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20화 (120/180)

# 120

120화.

그 말이 나온 순간 방청객과 사회자가 대단하다는 듯 탄성을 터뜨렸다.

실제로 그로기의 레벨 업 속도는 솔플을 하던 시절의 세현보다 빠를 정도로 가공할 수준이었다.

물론 한성 그룹과 팔콘이 자신들의 역량을 그에게 모두 쏟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SS급이라는 뛰어난 베이스의 존재가 컸다.

후발주자가 선발대를 따라잡기 쉽게 설계된 아파트의 특성상 그로기의 말대로 반 년 내로 ‘레벨’을 따라잡는 건, 또 팔콘이 서큐버스 군단과 같은 층까지 따라잡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따라잡는 거랑, 추월할 수 있는 거랑은 다른 얘기지.’

하지만 세현은 그다지 위기감을 느끼진 못했다.

아무리 SS급이라 해도, 한성 그룹의 자본이 동원됐다 해도, 저건 레벨 그 자체만 신경을 썼을 때 나올 수 있는 수치다.

꼼꼼히 서브 퀘스트와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며 타이틀을 획득했던 허세현과는 분명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하면 대충 빠르게 지은 모델하우스와 설계, 기초공사까지 탄탄히 다져 오며 지은 집이 같을 리가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차이는 허세현과 그로기, 단순히 두 사람의 전투력 말고도 많았다.

팔콘 같은 대형 길드에서 길드장의 역량은 단순히 전투력이 다가 아니다. 길드원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과 조직 관리 능력, 정치력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한 자리다.

팔콘의 전대 길드장인 최은철은 후에 일을 그르치긴 했지만, 이런 쪽으로는 확실히 뛰어난 인간이었다.

세현은 공식 석상에서 저런 민감한 말을 별생각 없이 내뱉는 그로기가 별다른 위협이 될 거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하하, 대단한 자신감이신데요. 역시 SS급 입주자는 다르군요! 자자. 그럼 두 분의 토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요.”

사회자는 오버스럽게 그로기를 칭찬해 주며 대충 토크를 끝내 버렸다.

“지금부터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두 분. 저를 따라와 주시죠!”

두 사람은 사회자의 안내를 따라 바깥에 대기 중인 대형 세단에 올라탔다.

세단은 곧장 어디론가 이동해, 약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멈춰 섰다. 그 앞에는 커다란 스포츠센터가 있었는데, 스태프들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부로 들어가자 커다란 실내 공간에 카메라를 든 스태프들이 미리 촬영 준비를 마쳐 놓은 채 대기 중이었다.

‘아, 여기서 한판 붙으라 그거군.’

세현은 그 이벤트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감했다.

“입주자님들, 먼저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대기 중이던 담당 PD가 그로기와 세현에게 다가와 대강의 방송 상황을 설명했다.

“주변 장비가 망가지거나 사람이 다치면 안 되니까요. 진짜 싸우시진 말고, 그냥 합을 나눈다는 정도의 느낌적인 느낌으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약하자면, 두 사람이 간단히 입주자의 위력을 생생히 볼 수 있도록 대련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대꾸 없이 순순히 강당 한가운데로 끌려 나왔다. 무기와 장비를 소환해 착용했고, 세현은 소환수를 모두 불러냈다.

“자~ 허세현 씨. 그럼 이~지하게 가자고.”

그로기가 씨익 웃자 그의 몸과 무기 위로 옅은 하늘색의 얼음이 덧씌워졌다.

이는 그로기의 클래스인 ‘프로스트킹’의 능력으로, 얼음을 자유자재로 소환해 적에게 투척하거나,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는 데 사용된다.

세현이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거의 모든 전투 상황에서 대처가 가능한 전천후 능력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살살 부탁드립니다.”

세현은 싱긋 웃으며, 붉은 뱀의 검을 단단히 잡았다.

그 직후, 그로기는 가슴에서 커다란 고드름이 자라나더니 정확히 세현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드드득-!

재빨리 붉은 뱀의 검을 휘둘러 얼음을 분쇄했지만, 그 파편들이 세현의 피부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긁어 자잘한 상처들을 남겼다.

심지어는 옆에 놓여 있던 카메라 한 대가 얼음 파편에 맞아 박살 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워워 미안, 미안해요!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실수!”

명백히 감정이 담긴 공격이지만 그로기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치미를 잡아뗐다.

그를 보며 세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힘 조절이 안 되면 조절이 되게 해 줘야지.”

그러곤 대기 중이던 소환수 중, 화이트 나이츠를 앞으로 한발 나오게 한 후 그에게 붉은 뱀의 검을 장착시켜 줬다.

