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화.
[내셔널 지옥그래피 - 아파트의 영웅들 Part4: ‘브레이브킹’ 허세현]
[웨이버 웹툰 - 더 라스트 킹: 허세현]
그러자 진짜로 허세현을 주제로 한 웹툰과 다큐멘터리가 튀어나왔다.
심지어는 조회수도 꽤 높았고, 리플도 많이 달려 있었다.
‘아, 예전에 신지영이 물어봤던 게 이건가…….’
길드 주간 회의 중에 신지영이 세현에게 라이센스가 어쩌니, 초상권이 어쩌니 하면서 물어봤던 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정신없이 바쁘던 때여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대답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이것과 관련된 질문이었던 모양이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통장 잔액을 확인했을 때 이 두 곳에서 몇천만 단위의 돈이 들어왔는데 그게 이거구나 싶었다.
“한 번 봐 볼까?”
세현은 호기심과 두근거림에 웹툰과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다.
“오오 꽤 그럴싸하게 만들었네.”
다큐멘터리 쪽은 그럭저럭 볼만했다. 오류와 추측성 발언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동안 세현의 행보를 충실하게 담아냈다.
관리사무소에서 만났던 김성령 차장의 인터뷰까지 따 넣은 걸 보니 만드는 데 꽤나 고생했겠다 싶었다.
문제는 웹툰이었다.
“으아아아, 이게 뭔데! 제목이 더 라스트 킹은 뭐고, 대사는 뭔데? 엎드려라,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 이거 완전 노X레스 표절 아니냐?!”
세현을 심하게 꽃미남처럼 그려 놓은데다가 대사 하나 하나가 오글거리는 통에 얼굴이 화끈거려 터질 지경이었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눈을 파 버리거나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을 지경이다.
과거로 한 번 더 돌아갈 수 있다면, 신지영의 질문에 대충 답했던 자신을 쥐어 패서라도 이 끔찍한 물건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쪽팔려, 으아아아아!”
세현은 베개로 얼굴을 가리고, 이불을 발로 퍽퍽 걷어찼다.
“그래, 인기가 많고 실력이 있으니까 이런 것도 나온 거겠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그렇게 한참을 몸부림치다가 지쳤을 때, 세현은 혼잣말을 중얼대며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가까스로 멘탈을 붙잡았다.
“하아, 잠이나 자자…….”
세현은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대충 던졌다. 그러자 갑자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아오 누구야! 이 시간에?”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자, 액정에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대학동창 윤병종]
“잉? 이 시키가 왜.”
녀석은 세현과 대학교 동창이다. 저번 동문회에서 만났을 때, 세현에게 말을 걸어 주고 힘내라고 아이템까지 준, 나름 고마운 기억이 있는 놈이었다.
바쁜 탓에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 두고 있었는데.
“여보세요.”
세현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의 윤병종이 답지 않게 머뭇대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잘 지내냐, 세현아?”
“어 그래. 잘 지내지.”
이후 윤병종은 인사치레로 하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할 말 있으면 지금 만날래?”
“어? 어?! 그래도 괜찮아?”
“어, 어차피 지금 시간 많~다. 어디서 볼래?”
“자, 자자 잠깐만!”
병종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두 사람은 8층의 주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전화를 끊었다.
밤 11시.
약속을 잡기엔 늦은 감이 있지만, 세현은 옷을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섰다.
“어, 허, 허세현!”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윤병종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덩치는 산만 하고 생긴 것도 불독 같은 놈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세현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너 왜 그렇게 얼어붙었냐.”
“아, 그래? 아하하하 많이 티 났나? 뭐 네가 너무 잘나가서 갑자기 만나려니 좀 떨리고 머쓱해서 그렇지 뭐. 솔직히 안부 전화만 하려고 했는데, 네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별걸 다 놀란다. 근처에 아는 집 있으니까 거기서 술이나 한잔하자.”
세현은 자신이 가끔 설희나 세이메이와 가던 8층의 이자카야로 병종을 이끌었다.
두 사람은 조용한 구석 자리에 자리 잡았고, 금세 먹음직스러운 오코노미야키, 가라아게와 함께 고급스러운 병에 담긴 사케가 나왔다.
“내 소식이야 잘 알거고, 너는 그 동안 뭐하고 지냈냐?”
