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화.
Level 40. 허세현의 보은
시즌3 종료 다음 날, 서큐버스 군단 길드 사무실.
벽면에는 빔 프로젝트로 공중파 뉴스를 흘려보내고 있었고, 길드원들은 진지한 얼굴로 이를 시청했다.
[시즌3가 클리어됐습니다. 최초 클리어는 서큐버스 군단 길드이며, 이들의 평균 레벨은 현재 143으로-.]
[일부 여론에서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서큐버스 군단 길드 전체를 추대하자는 청와대 청원운동까지 있었으며-.]
[반면 시즌1의 주역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팔콘 길드는 이번 게이트로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기에 팔콘을 이끌었던 최은철 길드장도 현재 종적을 감춘 상태이며, 이에 따라 한성 그룹의 주식도 연일 폭락하고 있습니다.]
[서큐버스 군단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8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2위와 3천만 명 차이로, 이 차이는 더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자자, 모두 박수!”
뉴스 종료 직후, 사카린이 흥에 겨워 외치자 길드원들이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이번 시즌3의 클리어로 서큐버스 군단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길드가 됐다. 여전히 길드원 숫자가 적어 길드 랭크는 4위에 머물렀지만, 이는 단지 수치일 뿐.
여론은, 또 대중은 그들이 최고라는 것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승리의 주역인 허세현은 지금 상황이 마냥 즐겁지 않았다.
‘쩝, 최은철 그 자식을 너무 허무하게 보냈어.’
철천지원수였던 최은철의 죽음, 이는 세현에게 짜릿한 쾌감보다는 허무함을 안겨 줬다.
원래대로라면 놈을 두고두고 괴롭히며 세현이 경험한 것의 몇 배는 되는 고통을 선물해 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미친 듯 달리게 했던 목표 중 하나가 이리 허무하게 사라지니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관리인 관련된 일들이나 알아봐야 하나.’
최은철 일을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세현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 메인 던전에 어째서 관리인이 보스로 등장했느냐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놈이 쓰러지고 안에서 최은철이 튀어나온 것은, 과거 크로노스를 쓰러뜨렸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기에 이게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서는 곳이 달라진다면 시야도 달라진다더니.’
세현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F급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저 목표라고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SSS급의 능력을 얻은 지금은 아파트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경쟁하는 관리자들, 뭔가를 준비하는 거주자들, 보스 몬스터로 등장한 최은철, 그리고 몸속에 심어진 크로노스까지……,
이 모든 것은 직간접적으로 세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시작의 신전에도 찾아가 봤지만, 헬시안은 허세현을 도통 만나 주지 않았다. 그나마 당장 할 수 있는 건, 몸속에 시간폭탄처럼 남아 있는 크로노스와의 대결을 준비하는 것 정도일 터였다.
“아 몰라, 고민해 봐야 답도 안 나오고. 머리만 더럽게 아프네.”
지금 서큐버스 군단 회의실에 앉아 있던 세현은 머리가 어질해지는 느낌에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자, 다들 그동안 시즌3 달리느라 엄~청 고생했어! 그래서 작은 선물을 주려고 해.”
그런 와중, 사카린이 단상 앞으로 걸어나와 품 속에서 10여 개의 봉투를 꺼내 흔들었다.
“자, 일단 허세현부터 나와.”
“에엥? 저요?”
“그래 너, 제일 고생했으니까 이 누님이 특.별.히~ 인심 써서 먼저 주는 거다.”
“네네~ 나가요 나가.”
세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앞으로 걸어 나가 사카린이 건넨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가 두께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이 문화 상품권이나 몇 장 넣어 놓은 게 아닐까 싶었다.
“자자, 빨리 열어 봐.”
사카린의 재촉하는 통에 세현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봉투를 뜯었다.
“오~?”
그러자 안에는 수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세현은 문화 상품권이 아니라는 것에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수표를 들어 올려 숫자를 셌다.
