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109화.
[6일째]
길드 주간 회의 참석이 어려워져 사카린에게 마스터키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이트건트들의 건물이 반절 정도 완성됐고, 그래서인지 몰려드는 마수의 숫자와 스펙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특히 이날은 ‘문 비스트’라 불리는, 두꺼비의 몸에 촉수를 잔뜩 달아 놓은 것 같은 괴물이 5마리나 나타났다.
전투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놈들이 세현의 소환수들을 무시하고 곧장 나이트건트를 향해 돌진해 피해가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순찰’ 명령을 내렸던 소환수들까지 복귀시켜 마수들을 막았다.
[8일째]
어제 몇몇 건물이 파괴된 덕에 재료가 부족해졌고, 나이트건트들은 세현에게 이를 해결해 달라 부탁했다.
자리를 비웠다가는 또 마수들에게 전초기지가 박살나는 수가 있기에 세현은 퀸 하나만 데리고 재료를 구하러 떠났다.
필요한 재료는 곱창에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플라잉 폴립’의 뼈.
처의 암벽 지대에 나 있는 동굴에서 폴립의 거주 지역을 발견했고, 놈들을 일망타진한 후 재료를 넉넉하게 확보해 나이트건트들에게 건넸다.
처음으로 ‘틴탈로스의 사냥개’가 몬스터로 등장했다.
[9일째]
대부분의 건물이 완성 단계에 들어갔다.
기지를 지키는 포탑이 6개, 거기에 먼 곳에서 나이트건트들을 빠르게 소환할 수 있는 게이트웨이가 2개, 기타 전초기지에 필요한 건축물들이 속속들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이곳을 습격하는 마수들의 숫자가 수백 단위로 눈에 띄게 줄었고, 굳이 세현이 나설 것도 없이 포탑이 놈들을 간단히 섬멸해 버렸다.
[그리고, 10일째…….]
“아, 어째 히든 퀘스트치고 난이도가 너~무 쉽다고 했다.”
고지대에 서 있던 세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산을 지긋이 바라봤다.
산이라는 말은 그냥 하는 표현이 아니라, 그만큼 다가오는 존재의 크기가 거대했다.
썩어 문드러진 전신에는 문어의 촉수 같은 것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고 손은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크, 크툴루의 혈육이다!”
“모, 모두 다 주, 죽을 거야!”
그것을 본 나이트건트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심지어 몇 놈은 검은 구름 위로 날아 도망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찮은 것들!”
앞에 있는 거인은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이 없는지, 온몸의 촉수를 길게 뻗어 나이트건트들의 몸을 붙잡았다.
“사, 살려 줘!”
붙잡힌 나이트건트들의 몸은 촉수 안에서 빠르게 썩어문드러져 뼈만 남아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저거, 내가 잡을 수 있긴 한 거지?’
세현은 놈의 상태 창을 열었다.
[#. 보스 몬스터 / 크툴루 스타스폰]
- 옛 존재 크툴루의 자손. 불길하고 불길한 존재.
등급: 크로니클(A)
레벨: 173
HP / MP: ??? / ???
“아 미친…… HP 표시도 안 되는 수준이냐.”
세현은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크툴루 스타스폰은 문어 촉수가 잔뜩 달린 입을 꾸물대더니, 그 안에서 녹색 액체를 한가득 뿜어냈다. 그것은 곧장 전초기지를 향해 날아갔다.
“제에에엔장!”
곧장 두 룩이 위로 달려들어 온몸으로 액체를 받아 냈다.
치이이이이이이-!
겉 표면이 녹색 연기를 뿜으며 서서히 녹아들었다. HP가 빠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해, 화이트 비숍의 힐뿐만 아니라 생명력 물약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했다.
[크툴루 스타스폰의 몸에서 피어가 뿜어져 나옵니다!]
[SAN 수치가 감소합니다!]
[허세현 님은 ‘신화’급 클래스 입니다. ‘신화’급 클래스는 피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잠시 후, 놈의 몸에서 보랏빛 오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세현은 시즌4의 마수들을 겪어 봤기에 저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백설희, 에D츄, 세이메이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이 보였다.
