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화.
퀘스트창의 확인 버튼을 터치하자 검은색이 사라지고, 눈앞에 거대한 무덤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 벽면에는 횃불이 일렁이며 어둠을 갈랐고, 바닥과 천장은 황색 빛깔의 커다란 돌이 직사각형의 형태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제가 가장 앞에 갈 테니까 다들 함정을 최대한 조심하세요.”
딸각-!
말하기 무섭게 세현의 발아래의 돌 하나가 밀려들어가며 뭔가 기계장치가 가동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직후, 천장이 열리며 위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벌레 수백 마리가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세현은 곧장 붉은 뱀의 검을 빠르게 회전시켜 벌레들을 허공에서 믹서처럼 갈아 버렸다.
“와씨…….”
이미 알고 있는 함정이었지만, 간만에 눈으로 직접 보니 괜스레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또 몇 발자국을 걸어가자 벽면에 관이 잔뜩 세워져 있는 커다란 홀이 나타났다.
“끄어어어어어.”
관뚜껑이 텅-! 소리를 내고 열리더니 그 안에서 검은 붕대를 칭칭 감은 미이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몸의 뼈가 성하지 않은지 비틀비틀 기괴한 걸음으로 다가와 입을 크게 벌렸다.
촤아아악-!
순간 보라색 연기가 전방으로 뿜어져 나왔고 그를 들이마신 몇몇 길드원의 HP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해독 포션을 빠르게 들이켜고 미라들의 몸뚱이를 허리를 끊어 버렸다. 그러자 잘린 허리에서 붉은 덩어리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것은 금방 몽글몽글 뭉치더니 형체를 이뤄 작은 사람의 형체로 변해 다시 달려들었다.
개체 하나하나가 강하진 않기에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죽일 때마다 반으로 갈라지며 분열하는 특성 때문에 꽤 상대해 주기 귀찮았다.
드르르르륵-!
겨우겨우 모든 미라를 분쇄해 버리자, 홀 반대편에 놓인 석문이 위로 올라가며 열렸다.
그곳으로 나가면 또 다시 넓은 통로가 나타났고, 통로에는 갖은 함정들이 이들을 기다렸다.
‘이거 참 다시 겪어도 짜증 나는구만.’
이곳 [검은 파라오의 무덤]은 이 함정-전투-함정-전투의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
난이도는 평이하지만, 이 특유의 구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구조가 입주자의 정신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거기에 길이도 긴데다가 주변 풍경이라고는 어둡고 음습한 무덤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듯 이곳은 여러 요소가 SAN 수치를 시도 때도 없이 낮춘다. 자칫 수치 관리를 잘못해 패닉 상태에 빠지면, 동료를 공격하거나 자해를 하는 등의 정신 공격계 디버프에 빠지기에 공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F급 시절 세현이 처음에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는, 겨우 함정 두세 개를 본 후에 SAN 수치가 바닥나 괴상한 환상을 봤을 정도였다.
이곳 [검은 파라오의 무덤]은 단순히 레벨과 장비가 빵빵하다고 클리어가 가능한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입주자들은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알아냈고, 이 경험들을 세현의 머리에 새겨져 있었다.
“자, 다들 슬슬 한 잔씩들 하죠.”
15번째 홀에서 몬스터들을 모두 제거한 후, 세현은 슬슬 ‘그것’을 먹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길드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품속에서 병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병 안에는 황색의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는데, 이는 포션이나 엘릭서 따위가 아니었다.
“거참…… 던전 공략하면서 술을 마시게 될 줄이야.”
이는 높은 도수의 위스키였다.
던전 공략 시 술을 마셔 감각을 마비시키면, SAN 수치가 일시적으로 올라갈 뿐 아니라 수치가 낮아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술을 마시면 용기가 솟아난다고.
세현은 30층에서 얻었던 ‘스타스폰의 고기’를 섭취한데다가 SSS 클래스의 특성 탓인지 SAN 수치를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이는 다른 길드원들의 SAN 수치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너무 마시면 전투에서 해롱대다가 몬스터에게 죽도록 처맞고 목숨을 잃기에 십상이다.
이 방법의 관건은 정신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당한 취기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사카린이나 세이메이가 술을 너무 마시려 들면 그때마다 세현이 달려 나가 손목을 탁탁 치는 것으로 자제시켰다.
