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125화.
Level 48. 가즈아! 온천으로!
시즌4 종료 후, 서큐버스 군단은 이제 새삼 말하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서큐버스 군단 관련 굿즈 매출 500억 돌파!]
[특집기사! 인류 최후의 구도자 ‘서큐버스 군단’ 12인의 정보를 캐 본다!]
이번 보스 공략으로 경제 효과가 얼마니, 미모가 어떠니 실력이 어떠니, 여러 이야기가 오고갔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유튜브에 공략 영상이 언제 올라오냐였다.
[Jangbob: 그래서 시즌4 보스 공략 영상 언제 나옴?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영상편집자님!]
[Kumtata: 이번 영상 올라오면 이번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 전부 개망이겠네 ㅋㅋ 기대하겠음.]
입주자들의 보스 공략 영상, 특히 서큐버스 군단의 보스전 영상은 CG나 배우들의 연기 따위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진짜’만의 박력이 있었다.
영상이 업데이트되는 날 최소 몇억 뷰가 바로 뽑히는 것이 그 인기를 반증했다.
실제로 서큐버스 군단에 천재 영상편집자 신지영이 들어온 이후,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흥행 성적이 바닥을 쳤다.
혹시라도 개봉일이 서큐버스 군단 영상 업로드일과 겹쳤다가는 정말 쪽박을 차는 건 일도 아니었기에 영화사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서큐버스 군단 사냥 영상 중 유명한 영상 몇 개는 신지영의 편집본에 추가 영상을 더해 극장에서 개봉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총 3편의 영상을 개봉해 한국에서만 누적 관객수 3천만, 전 세계적으로 십억 가량의 누적 관객수를 넘겼으니 광풍이라는 표현이 오버가 아니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아파트 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입주자라면 누구든 서큐버스 군단을 부러워했고, 장비 세팅이나 사냥 방법 등 스타일을 흉내 내는 자들도 생겨났다.
돈을 지불할 테니 전투나 공략 노하우를 구입하겠다는 길드는 널리고 널린 상태였다.
외부 언론, 연예 기획사, 영화사, 광고 회사, 대형 길드와 일반 대중까지. 모두가 서큐버스 군단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서큐버스 군단은 당분간 외부 활동 없이 10일간 잠정 휴식에 들어가기로 했다.
“전부 다 10일씩이나 놀아 버리면 공략에 차질 생겨서 민들레씨앗 날아오는 수가 있으니까, 인원들 반반 나눠서 쉬자고.”
특이하게도 한 번에 전 인원이 다 쉬는 것이 아니라 2개 조로 나눠 쉬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사카린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한 팀이 쉬는 동안 다른 한 팀이 메인 퀘스트의 정보를 모아 그를 넘겨주면 공략에 공백이 적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방식이다.
‘역시 개나 소나 길드장 하는 게 아니라니까.’
허세현 또한 사카린의 이런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적극적으로 동의의 의사를 전했다. 그 덕에 세현과 설희는 10일간의 꿀 같은 휴가를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세현 씨. 그럼 며칠 후에 봬요.”
“아아, 잘 갔다 와요!”
“설희 공! 돌아올 때 새로운 치킨을 잊지 말아 주십쇼!”
“헤헤, 당연하죠.”
휴가를 받자마자 설희는 일단 가족들이랑 잠시 시간을 보낸다며 집에 내려갔고, 며칠 후 돌아오면 그때부터 같이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그사이 세현은 장비 세팅을 하기 위해 언제나 해 오던 순서대로 한 바퀴를 돌았다.
‘일단 마사무네부터 찾아볼까….’
일단 시즌1의 대장간을 찾아갔다. 언제나처럼 대장간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마사무네의 공방을 찾았다.
“마사무네 선생, 나 왔어!”
“아, 나으리 오셨습니까…….”
하지만 그곳에서 세현을 기다리는 것은 마사무네가 아닌 그녀의 조수역을 하던 남자 대장장이였다.
“마사무네는 어디 갔어?”
“아 그게….”
대장장이는 대답이 곤란하다는 듯 쭈뼛대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궁에서 마사무네 명인님을 호출하셨습니다. 벌써 며칠 째 자리를 비우신지라…….”
“왕궁?”
“명인께서 남기신 서찰이 있으니 한 번 읽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목간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고 세현은 그를 펼쳐 읽어 내렸다.
「세현 공, 당분간 아니 어쩌면 다시 뵙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후일 다시 웃는 얼굴로 뵐 수 있으면 좋겠군요.」
“뭐야, 이게 대체 뭔 상황인데?”
세현은 거주자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보도 들은 적도 없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정보를 얻기 위해 마스터키를 조작해 입주자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블랙통거(옥한돌): 마사무네가 어제부터 안 나옴;; 대체 이게 뭔 상황이냐. 장비 만들어야 되는데 망했음.]
[Redarm (Michel steve / 번역): 벚꽃성에도 못 들어가는데? 시즌1 메인 퀘스트 내용이 오늘부터 바뀌었어!]
[블랙통거(옥한돌): 시즌4 클리어랑 상관이 있는 건가? 뭐지…….]
세현뿐만 아니라 다른 입주자들도 마사무네가 사라진 것에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벚꽃성까지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메인 퀘스트의 내용이 일부 변경됐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확실히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세현은 자신이 이전부터 목격했던 거주자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확인하고자 벚꽃성과 사쿠라신 근처를 샅샅이 뒤지며 수소문했다.
“아우~ 저희 같은 것들이 윗분들 생각을 알 수 있남유?”
