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19화 (119/180)

# 119

119화.

세현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치즈를 품속에 넣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에D츄가 싫다는데 뭐 강제로 그럴 수야 있겠어. 에멘탈 치즈는 없던 걸로…….”

“아! 아닙뉘다!”

“뭐가 아닌데?”

“저 야수의 왕 에D츄는 허세현 주인님의 충복! 제 하찮은 배 따위! 얼마든지 베고 누우셔도 좋습니다!”

“에이~ 그래도 싫다는 걸 억지로-.”

“아닙니닷!”

그 순간, 에D츄가 팔을 뻗어 세현이 들고 있던 치즈 두 판을 빼앗아 자신의 두 뺨이 빵빵해지도록 집어넣었다.

“마, 마시쪄요!”

녀석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두 뺨을 오물대며 얼굴을 붉혔고, 치즈 두 판을 목구멍으로 남김없이 넘긴 후 뒤로 발라당 드러누워 자신의 배를 빵빵 두드렸다.

“자! 에D츄의 배 따위, 얼마든지 베고 누우시면 된다츄!”

‘하여간, 이놈의 쥐새끼는 다루기 쉽다니까.’

세현, 세이메이, 백설희가 거리낌 없이 에D츄의 배에 몸을 기댔다.

푹신푹신한데다 털도 보드랍고 체온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이 그 어떤 침대와 비교할 수 없는 안락함이 느껴졌다.

세이메이는 거의 눕자마자 잠에 들었고, 설희도 두 눈을 깜빡이더니 어느 새 도로롱 도로롱 코를 작게 골고 있었다.

세현은 인벤토리에서 재료 아이템인 [넓적한 면]을 세 장 소환해 그중 두 장을 세이메이와 설희에게 각각 몸 위에 덮어 줬다.

완벽하진 않아도 넓적한 면이 촉감이 괜찮기에 적당히 이불 대용이 되리라.

“다들 피곤했나 보구만.”

허세현 또한 피로감이 가득했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몇 달간 이어지는 사냥의 연속.

각종 포션으로 육체적 피로감은 어느 정도 회복 가능했다. 하지만 마물을 썰어 대며 피와 살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살육 자체가 주는 정신적인 피로감은 차근차근 누적되고 있었다.

조만간 휴가 내고 멀리 휴향지라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푸른 바다, 맛있는 음식과 칵테일, 이국적인 정취와 사람들. 이런저런 망상들이 아련하게 머리를 떠다니다가 흩어졌다.

“아우, 이럴 시간에 1분 1초라도 더 자자.”

세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 후, 넙적한 면을 덮고 몸을 웅크렸다.

금세 꿀 같은 잠기운이 취기처럼 몰려와 스르르 눈을 감겼고, 세상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입주자, 꽤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였던 모양이군.]

어둠 속의 공간, 그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시야에 성인 어른의 크기로 불쑥 자라난 크로노스가 서 있었다.

놈은 뭔가가 즐거운지 입꼬리를 한껏 올린, 재수 없는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세현은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육체가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의식만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 세현은 머릿속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분출할 수밖에 없었다.

‘아, 망할… 잠 좀 잘라 치니까 왜 나타나고 난리야.’

[그대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이지. 어때, 나와의 재회가 기대되지 않나?]

크로노스는 이런 세현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듯 대꾸했다.

‘아, 되게 재촉하네. 닥달 안 해도 곧 찾아갈 테니까 그만 좀 찡찡거려. 나 지금 피곤해 죽겠거든? 나 만나는 날이 너 죽는 날일 텐데 왜 이렇게 재촉하냐?’

[글쎄, 그대에게 바라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한 번에 못 알아듣게 말하는 거다.’

[싫어도 나를 만나게 될 때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될 거다.]

‘아~ 제발 내 머릿속에서 좀 꺼져 주라. 좀 그냥 쉬면 안 되겠냐? 나 피곤해 죽겠거든!’

생각으로 짜증을 퍼붓고 있을 때 다른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어이~ 허세현~.”

‘아, 좀 쉬게 두라고!’

