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05화 (105/180)

# 105

105화.

“작위 수여, 사카린.”

[‘작위 수여’를 사용합니다.]

[‘퀸(83레벨)’이 ‘사카린’ 님에게 힘을 이전합니다!]

콰아아아앙-!

순간 에너지의 폭발이 일어나며 사카린의 몸에 퀸의 형상을 한 갑옷이 덧씌워졌다.

그 퀸의 양손에는 각각 검은색, 흰색의 사슬낫이 각각 들려 있었다.

“이, 이건 뭐야!”

사카린은 난생 처음 느껴 보는 충만한 힘에 당황한 듯 자신의 손을 움찔거렸다.

“그럴 시간 없어요, 빨리!”

“알았다고! 젠장, 이러니까 무슨 포켓몬이라도 된 것 같잖아.”

세현의 다그침에 그녀는 사슬낫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으아아아아!”

그러곤 기합을 내지르며 자신의 카드도 꺼내 들었다.

S급 클래스 ‘나이트 스토커’의 렙제 100의 스킬 ‘밤의 주인’. 전신에 보라색 핏줄이 돋아나 빛을 내뿜으며 스테이터스를 극단적으로 증폭시킨다.

5% 경험치를 깎아 먹으며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사용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스킬. 이런 밤의 주인이 퀸의 힘과 합쳐져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이거 뭐든지 다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잖아. 위험해 위험해.’

사카린은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고양감에 입꼬리를 씩 추켜올렸다. 지금 이 상태라면 상대가 그 누구라 해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아 몸이 근질근질거렸다.

그때, 등 뒤에서 허세현의 외침이 들려왔다.

“가라, 사카린!”

“내가 포켓몬이냐고!”

사카린이 양발을 굴러 앞으로 튕겨 나갔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눈으로 쫓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 잠시 후 그 자리에선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죽어! 손가락 괴물!”

허공에 사카린의 목소리와 함께 보랏빛 잔상이 팽이처럼 맹렬히 회전했다. 그것은 손 형태의 괴물, 루이스 캐럴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놈은 펜을 휘둘러 그 공격을 몇 번이고 받아 냈지만, 사카린의 야수 같은 기세를 이겨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채앵-!

고작 5초도 되지 않는 시간, 충격을 버티다 못한 보스가 펜을 놓쳤다.

<아, 안 돼! 내 보구가!>

이를 인지한 세현은 재빨리 에D츄의 옆구리를 때리며 외쳤다.

“에D츄, 달려!”

“알겠다츄!”

<잡아!!>

루이스 캐럴의 외침에 소환된 보스급 몬스터들이 전투를 멈추고 펜이 떨어지는 방향을 향해 내달렸다. 이대로 간다면 에D츄에 올라탄 세현과 보스 몬스터들이 그대로 충돌할 기세.

“주군! 잡으십쇼!”

절체절명의 순간, 세이메이가 시키가미와 포박술로 소환된 보스 몬스터들의 발을 잠시 묶었다. 거기에 룩, 나이츠 등 다른 소환수들까지 가세해 시간을 벌었다.

세현은 그 잠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펜을 잡아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펜이 순식간에 품속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자그맣게 줄었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펜을 꽉 쥐고 허공에 빠르게 휘갈겨 간단한 문장 하나를 적었다.

「몬스터가 모두 사라진다.」

이렇게 하면 이걸로 루이스 캐럴이 소환한 보스 몬스터들을 해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에 나온 행동이었다.

하지만-.

“제기랄, 이거 내가 쓸 순 없는 거냐!”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잔뜩 열이 받은 것 같은 몬스터들이 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에D츄 튀어!”

“히이이익! 살려 주세요 쭈인님!!”

졸지에 예정에도 없던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서, 설희 씨! 저희 이속 버프 좀요! 세이메이 시키가미!”

세현은 모두의 도움을 받아 아슬아슬하게 보스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해 내며 시간을 끌었다. 말 그대로 독안에 든 쥐가 도망을 다니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한 10분여쯤 지났을까-.

“히이이익! 죄송해요 쭈인님!”