“몰라요 몰라. 공주님께서 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지 않겠습니까?”
“마사무네 명인이 왕궁으로 사라져요? 그야 뭐 중요한 인물이니까 부른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세현에게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진 못했다.
간혹 뭔가 아는 것 같은 인물이 나타나도 절대로 이에 대해 쉬쉬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
‘아 이거 미치겠네.’
결국 세현은 마사무네를 찾는 걸 포기하고 시즌2 구간을 찾았다.
지금은 왕이 되었을 살라웃 왕자에게 실력 있는 대장장이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당장의 문제는 해결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세현의 뜻대로 순순히 풀리진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폐하께서는 출타중이십니다.”
살라웃 또한 왕궁에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것이 마사무네가 사라진 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또 정보를 찾았지만, 그가 왕국 최정예의 군대를 이끌고 어디론가 출정을 나섰다는 소문만 무성히 들려올 뿐이었다.
“아아아…… 제기랄!”
결국 세현은, 지난 시간 동안 모았던 마법 잉크들을 이용해 시즌3의 타투이스트에게 스티그마를 시술받는 정도에서 정비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붉은 뱀의 검이 아직 쓸 만한데다가 ‘잊혀진 하수인’ 세트를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장비 세팅이 완전하진 않았기에 괜히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망할……. 뭐가 또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결국 세현은 궁금증만 더 키운 채 8층의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놓인 마루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그려 놓은듯 파란 하늘에 토끼같이 생긴 흰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복잡하게 꼬인 머릿속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쭈인님, 괜찮으신가쮸?”
그때 눈앞에 에D츄의 커다란 얼굴이 밀고 들어왔다.
“니가 웬일로 기특한 소리를 다 하냐?”
평소에는 트롤링을 일삼는 놈이지만, 웬일로 오늘은 위로를 전해 오기에 세현은 녀석의 뺨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긁어 줬다.
“기분이다. 조금 있다 치즈 줄게.”
“치, 치즈!”
그 순간, 에D츄의 입에서 굵은 물방울 하나가 세현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계란이라도 맞은 듯 끈적한 느낌의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세현이 상체를 일으키며 에D츄의 이마를 퍽-소리가 나게 때리자 이마에 거대한 혹이 부풀어 올랐다.
“야 이 쥐새끼! 치즈고 나발이고 없어!”
“츄우으으으…… 치, 치즈…….”
부풀어 오르는 혹을 붙잡고 쥐똥 같은 눈물을 훌쩍이는 것이 처량한 탓에, 세현은 한숨을 푹 쉬며 치즈 한 판을 던져 줬다.
“먹어라 먹어, 먹고 고혈압으로 쓰러져라.”
“가, 감사합니다 쭈인님!”
그러자 에D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치즈를 두 뺨 가득 우물우물 집어넣더니 싱글벙글 웃어 보였다.
“흠냥… 주군, 오셨습니까?”
그러는 사이, 세이메이가 현관문을 열고 마중을 나왔다. 잠옷 차림에 두 눈을 비비며 나온 것을 보니 잠을 자다가 에D츄와 세현이 소란을 벌인 것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아 세이메이, 이거 사 왔으니까 먹어라.”
세현은 사온 초밥 한 판을 내밀자 세이메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더니 하나씩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시선을 주지도 않고 정확히 원하는 초밥을 집는 것이 거의 묘기에 가까웠다.
“후움… 오늘도… 맛있군요 주군….”
초밥을 다 먹어 갈 때 즈음, 세현은 주방에서 차를 준비해 내놓았다.
세이메이는 흡족한 얼굴로 차를 홀짝이며 세현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건 그렇고 너희 둘, 휴가 동안 뭐 하고 싶은 것 없어?”
“에D츄는! 치즈! 에멘탈 치즈를 먹고 싶어요!”
“아니 먹는 거 말고!”
“흐웅, 먹는 거 말고 대체 뭘 할 수 있는 거츄?”
에D츄와 세이메이는 한참을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먹는 건 빼고’라는 전제를 달아 버린 것이 두 사람(과 동물)에게는 꽤 많은 선택지를 지워 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세이메이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으음, 온천… 온천이 딸린 전통 료칸은 어떻습니까, 주군!”
“엥? 온천? 료칸? 그런 게 아파트에 있다고?”
세현은 아파트에 온천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기에 짐짓 놀라며 되물었다.
“물론입니다! 예전에 가문의 음양사들과 함께 몇 번이고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 어떤데?”
“가이세키가 아주 맛있습니다!”
“가이… 새끼?”
“료칸에서 나오는 접대용 음식을 말하는 겁니다. 아주, 아주 맛있지요!”
세이메이의 얼굴에는 묘하게 환희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온천보다는 음식 쪽에 관심이 쏠린 것 같은 게 찝찝했지만, 세현도 평소에 기회가 된다면 료칸을 한 번 가 보고 싶었었다.
“그럼 설희 씨 오면 같이 가자. 아마 내일이면 올 테니까…….”
“좋습니다, 주군! 그럼 그때까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다리면 되겠군요! 지금 당장 단골 이자카야로 가지요!”
“또, 또 먹는다고? 너 방금 초밥 한 판 다 먹었잖아?”
“그건 당연히 몸 풀기용이지요! 오늘 이자카야 음식들을 끝장내고 말겁니다!”
“어…… 그, 그래?”
세이메이는 대번 팔목을 끌어 잡고 근처 이자카야로 향했다. 세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같이 애처로운 얼굴로 뒤를 따라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