이후 서큐버스 군단은 술의 기운을 이용해 던전 공략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무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몬스터들과 함정의 수준이 높아졌지만, 별다른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으아아아! 드디어 도착이다!”
[왕의 석실을 발견했습니다!]
[검은 파라오의 저주(1/3)(을)를 클리어 했습니다.]
던전에 들어온 지 장장 10시간, 가장 깊은 곳에서 파라오의 얼굴이 조각의 형태로 새겨져 있는 [왕의 석실]을 찾을 수 있었다.
“좀 쉬다 가자, 허세현.”
“당연하죠, 저도 피곤해 죽겠어요.”
길드원들은 석실 앞에 펼쳐진 광장 앞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무덤에 들어온 후 10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긴장을 유지해야 했기에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왔다. 미리 챙겨 온 간편식을 입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데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세현 씨, 이것 좀 드셔 보실래요?”
그때 세현을 힐끗힐끗 쳐다보던 설희가 뭔가를 양손으로 내밀었다.
보온병 뚜껑에 담긴 노란 빛을 띠는 액체. 감자와 고기가 잔뜩 들어가 탐스러움이 한껏 느껴지는 카레였다.
“어라? 준비해 오신 거예요?”
“헤헤, 시간이 좀 남아서요. 많이는 없으니까 세이메이 씨랑 몰래 같이 드세요.”
설희가 가까이 다가와 작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말을 내뱉을 때마다 숨결이 귀를 간지럽히자 순간 심장이 저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 주군! 그건 뭡니까! 저도 먹고 싶습니다!!”
“에엥?”
하지만 설희의 귓속말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손에 들린 카레를 본 세이메이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고,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아, 망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 맛있는 냄새! 쭈! 쭈인님, 에D츄도 먹고 싶어요!”
멀찌감치 떨어져 대자로 뻗어 자고 있던 에D츄가 쿵쿵 소리를 내며 세현의 앞까지 달려왔다.
“야, 나도 좀 줘 봐.”
그 직후, 사카린이 다가왔다.
“나도 한 입만!”
“이거 누가 한 거야? 진짜 맛있다!”
“와~ 고기 큰 것 봐!”
그러자 길드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세현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세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 보온 컵에 남은 것은 노란 얼룩뿐이었다.
“마, 망할……”
기껏 받은 카레를 입도 못 대 보니 괜스레 울적해졌다. 세현은 혀를 날름대며 보온병의 바닥을 싹싹 핥으며 쓴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맛있네요! 이 카레 엄청 맛있어요, 설희 씨!”
“다, 다음에 또 해 드릴게요.”
설희가 세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다독였다.
“저도 주십쇼, 설희 공!”
“나도나도!”
눈치는 밥 말아먹은 에D츄와 세이메이가 설희를 재촉했다. 마음 같아선 이마에 딱밤이라도 한 대씩 놓아주고 싶지만, 곧 보스룸에 들어가야 하기에 분노를 삭였다.
‘참자…… 이 분노를, 저 안에 있는 새끼한테 풀자.’
세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자!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까 시작하죠!”
그러곤 파라오가 새겨진 석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가져다 댔다.
[#. 메인 퀘스트 / 검은 파라오의 저주(2/3)]
- [네프렌 카]가 침입자의 기운을 느끼고 이를 막기 위해 직접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를 처치하고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를 획득하십시오.
목표:
1. [네프렌 카] 처치.
2.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획득
적정 레벨: 170
[확인]
확인 버튼을 누른 직후, 세현은 석문에 주먹을 세차게 내리쳤다.
콰앙-!
석문이 와르르 무너지며 그 너머에 있는 돔 형태의 공간이 드러났다.
“쟤, 카레 못 먹었다고 저러는 거야?”
“에이 설마……”
등 뒤에서 길드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세현은 발끈해서 대꾸했다.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빨리 들어오기나 해요!”
세현의 다그침에 길드원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오자, 아나운서의 음성이 크게 출력됐다.
[검은 파라오, 니알라토텝의 사도 [네프렌 카]가 강림합니다.]
[이벤트 컷신이 재생됩니다.]
돔 형태 구조의 꼭대기에서 검은색 기운이 일직선으로 땅에 내리꽂혔다. 그것은 수직으로 된 검은색의 통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타고 거대한 파라오의 석관 하나가 천천히 내려왔다.
