

넥타르를 마신 왕은 잔뜩 신이 났는지 과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세현은 이걸 마시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미 알고 있기에 잠시 고민하다 결국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간만에 먹으니 맛있네….’

넥타르의 맛은 포도주와 콜라의 맛을 섞어놓은 듯한 오묘함이 있었는데, 그것이 불쾌함이 아니라 꽤 괜찮은 맛으로 느껴지게 했다.

[넥타르를 마셔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체력+5

거기다 넥타르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체력 스테이터스가 대폭 상승했다.

“오오, 역시 신의 음료답게 먹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활력이 도는군!”

대머리왕도 넥타르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한 웃음을 토했다.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 채 말이다.

“와, 왕이시여. 하늘이……”

그때 제사장이 놀란 얼굴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개를 들자 파르타스의 상공에 먹구름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원 안쪽의 공간으로는 붉은 전기 줄기들이 정신없이 몰아치며 세기말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잠시 후- 천지가 개벽하는 듯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 사이로 붉은 운석 하나가 맹렬한 기세로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피, 피하십시요오!”

그것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제사장의 유언이었다.

그의 몸뚱이는 붉은 운석이 지상에 내리치며 순식간에 찢겨 흩어졌고, 엄청난 폭발음과 흙먼지에 집어삼켜졌다.

뿌연 먼지 사이로 거대한 뭔가의 그림자가 비춰 보였는데, 그 존재의 눈이 달려 있어야 할 위치에서 피처럼 시뻘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걸 보자 근처에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왕을 중심으로 진형을 만들었다.

“폐하를 보호해라!!”

그들의 얼굴엔 현재 상황에 대한 공포보다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이는 용맹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파르타스의 병사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하찮은 존재. 신의. 위엄에. 도전했다!>

하지만 연기 속에서 들려온 포효와 함께 병사들의 몸은 보잘것없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순간 연기가 흩어졌고 그 안에 있던 존재는 근육질의 거대한 몸을 뽐내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상처가 가득한 몸뚱이와 살의가 가득 담긴 야만인 같은 얼굴, 거기에 성인 남자 몸뚱이만 한 건틀렛을 양팔에 낀 남자.

그는 여신 헤라의 박해에 시달렸지만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신위에 오른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대영웅 ‘헤라클래스’였다.

“헤, 헤라클레스!”

“저, 저자가 왜 여기에!”

“막아라! 저놈을 막아라!”

헤라클래스의 등장에 놀란 왕이 손가락질하자, 병사들이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줍고 앞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인간. 따위가!>

그의 야만인 같은 얼굴에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미소가 떠올랐다.

빠직-!

건틀렛이 바닥에 내리쳐지자 병사들의 몸이 캔 깡통처럼 찌그러지며 사방에 내장과 피를 쏟아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조금 전까지 병사들이었던 다진 고깃덩어리와 피 웅덩이뿐이었다.

“히, 히이이익!”

놀란 왕이 뒤로 나자빠져 볼품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헤라클레스는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목을 붙잡더니 위로 쭉 잡아 뽑았다.

순간 피가 솟구치며, 왕의 목 아래로 척수가 깔끔하게 뽑혀 나갔다. 그는 그 척수를 검이라도 되는 마냥 세현 일행에게 내밀며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너도. 먹었다. 넥타르. 오만한 인간. 죽어라!!!>

[헤라클레스와 전투가 시작됩니다!]

마스터키의 메시지 알림과 함께 헤라클레스가 세현 일행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쿵쿵 지축이 뒤흔들리며 돌 파편이 공중으로 사정없이 튀었다.

“에D츄 막아!”

“츄우우우우우! 알겠춥니다, 쭈인님!”

세현의 지시에 따라 에D츄와 함께 소환된 두 마리의 폰이 그의 몸을 정면에서 동시에 받아 냈다.

헤라클레스와 충돌하는 순간, 셋의 몸이 한참을 밀려 나가더니 어느 지점에서 멈춰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그 틈을 타 소환수들과 함께 헤라클레스의 등 위에 공격을 퍼붓자 살갗이 사정없이 찢겨나갔다.

<아, 아프다! 강한 존재!>

그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며 힘겨루기하던 양팔을 위로 크게 들더니 땅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콰아앙-!

순간 지반이 무너지며, 소환수들이 이에 휘말렸다. 그사이 헤라클레스는 위로 풀쩍 튀어 오르더니 파르타스의 도시를 향해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 줘! 괴물이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시민들의 비명과 함께 뭔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났다.

세현 일행이 가까스로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그를 쫓아가려 했지만, 헤라클레스는 애써 이를 무시하며 도시를 파괴하고 시민들을 학살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몇십 분이 더 지났을 때, 파르타스에 잿더미가 된 건물들과 피 웅덩이, 으깨진 살점들밖에 남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세현 일행을 바라봤다.

<네놈들, 강한 존재! 내 힘 아직 온전하지 않다! 하지만, 엄마. 헤라의 힘! 약속을 지켰으니 곧 받는다. 그때, 너희. 죽여 준다!>

그 말을 끝으로,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등을 돌려 반대편으로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12개의 시련을 치른 대영웅의 모습이라 하기엔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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