“허세현 씨~.”

‘…….’

“허.세.현~.”

“아 진짜! 잠 좀 자게 냅 두라고!!”

“히이익!”

그 순간, 세상을 한가득 채우던 어둠이 사라지고 세현이 사냥 중이던 40층의 풍경이 돌아왔다.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야의 한가운데는 보라색 머리의 여성, 사카린이 놀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세현은 뜬 눈을 비비며 되물었다.

“엥……. 길드장?”

“아, 사람 좀 깨웠다고 왜 화를 내고 그러냐!”

“아아 미안해요. 좀 나쁜 꿈을 꿔서.”

세현은 그대로 에D츄의 배에서 내려와 기지개를 켰다.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깬 세이메이와 백설희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으짜짜~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세현은 본능적으로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물었다.

“어우 길드장이 직접 찾아왔는데 넌 왜 그렇게 노려보냐~ 내가 싫어?”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거 보니, 뭔가 귀찮은 일 시키려는 것 같아서요.”

“……젠장.”

“맞죠? 맞네! 맞아서 대답 못하는 거네. 또 귀찮은 일 나한테 떠넘기려고 왔나 보네!”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사카린은 정곡을 찔렸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빨리 말해요. 뭐 부탁하려고 그러는데요?”

“그게, 방송국에서 이번에 우리 길드 관련해서 취재를 한다고 하는데 거기 네가 나가 줬으면 해서.”

“길드장이 안 하고 왜 제가해요?”

“네가 우리 길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으니까?”

“…….”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방송 언제 나가야 되는데요?”

“내일!”

Level 46. 방송 출연

“하아, 좀 미리미리 말해 주면 안 돼요?”

“그게… 내가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 급한 일이 뭔데요.”

“나 포함 여기 모인 애들 전부 이번에 200레벨을 찍었거든? 그러니까 메시지로 ‘시련’인지 뭔지를 하러 오라 하더라고. 아무래도 이걸 클리어하면 괜찮은 스킬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모양인데, 40층 공략전에 미리 좀 해 두려고.”

“아, 시련?”

세현은 사카린이 말하는 ‘시련’이라는 시스템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입주자가 200레벨을 달성하면, 처음 클래스를 받았던 시작의 신전으로 찾아가 퀘스트를 하나 받게 된다.

이른바 ‘시련’이라 불리는 퀘스트는 각 클래스마다 그 내용이 다르며, 이를 클리어했을 시 해당 클래스에 맞는 강력한 스킬 1종을 추가로 준다.

전생의 세현도 200레벨을 넘겼기에 이 시련에 도전했던 적이 있지만, 그때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 몇 번 시도 끝에 클리어를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죠 뭐. 그 대신 그 시련인지 뭔지 클리어하고 나면 정보 좀 주세요.”

“그야 당연하지~ 아, 자세한 방송 내용은 신지영이 알려 줄 테니까 길드 건물에 가서 물어봐.”

“네네.”

대화를 끝낸 후, 세현은 바로 사냥을 접고 아파트 밖으로 향했다.

† † †

뒤에 아파트를 작게 조각해 놓은 모형이 세워진 스튜디오. 그 한가운데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인상 좋은 방송인이 정면 카메라를 응시하다 큐 사인에 맞춰 입을 열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 전문 토크쑈쑈쑈! 서동현의 ‘입주자가 간다’! 오늘 만나 뵐 분들은 아주 특별한 분들이신데요. 현재 아파트를 대표하는 양대 길드죠? 팔콘과 서큐버스 군단의 두 입주자 분을 모시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현란한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BGM과 방청객들의 박수가 흘러나왔고, 스튜디오 우측 통로에서 두 사람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한쪽은 노란 모히칸 헤어에 능글맞은 인상의 서양인, 또 한쪽은 더벅머리의 졸린 듯한 표정을 동양인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그로기 길드장님, 허세현 입주자님!”

“안녕하세요.”

“헬로 코리아! 헬로~!”

허세현은 진행자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그로기는 양팔을 벌려 그를 크게 안아 준 후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토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는 곧장 준비된 질문을 세현과 그로기에게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음, 그럼 두 분의 근황부터 말씀해 주시죠.”