“야 이 멍청한 쥐새끼야!”

한참을 신나게 달리던 에D츄가 발이 꼬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졸지에 등에 매달린 세현도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혀 버렸다.

몬스터들이 달려왔고, 도망칠 구석은 없어 보였다. 다른 소환수들을 방패로 세우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죽어 쥐새끼이이이!”

“사, 살려츄우우우!!”

제일 먼저 달려오던 체셔캣이 날카로운 발톱을 에D츄의 얼굴을 향해 휘두르려던 순간-.

<그아아아아아아악!>

허공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함께 체셔캣의 몸뚱이가 푸른 액체로 녹아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현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허미, 저게 뭐야.”

두 개의 사슬낫이 루이스 캐럴의 손가락을 몽땅 잘라 내고 있었다. 잘린 상처에서 푸른 피가 허공으로 산개했고, 놈은 비틀대기 시작했다.

사카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슬낫들을 칼처럼 짧게 붙잡아 놈의 몸뚱이, 즉 손바닥 한가운데로 깊게 찔렀다.

콰드드득-!

진득한 소리와 함께 칼날이 놈의 손등을 뚫고 나갔다. 사카린은 사슬을 붙잡고 땅으로 뛰어 내린 후, 그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콰아아아앙-!

그러자 놈의 몸뚱이가 맥없이 딸려 와 땅에 처박힌다.

쾅-!

쾅-!

쾅-!

그리고 그걸 반대편으로, 또 반대편으로 사슬을 휘둘려 몇 번이고 반복했다.

<끄으으으윽…….>

사카린의 맹폭이 끝났을 때, 루이스 캐럴의 몸뚱이는 푸른 액체가 되어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 하나가 남았다. 마치 크로노스 때처럼 말이다.

사카린이 근처로 얼쩡대자, 허세현은 다급히 외쳤다.

“떨어져!”

이에 모두가 멈칫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아직 보스 클리어 메시지 안 떴어요. 제가 확인할 테니까 조금 기다려요.”

세현은 검은 로브와 3~4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이 보유한 폰 중 가장 레벨이 낮은 놈을 그쪽으로 보냈다. 자신이 크로노스에게 먹혔던 것과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옆까지 다가간 폰이 놈의 로브를 젖히자 얼굴에 광대 가면이 덮어씌워 있었다. 폰은 가면을 조심스레 들췄다.

그 사이로 작게 드러난 얼굴,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죽도록 복수하고 싶던, 재수 없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세현은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씨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폰이 즉시 가면을 다시 덮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양팔에서 붉은 번개를 뿜어냈다.

온몸이 오싹오싹해질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였다.

<아하하하, 나를 정말로 쓰러뜨렸다고 착각한 건 아니죠? 입주자들 따위가 그런 생각을…… 이제 인과율 따위 신경 쓰지 않아야겠어요. 리미트를 해제한 관리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허세현, 이 쓰레기 새끼가!!!>

두 개의 목소리가 교차되어 동시에 들려왔다. 두 개의 목소리 모두 세현에게 익숙했다.

하나는 22층의 메인 던전 앞에서, 또 하나는 재수 없는 대기업 도련님의 것이었다.

놈은 붉은 전기를 앞으로 쏘아 내려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파직파직- 소름끼치는 소리가 귀를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이전의 공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대한 기운이 전신의 털을 바짝바짝 서게 했다.

‘저걸 정면으로 받아 냈다간…….’

본능이 말했다. 저걸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고.

이미 ‘작위 수여’의 지속 시간이 끝나 사카린의 괴물 같은 힘도 사라졌다. 이제 와선 달리 저걸 피할 방법도, 도망칠 곳도 없는 것이다.

세현은 비장한 얼굴을 한 채 소환수들을 자신의 앞으로 결집시켰다.

그 모습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죽어!!!>>

최은철의 목소리와, 검은 로브의 음성.

그 두 개가 한데 뒤섞인 외침이 토해지며 붉은 번개가 앞으로 발사됐다.

