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111화.
“그, 그렇습니다. 이 분들이 이번 임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우셨기에 그 은혜를 갚고자 노덴스 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팔룬은 잠시 물러나며 한 손으로 방울 속에 갇힌 세현 일행을 가리켰다.
이에 노덴스는 근사한 미소를 띠며 박수를 쳤다. 신이라기보다는 동네 백수 형 같은 껄렁껄렁함이 그에게 느껴졌다.
<고마워 고마워! 당신들 덕분에 드림랜드에 한발 뻗을 수 있게 됐네.>
“뭐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뭐 피차 바쁠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도움을 받았으니 사례를 할게. 이중 한 장만 뽑아 봐.>
그는 손 위에 10장 정도의 금색 카드를 꺼내 들어 뒷면을 내밀었다.
“이건 뭔데?”
<최후의 희망, 노덴스 님의 축복 카드! 뭘 뽑아도 쓸 만한 게 나올 테니까 걱정 말고 대~충 뽑아.>
세현은 잠시 신음하다가 가장 끝에 놓인 카드를 뽑아 들었다.
“나이트건트의 지배자?”
그 카드 위에는 나이트건트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다.
[#. 액세서리 / 노덴스의 축복 - 나이트건트의 지배자]
- 최후의 희망 ‘노덴스’의 축복이 담긴 카드. 1회 사용시 파괴된다.
?추가 스킬: 나이트건트의 지배자 (쿨 타임 / 15일)
- 나이트건트를 주기적으로 소환하는 게이트를 설치합니다. 게이트는 파괴될 때까지 20초마다 나이트건트 1마리를 소환하며, 30분 후에 파괴됩니다. (최대 90마리 / 소환된 나이트건트는 아이템 사용자의 소환수로 판정됩니다.)
“윽….”
카드를 뽑아 든 세현은 노골적으로 안 좋은 표정을 지었다. 나이트건트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알기에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 왜? 마음에 안 들어?>
노덴스는 그 표정을 읽은 것인지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1회 사용 제한이라니..... 거기다가 나이트건트를 잔뜩 소환하는 거면 캐~후진 아이템 아니야?”
<너, 강한 건 알겠는데 얘 앞에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거 너무하지 않냐…….>
노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가락으로 팔룬을 가리켰다. 그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뭐 사, 사실이긴 합니다만.”
<야! 니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뭐가 되냐!>
“저기요, 노덴스 씨. 아까는 저한테 대~충 뽑으라고 하셨잖아요.”
세현이 정곡을 파고들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한 듯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웠다.
“왜 시선을 피하는데?”
<저, 저기 미안한데……. 어차피 축복은 한 번밖에 못줘.>
“그럼 최소한 신중하게 뽑으라는 얘기 정도는 해 줬으면-.”
<오케이 땡큐!>
“엥?”
노덴스는 갑자기 헛소리를 제멋대로 지껄였다.
당황한 세현이 입을 벙긋대자 그는 양손을 격렬하게 흔들며 갑자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의 전신이 금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 딸라! 땡큐! 아디오스! 바이바이!>
잠시 후, 노덴스의 몸이 폭발하더니 물방울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옆에 있던 팔룬이 손을 뻗으며 다급히 외쳤다.
“노, 노덴스 님!!! 이렇게 내빼시면 제가 곤란-.”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팔룬은 머리를 긁적이며 세현에게 수줍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입주자님.”
“이게 끝이야?”
“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로 끝?”
“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고작 이따위 아이템을 받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는 마음에 자괴감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세현은 이를 인벤토리에 대충 집어넣었다.
‘뭐, 시선 끌기용 미끼 정도로는 쓸 수 있겠지.’
이때의 세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이트건트의 지배자’가 본인에게 어떤 힘을 가져다줄지 말이다.
Level 42. 슈퍼루키
그 자체가 은하수같이 아름다운 형상을 한 거대한 나무 [플래닛 트리].
나뭇가지 위에는 이를 지키는 관리자 ‘정원사’들이 서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나무 아래, 수천 명에 달하는 합격자들이 벽면의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저 전광판에 8개의 숫자를 출력할 것이고 그게 수천 명에 달하는 합격자들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첫 번째 숫자는 23!>
<두 번째 숫자는…….>
숫자가 하나씩 출력될 때마다 합격자들의 탄성과 한숨이 교차한다.
<마지막 보너스 숫자는 7!>
마지막 번호마저 채워졌을 때, 대부분의 합격생들은 체념과 실망 가득한 얼굴이었고 극히 일부에게만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모두 감정 상태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이때.
“으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인파의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환호성을 내질렀고,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몰렸다.
“뭐야 저거?”
“진짜야? 농담 아니지?”
“와씨 대박.”
사람들은 그의 왼쪽 팔목에 채워진 보라색 팔찌를 보고 놀란 듯 외쳤다.
보라색 팔찌. 이는 960만분의 1의 확률로 당첨되는 SS등급을 의미하는 마스터키였다.
노란 모히칸 머리에, 개구진 인상의 얼굴을 한 20대 남자. 그의 이름은 ‘그로기’. 원래 직업은 스트리머, 즉 인터넷 1인 방송을 업으로 삼는 자였다.
24시간 관심을 필요로 하는 그가 선택한 것은 아파트의 입주 시험을 보고 그것을 중계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쯤 장난이었지만, 운명의 신이라도 내린 듯 그는 입주 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SS 등급에 당첨된 것이었다.
“아하하하 SS급이다! 미래의 대스타 탄생이라고!”
그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동안,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데프콘 길드라고 하네! 부디 우리와 계약을-!”
