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26화 (126/180)

# 126

126화.

“예…… 온천에 가자고요?”

“그렇습니다, 설희 공! 아주 맛~있는 가이세키가 나오는 료칸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 날, 백설희가 돌아오자마자 세이메이가 료칸에 함께 가자고 권유했다.

다행히 설희는 싫지 않은지 흔쾌히 수락했고, 세 사람은 에D츄에 등에 올라타 세이메이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아베노 신사의 뒤편의 산을 2개 넘어가자 그곳에는 고즈넉한 풍경을 가진 자그마한 온천마을이 모두를 반겼다.

[‘온천마을 벤토란을 발견한’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체력+1

‘오 보너스~!’

기다렸다는 듯 타이틀 획득 메시지가 출력됐고, 세현은 기분 좋게 료칸에 들어갔다. 그러자 기모노를 단정히 차려입은 허리가 구부정한 노파가 밝은 얼굴로 모두를 반겼다.

“세이메이 님, 오랜만이십니다!”

“오랜만입니다, 주인장! 그동안 별고는 없었는지요?”

“옆에 계신 그분들은……?”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눈 후, 노파는 세현과 설희에게 시선을 보내며 되물었다.

“제가 주군으로 모시는 분이고, 함께하시는 동료분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또 세이메이 님께서 혼사를 치르신 줄 알지 뭡니까?”

“그, 그럴 리가요! 저 같은 것이 어찌 혼사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세이메이 님이 어때서요? 능력 있지, 곱지! 먹을 것도 복스럽게 잘 드시지 않습니까. 껄껄껄!”

“그만하세요, 주인장. 부끄럽습니다.”

노파가 세현 앞에서 보란 듯이 칭찬을 퍼붓자, 세이메이가 곤란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제야 노파는 하인들을 시켜 세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고, 에D츄를 잠시 마구간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오, 꽤 그럴싸하네.”

방 안은 꽤 정갈하면서도 지나칠 정도의 운치가 있었다.

방문을 열면 바로 거대한 노천온천과 눈 내리는 설산이 저 멀리 보이는 절경이 펼쳐졌는데,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온천부터 즐겨보자고.”

세 사람은 각자 준비해 온 가벼운 이너웨어를 입고 온천에 조심스레 발을 담갔다.

처음에는 뜨겁게 느껴졌지만, 이것은 금세 따스함으로 변해 전신의 근육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듯 시원한 감각을 선사했다.

말 그대로 ‘몸이 녹는다’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실감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쥐 친구는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요.”

잠시 후, 료칸 하인들이 주변을 둘러싼 목책을 몇 개 빼서 길을 터주자 에D츄가 온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코끼리만 한 에D츄가 몸을 담그자 순간 수심이 상승하며 주변으로 물이 쏟아져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났다.

“츄우우우~ 녹네요 녹아…….”

에D츄도 온천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흐물흐물한 미소를 지으며 온천을 마음껏 즐겼다.

그렇게 한창 온천을 하고 있던 중, 세현과 설희의 마스터키가 음성으로 알림을 전해왔다.

[‘피로를 푸는 방법’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올 스탯 +1

‘여기 오리지널 타이틀인가보네.’

아마도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겨야만 얻을 수 있는 전용 타이틀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쉬는 와중에 공짜로 썩 쓸 만한 타이틀까지 얻게 되니, 세현은 더욱 더 기분이 좋아졌다.

온천욕을 끝낸 후, 세 사람은 가벼운 차림의 잠옷으로 환복한 후 방에 앉아 수다를 떨며 가이세키를 기다렸다.

“오늘은 세이메이 님이 간만에 오셨으니 제가 ‘특별히’ 힘 좀 써봤습니다.”

얇게 저민 소고기와, 생선조림, 버섯전골 등등…….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넘어가는 비주얼의 요리가 차례로 상 위에 깔렸다.

조심스럽게 음식을 목으로 삼키면, 보통 이자카야나 음식점에서 맛봐 왔던 것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풍스러운 맛이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마, 맛있다! 이거 정말 맛있어요, 세현 씨.”

“그러게요.”

“아하하하! 어떻습니까, 주군!”

