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121화.
Level 47. 아자토스 소환
1주일 정도가 더 지난 후, 서큐버스 군단은 네크로노미콘의 재료를 모두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료를 모았다고 해서 네크로노미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거 제가 완성시켜서 올 테니까 나머지 길드원들은 그동안 최종 전투 준비나 하고 있어요.”
허세현은 자신이 네크로노미콘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네크로노미콘을 완성시키는 퀘스트를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할 경우, 그 특성상 전투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았기에 취한 행동이었다.
‘이교도의 신전으로 간다,’
세현은 네크로노미콘을 완성시키기 위해 아자토스를 섬기는 이교도들의 신전을 찾아가 그들의 교주를 만났다.
“네크로노미콘의 재료인데, 너라면 이걸 완성시킬 수 있겠지?”
“호오, 인간 주제에 네크로노미콘을 모았-다라?”
온몸이 나무뿌리처럼 말라비틀어진 이교도 교주는 세현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며 질문을 이었다.
“인간 주제에 ‘그분’을 만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도 아자토스를 믿고 있어서 말이야. 기회될 때 한 번 직접 보려고.”
“이해가 가질 않는군. 단순한 호기심에 ‘그분’을 직접 보겠다?”
“그래서 뭐, 나랑 거래하기가 싫다?”
세현이 몰아붙이자 교주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또한 ‘그분’을 만나 뵙는 것이 내 평생의 숙원이지. 그분을 만나 뵙고 제물을 바치면 필멸자의 운명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을 테니…….”
교주는 노골적으로 세현의 제안에 관심을 보였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기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리라.
“좋아, 의식 따위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너를 믿을 순 없으니 내일을 좀 처리해 줘야겠다.”
“빨리 말해.”
“이 네크로노미콘에 불경한 인간들을 배불리 먹여라. 그러면 너를 믿고 의식을 진행해 주겠다.”
[#. 메인 퀘스트 / 아자토스의 제물]
- 아자토스를 모시는 주교의 신뢰를 얻고, 네크로노미콘을 완성시키기 위해 드림랜드에 머물고 있는 인간들을 먹이로 바쳐야 한다.
적정 레벨: 185
클리어 조건: 네크로노미콘이 1000명의 인간을 포식.
[수락하기]
퀘스트를 수락하자 교주가 앞으로 다가와 네크로노미콘에 가볍게 손을 얹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족의 언어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책의 겉면이 붉은 빛을 내뿜더니 표지 한가운데 상어 이빨 같은 것이 촘촘히 달려있는 커다란 입이 생겨났다.
“이 입이 인간들의 영혼을 포식할 것이다. 충분히 책을 배불린다면 내가 직접 의식을 통해 그분을 호출하도록 하겠다.”
“좋아.”
세현은 퀘스트를 받고 신전을 빠져나왔다.
‘참 이 퀘스트 만든 새끼들도 악취미야.’
자연스럽게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번 퀘스트는 네크로노미콘을 깨우기 위에 시즌4 구간에 있는 거주자들을 살해하고 이 책에 먹여야 한다.
아무리 인간이 아닌, 부활이 보장돼 있는 거주자들이라 해도 껍데기는 평범한 인간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 그들을 1000명씩이나 죽여야 하는 퀘스트기에 이를 진행하며 드는 죄악감은 보통의 사람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전생의 세계에서도 이 퀘스트를 진행하며 미쳐버리거나, SAN 수치가 바닥이 나서 재기불능이 되는 입주자들도 많았다.
세현은 이번 퀘스트를 자신이 단독으로 처리해 최대한 길드원들의 멘탈을 지켜내며 ‘네크로노미콘’을 완성시킬 생각이었다.
심지어는 세이메이와 에D츄도 8층의 집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미치겠네.’
세현은 곧장 소환수들을 모두 꺼낸 후, 곧장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인간 마을로 이동했다.
“구원자님, 오셨어요!”
“오오! 구원자님이 오셨다!”
그러자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뛰어나와 세현을 반겨줬다.
네크로노미콘의 재료를 수집하며, 근방의 마물들을 정리해 줬던 전력이 있기에 저들은 세현을 영웅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젠장, 막상 하려니까……’
자신을 향해 웃어 주는 사람들을 학살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 세현은 속이 메슥거리는 느낌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세요, 구원자님? 혹시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건가요?”
