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103화.
두 의지에게 묻는다. 그것은 마탑, 아파트를 세운 자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안 그래도 최근 의문점이 많았던 세현에게 딱 필요한 기회였다.
‘뭘 물어봐야 하나…….’
세현은 한참을 숙고하던 끝에 질문을 던졌다.
“내 몸 속에 있는 크로노스의 힘, 이게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크로노스의 힘? 자네의 몸 속에 그런 게 있단 말인가? 호오…….”
쐐기벌레는 이미 크로노스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 놀란 표정을 해 보였다.
“지금 질문과 별개로, 너는 크로노스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알다마다. 크로노스 님은 제5구역의 관리장이시라네.”
“관리장?”
세현은 당혹스러운 마음에 대꾸했다.
관리장라면 관리자들 중에서도 장급의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가 몸 속에 있다 생각하니 찝찝한 마음이 금세 더 불어났다.
“미안하네만 크로노스께서 시간을 다루는 힘을 가지셨다는 것 외에는 더 아는 게 없다네.”
“뭐 그럼 그 의식인지 뭔지를 통해서 내가 방금한 질문에 대해 물어봐 줘.”
“알겠네.”
세현의 부탁에 쐐기벌레는 잠시 눈을 감고 바른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몸뚱이가 은은한 녹색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이 서서히 강렬해지며 방안을 녹색으로 완전히 물들였을 때쯤, 쐐기벌레가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두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한쪽 눈에서는 흰색의 연기가, 한쪽 눈에서는 검은 연기가 격렬히 뿜어졌다.
<<아, 네가 허세현이구나. 드디어 만나는 걸~!>>
<<덕분에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연애는 잘돼 가나? 근처에 세 명이나 보이던데 어떻게 되려나~ 아, 바로 옆에 한 명 있네~! 거주자랑 금단의 사랑을 선택하려나? 그것도 재미있겠는데!>>
“어……. 이게 무슨…….”
쐐기벌레의 입에서 톤이 다른 두 여성의 목소리가 교차로 흘러나왔다.
한쪽은 쿨한 느낌의 누님 같은 목소리, 한쪽은 애교가 넘치는 귀여운 목소리였다. 징그러운 쐐기벌레의 입에서 저런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굉장한 위화감과 함께 소름이 쫙 돋았다.
<<아하하하, 표정 봐! 당황했다 당황했어!>>
<<놀리는 맛이 있네.>>
세현은 뺨을 탁탁 두드려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질문 드린 내용에 대해서 답해 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성격참 급하네. 우리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닌데 말야~ 성격 급한 남자는 인기 없어.>>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지.>>
<<아하하하하! 그게 뭐야 델~!>>
쐐기벌레의 입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장난은 여기까지 해 두고 네 질문에 대답해 줄게.>>
<<네 몸 속에 있는 크로노스의 힘은 네가 그 녀석의 힘을 빌려 쓸 때마다 점점 커지고 있어. 이대로 간다면 아마 크로노스 녀석이 너를 집어삼키겠지.>>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은 원래 한 개만 하는 것 아니었어?>>
“…….”
세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하하! 표정 썩는 것 봐. 농담이야 농담! 나도 그 정도 자비는 있다고.>>
<<결말은 하나야. 네가 더 강한 힘으로 크로노스를 삼키든가, 아니면 크로노스에게 먹히든가.>>
<<언젠가는 너를 집어 삼키려는 크로노스랑 한 번 붙어야 할 거야. 그 싸움에서 어떻게든 이기면 네가 놈을 먹게 되겠지. 뭐 이 정도면 답이 됐겠지?>>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볼게! 앞으로도 더 재미있게 해 줘~!>>
이 말을 끝으로 쐐기벌레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연기가 흩어지며 그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허억… 허억… 허억…… 두 분의 의식이 몸에 들어오니 힘이 드는구만.”
쐐기벌레는 눈에 띄게 피로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강대한 존재를 강림시킨 셈이니,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모양이었다.
세현이 포션 하나를 건네자 쐐기벌레는 이를 벌컥벌컥 마신 후, 그제야 기운을 조금 차렸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 보겠네.”
“고마워, 쐐기벌레 할배.”
쐐기벌레는 몸을 꿈틀대며 감옥 밖으로 빠져나갔고 세현은 그에게 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출력됐다.
[히든 퀘스트 ‘양심수를 해방하라’를 클리어 했습니다.]
† † †
굳게 닫긴 팔콘의 길드장실.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쪽은 길드장 최은철, 그리고 다른 한쪽은 광대 가면을 쓴 관리인 ‘캐럴’이었다.
“관리인, 대책은 없는 겁니까? 이대로 가면 계약 위반이 될 텐데요.”
<맞~는 말이에요 은철 씨. 지금 시점에서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긴 하겠죠. 솔직히 제 입장에서도 허세현이 계속 위로 올라가서 커플러 놈의 콧대가 높아지는 건 탐탁지 않거든요.>
“관리인들끼리도 경쟁이 있다?”
<그럼요~ 아파트의 모든 건 경쟁이죠! 관리인이 담당한 있는 입주자가 아파트 안에서 더 재미있는 그림을 연출하면 연출할수록 두 의지께 더 큰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라도 은철 씨가 이대로 무너지면 곤란하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시즌3은 서큐버스 군단 놈들이……”
<하하, 걱정마세요! 그걸 막기로 하는 게 제 계약이잖아요?>
캐럴은 손목을 걷어 스티그마를 보이며 말했다.
실제로 은철과 그는 시즌3의 클리어를 위해 계약을 했고, 시즌3 구간의 관리인인 캐럴은 두 의지의 눈에 나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선에서 최은철을 돕기 위한 시도를 전 방위에서 진행했다.