세이메이뿐 아니라 설희와 세현도 이곳의 가이세키가 주는 황홀한 경험에 극찬을 보냈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음식이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있던 중, 근처에 다가온 노파가 세현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응?”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노파가 접시 하나를 스윽 세현의 앞으로 밀어놓으며 귓속말을 건넸다.

“오늘 힘 좀 쓰시라고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히, 힘을 쓰라고요? 뭐가요?”

“오호호호. 남사스럽게 그런 걸 물으시고 그럽니까.”

노파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방을 빠져나갔다.

그 직후, 세현이 접시로 시선을 돌리자 눅진한 기름기가 가득해 보이는 장어꼬리가 두 줄 놓인 것이 보였다.

아무리 이런 쪽에 눈치가 없는 세현이라지만 장어가 뭘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기에 얼굴에 찝찝한 표정을 띄웠다.

‘저 할매가 우리 관계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오해를 받는 것 같았지만, 괜히 변명하면 더 곤란해질 것 같아 군말 없이 장어를 먹기로 했다.

“이거 한 줄은 세이메이가 먹고, 설희 씨는 저랑 반으로 갈라서 먹어 보죠.”

“자, 잘 먹겠습니다, 주군!”

이 말을 꺼내자, 세이메이의 얼굴에 언제나와 같이 해바라기 같은 미소가 만개했다.

Level 49. 올림포스의 반역자

“아우, 오래 쉬다가 일하려니까 귀찮아 죽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츄! 에D츄는 아예 한 몇 달은 쭉 뒹굴뒹굴할 자신이 있다츄!”

세현 일행은 10일간의 휴가를 마친 후, 시즌5 <올림포스의 반역자>를 진행하기 위해 41층으로 올라왔다.

41층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했기에, 고대 그리스의 모습을 꼭 닮아 있었고, 등장하는 몬스터들 또한 미노타우르스, 하피, 세이렌 같은 신화 속에서 익숙히 보고 들어왔던 녀석들로 구성돼 있었다.

세현은 일단 가볍게 몬스터들을 썰어 보며 자신의 전투력이 이곳에서 어느 수준으로 먹혀들지 가늠했다.

“흐음, 이 정도면 여유 있는데.”

몬스터들은 시즌 초반이어서 그런지 그닥 사냥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못해 너무 쉬웠다.

소환수들이 ‘잊혀진 하수인’ 세트를 낀 덕에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거기다가 새로 얻은 액세서리 ‘아자토스의 눈’도 간간히 사용하며 성능을 가늠해 봤다.

‘제기랄, 이거 보기보다 쓰기 까다롭네.’

아자토스의 눈은 큰 문제가 두 개나 있었다.

첫 번째로, 수호충은 숙주의 시체를 파먹고 나온다는 설정을 가졌기에 ‘채집의 단검’을 이용한 파밍이 불가능해졌다.

두 번째로, 어둠상처 스택을 쌓아 폭발을 일으키는 상처폭발의 위력이 꽤 강한 탓에 자칫 잘못했다간 아군이 도리어 데미지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이 아자토스의 눈은 넓은 필드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전투에서 쓴다면 유용할 테지만, 좁은 지형에서 자칫 잘못 사용했다간 자충수가 될 법한 아이템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쩝.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크니스 리턴이랑 어둠상처 자체는 쓸 만하니까.’

그나마 항시 쓸 수 있는 능력은 아군 소환수가 가진 무기의 공격력을 1티어 올려 주는 다크니스 리턴과, 적에게 상처를 남겨 치유 효과를 감소시키는 어둠상처 정도였다.

아쉬워해 봤자 바뀌는 건 없기에 세현은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메인 퀘스트를 쭉 진행하면서 챙길 수 있는 보상들을 챙기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과 다른 길드원들에게 건네받은 정보가 있기에 메인 퀘스트 진행 자체는 막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터였다.

“저기 보이네.”

잡몹들을 무시한 채 에D츄를 타고 한참을 내달리자 저 멀리 가파른 바위산 위로 세워진 도시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는 거대신전 판테온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바위 건물과 석상들이 지어져 있었는데, 투박하지만 특유의 거친 느낌의 매력으로 다가오는 도시였다.