“주군……!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습니다.”
“쭈, 쭈인님! 무써워요!”
이는 놈의 피어 스킬로 시즌4의 특수 스테이터스인 SAN(Sanity), 즉 ‘이성도’ 수치가 낮아져 생기는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적에게 공포감을 느끼고 몸이 움츠러들어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피어는 시즌4에서 보스전을 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요소 중 하나였다.
놈이 등장하는 순간 나이트건트들이 곧장 내뺀 것도 스타스폰의 피어에 SAN 수치가 0이 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SAN 수치를 회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중 간단한 것은 눈앞의 상대가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뇌리의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가즈아!!”
세현은 피어에 영향 받지 않는 소환수들과 함께 공격을 감행했다.
퀸과 두 나이트가 힘차게 뛰어 놈의 문어 촉수와 팔에 타고 올라 상체를 공략했고, 나머지는 소환수들은 아래에서 몰려오는 마수들과 놈의 하체에 집중했다.
세현은 최대한 과감하게 뛰어들며, 최대한 지금의 전투가 호각지세로 보이도록 연출했다.
“도, 도와야 한다!”
“몸의 떨림이 멈췄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이트건트와 설희, 세이메이, 에D츄가 하나둘씩 싸움에 합류했다.
설희의 노래를 통한 버프와 세이메이, 에D츄가 보태지자 전투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거기에 나이트건트들의 전투력은 형편없었지만, 장거리에서 공격을 날려 주는 타워가 꽤 쏠쏠하게 데미지를 박아 넣었다.
“크오오오오!”
몇 시간에 걸친 전투에 스타 스폰의 HP가 거의 30%가량 깎였을 무렵, 놈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순간 고막이 찢기는 것 같은 굉음에 세현은 귀를 꽉 틀어막았다.
“제기랄! 무슨 사자후라도 쓰는 거냐!’
하지만 이건 단순한 사자후가 아니었다. 잠시 후,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오는 물건에 세현은 입을 떡 벌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 미치겠네.”
하나의 붉은 유성이 전초기지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 크기는 직경만 어지간한 고층 빌딩을 능가하는 수준. 추락하기 전까지 저걸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 히든 퀘스트고 뭐고 포기해 버릴까.’
이게 퀘스트가 아니라면 저따위 운석이야 피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전초기지가 파괴된다면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피하든지 저 운석을 어떻게 처리하든지, 선택을 해야 했다.
‘시간이 없다, 방법을 떠올려라.’
순식간에 몇 가지 방법이 머리에 떠올렸다. 하지만 그 방법들 중 그나마 성공 확률을 가진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 방법은 되도록 쓰고 싶지 않은데…….’
[내가 필요한 모양이군.]
그 순간, 세현의 의식이 아득히 늘어졌다.
그러더니 주변에 어두워지고 드리우고 눈앞에 5~6살 남짓해 보이는 남자 꼬맹이가 나타났다. 주제에 뽀글거리는 머리에, 느끼한 얼굴을 가진 녀석이었다.
세현은 씁쓸한 미소를 띠며 놈을 향해 읊조렸다.
“넌 또 왜 튀어나왔냐? 크로노스.”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지만, 세현의 날카로운 직감이 놈의 정체를 알려 왔다. 이에 뽀글 머리 꼬맹이는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그야 허세현 네가 나를 원했으니 나타난 것이지. 그건 그렇고, 내 모습에 놀랄 줄 알았는데, 반응이 없으니 재미없군.]
“암 덩어리한테 일일이 놀라면 세상 살아갈 수 있겠냐?”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크로노스가 저렇게 구체화된 모습을 지니게 됐다는 것은 놈의 힘이 예전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때, 내 힘이 필요한가?]
세현은 멈춰 있는 스타스폰과 크로노스의 모습을 번갈아 봤다.
여기서 크로노스에게 힘을 빌린다면, 그에 비례해 놈은 더 강해질 것이다. 두 의지가 말한 대로 언젠가 한판 붙어야 한다면, 놈의 힘을 빌리는 것은 최대한 참는 게 좋을 터.
‘하지만…….’
