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화.
“그럼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안 그래도 되는데.”
“뭐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야죠.”
세현은 어플로 택시를 호출했다. 기왕 돈 쓰는 김에 조금 제대로 해 주자는 생각에 프리미엄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러자 말로만 듣던 벤츠 택시가 바로 앞까지 두 사람을 픽업했다.
“다~ 왔습니다.”
약 30여 분쯤, 택시에서 수다를 떨고 있자니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내린 곳은, 꽤 호화스러운 느낌의 아파트 단지였다.
“오, 이런 데 사세요?”
“어때. 나 간지 쩔지? 이런 데 살고 싶지?”
사카린이 피식 웃으며 팔꿈치로 세현을 약 올리듯 살살 찔렀다.
“뭐, 저는 8층 집이면 충분합니다.”
“뭐야 시시하게. 좀 부러워하는 척이라도 해라.”
“집 살 돈도 없는 거, 남 부러워해서 뭐합니까~.”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돈이 없어.”
“소환수가 열다섯에, 에D츄, 세이메이 장비 맞추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또 다음 시즌에 장비 어떻게 바꿀지 벌써 걱정입니다.”
“그, 그래, 힘내라 허세현. 화, 화이팅!”
사카린이 어깨를 두드리며 애잔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에게 드는 장비값을 17배 한다고 생각하니 세현의 상황이 이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만 들어가세요.”
“으음…….”
고개를 꾸벅 숙여 작별 인사를 하자,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허세현,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아 또, 진짜 무슨 헛소리에요.”
“어, 농담 아닌데~!”
“안 먹어요, 안 먹어! 배불러 죽겠는데 라면은 무슨, 약속 지켰으니까 전 이만 가봅니다!”
“야야, 잠깐만.”
짜증을 내며 뒤로 돌아가려던 찰나 뒤에서 들어온 팔목이 몸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몸이 자연스럽게 빙글 돌더니 그 앞에 사카린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뭉클-.
뭔가 부드러운 감각이 세현의 입술을 자연스레 덮었다.
“이이익! 이, 이게 뭐예요.”
“오늘 고생했으니까 주는 상이야~ 조심해서 들어가.”
세현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 입술을 박박 닦았고 사카린은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곤 등을 돌려 걸어가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 † †
마치 마법사들의 학교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에 사방이 체스 판처럼 만들어진 거대한 홀. 이곳에 수백 명에 달하는 관리자들이 모여 삼삼오오 떠들고 있었다.
[관리자 총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30층 구간은 어떻게 된 겁니까? 캐럴이 입주자한테 죽었다고…….”
“크로노스가 실종된 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
“애초에 관리자가 왜 입주자와 싸운 거야?”
“대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두의 관심사는 온통 ‘캐럴’의 죽음에 쏠려 있었다.
그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 그의 동료인 시즌3의 관리자들이 침묵하고 있기에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이 한창 가중되고 있을 때, 홀 앞쪽의 단상에 한 무리의 관리자들이 나타났다.
“여.러.분~ 잠깐만 제 얘기를 들어 주세용~♥”
고개를 돌리자 커플러가 귀를 팔락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웅성거림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가 박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오늘 두 의지께서는 총회에 참석하지 않으실 겁니다용! 그리고 오늘 총회는 저 ‘커.플.러’가 진행하게 될 거예용!”
“뭐야, 진짜로?”
“미친……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저런 잡종 새끼가! 요즘 좀 잘나간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관리자들이 노골적으로 놀란 반응을 보였다.
여태 관리인 총회에 두 의지가 참여하지 않거나, 커플러 같은 하급 관리자 따위가 총회를 진행한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고, 심한 경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설을 쏟아 내기도 했다.
그때 관리장 급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이건 두 의지께서 직접 명령하신 사안이다.”
