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17화.
[#. 마장기신 / 랜돌프]
- 위대한 심연의 군주 노덴스의 마장기신. 생명의 영혼을 동력으로 삼아 외신조차 상대할 수 있는 강대한 힘을 발휘한다.
이 마장기를 다루는 사용자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연료량: 100%(1시간)
재빨리 상태창을 띄워 확인해 봤지만, 마장기신이라 불리는 물건의 자세한 능력을 확인할 순 없었다.
잠시 후, 노덴스가 로봇의 발등에 손을 얹자 그의 몸이 공중으로 흩어지더니 가슴에 박힌 금빛 수정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러자 마장기신이라 명명된 로봇의 전신에서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미친, 저게 뭐야.”
“……괘. 괜찮은 거야?”
순간 세현을 포함해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노덴스가 몸으로 들어간 후 마장기신의 스펙이 표기됐는데, 그 수치가 입주자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수치를 한참이나 넘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흐아아아아아! 기어 나와라, 니알라토텝 이 짜식아!>
마장기신이 니알라토텝의 손을 양팔로 붙잡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허공에 나 있는 붉은 상처가 옆으로 점점 찢어지더니 손이 슬슬 끄집어 내지며 이쪽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서 손목, 팔에서 팔목, 잠시 후에는 거대한 오징어 같은 얼굴까지 니알라토텝의 전신이 끌려 나왔다.
“모두 뒤로 빠져.”
사카린은 단호한 목소리로 길드원 전체를 뒤로 물렸다. 눈앞에 있는 노덴스와 니알라토텝 모두 현재 수준의 입주자들이 흠집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의 존재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몬스터랑 거주자 따위가 저 정도로 강할 수 있는 거지?’
세현이 보기에 눈앞의 저 두 괴물은 못 해도 70~80층에서 보스 몬스터급으로 등장해야 격이 맞는 수준이었다. 30층에서 만났던 캐럴이나 몸속에 잠들어 있는 크로노스와 비교해도 훨씬 강했다.
이 부분에 대해 차후 커플러나 헬시안을 만나게 되면 묻기로 생각한 후, 세현은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몸을 옮겼다.
<죽어라 이 징그러운 새끼!!>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두 존재가 주먹을 뻗어 충돌할 때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노덴스를 돕기는커녕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지경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차원문 너머에서 간간히 넘어오는 마수들이 노덴스에게 달라붙는 걸 막는 정도였다.
<으아아아아아!>
마장기신이 가슴에서 금빛 화염을 전방으로 뿜어냈다. 그러자 니알라토텝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귀 막아!”
서큐버스 군단은 모두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 비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귀를 막고 있는데도 SAN 수치가 뭉텅뭉텅 깎여 나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마 저 소리를 그대로 들어 버렸다면 순간 패닉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이후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노덴스에게 조금씩 넘어갔다.
니알라토텝은 마장기신의 주먹을 계속 허락했고, 전신이 촉수처럼 이뤄진 그의 몸뚱이가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뭉텅뭉텅 살덩이가 끊어져 나갔다.
니알라토텝의 끝을 모르게 뻗어 있던 HP바가 그에 맞춰 툭툭 줄어들고 있었다.
현재 마장기신의 HP는 60%가량, 니알라토텝의 HP는 30%가량이 남은 상태, 이대로 간다면 무난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email protected]!$▒@%#!!!aF!!$>
하지만, 니알라토텝은 최후의 한 수를 남겨 두었다.
마장기신이 주먹을 뻗는 순간, 놈의 얼굴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더니 마장기신의 주먹을 감싸고, 남은 촉수들이 마장기신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당황한 노덴스가 마장기신을 움직였지만, 속박을 빠져나가기 전에 촉수 한 줄기가 가슴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찬란하게 빛을 내뿜었던 금빛 수정이 검게 물들더니 잠시 후, 촉수 끝에 노덴스의 몸뚱이가 딸려 나왔다. 그러자 마장기의 크기가 줄어들더니 그대로 힘을 잃고 뒤로 넘어져 버렸다.
<이거 놔, 이 징그러운 자식아!!!>
위태위태하게 매달린 노덴스가 오른팔의 끝에서 금빛 섬광을 검의 형태로 만들어 촉수를 끊어 냈다.
퍼억!