“자네를 스카우트하고 싶네만, 아 우리 길드는…….”
“계약금으로 40억을 주겠네! 연봉은!!”
“우리는 거기에 5억을 더 얹어 주지!”
그들 중 대부분이 상위권 길드들의 스카우터였다. 여태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SS급 클래스이기에 어떻게든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과감한 조건들을 던지고 있었다.
SS급의 등장에 플래닛트리 홀은 점점 더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피해 봐, 피하라고!”
그때 한 무리의 입주자들이 모두를 뚫고 그에게 다가갔다.
독수리가 새겨진 흰 갑옷을 장착한 남자들. 최근 ‘마상철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팔콘 길드원들이었다.
이들은 한때 최고의 명성을 가진 명실상부 최고의 길드였지만, 몇 번이고 서큐버스 군단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마상철 게이트까지 겪은 이후 하락의 길을 걸었다.
“팔콘 길드 인사팀장 정요셉이라고 합니다.”
인사팀장인 정요셉은 깍듯한 자세로 인사를 건넸다. 그로기는 여유 가득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워워~ 그쪽은 얼마를 주실 수 있죠? 팔콘 길드니까 조금 많이 주실 수 있으려나?”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그러자 요셉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SS급 입주자가 나왔습니다. 얼마까지 부르면 될까요. 예, 예. 알겠습니다. 끝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 요셉은 고갯짓을 하며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에이~ 명색이 팔콘씩이나 되는 길드가 겨우 30억? 아까 40억을 부른 길드도 있었는데?”
그로기가 코웃음을 치자 요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30억은 무슨. 300억입니다.”
“커허허헉!”
“그리고, 저희 길드의 길드장직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앞서 다른 길드들이 했던 30억이니 50억이니 했던 제안들이 쪼잔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제안이 두 개가 연달아 들어왔다.
“어…… 어…….”
당황한 그로기가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얼굴을 해 보였다. 벼락처럼 당첨된 SS급 클래스와 연이은 어마어마한 제안에 정신이 얼떨떨해진 탓이리라.
“천천히 생각해 보고 필요하시면 연락 주시죠.”
요셉은 명함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로기가 그를 멀뚱히 쳐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게요, 길드장.”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나눴고, 요셉은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네, 회장님. 저희 길드에 오기로 했습니다. 네, 그럼 지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 요셉은 그로기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같이 가시죠, 그로기님. 아니 길드장님. 최진형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 † †
[보스 ‘르뤼에의 주인 크툴루’(을)를 쓰러뜨렸습니다]
[31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르뤼에의 파괴자’(을)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카리스마 +2
[서큐버스 군단이 치고 나가는 속도가 매섭습니다. 지난 일요일, 31층 보스를 클리어했다는 소식이며 이는 31층에 진입한 지 43일 만에…….]
[31층이 클리어됐습니다. 현재 서큐버스 군단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층에 진입한 길드들은 30층을 진행 중이며…….]
[31층의 보스 공략 영상이 공개된 지 3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9천만을 넘겼습니다.]
[보스 ‘황색의 왕 하스터’(을)를 쓰러뜨렸습니다.]
[32층을 최초로 클리어 했습니다!]
[타이틀 ‘그의 이름을 부르지 말지어다.’(을)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카리스마 +1
[32층이 클리어됐습니다. 시민들은 민들레 씨앗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환호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후발주자와 차이가 계속 벌어질 경우 공략이 막혔을 때 조력을 받을 수 없어 민들레 씨앗이 등장할 확률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보스 ‘불의 흡혈귀 크투가’(을)를 쓰러뜨렸습니다.]
[33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사명감 넘치는 소방수’(을)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패시브 스킬 ‘방화복’(화염 저항력 5% 영구 증가.)
[이번 공략에서 가장 활약한 것은 부길드장인 메디아 입주자이며, 그녀는 이번 공략에서 얻은 보상 중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보스 ‘어둠의 덩어리 니오그타’(을)를 쓰러뜨렸습니다.]
[34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어둠은 방울방울’(을)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카리스마+1
[서큐버스 군단이 연일 돌풍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상 경쟁자가 없다는 평가입니다.]
[전 세계가 이들의 활약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광고업계, 패션, 연예계 등에서 거액의 몸값과 함께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 † †
아파트 35층의 필드 한복판.
온갖 생명체의 사체를 엮어서 만든 지옥 같은 풍경 위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노란색 텐트 하나가 덜렁 쳐져 있다.
그 앞에는 한쪽 눈에 안대를 낀 거대한 햄스터가 코를 도로롱 골며 세상 편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으아아아, 또 망했다!”
“이번 판도 제가 이겼군요, 주군.”
“세이메이 씨는 보드게임에 강하시네요.”
“후훗, 어렸을 때 이런 수 싸움 놀이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 덕이겠지요!”
텐트 안에는 세이메이, 허세현, 백설희가 무슨 친구끼리 펜션이라도 놀러 온 듯 지나치게 편한 복장으로 앉아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내리 5판을 했는데 세이메이가 5번 1등, 세현은 꼴등 5번을 한 상태였다.
“아…… 이것도 영 재미 없구만!”
세현은 뒤로 발라당 넘어져 하품을 쩌억- 했다.
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경쟁이 없는 아파트는 정말로 심심하고 무료했다.
서큐버스 군단은 35층까지 아무런 경쟁자 없이 승승장구하며 무난히 올라왔다. 상위권 길드들이라고 해 봐야 현재 ‘황색의 왕 하스터’가 메인 보스로 등장하는 32층에서 몇 달째 쩔쩔매고 있었다.
‘상위권 길드 놈들, 너무 느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