해골 팔의 냉미녀, 헬시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외친 것이었다. 관리자들은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닫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오호홍, 사랑해용 헬시안 님~♥”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자 헬시안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픽 돌려버렸다. 커플러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첫 번째로, 관리인 캐럴에 관련해 있었던 이번 사건에 대해 발표할게용~♥”
커플러는 품속에서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더니 이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캐럴은 실적에 눈이 멀어 담당 입주자 ‘최은철’과 스티그마를 이용해 계약을 맺고, 허세현을 부당하게 공격했어용! 이 과정에서 아파트의 규칙에 위배되는 행동이 여럿 적발됐고용!”
그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허공에 가루가 흩날리더니 홀로그램 형태로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그것은 그간 캐럴이 저지른 만행들을 요약하여 간단히 설명하고 있었다.
“저런 짓을 했다고?”
“시즌3 관리자 놈들은 대체 뭐 하고 있던 거야.”
영상을 본 관리자 대부분은 경악했다.
대부분 관리자가 암암리에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규칙을 조금씩 어기는 것은 예삿일이다.
하지만 관리자의 사명은 아파트 시스템이 두 의지의 뜻대로 돌아가도록 유지하는 것. 캐럴이 저지른 짓은 그들의 상식에서 이미 한참 넘어선 수준이었다.
모두가 한구석에 모여 있는 광대 가면을 쓴 시즌3 관리자들을 쳐다보자, 그들 스스로도 찔리는 것인지 애써 고개를 피하고 있었다.
“오호호홍~ 다들 보셨겠죵? 캐럴이 저지른 짓은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었고, 두 의지께서 그에 따라 처분 명령을 내리셨어용. 또한!!!”
커플러가 갑자기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치며, 홀 안에 서 있던 관리자들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잠시 바람에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순둥순둥한 달마시안 같던 커플러의 얼굴이 어느새 흉측하고 난폭한 괴수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목소리 또한 평소의 통통 튀는 느낌이 사라지고, 듣는 것만으로도 살의가 가득 느껴지는 느낌으로 변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즌3 관리자 10인은! 캐럴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침묵, 동조한 정황이 발견됐으며!>
<이에 따라 그들이 가진 보구를 회수하라는 두 의지의 판결이 있었다!!>
커플러의 말이 끝나는 순간, 시즌3 관리인들이 일제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힘의 절반을 가져가면 시스템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
“두 의지께서 그런 명을 하셨다는 증거를 대라! 아니, 애초에 이번 일은 캐럴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야!”
일제히 말도 안 되는 변명과 궤변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들은 양손에 각자의 보구를 꽉 쥐고 빛을 뿜어냈다. 이는 여차하면 커플러와 한 판 붙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멍청한 놈들!>
등골이 오싹해지는 음산한 외침이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촤아아악-!
그 직후, 커플러의 몸에서 붉은 촉수들이 뻗어 나와 시즌3 관리자들에게 날아갔다.
“공격해!”
그들은 각자의 보구를 들고 커플러를 향해 달려들었다.
“보, 보구의 힘이 사라졌다!”
“크아아아악!”
“피, 피해!!”
하지만 이는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어찌한 일인지 관리자들의 보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붉은 촉수가 가슴을 꿰뚫었고, 그것은 마치 빨대라도 꽃은 듯 관리자들의 몸의 체액을 꿀렁꿀렁 뽑아냈다.
커플러가 그들을 모두 흡수하자, 몸에 근육이 울룩불룩 일어나며 몸에서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관리인 10인의 힘이 그에게 흡수됐기 때문이리라.
그를 본 다른 관리자들은 경악했고, 헬시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두 의지께서 저런 짓을 벌이는 걸 허락했다고?’
그와 동맹 관계에 있는 헬시안조차 머릿속에 여러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관리자가 관리자의 힘을 흡수하는 것, 이건 아파트 역사상 없었던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커플러가 보인 행동은 단순히 실적이 좋아 총애를 받는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됐다.