촉수가 잘리며 바닥에 추락했다. 추락 직후, 노덴스는 몸을 비틀비틀 일으켜 세현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의 몸에는 촉수에서 뻗어 나온 검은 기운이 빠르게 퍼져 가고 있었다.
<게이트를 열 테니까 이곳을 빠져나가!>
그가 손으로 허공을 가르자 그곳에 금빛 게이트가 생성됐다. 그 너머로 35층의 전경이 보였다. 저 게이트를 넘어가면 원래 왔었던 35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저놈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우리가 넘어가면 당신은 어떻게 되는데?”
세현은 여전히 니알라토텝의 HP가 훨씬 적기에 다시 마장기신을 이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어차피 나는 혼돈에 오염됐다. 마장기신을 쓸 수도 없고, 죽음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빨리 나가. 내 몸을 제물로 이 공간을 통째로 봉쇄하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이게 무슨…….”
세현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선택지를 골랐는데, 거주자 한 놈이 제멋대로 보스와 치고받고 싸우더니 이젠 게이트를 빠져나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다.
‘이대로 나가면 안 된다.’
예리한 직감에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퀘스트에 실패하면 다시 이 기회가 올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아파트의 퀘스트인 이상 현재 상활의 파훼법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뒤로 볼품없이 나자빠진 마장기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장기신을 향해 내달렸다.
<뭐 하는 짓이야 인마! 그걸 아무나 조종할 수 있는 줄 알아!>
노덴스가 다그쳤지만, 세현은 그를 철저히 무시한 채 가슴 쪽 황금 수정 위에 손을 얹고 마나를 흘려 넣었다.
[사용자의 사용 권한을 확인합니다.]
[관리장 ‘크로노스’ 님의 권한이 파악됐습니다. 마장기신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마스터키가 메시지를 출력하며 세현의 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마장기신은 몸에서 빛을 뿜어내더니 그 형태를 변형시켰다. 노덴스의 것보다 덩치는 조금 작아졌고, 오른 팔에는 붉은 뱀의 검을 거대화시켜 놓은 것 같은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이, 입주자 따위가 어떻게 마장기신을…….>
“뭐야, 허세현이 저거 조종하는 거야?”
“허세현! 허세현! 허세현!”
노덴스는 당황하는 기색이었고, 길드원들은 돌연 올림픽 관람이라도 하듯 응원을 보냈다.
그 순간, 마장기신의 내부의 검은 공간에 둥둥 떠 있는 세현은 현재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유 스킬은 이거고, 컨트롤은…….’
세현은 재빨리 상태 창을 이용해 마장기신이 가진 능력들을 파악했다.
짧은 순간에 파악한 것으로는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마장기신을 컨트롤할 수 있으며, 사용자의 능력과 무기를 강화시키는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로봇보다는 흡사 ‘파워드 슈트’라 부르는 쪽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좋아,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세현은 마장기신의 무릎을 굽혀 소환수 퀸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작위 수여.”
순간 퀸의 몸이 흩어지며 마장기신의 형태가 다시 한 번 변했다. 붉은 뱀의 검과 유사한 검은색, 흰색의 사복검이 양손에 각각 한 개씩 들려 있었다.
세현의 소환수 퀸의 힘이 마장기신에 덧씌워진 것이었다.
<[email protected]@%$A#@%!!!>
이를 본 니알라토텝이 당황한 듯 꽥꽥대는 외침을 뱉어냈다.
“죽어, 이 징그러운 새끼!”
세현은 양팔을 동시에 앞으로 뻗었다.
두 색의 사복검이 빠르게 앞으로 늘어나며 니알라토텝의 얼굴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콰득!
놈은 양팔을 뻗음과 동시에 손끝에서 검은 기운을 발산해 이를 튕겨 냈다. 그러자 사복검들이 그 자리에서 위로 튕겨 나가며 수백 수천 갈래로 갈라졌다.
그 갈래들은 마치 징그러운 뱀 떼처럼 제각기 의지를 가진 듯 휘청거리며 다시 한 번 니알라토텝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수천 갈래의 사복검의 놈의 몸뚱이를 꿰뚫고 지나갔다.
놈은 버둥거리며 떨쳐 내려 했지만, 수천 갈래의 검이 얽히고설켜 도통 사복검이 해체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놈의 몸뚱이만 헤집어 놓는 꼴이 되어 HP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거나 처먹어!”