몬스터에게 이전에 없던 새로운 패턴을 넣는다든가, 스펙을 올린다든가, 22층에서 세현을 습격했던 것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자,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제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은철 씨?>
그는 스티그마가 새겨진 왼팔을 내밀었다.
“확실히 끝내 주시길.”
은철은 찝찝한 얼굴로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손목을 맞잡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팔목에 새겨진 스티그마가 동시에 빛을 뿜더니 캐럴의 몸이 액체처럼 녹아들며 은철의 마스터키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이 힘을 거부하지 마세요, 허세현을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액화된 캐럴의 몸이 마스터키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그러자 은철의 전신에 검은 혈관이 돋아나더니 그는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길드장님!”
“길드장님! 길드장님!”
소리에 놀란 길드원 몇 명이 문을 두드렸지만, 은철의 대답 대신 비명 소리만 계속 들려왔다.
“야, 피해 봐!”
결국 옆에 있던 정요셉 팀장이 부하들을 물린 후, 주먹을 뻗었다.
콰직-!
“괜찮으십니까, 길드장님?”
“왜 이리 소란입니까, 정요셉 팀장.”
문이 박살나고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하던 것과는 달리 최은철은 온화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 조금 전에 비명 소리가 들려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 문은 바로 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요셉은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돌아 나갔다.
‘저 인간이 벼락이라도 맞았나? 고맙다는 소리를 다 하네.’
요셉은 조금 전 최은철에게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존댓말을 쓴 것도 그렇거니와 ‘고맙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신경 쓰지 말자, 문 부숴 먹었다고 욕 안 먹었으니 뭐 잘된 거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요셉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 냈다.
Level 39. 하트여왕전
시즌3의 최종 던전, 하트여왕의 성 앞에 놓인 제단 앞.
서큐버스 군단 멤버 전원이 모여서 사카린의 일장 연설을 듣고 있었다.
“좋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모였지? 공략 짠 것들 잊지 말고 모두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된다, 연습한 대로만!”
“예!”
길드원들 모두 밝은 얼굴로 대꾸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둔 사람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이는 철저한 준비에서 온 자신감이었다.
팔콘 길드가 조사를 받게 되며 레벨링과 아이템을 맞출 시간을 충분히 벌었고, 그동안 정보를 최대한 모아 완벽하진 않아도 공략법을 수립한 상태였다.
게다가 팔콘 길드는 여전히 이번 사건의 조사로 정신이 없는 상태다. 어쩌다 레이드에 실패한다 해도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기에 서큐버스 군단은 감히 꽃놀이패를 쥐었다 말해도 괜찮았다.
세현 또한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이 정도면 <그 카드>까지는 안 꺼내도 되겠지.’
세현은 이번 레이드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 놓았다.
레이드 중, 약간의 실수가 나온다고 해도 개인기로 극복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카드. 이게 있다면 공략은 100% 성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자, 들어가자.”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사카린이 입장권을 찢었다. 그러자 모두의 마스터키가 빛을 뿜으며 메시지를 출력했다.
[시즌3, 최종장 ‘하트여왕’의 이벤트 컷씬이 출력됩니다.]
“자, 결전의 날이 왔습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뒤쪽, 고개를 돌리자 앨리스와 수많은 반군 병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세현이 감옥에서 구해 냈던 쐐기벌레나 다른 포로들의 모습도 함께였다. 히든 퀘스트의 클리어로 이번 퀘스트에 등장하는 반군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오늘, 우리 자유반군은 독재자 하트여왕의 목을 자르고 원더랜드의 자유를 쟁취할 것입니다!”
앨리스는 비장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연설을 시작했다.
“어머니 앨리스를 위해!”
“자유를 위해!”
“독재자 하트여왕을 단두대로!!”
사기가 충만한 반군들은 그녀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며 포효했다. 모두의 함성이 절정에 달해 갈 때 즈음, 앨리스는 양팔로 손에 든 지휘용 깃발을 휘두르며 외쳤다.
“충차병 준비!”
그러자 군중이 바다처럼 갈라지더니 그 사이에서 충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수레 위에 얹은, 성문을 뚫는 것에 특화된 공성 병기. 그 크기가 너무 거대해 보통의 인간은 도무지 움직이기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 옆에는 여덟 명의 근육질의 장정이 대기 중이었는데, 그들은 충차를 밀려고 하는 것인지 웃통을 깐 상태로 몸을 풀고 있었다.
“준비!”
그녀가 다음 명령을 내리자 충차병들은 바지 주머니에 담겨 있던 물약을 꺼내 들더니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자 충차병들의 몸뚱이가 빠르게 불어나 충차를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법한 거인으로 변모했다.
“돌겨어어억!”
돌격 명령에 충차병들이 힘차게 앞으로 내달렸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땅이 쿵쿵 울리며 흙이 거칠게 튀어 올랐다.
쿠우우웅-!
첫 한 발이 성의 정문을 두드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성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마 이대로 3~4번만 더 두드린다면 충분히 성문을 박살 낼 수 있을 터였다.
“뒤로 빼라!”
충차병들은 다시금 공격을 하기 위해 충차를 뒤로 끌어당겼다. 충분히 가속도를 받기 위해선 족히 100m 거리는 필요하기에 끌어당기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막아라! 충차를 막아!”
그러자, 성 위쪽에서 카드 병사들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화살이 날아들었다. 등짝에 화살이 박힐 때마다 충차병들이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지만, 그들은 이를 악물고 충차를 계속 끌어당겼다.
“충차병을 지켜라! 옆에서 같이 밀어!”
지상의 반군들 또한 성 위로 화살을 발사해 응전했다.
성문을 박살내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길드원 모두의 눈앞에 메시지 창 하나가 출력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