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02화 (102/180)

# 102

102화.

마상철은 모든 내용을 순순히, 빠짐없이 자백했다. 심지어는 백설희의 빚 내역을 보여 주는 장부 내역까지 직접 영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야 이 쓰레기 새끼야아아아아아!”

분노한 최진형 회장이 벌떡 일어나 방구석에 놓인 골프채를 붙잡아 최은철에게 휘둘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붕-붕-, 골프채를 휘두를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골프채에 머리를 맞아도 은철은 고개를 살짝 까딱할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최진형 회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서서히 지쳐 갔다.

그러던 중, 은철이 한 손으로 골프채를 붙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하십쇼, 아버님.”

“그만해? 최은철 이 새끼, 나한테 대드는 거냐?”

회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떻게든 골프채를 뺏어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채를 거머쥔 은철의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만하라고 이 영감탱이야!!!!”

와장창-!

은철이 괴성을 내지르자 몸 주변에서 바람이 뿜어졌다.

회장과 비서가 볼품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회장실의 유리창이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회,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입주자들이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와 회장을 보좌했다.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직속 경호단으로, 모두 B급 이상의 인원들로만 이뤄져 있었다.

“도련님, 물러나십쇼. 이 이상 나오시면 저희도 무력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경호단 단장을 맡고 있던 남자가 무기를 겨누며 외쳤다. 이에 은철은 기가 찬 듯 코웃음을 흘렸다.

“뭐, 무력을 써? 쓰려면 써 봐 이 새꺄.”

은철이 앞으로 달려 나가 어퍼컷을 날렸다.

빡-!

“커허어억!”

누구나 예측할 법한 뻔하디 뻔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경호단장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공중에 부웅 떴다가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단장님!”

“포, 포위해!”

당황한 단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소환해 은철을 둘러쌌다.

“그동안 봐줬더니 생지랄들을 해요.”

하지만 은철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을 무시하고 터벅터벅 문을 향해 걸었다.

“최, 최은철! 그 문을 나가면 다시는 후계자 노릇은 못할 거다!”

회장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에 은철은 고개만 살짝 돌려 읊조리듯 말했다.

“씨발,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니 좆대로 해 영감탱이.”

쾅-!

은철은 회장실의 문을 세차게 닫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 † †

서큐버스 군단 건물의 로비 앞, 백설희가 세현과 사카린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길드장님.”

“어허! 백설희, 길드장 말고 언니라고 부르라니깐.”

사카린이 설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세현이 손을 뿌리치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 남이사 어떻게 부르든! 그냥 가게 둬요, 안 그래도 심란할 사람을 왜 자꾸 귀찮게 해.”

“…되게 뭐라고 그러네, 허세현. 너 요즘 너무 개기는 거 아니냐? 나 그래도 길드장이거든?”

사카린은 심통이 났는지 두 뺨을 부풀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댁은 누가 잔소리 좀 해 줘야 되요.”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설희가 우스웠는지 피식 미소 지었다.

그런 와중, 길드 건물 앞으로 검은색으로 덧칠해진 커다란 밴 하나가 정차했다. 문이 살짝 열리고, 그 안에는 비밀요원 같은 차림을 한 입주자 하나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백설희 씨 되시죠?”

“아, 네네!”

“어제 연락드렸던 특별조사단 단원입니다. 조사단 건물까지 모시겠습니다.”

이른바 <팽론 게이트>라 불리는 이번 사건의 핵심 피해자로 언급된 백설희. 조사단 측에서 설희를 참고인 조사하기 위해 직접 데리러 온 것이었다.

설희는 빙긋 웃으며 사카린과 세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갈게요, 길드장님, 세현 씨.”

문이 닫히고, 검은 밴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카린은 기지개를 켠 후, 세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30층 메인 던전, 일정 좀 미루는 게 좋겠지?”

“네, 적어도 조사는 일단락돼야 하니까 3~4일은 미뤄야죠. 어차피 팔콘은 한동안 꼼짝도 못할 테니까 그 사이에 여~유 있게 레벨링이나 하면서 준비하자고요.”