“그로기 씨, 이번 대련은 제 소환수가 할 겁니다.”

“워어~ 농담하는 겁니까, 세현? 소환수 1마리? 그런 거로 어떻게 나를 상대합니까?”

“아아, 대련이잖아요 대련.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볍게 상대하세요.”

자신이 보유한 15기의 소환수 중 단 1기. 그것도 최강의 기물이 아닌 중간급 기물인 ‘화이트 나이츠’만을 사용해서 상대한다? 이는 명백히 상대를 낮잡아 보는 행동이었다.

‘저런 새끼는 기세등등할 때 한 번 망신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세현은 이번 기회에 그로기를 밟아 줄 생각이었다.

“스태프 분들, 좀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힘 조절을 하긴 할 건데. 또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요.”

“예예. 다들 장비 뒤로 크게 물린다! 빨리빨리 움직여!”

세현의 말에 화들짝 놀란 스태프들이 재빨리 촬영 장비를 들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조금 전 그로기의 일격으로 장비가 박살 났기에, 그들로서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모든 세팅이 완료됐을 때, 세현은 여유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가볍게 ‘대련’을 시작해 보자고요.”

“좋습니다!”

잔뜩 약이 올랐는지, 그로기가 앞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세현은 살짝 몸을 뒤로한 후, 왕의 명령을 사용해 ‘화이트 나이츠’를 직접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왼쪽, 오른쪽, 하단으로 피해서 어깨로 밀치기. 검으로 막고, 찌르기.’

그로기는 양쪽 팔을 커다란 갈퀴 형태로 만들어 마구잡이로 휘둘러 댔다.

SS급답게 그 공격의 속도와 파괴력은 엄청났다. 혹시라도 놈의 공격이 강당 바닥을 때릴 때면, 굉음과 함께 바닥이 푹 꺼져 버렸다.

하지만 화이트 나이츠는 세현의 명령대로 움직이면서 단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이이익! 이 자식이!”

마치 술래잡기같이 그로기와 화이트 나이츠는 쫓고 쫓기는 형국이 됐다.

그는 간혹 가다 스킬을 사용하며 화이트 나이츠를 쫓았지만, 그 수가 너무 뻔하게 읽혀 조금도 유효타를 맞추지 못했다.

스태프들은 혹여라도 저 무식한 싸움에 휘말릴까 두려워 몸을 벌벌 떨며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이이익! 이이익!”

마치 격렬한 춤을 추는 듯 허우적대는 그로기의 모습에 세현은 입꼬리를 싱긋 올렸다.

‘역시,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군.’

그가 겨우 화이트 나이츠 1기를 상대로 허우적대는 이유는 뻔했다.

팔콘과 한성 그룹에서 레벨 업을 위해 폭발적인 지원을 해 줬고, 그에 따라 제대로 된 실전에 대한 경험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일 터.

전투 센스에 있어서 독보적인 사카린과의 대련으로 다져진 허세현이다. 그런 세현이 저런 초짜를 찍어 누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좋아, 슬슬 끝내 보자고.’

세현이 손가락으로 딱-소리를 내자 화이트 나이츠의 몸에 바람이 일어나며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이익! 왓더……!”

화이트 나이츠는 재빨리 상대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가 검을 휘둘렀다.

타앙!

그로기가 재빨리 전방의 허공에 얼음 덩어리를 띄워 공격을 튕겨 냈지만, 붉은 뱀의 검이 공중에서 꿈틀거리며 재차 그의 다른 사각을 찾아 파고들었다.

타앙-!

타앙-!

타앙-!

화이트 나이츠는 계속 위치를 바꿔 가며 변화무쌍한 파상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그로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신을 얼음 방벽을 계속 만들어 내 버티는 것뿐, 반격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버티는 꼬락서니도 마음에 안 들어.’

그러던 중, 세현이 손가락을 한번 딱-! 소리를 내서 튕기자 한참 공격을 퍼붓던 화이트 나이츠의 몸이 번쩍하며 사라졌다.

“왓?!”

그 직후, 얼음 방벽 뒤에 서 있던 그로기의 코앞에 화이트 나이츠가 나타났다. 고유 스킬인 ‘블링크’를 사용해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어 파고든 것이었다.

그로기가 당황한 얼굴로 무기를 휘두르려던 찰나-.

빠아악-!

화이트 나이츠의 왼손이 그의 턱을 강하게 때리며 몸을 뒤로 볼품없이 날려 버렸다.

“뻐킹 크레이지……!”

강당 벽면에 처박힌 그로기는 분을 못 이기겠다는 듯 입에서 피를 뱉어 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대로, 제대로 된 SS급의 힘을 보여 주마!”

