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16화 (116/180)

# 116

116화.

검은 파라오 <네프렌 카>의 난이도는 랭커들로 이뤄진 파티라 해도 클리어에 꽤 애를 먹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서큐버스 군단의 구성원 하나하나는 그런 수준의 보스의 패턴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파훼하고 아주 쉽게 데미지를 쌓아 가고 있었다.

그건 여기 있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일당백의 입주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끄아아아악!>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30분.

네프렌 카의 HP바는 바닥을 드러냈고, 사카린의 사슬낫이 놈의 목을 뎅겅 잘라 내는 것으로 놈은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검은 미라 군단의 몸뚱이가 검은 연기로 화하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바닥을 뒹구는 네프렌 카의 머리가 실성한 듯 광소를 흘리며 외쳤다.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필멸자여, 어차피 그분을 깨우는 의식은 진행 중이던 상태였다. 온전하지 않은 형태라도 그분은 이곳에 강림하실 것이다!>

<아하하하, 온다! 기어오는 혼돈이!>

그 말을 끝으로 네프렌 카의 머리는 잿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쿠우우우-!

잠시 후, 보스룸의 벽면에 하나둘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공간 자체가 분해되어 다른 모습으로 변이했다.

거대한 돔이었던 공간은 마치 우주 공간에 서 있는 듯한 광경으로 변했고, 그 한가운데는 사람만 한 크기의 붉은 수정이 천천히 회전하며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것이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을 소환하는 빛나는 부등변다면체였다.

곧 마지막 메인 퀘스트가 시작됨을 알리는 팝업창이 출력된 후, 부등변 사면체는 폭포 같은 기세로 역류하며 하늘로 섬광을 발사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붉은 기운을 토해 낸 부등변다면체는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며 소멸했고, 허공에는 공간 그 자체를 잘라 낸 듯 거대한 붉은 상처가 사선으로 나 있었다.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이 강림합니다!]

잠시 후, 붉은 상처를 뚫고 거대한 손이 앞으로 날아들었다.

쿠우우우우웅-!

모두 그것을 가까스로 피해 냈지만, 그 장중한 기세에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건, 여태 봤던 보스랑 사이즈가 완전히 다르잖아?”

[#. 보스 몬스터 /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의 왼손]

- 아버지 아우터 갓 <아자토스>의 대리인 <니알라토텝>. 필멸자 세상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우터 갓. 검은 파라오 <네프렌 카>가 그를 소환하던 중 방해를 받아 한 쪽 팔만이 이 세상으로 넘어왔다.

등급: 에픽(A)

레벨: 185

생명력 / 마나: ???? / ????

스펙이 표기되진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눈앞에 존재가 뿜어내는 기운만으로도 놈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 짐작했다.

애초에 니알라토텝은 외신, 즉 설정상 ‘아우터 갓’으로 분류된 별격의 존재. 앞선 메인 던전에서 상대했던 ‘올드원’들 따위와 비교를 하는 것이 실례인 존재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네프렌 카의 소환 의식이 불완전했기에 한 손밖에 소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퍼져요!”

세현의 외침과 동시에 모두가 일제히 산개했다.

그러자 니알라토텝의 손이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긁기 시작했다. 순간 지진과 함께 긁혀 나간 땅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마수들이 소환됐다.

육백, 칠백, 어쩌면 천 단위를 넘을지도 모르는 숫자에 모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세현이 모두에게 산개할 것을 지시한 것 또한 저 압도적인 숫자에 포위되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좋아, 이걸 한 번 써먹어 보자고.’

세현은 인벤토리에서 금빛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는 노덴스에게 받았던 나이트건트의 지배자라는 카드였다.

카드를 꼭 쥐고 마나를 조금 불어넣자 금빛 섬광이 뿜어지며 눈앞에 사람 키의 서너 배는 되는 커다란 게이트가 형성됐다.

[1회 사용으로 ‘나이트건트의 지배자’ 카드가 파괴됩니다.]

카드의 소멸을 알리는 메시지가 출력된 후, 여기서 나이트건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30분간 이 게이트는 총 90마리에 달하는 나이트건트들을 계속 생산할 것이다.