“오오~! 5천만 원이네요?”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5천만 원짜리 세 장, 도합 1억 5천만 원의 꽁돈이 생겼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런 세현의 반응이 짜증난다는 듯 사카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허세현 저게 사람 물 먹이는 재주가 있네, 나 그렇게 쪼잔한 사람 만들 거냐? 숫자 다시 세 봐.”
“엥 그게 무슨 헛소리…….”
다시 숫자를 세 보자 세현은 자신이 0 하나를 빼먹었다는 걸 알게 됐다.
“5, 5억?!”
“빙고! 한 명당 15억 인센티브다!”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카린은 길드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봉투를 한 명씩 전달했다. 봉투를 받아 갈 때마다 모두 얼굴에 충만함이 가득해 보였다.
대충 얘기를 듣자 하니 그 동안 길드에 모아 둔 적립금을 N분의 1로 계산해 나눠 줬다는 모양이다.
부길드장인 메디아가 이를 극구 말렸지만, 사카린은 어차피 잘나갈 때 또 벌면 된다며 이를 대충 넘겨 버렸다.
세현이야 내일 아니니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마침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고.
“자자,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고, 다들 일주일 동안 푹 쉬어. 시즌4도 미친 듯이 달려야지!”
잠시 후, 사카린은 쿨하게 전원 일주일 휴가와 함께 회의를 종료했다. 모두 잔뜩 들뜬 얼굴로 길드 건물을 삼삼오오 모여 빠져나갔다.
백설희와 함께 느지막이 건물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사카린이 말을 걸어왔다.
“허세현 너는 그 돈으로 뭐 할 거냐?”
“저요? 딱히 모르겠네요. 뭐 레벨 올랐으니 아이템은 좀 맞추긴 해야 될 것 같은데.”
세현의 경우, 소환수가 15명이나 되다 보니 장비라는 게 맞추려고 들면 끝도 없다.
게다가 퀸이라는 막강한 소환수가 새로 생겼고, 그동안 레벨도 빠르게 오른 턱에 장비를 한 번 싹 갈아 줘야 할 타이밍이 온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장비를 제대로 갖추면 얼마나 강해질지 짐작도 가지 않았기에 묘한 흥분감이 전신에 맴돌았다.
“아우~ 넌 지겹지도 않냐? 좀 즐기고 좀 살아라. 해외여행이라든가 자동차나 명품을 산다든가, 기껏 나온 인센티브를 그렇게 다 써야겠어?”
“뭐, 아파트 안에서 놀면 되죠.”
“으웩, 무슨 수능 만점자 인터뷰처럼 말하네. 우리 세효니눈 공부가 제일 쉬웠쪄요~!”
“아, 적당히 해요.”
세현은 핀잔을 던진 후, 사카린을 뒤로하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세현 씨, 같이 가요.”
“아, 설희 씨.”
설희가 종종 걸음으로 세현의 옆으로 따라 붇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주일 동안 뭐 하실 거예요?”
“뭐, 여유 있게 장비 세팅이나 좀 하고. 적당히 시간 때우면서 그냥 빈둥거릴 생각인데요. 뭐 정 할 거 없으면 시즌4 구경도 좀 다녀오려고요.”
“저…… 그…… 저도 같이 다녀도 될까요?”
“네?”
설희가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묻자, 세현은 살짝 놀란 듯 되물었다.
“시,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기껏 일주일 휴가 받았는데 저 같은 놈이랑 있어도 되요? 가족이나 남자 친구랑 보내시는 게.”
“그런 거 없어요.”
“뭐가요?”
“아, 남자 친구요.”
“어… 네. 뭐 그럼 같이 가요.”
세현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설희는 싱긋 웃으며 세현의 왼쪽 팔을 끌어안고 말했다.
“지금 마켓 가실 거죠?”
“아, 네. 어떻게 알았어요?”
“헤헤, 저야 세현 씨가 뭐 할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알죠. 그리고 들어갈 때 에D츄랑 세이메이 씨 드릴 먹을 것도 좀 사면 되겠죠?”