“아 뭐 그냥저냥 아파트에서 구르면서 지냈지.”
질문을 던지는 순간, 윤병종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세현은 그것만으로도 지난 몇 개월간 그가 어떻게 지내 왔는지 대강 추측이 됐다.
전생에 F급 입주자였기에, 낮은 등급의 입주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뻔히 알고 있기에 세현은 그의 얼굴을 보며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왜 보자고 한 거야?”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고 그래서 상담 좀 해 보려고 했지……. 너는 E급인데도 그 위치까지 갔으니까.”
얼마 전 관리사무소 조사를 받고 나온 직후, 클래스 등급을 올린 방법을 물어봤던 입주자들의 모습이 지금의 병종과 겹쳐 보였다.
“혹시나 클래스 등급 올리는 게 궁금한 거라면 미안하지만 나도 몰라.”
“그, 그렇구나.”
세현은 딱 잘라 말했다. 희망 고문은 오히려 더 큰 좌절감을 낳기에 괜한 기대감을 주는 건 장기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클래스 등급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긴 하지, 타이틀 많이 모으고, 자기 전투 스타일에 맞는 장비로 제대로 세팅하고. 그리고 실전을 겪으면서 센스를 기르면 돼.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의 전부야.”
“하긴 그렇겠지?”
그의 얼굴엔 체념과 씁쓸함이 가득했다.
이후 두 사람은 소소한 이야기를 더 나누다 적당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즐거웠다 세현아, 만나 줘서 고마워.”
“잠깐만, 이거 받아라.”
헤어지려는 찰나, 세현이 윤병종의 마스터키를 붙잡자 키에서 빛이 뿜어지며 아이템이 전송됐다.
“헉? 이, 이거 뭐야?”
아이템 목록을 확인한 병종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자신이 감히 꿈도 못 꿀 유니크급 아이템들이 세트 째로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이템 구성까지 근거리 딜러인 병종의 포지션에 딱 맞춰져 있었다.
이는 원래 세현의 블랙 나이츠가 착용하고 있던 것으로, 현재의 병종이라면 몇 년을 굴러도 맞추지 못할 수준의 아이템이리라.
“네가 예전에 나한테 선물해 준 거 갚는 거다.”
“어?”
“동창회 때 네가 나한테 선물이라고 줬던 거 기억 안 나냐? 그거 가지고 열심히 사냥해서 나중에 성공하면 갚으라며.”
“내, 내가 그랬다고?”
“그래, 인마.”
병종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더니 세현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꾸벅 숙였다.
“고, 고맙다, 허세현! 정말 잘 쓸게.”
그의 불독 같은 눈동자에서 투명한 액체가 그렁거리자 세현은 손사래를 치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으 됐어~ 친구끼리 인사는 무슨, 얼른 들어가 봐. 다음에 한가할 때 시간 나면 술이나 또 한잔하자.”
“그, 그래! 나 존나 열심히 살게, 그래서…… 그래서 이 은혜 꼭 갚을게!”
병종은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후, 뒤로 돌아 걸어갔다.
세현은 한없이 작아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여긴 등급 낮으면, 정말 지옥 같은 곳이지.’
그동안 윤병종의 얘기를 들어 보니 아파트에서 자리 잡기 위해 나름 필사적으로 살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클래스 등급의 한계라는 벽에 자주 가로막혀 차별과 조롱을 받았고, 이로 인해 아파트의 삶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 모양이었다.
개 같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리라.
‘조금만 기다려, 언젠간 싹 갈아 버릴 거니까.’
F급이던 시절의 기억이 현재와 교차되어 세현의 마음속에 작은 불길을 일으켰다.
Level 41. 드림랜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휴가 기간이 끝난 후-.
서큐버스 군단 멤버들은 시즌4의 시작을 위해 승강의 방에서 모여 동시에 31층으로 향했다.
그곳에 내리자 거대한 검은 문이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 곳곳에 악마들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모습이 새겨진, 지옥을 연상케 하는 문이었다.
‘오랜만이네.’
세현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와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나가자 높은 절벽이 모두를 반겼는데 주변이 탁 트여 있어 고개를 조금 돌리는 것으로 31층의 공간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검은 하늘과 붉은 대지, 그리고 온갖 마수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포식하는 악몽 같은 인외마경의 세계.