‘쪽수에 보탬은 되겠지.’

애초에 나이트건트의 전투력이 대단할 것이 없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의 어그로를 어느 정도만 끌어 준다면 충분이 제몫을 해 줄 수 있으리라.

“자, 시작합시다!”

세현은 탱커 타입 소환수들을 앞으로 내민 후, 니알라토텝의 손을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키아아악-!

그러자 마수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세현의 소환수 군단을 향해 미친 듯 돌진했다.

에D츄와 두 룩이 앞에서 놈들을 막아 냈다. 숫자가 워낙 많기에 조금씩 진영이 뒤로 밀렸지만, 그렇게 시간을 버는 사이 다른 소환수와 길드원들이 공격을 퍼부어 착실하게 마수들의 숫자를 줄여 갈 수 있었다.

거기다 뒤쪽에서 계속 소환되는 나이트건트들의 숫자가 차곡차곡 쌓이며 전투에 소소하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고착 상태가 만들어졌을 때, 세현을 비롯한 근거리 딜러 타입의 몇 명이 마수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니알라토텝의 손을 직접 공격해 HP를 빼내기 위함이었다.

“손톱 아랫부분, 손가락 관절 부분을 때려요!”

세현의 제안대로, 손에서 그나마 약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공략하자 HP가 더 빠르게 훅훅 빠지는 것이 보였다.

니알라토텝의 손은 간간히 사방으로 보라색 섬광을 뿜어냈다. 단 한 방으로 빈사 상태가 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지만, 놈은 얼굴이 없어 시야가 제한되는 것인지 그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서큐버스 군단 대부분은 놈의 공격을 허락하지 않고, 차곡차곡 데미지를 쌓아 나갔다.

그렇게 전투가 지속되던 중, 세현은 자신의 무기인 붉은 뱀의 검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뭐야 이거. 말도 안 되는 데미지가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인데?’

붉은 뱀의 검을 확확 휘두를 때마다 그 기세가 점점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수준이 미약하던 것이 전투가 지속되면 될 수록 더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적의 HP가 퍽퍽 깎여 나가는 것이 눈으로도 보일 정도가 됐다.

‘이거 혹시…….’

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템 창을 작게 띄웠다. 전투 중이기에 빠르게 설명을 눈으로 훑던 중, 한 문장에서 시선이 잠시 멈췄다.

[장수의 기질]

- 소환수의 숫자에 비례해 무기의 공격력을 향상시킵니다. (현재 소환수 숫자: 87, 상승한 공격력 수치: 43.5티어)

‘소환수 87마리?’

혹시나 하는 모습에 고개를 뒤로 돌리자 전장에 잔득 쌓여 있는 나이트건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느낌에 세현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자신의 소환수 숫자에 비례해 무기 공격력을 올려 주는 ‘장수의 기질’. 이것이 ‘나이트건트의 지배자’가 생산하는 나이트건트들을 소환수로 인식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공격력을 뻥튀기 하고 있는 것이었다.

‘똥을 뽑은 줄 알았는데 완전 히든카드였어.’

이것만 있다면 붉은 뱀의 검은 이론상 최대 106마리, 즉 53티어 무기 수준에 해당하는 공격력 버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단순히 계산해도 530레벨이 상승한 것과 비슷한 공격력이란, 아파트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력이다.

물론 게이트가 파괴되면 이 공격력은 초기화되지만, 30분은 한 전투에서 적에게 치명적인 한 칼을 먹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즈아!!”

세현은 신이 나서 더더욱 거칠게 니알라토텝의 손에 난도질을 해 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검의 위력이 점점 강해져 HP는 쭉쭉 빠져나갔고, 클리어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세현의 마스터키가 빛을 뿜으며 메시지를 출력했다.

[선행 퀘스트 ‘진흙 속에 핀 꽃’의 완료로 추가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엘더갓 노덴스가 등장합니다!]

<잘하고 있구나, 필멸자!>

그리고 허공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바닥으로 훌쩍 뛰어내려 착지했다.