그러곤 양팔을 허공으로 올리자 허공에 원형의 얼음구체가 생겨나더니 빠르게 회전하며 그 크기가 점차 커졌다.

‘아, 또라이 같은 새끼.’

이를 본 세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지만, 폼과 스킬 시전에 걸리는 시간을 보아하니 보통 기술을 아닌 듯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저 기술을 사용하면 아마 강당이 박살 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촬영 중인 스태프들까지 몰살당할 게 분명했다.

“아이스 오브으으으으!”

그로기가 양팔을 앞으로 휘둘러 사람 얼음구체를 전방으로 힘껏 던졌다.

얼음구체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 한 지점에 멈추더니 갑자기 격렬히 회전하며 사방으로 사람 몸뚱이 크기의 고드름을 온 사방으로 난사했다.

“히이이이익!”

“살려 주세요!”

스태프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며 장비를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세현은 그 즉시 소환수들을 산개해 최대한 고드름을 막아 내거나 위험에 빠진 스태프들을 구하도록 했다.

모든 스태프를 구한 후에도 아이스 오브는 그 기세가 사그라지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스포츠센터를 박살 내고 있었다.

‘흐음, 한번 해 볼까?’

세현은 곧장 화이트 룩에게 작위 수여를 사용해 합체했다. 그리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허공에서 고드름을 난사하는 아이스 오브를 양팔로 붙잡았다.

콰과과과과곽!!

화이트 룩의 중갑옷이 덧씌워진 손에서 굉음과 함께 불꽃, 얼음 조각이 동시에 튀어 올랐다.

“끄으으으!”

세현은 이를 악물고 양팔을 아이스 오브의 중심부로 더더욱 밀어 넣었다. 그걸 본 그로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 아이스 오브를 손으로 잡아?”

채애애앵!

그 직후, 그로기의 렙제 100에 쿨타임 6시간짜리 스킬 ‘아이스 오브’는 세현의 양팔에서 박살 나 버렸다.

‘후우, SS급이라 그런지 빡세긴 하네.’

세현은 자신의 HP바가 반절가량 줄어든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방어에 특화된 화이트 룩과 합쳤기에 망정이지 아마 이 미친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냈다면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지금쯤 삼도천을 건너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구태여 화이트 룩에게 작위 수여를 사용해 이런 퍼포먼스를 보인 것은, 단순히 자의식이 가득한 그로기를 한번 밟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그쪽 이름이 그로기라고 했나? 역시 SS급이라 실력이 대단하네.”

오직 두 사람만이 남은,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강당 내부. 허세현이 그로기를 향해 터벅터벅 앞으로 나아갔다.

“히이익, 오지 마! 미친 괴물 놈아!”

그러자 그로기는 반쯤 정신이 나간 인간처럼 발광하며 각종 스킬들을 난사했다. 세현은 이를 온몸으로 받는 와중 간간히 포션을 섭취하며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잠깐 머리 좀 식혀.”

세현은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천천히 찍어 눌렀다. 그로기는 채 몇 초도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히이익!”

그는 더 이상 공격 의지를 잃었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세현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세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파트 안에서 설치는 건 뭐 그러려니 하겠는데, 밖에서 이러는 건 민간인이 다쳐서 곤란하거든? 다음에 또 그러면…….”

나긋나긋하지만 살의가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뒤져.”

그로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강당 멀리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세현은 그를 양팔로 잡아 강제로 일으켰다.

“그냥 여기서 있었던 일은 네가 위력조절을 잘못해서 저지른 사고다. 알겠지?”

“아… 옙!”

그로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 † †

서큐버스 군단 구석에 놓인 7~8평 남짓한 크기의 방.

컴퓨터와 영상촬영용 장비 몇 개가 놓인 방 안에, 신지영이 컴퓨터 앞에서 프링X스 감자 칩을 까먹으며 모니터를 응시하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서큐버스 군단이 39층 보스 ‘부왕 요그소토스’의 공략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현재 영상은 유튜브 최단 기간 1억 뷰를 넘겼으며, 타 국가의 영상 플랫폼으로도 건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장대한 전투씬에서 오는 박력과 서큐버스 군단이 보여준 전투는 전문가들에게 하나의 오페라를 보고 있는 듯하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그들이 명실상부 최고의 길드임을 다시 한 번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현재 서큐버스 군단에 스폰을 하는 대기업은 총 6개입니다. 스폰을 하게 될 경우 길드 멤버들의 옷에 기업 로고를 부착하게 되는데요. 이를 통해서 벌어들이는 연간 수익만 앞으로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오홍홍, 세현 씨가 앞으로도 이렇게만 잘해 주면 좋겠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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