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123화.
[#. 몬스터 / 잊혀진 엘더갓]
- 아자토스를 제거하겠노라 자신만만하게 전쟁에 나선 젊은 엘더갓과 그의 군대. 자신만만하게 아자토스의 몸으로 들어간 그의 군대는 이곳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지금은 아자토스의 권속이 되어 그의 힘을 지키는 수호자로 전락했지만, 생전의 그는 그 어떤 엘더갓도 능히 당해 낼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져 ‘투신’으로 불렸다.
등급: 크로니클(A)
레벨: 190
HP / MP: ??? / ???
세현은 엘더갓의 모습을 보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입은 장비들을 보고 군침을 삼켰다.
그가 입은 장비인 ‘이름 없는 엘더갓’ 세트는 크로니클(A)급 세트 장비로 스펙이 이 레벨 대에서 얻을 수 있는 장비 중에서는 꽤 좋다.
게다가 옆에 있는 병사들이 장착한 ‘잊혀진 하수인’ 세트 또한 유니크(C)급 장비기에, 저들을 싹 쓸어내고 장비를 모두 회수하면 최소 몇천억은 우습게 벌 수 있을 터였다.
이 엘더갓의 군대는 아자토스의 최초 클리어가 나오면 난이도가 하락하며 더 이상 출현하지 않기에, 지금 얻지 않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과거에 팔콘 길드가 시즌4를 클리어한 직후, 팔콘 길드원 중 1군으로 분류되는 인원들은 ‘잊혀진 하수인’의 세트를 장착했고 최은철은 ‘이름 없는 엘더갓’ 세트와 ‘잊혀진 엘더킹의 양손검’을 50층이 진행되는 시점까지도 계속 개조해 가며 주력 장비로 사용했다.
그만큼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장비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으로 50층에서 크로노스와의 결전을 준비해야 되는 세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곳의 아이템을 얻어 가고 싶었다.
“허세현, 저거 꼭 잡아야 되는 거냐?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무시하고 촉수핵인지 뭔가 찾아서 박살 내는 게 낫지 않아?”
군침을 흘리며 잊혀진 엘더갓의 군대를 보고 있던 와중, 사카린이 태클을 걸어왔다.
그녀의 말은 틀릴 것이 없었다. 실제로 아자토스의 촉수에서 오래 있으면 정신력이 빠르게 깎여나가 공략이 서서히 어려워진다.
클리어 자체만을 목표로 본다면 저들을 무시하고 ‘촉수핵’을 공략하는 것이 맞으리라.
싸움을 좋아하지만, 승리로 가는 길을 찾는 데는 언제나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는 사카린이기에 떠올릴법한 발상이었다.
‘이걸 어떻게 넘어간다.’
어떻게든 여기서는 싸움을 벌일 필요가 있기에 허세현은 잠시 턱을 만지며 생각하다 가볍게 말을 이었다.
“지금 미리 정리해놔야 나중에 탈출할 때 퇴로가 안 막히죠.”
“흐음, 그런가……. 핵만 파괴하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도 싶은데.”
“유비무환이죠, 유비무환. 최대한 안전하게 가자고요.”
사탕발림에 사카린은 마지못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세현은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소환수들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가 전투를 시작해 버렸다.
많은 숫자가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가니 길드원들 또한 그 분위기에 휩쓸려 전투에 뛰어들었다.
‘최대한 단기 결전으로 간다!’
세현의 조금의 고민도 없이 퀸과 함께 ‘잊혀진 엘더갓’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붉은 뱀의 장검이 놈의 금빛 양손검에 가로막혔다.
그사이 퀸이 가속해 놈의 배후로 치고 들어가 갑옷 사이로 레이피어를 빠르게 박아 넣었다. 그 안에서 검은 액체가 뿜어지며 HP가 줄어들었다.
“구으으우아!”
놈이 신경질적으로 울부짖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 주변으로 충격파가 발산됐다.
이는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라 주변에 전기스파크를 동반했는데, 이에 휘말린 몇몇 소환수와 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마도 저것은 놈이 엘더갓이던 시절에 사용하던 권능임이 틀림없었다.
“구어어어!”
놈이 분노하며 금빛 양손검을 휘돌려 쳤고, 검의 끝부분이 퀸의 머리를 후려쳤다.
쿠드득-!
퀸의 투구가 형편없이 찌그러지며 반대편으로 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와~ 너 보기보다 엄청 강하다?”