그렇지만, 크툴루 스타스폰을 이대로 살려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저 끔찍한 문어 괴물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도 있지만, 이 정도 난이도를 가진 히든 퀘스트라면 그 보상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노스와 히든 퀘스트, 세현은 잠시 마음속에서 저울질을 하다가 결심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래, 네 힘 좀 잠시 빌리자.”
[잘 생각했다.]
놈이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내 시간을 네게 나눠 주지.]
세현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멈춰 있다. 지금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세현과 크로노스 둘뿐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5~6살 아이처럼 보였던 크로노스의 몸은 어느 새 10세는 되어 보이는 크기로 훌쩍 커 버렸다. 힘을 빌려준 대가로 본인 또한 힘을 더 되찾은 것이리라.
‘가자.’
세현은 크로노스를 애써 외면하며, 곧장 자신이 떠올렸던 작전을 실행시켰다.
일단 작위 수여를 사용해 블랙 룩의 힘을 흡수한 후, 운석을 똑바로 노려봤다.
‘이 각도에서 치고 들어간다.’
그러곤 기합을 내지르며 캐슬 차징을 사용했다.
“흐아아아아아!”
추진력을 모두 쏟아붓자, 운석의 아랫면이 아주 조금 비틀렸다.
세현은 다시 땅으로 내려와 캐슬 차징을 사용해 운석에 부딪히기를 계속 반복했다.
그렇게 떨어지는 운석의 각도가 천천히 비틀어 이윽고 크툴루 스타스폰의 머리를 향하게 만들었다.
“좋아, 선물을 준비했으니 포장도 해야지.”
그 후, 세현은 스타스폰의 촉수를 붙잡아다 운석 속에 박아 넣었다.
그렇게 모든 촉수를 운석과 연결시켰을 무렵. 작위 수여의 지속 시간이 끝나며 블랙 룩이 소환 해제되었다.
세현은 한숨을 돌린 후, 자신을 지켜보던 크로노스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자, 이제 끝났으니까 꺼져 버려.”
[힘이 또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 줬으면 좋겠군.]
크로노스는 비릿한 웃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자 잠시 어두워졌던 일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며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운석은 크툴루 스타스폰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놈은 몸을 버둥대며 운석에 연결된 촉수를 떼어 내려 했지만, 세현이 꼼꼼히 운석 속에 박아 넣은 덕에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운석은 필연적으로 안면으로 날아들었고, 놈은 양팔을 뻗어 이를 받아 냈다.
치이이이익-!
놈의 팔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몸이 서서히 밀려났다. 오징어를 굽는 듯한 맛있는 냄새가 온 사방에 진동했다.
‘돌아가면 오징어 구이 맥주나 한잔해야겠다.’
세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붉은 뱀의 검을 들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근접 공격을 할 수 있는 소환수는 모두 세현을 따라 함께 내달렸다. 그리고 운석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스타스폰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양팔과 촉수, 그리고 입까지.
모든 공격 수단이 운석을 막기 위해 총동원됐기에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쭉어, 쭉어! 이 문어 대가리!! 헥토파스칼 키이익-! 갤럭시안 펀치!!”
특히 에D츄는 일방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에 신났는지, 날아 차기니 주먹질이니 헛짓거리를 하며 생 쇼를 벌였다.
별 데미지는 없겠지 싶었지만, 귀여우니 딴죽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데미지가 계속 들어가자 운석을 가까스로 막아 내고 있던 스타스폰의 자세가 점점 불안정해졌다.
“쿠오오오오!”
그 잠시의 틈은 놈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놈의 팔이 역방향으로 꺾이며 찢어지더니 운석이 그대로 얼굴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바닥에 처박힌 놈의 몸뚱이가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세현 일행은 재빨리 거리를 벌렸고, 후폭풍에 전초기지가 피해를 입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잠시 후, 폭풍이 잦아들고 운석과 스타스폰이 처박힌 자리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남았다.
세현은 가장자리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걸 맞고도 안 죽어?”
크레이터 안에는 곤죽이 된 스타스폰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비록 HP바는 쥐똥만큼 남았지만, 무려 운석을 직격으로 맞고도 생존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네놈은, 네놈은 누구냐! 이건 대체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