‘조심스럽게 알아봐야겠어.’
헬시안은 분명 커플러가 두 의지께 저런 권한을 받은 것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Level 44. 니알라토텝
[SS급 입주자 그로기가 시즌2 보스인 대마신 샤이탄을 클리어했습니다. 이번 공략은 단 3명의 인원으로 이뤄졌으며, 나머지 2명의 인원은 서포터 포지션으로 사실상 그로기 입주자 혼자 샤이탄을 혼자 잡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불리는 그로기 입주자가 시즌3 또한 솔로 플레이나 다름없는 플레이로 클리어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로기 길드장은 반년 내로 서큐버스 군단을 따라잡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며…….]
† † †
서큐버스 군단이 35층에 돌입한 지 89일째가 되는 날. 메인 던전인 [검은 파라오의 무덤]을 클리어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모든 멤버들의 레벨은 200에 근접해 가고 있었으며, 세현 일행 또한 150레벨을 넘긴 상태였다.
당연하게 장비 또한 그 수준에 맞춰 다시 장만했다. 각 층 메인 던전의 보스들이 드랍했던 재료 아이템들이 여기에 유용하게 사용됐다.
이제 제대로 된 공략법만 수립한다면 보스 공략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번 보스전은 꽤 어려울 테니까 다들 작전대로 착착 진행해야 할 겁니다.”
핏빛 구름이 떠 있는 사막 유적지, 이곳 한가운데 놓인 제단 앞. 에D츄의 등에 올라탄 허세현이 보였다.
길드원들은 세현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앉아 메인 퀘스트의 브리핑을 들었다.
이번 던전의 특성상 정찰대만으로 공략을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를 다른 거주자를 통해 알아낸 양 푸는 것이었다.
때문에 완벽한 디테일을 빼고 큰 맥락만 전달해야 했지만, 이것이라도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일단 신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번 메인 던전은 크게 3개의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왕가의 무덤의 함정을 뚫고 니알라토텝의 추종자인 검은 파라오 [네프렌 카]가 있는 [왕의 석실]까지 이동하는 것.
두 번째는 [네프렌 카]를 쓰러뜨리고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를 확보하는 것.
세 번째는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를 파괴한 후, 니알라토텝이 불완전하게 소환됐을 때 이를 퇴치하고 다시 차원의 너머로 보내 버리는 것.
이는 사실상 세이브 포인트 없이 보스 세 명을 연속으로 이겨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이 과정이 아주 지긋지긋하도록 길다는 것이다.
F급이던 시절의 세현은 이를 70~80인 규모의 길드 파티에 꽤 많은 돈을 지불하고 꼽사리를 껴 클리어했는데, 그때도 거의 100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괴악한 플레이 타임의 메인 던전이었다.
그 때문에 길드원 모두가 식량이니 생필품을 단단히 챙겨 놓은 상태였다.
“자, 그럼 다들 조금만 고생하자고요.”
브리핑을 끝낸 세현이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옆으로 빠져나가자 길드원들이 고생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제 완벽히 길드원으로 인정받는 것에 세현은 뿌듯한 기분이 들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사카린 길드장님.”
고개를 돌려 사카린을 응시하자, 그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제단 앞으로 걸어가 입장권을 벅벅 찢어 버렸다.
[검은 파라오의 무덤에 입장합니다!]
그러자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메인 퀘스트 / 검은 파라오의 저주(1/3)]
- 기어오는 혼돈의 추종자인 검은 파라오 [네프렌 카]는 자신의 주인을 이 땅에 불러들이기 위해 사악한 소환 의식을 진행 중입니다. 이를 막지 않으면 이 땅에는 파멸이 찾아올 것입니다. 함정과 마수들이 넘쳐 나는 이곳을 뚫고 네프렌 카가 잠들어 있는 [왕의 석실]을 찾으십시오.
목표: 무덤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 [왕의 석실]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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