세현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대기 중이던 화이트 비숍이 곧장 퀸에게 힐을 쏟아부어 체력을 회복시켰다. 그사이 세현이 최대한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며 잊혀진 엘더갓의 무지막지한 공세를 막아 냈다.
놈이 금빛 양손검을 후려칠 때마다, 엄청난 풍압과 함께 붉은 뱀의 검이 박살 날 것 같은 소리가 나며 팔이 꺾일 것 같았다.
‘젠장. 이건 더 못 버텨.’
세현이 놈의 공격을 3회 버텨 내는 사이, 금세 회복한 퀸이 다시 복귀해 놈의 배후를 찌르고 들어갔다.
퀸은 놈의 패턴이 어느 정도 보였는지 호각지세를 이루며 합을 주고받았고, 세현은 거리를 벌린 후 먼 거리에서 붉은 뱀의 검을 이용해 놈을 견제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놈이 세현의 예측보다 훨씬 강력한 탓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SSS 클래스인 세현이야 문제없었지만 아마 다른 길드원들의 SAN 수치가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을 터였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아예 아자토스 공략이 무산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었다.
그랬다간 네크로노미콘을 만드는 작업부터 다시 해야 하기에 못 해도 몇 주의 시간을 날려버리는 리스크가 있었다.
‘젠장, 작위 수여를 여기서 써야하나? 아니면…….’
전투를 하는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작위 수여를 쓰면 어찌 잊혀진 엘더갓은 잡겠지만, 아자토스의 촉수핵을 제거할 때 곤란해질 것이 뻔했다.
“허세현, 너 어려운 것 같은데!!”
고개를 돌리자 뒤쪽에서 사카린이 고함을 외치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슬낫이 거의 원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전시키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검붉은 기운이 흉흉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 구경시켜 줄 테니까 잠깐만 시간 끌어 봐!”
그 말을 들은 세현은 곧장 공격을 포기하고 붉은 뱀의 검을 늘려 엘더갓의 한쪽 팔을 옭아맨 후, 두 마리의 룩을 다시 불러들여 양쪽에서 엘더갓에게 달려들게 했다.
두 마리의 룩이 양쪽에서 스모처럼 놈의 몸을 밀어댔고, 그사이 퀸이 뒤쪽에서 몸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그르으으으!”
놈은 고통 가득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들었고, 주변의 병사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카린은 그보다 한발 빠르게 놈에게 도착했다.
“꽉 잡아!”
그 말을 끝으로 사슬낫이 잊혀진 엘더갓에게 그대로 날아갔다.
찰나의 순간, 사슬낫의 끝에서 사신과 같은 형체의 잔상이 나타나 웃음소리를 흘리며 사라졌다.
그 직후, 내리꽂히는 사슬낫이 허공에서 수백 갈래로 분열하더니 엘더갓의 몸 위로 처박혔다.
콰드득-!
사슬낫들은 놈을 뚫고 지나가 바닥에 처박혀 몸뚱이를 옭아맸고, 세현의 소환수들은 이 폭풍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이탈했다.
콰드득-! 콰드드득-!
수백 갈래의 사슬이 놈을 도륙하며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이 옭아맸다.
놈이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할 때마다 꿰뚫린 사슬들에 엉겨 붙은 검붉은 기운이 가시처럼 올라와 상처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던 사카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구구 걱정하지 마. 금방 편하게 해 줄 테니까.”
그러곤 사슬의 끝부분을 그녀가 손으로 내리자 검붉은 기운들이 서서히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엘더갓이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고, 잠시 후 검붉은 기운들이 내뿜는 빛이 정점에 달했을 때.
퍼어엉-!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일어나며 놈의 몸뚱이가 육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그 자리엔 놈이 입던 갑옷과 양손검만이 남게 됐다.
“유후, 200레벨 스킬 장난 아니네! 허세현. 너도 빨리 200렙 찍어라!”
사카린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조금 전 이 스킬의 이름은 <사신물기>라는 스킬로 200레벨 때 받는 시련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일종의 각성기였다.
수백 개의 사슬낫을 적의 몸에 침투시켜 적의 몸을 옭아맨 후, 육체 내부에서 검붉은 기운을 폭파시키는 일격필살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사카린이 즐거워하거나 말거나. 허세현은 이를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보며 뾰로통하게 말했다.
“길드장. 조금 전 그거, 쿨 타임 얼마나 되요?”
“으으음. 보자보자, 6시간이네!”