흰 머리에 껄렁껄렁한 느낌을 지닌 근육질 미남자, 악신에게 대항하는 자인 엘더갓 노덴스였다. 세현은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노덴스 씨?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네가 카드를 사용하는 걸 느꼈거든, 그 찰나의 순간에 흘러들어온 기운에 니알라토텝과 싸우고 있는 걸 알았지!>

“……다 잡았는데 굳이 왜.”

세현은 손가락으로 니알라토텝의 손 위의 HP바를 가리키며 말했다.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10%정도가 남아 있었다. 이 기세를 이어간다면 아마 30분 내로 클리어가 가능할 터다.

<너희들이 니알라토텝이 풀려나는 것을 막은 건 칭찬할 일이지만 저것은 놈의 한쪽 팔일 뿐, 저걸 쓰러뜨려도 놈의 존재 자체는 건재하거든.>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할게. 내가 저 놈을 완전히 이곳으로 끄집어낸 다음 죽여도 괜찮냐?>

“내 허락을 받아야 가능한 거야?”

<차원문을 찢기 위해선 이 사건에 관여한 필멸자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거든.>

“오호.”

[#. 메인 퀘스트 / 노덴스의 결의]

- 평생 악신들에게 대항해 왔던 엘더갓 ‘노덴스’는 이번 기회에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어 합니다. 필멸자들이 허락한다면 그는 차원의 상처를 완전히 벌려 니알라토텝을 이 세계로 끄집어낸 후, 완전히 소멸시킬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당신의 도움과 허락이 필요합니다.

적정 레벨: 185

클리어 조건 :

- 니알라토텝의 사망 OR 노덴스의 사망

후 이 장소에서 탈출할 것.

[퀘스트 수락] / [퀘스트 포기]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거지.’

퀘스트 창을 본 세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시즌4의 설정상 ‘아우터 갓’급들은 그 힘이 너무 강력하기에 본체가 드러나기 전에 봉인하는 것이 대부분의 스토리 흐름이다. 그래야 메인 던전의 등장하는 ‘올드원’급의 보스들과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았다.

그런데 ‘아우터 갓’인 니알라토텝의 본체를 강제로 끄집어낸다?

이는 아무리 노덴스가 도와준다 해도 퀘스트의 난이도가 올라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물론 리스크가 클수록 보상 또한 커지는 것이 아파트의 규칙. 분명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쓸 만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세현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길드원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잠시 이놈을 멈춰 놓을 테니, 너희들끼리 논의하도록 해.>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노덴스가 니알라토텝의 손을 양팔로 붙잡았다. 그러자 금빛 아우라가 손을 감싸며 움직임을 완전히 멈춰 버렸다.

세현은 고개를 돌려 모두에게 시선을 뿌린 후, 손을 들어 올려 말했다.

“다들 잠깐만 모여봐.”

길드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세현은 자신에게 어떤 퀘스트가 발생했는지 모두에게 순순히 말했다. 자칫 잘못했다가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일이니만큼 그만큼 신중함을 기하고 싶었다.

“다들 생각은 어때?”

사카린이 묻자 다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처럼의 기회인데, 한 번 도전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퀘스트 조건이 저걸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두 놈의 승패가 결정 나는 순간까지 살아남는 거잖아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못 먹어도 고고!”

다들 내심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는 니알라토텝을 상대로 이런 반응이라니, 다른 입주자들이 본다면 분명 단체로 미쳤다고 할 게 분명했다.

“까짓 거 좋아, 노덴스 양반 한판 붙어 보자고.”

세현은 만족스러운 듯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러자 노덴스가 호탕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대꾸했다.

<좋아, 그래야 입주자답지! 지금 기어오는 혼돈을 끄집어내겠다.>

노덴스의 전신에 금빛 전기가 파직파직 소리를 내며 몰아쳤다. 그 기세는 흡사 태풍과 같았는데 그가 손을 위로 뻗었다.

콰르릉!

전류가 세차게 뻗으려 허공에 금빛 상처가 새겨졌고, 그 사이로 거대한 물체가 지상으로 낙하했다.

‘뭐야 저건?’

그 존재는 허세현조차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빌딩만 한 크기의 거대한 로봇이었다. 육중한 어깨로 인해 역삼각형의 몸을 가졌고, 몸 곳곳에는 고풍스러운 금빛 장식이 새겨져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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