“자자, 약사 선생을 불러!”
거주자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는 와중, 세현은 노란 액체가 담긴 엘릭서 두 병을 벌컥벌컥 집어마셨다.
환각, 진통효과가 있는 것으로, 이를 활용하면 감정을 둔화시키고 SAN 수치가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모든 액체를 비운 후, 세현은 플라스크를 바닥에 던져 깨트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다들… 여기서 죽어 줘야겠어.”
† † †
[네크로노미콘이 먹은 인간의 숫자: 134 / 1000명]
콰드드득-!
“히이이익! 나으리, 왜 이러십니까!”
“사, 살려 줘!”
네크로노미콘은 게걸스럽게 사람들을 먹어치웠다.
세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환수들을 이용해 최대한 거주자들이 고통 없이 갈 수 있도록 단번에 목숨을 끊어 그들의 몸뚱이를 먹이는 것이었다.
온 사방에 비명소리가 가득했고, 세현이 지나는 마을에는 피가 강을 이루고 뼈와 살점이 흙과 뒤섞였다.
[네크로노미콘이 먹은 인간의 숫자: 364 / 1000명]
‘젠장, 이걸 클리어한 놈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들이야?’
이건 몬스터를 베어 내는 것과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세현은 퀘스트를 진행하며 스스로의 정신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가고 있음을 느껴졌다.
“우웨에에엑!”
한 마을의 학살을 끝내고 나왔을 때에는 전신에서 피비린내가 났고, 자연스럽게 구역질과 함께 먹었던 것을 시원하게 게워내야만 했다.
[네크로노미콘이 먹은 인간의 숫자: 565 / 1000명]
이전 생에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는 다른 길드에 돈을 지불하고 함께 클리어를 했다.
때문에 이 퀘스트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해 본 적이 없어, 정신적 고통이 이 정도까지 되리라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생에는 거주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기에 이들이 단순히 게임의 NPC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도 보통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죄악감이 세현의 정신을 빠르게 좀먹었다.
[네크로노미콘이 먹은 인간의 숫자: 739 / 1000명]
“사, 살려 주세요, 입주자님!”
“커허허헉! 커헉!! 이 악마 같은 놈!”
[네크로노미콘이 먹은 인간의 숫자: 897 / 1000명]
[시즌4 거주자들의 호감도가 하락합니다.]
“딸, 제 딸만은 살려주십시오!”
“아빠아아!”
콰득-!
[네크로노미콘이 먹은 인간의 숫자: 1000 / 1000명]
[네크로노미콘이 완성됐습니다!]
세현은 불과 3일 만에 1000명의 거주자를 네크로노미콘에 먹였다.
“해, 해냈다.”
탐욕스러운 마도서는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흉측한 입이 사라지고 먹어치운 사람들의 피 색을 닮은 은은한 붉은 기운을 뿜어냈다.
정신력이 바짝바짝 말라버린 세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어야 했다.
겨우 3일 동안 있던 일이지만, 아파트에 들어온 이후 세현이 겪은 최악의 경험이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난 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쓸어버린 마을… 한번 가 볼까.’
세현은 자신이 처음으로 학살을 자행했던 마을로 돌아갔다.
40층에 위치한, 척박한 황무지 위에 세워진 서부극에 나올 법한 마을.
그 마을 초입에 들어가자, 10살 남짓한 나이의 소녀가 세현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저기… 저희 마을엔 어쩐 일로.”
경계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복잡 미묘한 표정.
소녀는 세현을 완전히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저기 너, 나 기억 안 나? 내가 예전에 이 근처에 마물퇴치해 준 적 있잖아.”
“자, 잘 모르겠는데요?”
“기억이 안 난다고?”
세현은 이런저런 질문을 더 던져봤다.
“저, 저는 저녁 먹을 시간이라 이만 가 볼게요!”
그러자 소녀의 얼굴엔 경계의 기운이 더 짙어지더니 슬슬 뒤로 발걸음을 물려 마을 안쪽으로 사라졌다.
마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웠다.