“아, 네….”
설희는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세현을 이끌었다.
이후 세현은 설희와 함께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켓에서 재료 아이템을 쓸어 담아 마사무네에게 장비 제작을 맡기고 잉크들을 이용해 소환수들에게 스티그마를 새겨 줬다.
펜에서 채취한 잉크는 퀸에게 사용했는데, 무려 관리자라는 놈이 쓰던 것이어서 그런지 스테이터스가 뻥튀기되다 못해 쓸 만한 스킬 몇 개까지 붙을 정도로 사기적인 성능을 보였다.
이후에는 자신이 최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중요 거주자들을 찾았다. 벚꽃공주, 살라웃 왕자, 그리고 앨리스와 쐐기벌레까지.
하지만 어쩐 일인지 주요 거주자들은 단 한 명도 세현을 만나 주지 않았다.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기에 세현은 그때마다 발걸음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3일.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할 뿐이었지만, 이 기간 동안 백설희는 불평 한 마디 없이 세현과 동행하며 말동무가 돼 주었다.
오히려 항상 사근사근 웃으며, 세현이 고민에 빠졌을 땐 열과 성의를 다해 조언을 해 줬다.
‘참 설희 씨도 사람 괜찮단 말이지.’
기본적으로 전투에 대한 이해도와 센스가 좋기에 실제로도 그녀의 조언이 세현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설희 씨, 이거 선물이요.”
일이 마무리 될 즈음, 세현은 고마운 마음에 작은 선물을 상자에 담아 건넸다.
설희가 상자를 뜯어보자 꽤 근사한 모양의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꽤 커다란 보석이 박혀 있는, 조금 투박하지만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목걸이었다.
물론 이는 단순한 목걸이가 아닌, 유니크 등급의 액세서리 아이템이었다.
마나 재생 옵션에 지능 스테이터스가 30이나 달려 있어 버프 스킬을 자주 사용해야 하는 설희에게 쓸 만한 물건이었다.
“가, 감사해요.”
설희는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항상 긴장감이 가득한 얼굴만 보이던 그녀기에, 간만에 웃는 얼굴을 보자니 세현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헤헤, 세현 씨. 이거 목걸이 직접 해 주실래요?”
“어…… 그래도 되요?”
“그럼요.”
설희의 요청에 세현은 헛기침을 하곤, 목걸이를 조심스레 꺼내 그녀의 목에 직접 걸어 줬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벅찬 미소가 만개했고, 그걸 본 세현은 잠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 † †
대강의 볼일이 끝난 후, 세현과 설희는 8층 집에서 남은 4일은 쉬엄쉬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세이메이, 에D츄와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보드게임이라는 것도 해 보고 근처로 소풍을 나가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세현은 삶의 빠듯함에 미처 즐겨 보지 못한 대학 생활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미리 사 놓았던 술을 조금 들이켜는 것으로 이를 애써 지우기도 했다.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주군, 설희 공도 좋은 밤 되시길.”
모두 하루 종일 신나게 놀다 지쳤을 때, 세현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대충 누워 스마트폰을 잡았다.
“음…… 간만에 리플이나 볼까?”
그러곤 서큐버스 군단 유튜브 채널로 들어가 자신의 영상에 달린 리플들을 하나둘씩 읽어 내려갔다.
영웅이니 최고니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칭찬과 찬사 가득한 리플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댓글을 보던 중 세현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Jangbob: 여윽시~ 세체입은 브레이브킹 센빠이 아니겠습니까?]
[Kumtata: ↑ 저기, 세체입이 뭐에요?]
[Jangbob: 아재~ ‘세’계 ‘체’고 ‘입주자’라고요. 혹시 브알못이면 다큐멘터리랑 웹툰 정독하고 오세여~]
[Kumtata: 브알못은 또 뭡니까?]
[Jangbob: ……말을 맙시다.]
“이잉? 내 웹툰이랑 다큐멘터리가 있어?”
세현은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