시즌4의 테마는 악신들에게 다스려지는 땅 ‘드림랜드’였다.
이를 본 사카린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여기 진짜 내 취향 아니네.”
다른 길드원들도 십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 뭐 항상 했던 대로 가자고, 다음 주 회의 시간까지 여기서 하고 싶은 거 하면 돼. 메인 퀘스트 정보 모으고, 레벨링 하고. 다 알지?”
사카린이 적당히 해산을 하려던 중, 부길드장 메디아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니 뭔가 귓속말을 했다.
“아 맞다, 그걸 까먹었네. 다들 잠깐만!”
그러곤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위에 BG.Ent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진 작은 스티커였다.
“다들 방어구에 이거 새기고 촬영해라.”
“그게 뭔데요? BG.Ent면 연예인들 가입돼 있는 그 엄청 큰 소속사 아니에요?”
“맞아, 여기랑 계약했거든.”
“에에에에엥?”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 놀라서 외쳤다.
사카린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쭈뼛 말을 이었다.
“아하하하, 말하려고 했는데~ 시즌3 막바지에 바빠서 새까맣게 까먹었지 뭐냐. 뭐 계약하면 방송 쪽 업무 대행해 주고 광고나 그런 거 많이 물어다 준다 하더라고. 신지영이 바빠지니까, 괜찮다 싶어서 냉큼 계약했지.”
“뭐 그것까진 좋은데 말입니다, 누님…….”
세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꾸했다.
뭐, 계약이든 뭐든 다 좋다. BG.Ent라면 한국에서 제일가는 연예 기획사이고, 글로벌에서도 충분히 먹히고 있는 실력 있는 회사다.
돈은 힘이 되고, 힘은 또 돈을 부른다.
크게 귀찮게만 안 하면야 돈을 벌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이 스티커 너무 구리지 않아요?”
“그, 그래? 밋밋해 보여서 내가 색을 좀 만져 봤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컬러가 덧칠해져 스티커는 촌스러움 그 자체였다. 심지어 Ent 로고 우측 상단에는 정체불명의 햄스터가 삐뚤빼뚤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 정도라면 차라리 BG.Ent의 로고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게 나았으리라.
“누님, 이 우측 상단에 햄스터 그림은 뭡니까?”
“그그, 네 애완 햄스터 그린 건데? 어때, 귀엽지 않아?”
“오 신이시여…….”
“츄, 저게 저라고요?! 호에에엥!”
그 말을 듣는 순간, 에D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곤 털썩 주저앉더니 앞발로 땅을 두드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아 울렸네, 울~려 버렸어.”
누가 보면 오버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세현은 누가 자신을 저 따위로 그려 놓는다면 분명 상처 입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에D츄가 이해가 갔다.
결국 사카린이 스티커에 새겨진 그림이 실은 햄스터가 아니며, 에D츄에게 나중에 에멘탈 치즈를 사 주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가까스로 일단락할 수 있었다.
“어, 어쨌든 그런 이유로 다들 스티커를 붙여 줘야 된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것인지 사카린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그제야 길드원들은 똥이라도 씹은 것 같은 얼굴로 스티커를 장비에 치덕치덕 붙였다.
“으으…… 전투력 깎이는 것 같아.”
“이거 입고 어떻게 영상을 찍지…….”
슬픈 건 세현도 마찬가지였다.
이 스티커 때문에 마사무네가 기껏 만들어 준 멋진 방어구가 싸구려처럼 보인다.
마치 돛대기 시장에서 파는 짝퉁 제품 같은 느낌.
“자아~ 다들 해, 해산!”
사카린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작게 손을 들어 외쳤다.
“네이네이~.”
길드원 모두가 쓴 웃음과 함께 둘 셋씩 조를 이뤄 흩어졌다.
세현은 언제나와 같이 설희와 조를 이뤄 움직였다.
‘일단 몸부터 풀고 시작하자.’
세현은 모든 소환수를 소환한 후, 일단 몬스터 몇을 잡는 것으로 첫 스타트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F급이던 시절이라면야 일단 몸을 사렸겠지만, 지금은 본인의 힘이 여기서 어느 수준까지 정확히 먹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새로 맞춘 장비의 성능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저기 딱 좋은 상대가 있네.”
고개를 들자, 검은 구름 아래로 거대한 새 무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