“……그거 지금 쓰면 이따 어쩌려고요.”
“걱정 마 걱정 마~! 나 말고 다른 애들도 각성기를 다들 얻었으니까! 그리고 정 급하면 네가 그 작위 수여인지 뭔가 쓰면 되잖아? 여기서 되지도 않는 거 시간 질질 끌면 힘만 들지.”
“에효….”
세현은 고개를 잠시 절레절레 흔든 후, 곧장 다른 병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딱히 사카린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기에 입씨름을 하느니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나아가는 게 그나마 효율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후우, 다 잡았다.”
잊혀진 엘더갓이 쓰러뜨리자 나머지 병사들을 정리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겨우 십여 분 만에 모든 병사들을 깔끔히 정리한 후 서큐버스 군단은 바닥에 떨어진 무수히 많은 세트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모두 챙길 수 있었다.
“와, 대박. 아이템 퀄리티 장난 아닌데?”
“이 정도면 우리 길드원 하나씩 다 돌려 가지고도 남겠다.”
“여기서 잡고 가는 게 맞았네. 여윽씨 허세현 판단 갓갓!”
다행히도 길드원들 모두가 결과물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허세현은 다시 앞장서서 촉수핵이 있을 방향으로 길드원들을 안내했다.
가는 길에는 아자토스의 하수인이나 변이된 존재들이 계속 공격을 퍼부었지만, 조금 전 상대한 엘더갓의 군대만은 못했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전진해나갈 수 있었다.
“저게 촉수핵인지 뭔가 같은데?”
거대한 돔형의 공간. 그 중심에 놓인 집채만 한 심장이 끊임없이 맥동하고 있었다.
거기에 연결 된네 갈래의 굵은 혈관은 심장이 뛸 때마다 액체를 빨아내 벽으로 보내고 있었다.
[#. 보스 몬스터 / 아자토스의 3번 촉수핵]
- 차원의 틈 너머로 빠져나온 아자토스의 촉수들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심장. 이것이 멈추면 촉수핵 근처에 기생하는 다른 촉수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 방어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등급: 크로니클(A)
레벨: 185
촉수핵의 상태 창에는 별도의 HP는 표시되지 않았다. 중심부에 연결된 네 개의 혈관을 끊어내고 심장을 박살 내는 것이 이번 전투의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갑시다.”
세현은 가장 먼저 두 마리의 룩을 앞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땅을 제외한 공간 전체 벽면에 금이 가더니 그 틈새로 보랏빛 몸뚱이를 가진 곤충 형태의 괴물들이 괴상한 울음소리를 뱉으며 우르르 쏟아졌다.
수호충이라는 이름의 벌레들로, 아자토스의 촉수핵을 지키는 일종의 파수꾼들이었다.
놈들의 숫자는 얼핏 보기에도 수천을 넘어 보였기에, 길드원 모두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얼타지 말고 움직여! 빨리 저 혈관부터 박살 내!!”
세현은 나이츠 둘, 퀸과 함께 곧장 혈관으로 달렸다.
그 움직임을 빠르게 눈치챈 길드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혈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길드장, 작위 수여 받아요!”
“오케이!”
그리고 곧장 사카린에게 퀸의 힘을 덧씌웠다. 폭주한 그녀는 사슬낫을 돌리며 가는 길목의 수호충들을 믹서로 갈듯 갈아 내더니, 순식간에 혈관 근처까지 다가갔다.
그러자 혈관 벽 근처의 살덩이들이 가시의 형태로 늘어나 공격을 해 왔다.
“하! 날 막으려면 이 정도로는 안 되지!”
사카린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가시들을 베어 낸 후 혈관 벽을 마구잡이로 찔러댔다.
그러는 사이 다른 길드원들이 뒤이어 달라붙었고, 그녀들은 자신이 새로 얻은 각성기를 그 위에 아낌없이 때려 박았다.
콰아아악!
순식간에 혈관 하나가 박살 나며 사방으로 검은 피를 흩뿌렸다. 그러자 수호충들이 빠르게 혈관이 터진 부분에 달라붙어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막았다.
세현이 소환수들과 함께 집요하게 수호충들을 치워 내며 최대한 피를 뽑아냈지만, 결국엔 수호충들의 시체가 그 안에 쌓여 혈관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그리고 밖에서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쏟아진 피는 검은 유령들로 변이해 다시 공격을 퍼부어왔다. 공격하면 할수록 적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는, 인해전술의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