흑요석으로 된 파라오의 석관은 눈과 외곽선이 루비로 만들어져 있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끼이이익-!
잠시 후, 바닥에 착지한 석관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 안에서 한 존재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온몸이 검은빛으로 덧칠해졌고, 붉은 루비 지팡이를 들고 있는 2m 정도 크기의 남자.
그가 검은 파라오 ‘네프렌 카’ 였다.
<불경한 자들인지고, 이곳이 어느 곳인지 알고 온 것이냐? 위대한 외신, 니알라토텝 님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내 친히 네놈들의 목숨을 거두어 주마!>
말할 때마다 검은 몸에서 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군대여 일어나라! 그리고 기어가는 혼돈을 찬양해라!!>
“끄어어어어……”
그가 루비 지팡이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자 검은 붕대로 온몸을 감은 미라들이 땅을 뚫고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파라오의 주변엔 어느새 수백에 달하는 검은 군대가 결집했고, 그 광경은 여느 보스 몬스터에게 뒤지지 않는 웅장함이 있었다.
“미안한데, 너한테 화풀이 좀 해야겠다.”
세현은 컷신이 끝나자마자 잔뜩 미간을 구긴 채 앞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아악-!
붉은 뱀의 검이 내달리며 네프렌카의 앞을 막아선 검은 미라 수십 구를 순식간에 회 쳐 버렸다.
<혼돈의 우주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파라오가 루비 지팡이를 휘두르자, 찢겨진 미라들이 다시 스멀스멀 일어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놈들은 공중에 떠 있는 세현을 향해 검과 창을 내뻗었다.
“으라라라!”
놈들의 어깨를 발판 삼아 위태위태하게 공중을 질주했다.
‘패턴이 훤히 보인다 머저리들아!’
검은 미라 군대의 공격이 매섭긴 했지만, 일전의 사카린과 싸웠을 때의 파상 공세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이의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세현은 그대로 네프렌 카의 목전까지 다가가 사복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소용없다!>
놈이 지팡이를 높게 들어 올리자 몸 주변에 반투명한 검은 구체가 생성됐다. 필시 적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방어막의 일종일 것이다.
까앙-!
하지만 붉은 뱀의 검은 방어막을 가볍게 빗겨 맞았다.
오히려 그 반발력을 이용하듯 네프렌 카의 뒤로 휘어 날아갔고, 방어막이 해제될 즈음 부메랑처럼 빙글 돌아 놈의 전신을 밧줄처럼 꽁꽁 감쌌다.
<끄으으으으윽!>
엇박자로 들어온 세현의 페이크 공격, 상체를 봉인 당한 검은 파라오는 괴롭다는 듯 신호했다.
“공격해요!”
세현의 신호에 길드원들과 소환수들이 곧장 미라 군대를 뚫고 돌진했다. 놈은 속수무책으로 파상 공세를 당했고, 순식간에 10%가 넘는 HP가 줄어들자 자신의 몸을 검은 연기로 흩어 버렸다.
놈은 잠시 후 후방에서 다시 나타나 루비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쳤다.
<건방진 녀석들!>
그러자 수백 개에 달하는 검은 구체가 지팡이 끝에서 뻗어 나와 온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해!”
세현은 검은 미라 한 구의 멱살을 붙잡아 방패처럼 앞으로 내밀고 펄쩍 뛰어올랐다.
퍼엉!
검은 구체가 폭발하며 미라의 몸뚱이가 공중에서 그대로 산산조각 났고, 세현은 그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내달려 다시 한 번 사복검을 뻗었다.
이번에는 검은 구체를 발사하고 있던 통에 방어막을 전개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복검이 놈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크허어억!>
검은피가 뚝뚝 떨어지며, 놈의 몸이 흔들렸다.
다른 멤버들이 금세 우르르 달라붙어 추가타를 넣었고, 놈은 다시 한 번 연기가 되어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후, 전투는 싱겁게 흘러갔다.
길드원들은 세현이 선보인 전투 방법을 참고해, 네프렌 카의 패턴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속 빈틈을 찌르고 들어갔다.
‘역시 서큐버스 군단은 서큐버스 군단이야.’
세현은 그 모습에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