세현은 사복검을 크게 끌어당기며 마장기신의 몸을 위로 붕 띄웠다. 그리고 공중에 몸이 뜬 상태로, 발을 수직으로 힘껏 내리찍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A>
묵직한 타격에 니알라토텝의 몸이 휘청하며 사복검이 살을 더더욱 파고들었다.
세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놈의 목덜미 부근에 올라타 사복검을 목에 칭칭 감아 버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두 검의 손잡이를 모두 붙잡은 후, 나머지 한 손으로 놈의 목을 뒤로 젖혔다.
목을 휘감은 칼날이 지렛대가 되어 놈의 목이 톱질을 하듯 슬근슬근 잘려 나갔다. 바닥으로 검은 액체가 폭포처럼 쏟아졌고, 세현이 놈의 목을 몸통과 분리시켜 버렸다.
놈은 광기 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죽어! 죽어어어어어!”
세현은 사복검을 뽑아 몇 번이나 시체를 고기 다지듯 수십 번이나 내리쳤다. 놈의 HP바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축하합니다! 관리장 ‘크로노스’ 님이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을 처치했습니다.]
[축하합니다! ‘허세현’ 님이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을 처치했습니다.]
그러자 괴상한 메시지와 함께 스테이지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출력됐다.
“이놈 이름은 왜 뜨는 거야…….”
크로노스의 이름이 같이 출력되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고 있을 때,
[마장기신의 연료가 모두 소모됐습니다. 탑승자 ‘크로노스’를 외부로 반출합니다.]
마스터키가 메시지를 출력하며 세현의 몸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허세현!!”
“주군!”
“쭈인니이이이임!”
그러자 너 나 할 것 없이 밖에서 기다리던 길드원들이 이쪽으로 내달렸다.
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Level 45. 오류 수정
모두가 잔뜩 들뜬 상태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니알라토텝의 시체에서 많은 재료 템을 루팅했고, 시체가 녹아내린 후에 골드와 아이템들을 꼼꼼히 챙겼다.
꽤 쓸 만한 물건들이 많아 이를 균등히 분배한다고 쳐도 각자에게 몇십억은 우습게 돌아갈 듯 보였다.
하지만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
“왜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이 안 열리는 거냐?”
“그, 그러게요?”
“뭔데 이거!”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후, 당연히 열려야 할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이 개방되지 않았다.
“노덴스 양반, 이거 어떻게 된 거야?”
<…….>
세현이 멀뚱히 서 있는 노덴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놀란 얼굴로 두 눈을 껌뻑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야? 대답 안 해?”
“어이 아저씨.”
“대답 안 하면 저 로봇 내가 가져 버린다?”
그의 뺨을 때리고 꼬집고, 심지어는 ‘중요한’ 곳을 걷어차도 봤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그러던 중.
치직… 치지직!
삐이이이이-!
귀를 찢어 놓을 듯한 노이즈와 함께 노덴스의 몸이 컴퓨터의 에러 메시지처럼 깨져 보였다. 화들짝 놀란 세현은 반사적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건….’
당혹감에 몸이 굳어 있던 그때, 마스터키가 메시지 팝업창 하나를 출력했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오류를 수정합니다. 담당 관리인 ‘커플러’가 파견됩니다!]
“어?”
그 직후, 세현의 그림자에서 검은 실루엣이 허공으로 부웅 떠올랐다.
<오랜만입니다용!~♥>
실루엣의 정체는 담당 관리인 커플러였다.
그는 성큼 앞으로 걸어가 노덴스의 어깨에 한 팔을 얹었다. 그러자 그의 몸 위로 작은 팝업창 하나가 출력됐다.
[거주자 객체 ‘심연의 노덴스(코드-4244)’, 시스템 초기화 진행 중- 0%]
0%에서 시작한 숫자가 점점 올라갈수록, 그의 흉측한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가더니 100%가 됐을 때는 그 자리에서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오호호홍, 당황하셨죠, 세현 님? 죄송해요 죄송해용! 입주자가 ‘진짜’ 니알라토텝을 쓰러뜨리는 상황은 아파트 시스템에 상정이 안 돼 있었거든용.>
“……잠깐 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커플러가 너스레를 떨며 머리를 긁적였고, 세현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