“각자 현재 소속된 길드의 근황은?”

“아파트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시청자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들이죠, 입주자 분들의 현재 연봉은 어떻게 되시는지?”

질문은 민간인들이 입주자들에게 궁금해할 법한 내용이 주로 나왔다.

‘망할 놈의 길드장, 이런 걸 나한테 시켜?’

세현은 나머지 질문들은 적당히 무난한 답변을 내뱉었고, 아파트에서 있던 재미있던 일화로는 에D츄에 대한 일화를 임기응변으로 던졌다.

방청객 쪽에서 ‘귀엽다’느니, ‘보고 싶다’느니 하는 둥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반응이 썩 나쁘진 않은 듯했다.

“이건 좀 민감한 질문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두 분이 ‘이 사람’은 주목할 만하다~ 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먼저 허세현 입주자님?”

진행자가 질문을 던진 의도는 뻔했다. 함께 등장한 입주자에게 덕담을 던지기 위해 판을 깔아 놓는 것이었다.

문제는 허세현이 이런 쪽으로는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다는 점이었다.

“으으으음… 사카린 길드장? 솔직히 그 외의 입주자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요.”

그 말을 뱉는 순간, 사회자의 곤란한 얼굴과 그로기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에 세현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무울~론! 가장 주목할 만한 분은 그로기 길드장님이죠! 무려 아파트 최초 SS급 입주자 아니십니까, 하하!”

물론 이 말은 순도 100%의 뻥이었다.

솔직히 말해 세현은 자신이 사냥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통에 그로기에 대한 대강의 정보만 파악하고 있을 뿐, 그가 뭘 하고 다니는지 솔직히 1도 관심이 없었다.

“아 역시~ 그로기 길드장님은 SS급 입주자답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시겠죠. 그럼 그로기님은 어떤 입주자가 신경 쓰이시나요?”

사회자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공을 그로기에게 넘겼다.

그러자 그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워후~ 신경 쓰는 입주자 따위가 있을 리가 없쥐요. 솔직히 말해 아파트는 클래스가 전부뉘까요. 저는 SS급 클래스입니돠~!”

그는 세현에게 당했던 굴욕을 복수라도 하듯, 대놓고 다른 입주자들을 내리깔고 보았다.

여기가 아파트 안이었다면 명치라도 한 대 쳐서 허세현류 ‘예절’을 알려 줄 터였지만, 공중파 방송에서 그럴 수도 없기에 세현은 최대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만큼 자신감이 있으시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으로 두 길드의 앞으로의 행보를 좀 각자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먼저 허세현 입주자님부터 말씀해 주시죠.”

사회자는 그로기의 무례한 발언을 뭉개며 자연스레 다음 질문을 이었다.

“어, 서큐버스 군단은 몇 달 내로 시즌4 공략에 도전할 겁니다. 그리고 현재는 각 길드원들이 그 준비로 한창 분주한 상태고요.”

“정확한 날짜를 알려 주실 순 없나요?”

“그건 기업 비밀이라서요.”

세현은 일부러 공략 날짜에 아직 여유가 있는 것처럼 대꾸했다. 자칫 공략이 임박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길드들이 수작질을 벌일 확률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 서큐버스 군단의 시즌4 공략, 이번 공략까지 성공하면 3개 시즌 연속 재패인데 참 기대가 됩니다. 그럼 이번에는 그로기 길드장님께서 팔콘 길드의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팔콘~길드는 반년 내로 서큐버스 군단을 추월하는 게 목표, 아니 목표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시즌5부터는 팔콘 길드가 모~두 최초 클리어를 할 겁니다.”

세현은 속으론 ‘꿈도 크셔’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지만, 그로기의 태도와 자신감이 대단한 덕에 그저 억지스러운 미소를 띨 뿐이었다.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어떤 비결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거야 바로 나 바로 그 자체입니다. 나, 그로기 현재 레벨 이미 120 됐습니다. 반년 내로 따라잡는 것,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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