마물들로부터 그들을 구해준 세현의 모습도, 또 잔인하게 그들을 학살한 세현의 모습도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이다.
‘저 인간들은 계속 반복해서 죽어야 하는 건가?’
세현은 멀쩡한 그 모습에서 안도감보다는 다른 입주자들에게 계속해서 찢어발겨져야 할 그들의 운명에 숙연함을 느꼈다.
이전 생의 기간까지 합치면 근 10년을 아파트에서 지냈지만,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생경한 감각이었다.
‘이건… 에D츄에게 물어봐야겠어.’
현재 에D츄는 펫 시스템에 종속되어 세현과 함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세현이 에D츄를 잡아 온 22층의 보스룸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에D츄가 생성되고 입주자들에게 죽어가고 있을 터였다.
아마 에D츄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보면, 세현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좀 더 확실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40층 공략이 끝나면 에D츄에게 이 문제에 관해 물어보기로 생각한 후, 세현은 발걸음을 돌렸다.
† † †
다음 날-.
서큐버스 군단 길드원 전체가 이교도의 신전으로 찾아왔다.
“교주, 약속대로 네크로노미콘을 완성해왔다.”
“오오! 드, 드디어 그분을 뵐 수 있는 것인가!”
세현이 직접 완성시킨 네크로노미콘을 교주에게 건네자 그의 마른 나무 같은 얼굴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띄워졌다.
“좋아, 의식을 바로 시작하겠다! 신도들은 예정된 대로 의식을 준비해라!”
교주는 몸이 잔뜩 달았는지 흥분한 목소리로 신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이교도의 신전 앞마당에 커다란 제단을 설치했다.
그런 후, 피가 가득 들어있는 금빛 양동이에서 피를 쏟아내 그 앞에 거대한 육망성을 그려냈다.
그들은 육망성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늘어섰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족의 언어로 뭔가의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주문은 묘한 화음을 만들어내며 듣는 사람에게 불길함을 가득 선사했다.
잠시 후, 신도 몇 명이 들것에 발가벗겨진 인간 남녀 한 쌍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고 교주가 그곳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email protected]$&(트스^#$&^&옴바라!”
제단 앞에 선 교주가 신도들의 화음에 공명하듯 주문을 읊조리더니 품속에서 뼈를 깎아 만든 단검을 꺼내, 제물이 되는 남녀의 배를 갈랐다.
콰드득-!
배에서 흘러나온 피가 재단 위로 흘러넘쳤고, 교주는 그 안에서 내장을 하나씩 꺼내 제단의 중심에 옮겼다.
“우웩, 이번 시즌은 진짜 사람 기분 더럽게 하는 데 뭐 있네.”
“으…… 한동안 순대 같은 건 먹지 말아야겠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길드원들이 질렸다는 듯 난색을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저걸 두 눈으로 보고 있어 봐야 SAN 수치만 깎여나갈 게 분명했다.
“%&마흐 타하브!$&^&겔릭 파트^#!”
교주는 완성된 네크로노미콘을 제단 중앙에 쌓여있는 내장 더미에 올린 후, 그 위에 손을 얹고 또 다시 한번 뭔가의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네크로노미콘에서 입이 생겨나 자신의 아래에 쌓인 내장들을 우걱우걱 먹어치웠고, 몸에서 보라색 빛을 내뿜었다.
파라라락-!
순간 바람이 휘몰아치며 네크로노미콘의 펼쳐져 한 장씩 빠르게 넘어갔다. 교주와 신도들의 괴상한 주문 소리는 그에 맞춰 점점 더 빠르고 크게 울려 퍼졌으며, 주변의 땅이 천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분이, 그분께서 오신다!”
모두의 광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교주가 광소를 흘리며 외쳤다.
육망성 중심부에서 검은 기운이 천천히 퍼져 나왔는데 그 너머는 어둠뿐인 무저갱의 공간으로 연결돼있었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는 무언가의 존재가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며 육망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세계질서의 절대자시여! 제가 바친 제물을 기꺼이 여기셔서 저희를 구원해주시옵소서!”
그러자 교주는 제단에서 내려와 양팔을 벌리고 목이 갈라져라 외쳤다.
[마왕 아자토스가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