마치 한 마리 붉은 드래곤이 지나가듯 전방이 파괴되며 소환수들이 차례대로 공중으로 붕 떠올라 볼품없이 날아갔고, 번개가 정면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세현은 최후의 발악을 하기 위해 눈을 감으며 별운검을 세로로 힘차게 내리쳤다.

‘제에에에에엔장!’

그 순간, 의식이 서서히 느려지며 찰나의 순간이 길게 늘어진 듯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의식의 틈 사이로 차가운 느낌을 가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럴, 너는 선을 한참 넘어 버렸다.>>

느려졌던 의식이 다시 가속했다.

콰지직-!

“헤헤헤헹! 슈퍼 세이브네용★!”

경박한 목소리에 세현이 감았던 눈을 뜨자, 바로 앞에는 달마시안 관리인 커플러가 온몸에서 연기를 모락모락 뿜어내며 서 있었다.

<커, 커플러!>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한 검은 로브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 직후-.

콰드드드드드득-!

뼈가 있는 고기를 강제로 뜯어내는 것 같은 묵직한 소리와 함께 검은 로브의 몸에 세로로 금이 갔다.

<이, 이런 무슨…….>

놈은 그대로 반쪽으로 갈라져 바닥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 뒤에는 거대한 도끼를 든 헬시안이 온몸에 푸른 피를 묻힌 채 차가운 눈으로 고깃덩이가 된 검은 로브를 내려다봤다.

[축하드립니다! 30층, 시즌3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원더랜드의 해방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올 스텟 +4]

[‘승강의 방’에서 31층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 직후, 메시지와 함께 성안에 폭죽이 터지며 축하 연출이 출력됐다.

하지만 길드원들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도리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이냐는 듯, 커플러와 헬시안, 두 관리자를 의문스러운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기서 관리인들이 왜 나와?”

그러거나 말거나, 헬시안은 허세현에게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한 손을 뻗으며 작게 읊조렸다.

“네가 얻은 펜은 내게 넘겨라. 그건 어차피 입주자의 신분으로 쓸 수 없는 물건이니…….”

세현은 인벤토리에 넣었던 펜을 소환한 후, 빙긋 웃으며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기브 앤 테이크, 내가 고생해서 얻은 물건인데 맨입으로 내줄 순 없지.”

이에 헬시안은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어느 상황에서든 이득을 취한다. 아주 좋은 자세야.”

그녀가 펜의 끝에 손가락을 툭 치자, 끝자락에서 푸른색 액체가 공중으로 몽글몽글 떠올랐다. 헬시안은 그 액체를 플라스크에 담아 세현에게 내밀었다.

“잉크다. 이거라면 최상급 스티그마를 새길 수 있겠지.”

“뭐,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로 봐주지.”

세현은 흔쾌히 루이스 캐럴의 펜을 넘겨 버렸다.

그러던 중, 커플러가 두 사람의 사이로 걸어 들어오더니 군침을 흘리며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헬시안 님, 제가 뒷정리를 해도 될까용?”

“……네가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볼 필요가 있었나?”

“하하, 그건 그렇죵! 그럼 잘~먹겠습니다!”

헬시안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커플러는 자신의 머리를 보란 듯 손으로 꽁-★ 소리가 나게 치더니, 입을 괴물같이 크게 벌렸다.

입 안에 상어 같은 이빨이 흉흉하게 돋아난 것이 조금 전 까지 귀여웠던 달마시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반 토막 난 최은철의 사체를 등갈비라도 되는 양 게걸스럽게 뜯어 목구멍으로 모두 넘겨 버렸다.

“꺼어어억-! 역시 맛있네용.”

“그럼 돌아가지.”

“히잉 벌써용? 아메리카노라도 한잔하면서 천천히~!”

“돌아가지.”

연거푸 계속되는 헬시안의 재촉에 커플러는 아쉽다는 듯 두 귀를 축 늘어뜨렸다.

“그럼 저희는 이만 퇴장해 볼게용…… 허세현 군, 백설희양! 두 사람 모두 화이팅입니다용~♥!”

커플러는 양 손을 크게 흔들며 요란하게 인사를 하더니 검은 형체로 변해 바닥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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