저곳의 이름은 [파르타스], 철저하고 혹독한 군사훈련으로 국민들 하나하나를 정예병으로 키워 내는 강력한 도시국가라는 설정이었다.

이곳은 시즌5를 관통하는 스토리의 발생지기에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꼭 거쳐 가야 하는 장소였다.

바위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연결된 검문소에 다다르자, 근육질의 구릿빛 상체를 드러낸 험악한 인상의 전사들이 세현 일행을 막아서며 말했다.

“멈춰라, 신분을 밝혀라.”

“음, 나는 입주자고…… 이 도시를 그냥 한 번 둘러보고 싶어서 왔는데?”

“네가 무해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대뜸 밑도 끝도 없는 요구를 해 오기에 세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는데?”

“간악한 [아베네] 놈들이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다! 그것들의 목숨을 끊고 살가죽을 벗겨 낸 다음 그 증거를 가져온다면 네놈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요컨대 니들 전쟁을 도와 달라 그거지?”

“헛소리, 입주자들의 도움 따위 필요 없다!”

세현의 말에 파르타스 문지기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전쟁 하나 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기에 ‘도움’을 받는다는 표현이 못마땅한 것이리라.

“그저 네놈이 아베네의 첩자가 아닌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알았어 알았어,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긴.”

[#. 서브 퀘스트 / 증명 또 증명이야.]

- 전사들의 도시 ‘파르타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전쟁 중인 ‘아베네’ 전사들의 죽여 그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굳이 파르타스에 들어가고 싶다면 아베네의 전사들을 죽여 그 증거들 문지기에게 제출하자. 이 퀘스트를 할지 말지 고민된다면, 파르타스의 바위절벽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의 광경은 꽤 아름답다는 점을 참고하도록 하자.

적정 레벨: 170

클리어 조건: 파르타스를 침공한 아베네 병사들을 학살하고 그 증거를 문지기에게 제출.

[수락하기] [거절하기]

세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수락하기 버튼을 눌렀다.

“잘 들어라 이건 우리가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email protected]#%$”

“나 갈게~!”

그러곤 뭔가를 더 떠드는 문지기를 뒤로하고 곧장 아베네와 파르타스가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립지대로 향했다.

넓게 펼쳐진 평원 지대, 그 위로 수천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창이니 검이니 하는 병장기들을 들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붉은 복장을 입은 쪽은 파르타스, 푸른 복장을 입은 쪽은 아베네 군의 병력들로 보였는데, 전선의 형태를 보아하니 파르타스 쪽이 많이 밀리는 것 같았다.

“더럽고 냄새나는 파르타스 놈들을 죽어라!”

“죽어어어!”

“파르타스 놈들의 심장을 씹어 먹어라!”

조금 이상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베네 군의 병사들 대부분이 눈동자가 붉게 달아올랐고 광견병이라도 걸린 듯 잔뜩 흥분한 상태로 전투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충 보기에도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거칠게 몸을 내던졌고, 그 광기는 마치 좀비 떼나 이성이 없는 괴물들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갑시다, 세이메이, 설희 씨. 에D츄 너도 준비해.”

“네, 주군!”

세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소환수들을 불러내 아베네 군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엄연히 인간의 모습을 가진 그들을 썰어 대는 것이 썩 기분 좋지 않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최대한 빨리, 깔끔하게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죽어어어어!”

“파르타스의 앞잡이 놈을 죽여라!”

아베네의 병사들은 세현의 소환수들에게 갈려 나가면서도 조금의 공포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빨갛게 뜨고 몰려왔다.

심지어 팔이나 다리, 머리가 잘려도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소환수들에게 한 칼이라도 더 먹이고 죽이려 발악을 해 댔다.

그 숫자가 너무 많은 탓에 세현이 보유한 폰 중 가장 레벨 낮은 놈 하나가 붙잡혀 소환 해제의 위기를 겪을 정도였다.

‘아 젠장, 몇 마리만 잡고 가려고 했더니만…… 소환사라는 게 이럴 땐 참 안 좋아.’

굳이 아베네 병사 몇 명만 잡으면 될 것이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 버려 이 전장에 있는 거의 모든 병사들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구도 자체가 파르타스 vs 아베네가 아닌, 허세현 vs 아베네가 돼 버린 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