세현의 말대로, 이번 사건의 파장으로 서큐버스 군단 입장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생긴 상태였다.

현재 29층까지 뚫어낸 팔콘과 블루울프는 한동안 마비 상태가 될 것이고, 나머지 상위권 길드들은 27층, 28층 즈음을 공략하는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광역 버프 스킬을 가진 설희를 빼고 30층을 뚫는 것도 부담이 크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지금은 얌전히 조사가 일단락되기를 기다리는 게 상책이었다.

“좋아, 그럼 다른 애들한테도 전달할게. 허세현 너는 그동안 뭐 할 거냐?”

“뭐 하긴 뭐 해요 사냥해야지.”

“조원은?”

“저 혼자 다닐게요.”

“그래도 괜찮냐?”

“저 하나에 딸린 소환수만 14명입니다~.”

“알았다 알았어, 니 잘났으니까 맘대로 해라.”

“그럼 잘난 놈은 이만 가 봅니다~.”

세현은 곧장 택시를 잡아 아파트로 향했다.

† † †

아파트 30층에 위치한 하트여왕의 방어 요새 중 한 곳.

세현은 방대한 숫자의 소환수를 부리며 말 그대로 깽판을 치고 있었다.

“우측을 방어해라!”

“팔랑크스를 발동해! 쓰리 페어로 간다!”

카드 병사와 갖은 기괴한 생물체들이 세현을 막기 위해 튀어나왔다.

그 숫자가 얼핏 보기에도 수백, 수천 단위를 넘어가고 있기에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자면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세는 세현과 소환수들이 구축한 스크럼에 부딪히는 순간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히듯.

바위에 부딪힌 계란이 박살 나듯.

하트여왕의 병사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에D츄, 화이트&블랙 룩의 철벽같은 탱킹.

화이트 비숍의 막강한 힐링 능력.

죽은 몬스터를 되살리는 블랙 비숍.

포박술과 시키가미로 적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세이메이.

빠른 기동력으로 양 날개에서 적들을 교란시키는 두 나이츠까지.

세현의 소환수 군단은 마치 전장의 화신 그 자체와도 같았다.

‘이 요새가 맞아야 할 텐데.’

거의 모든 병력들을 쓸어버린 후, 세현은 곧장 요새 내부에 있는 작전 회의실로 이동했다.

“크허허헉!”

그곳에 있던 지휘관급 카드 병사를 빠르게 제거한 후, 벽면에 붙어 있던 커다란 하트여왕의 초상화 앞으로 다가갔다.

“빙고!”

초상화를 옆으로 치우자 바로 뒷면에 100년은 족히 묵은 것 같은, 낡은 나무문이 나왔다. 세현이 문고리를 붙잡자 눈앞에 메시지 창 하나가 출력됐다.

[#. 히든 스토리 퀘스트 / 양심수를 해방하라.]

- 하트여왕에게 반발했던 정치범들이 이 지하 감옥에 수용돼 있습니다. 그들을 모두 해방해 반군 세력에 가담할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 비밀 감옥의 포로 구출 (010)

적정 레벨: 110 이상

[수락하기]

고민할 것도 없이 수락하기를 눌렀다. 그러자 나무문이 딸깍 열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D츄, 너는 여기서 입구 잘 지키고 있어라.”

“알겠다츄! 맞겨 두시라 쭈인님!”

통로가 좁은 탓에 에D츄와 다른 소환수들은 밖에서 기다리도록 한 후, 세이메이와 화이트 나이츠 하나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악취가 넘쳐 나는 거대한 지하 감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면에 아주 작은 횃불이 드문드문 놓인 걸 빼면 빛이라곤 없는 공간의 무저갱. 세현은 눈이 어둠에 조금 익숙해질 때 즈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치, 침입자닽-!!”

“꺄악!”

왼쪽에서 걸걸한 목소리의 외침과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현이 반사적으로 별운검을 휘두르자 고기를 베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목이 뎅겅 잘려 나간 도마우스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컥! 숨 막혀 세이메이, 팔 좀 풀어 줘.”

“죄, 죄송합니다, 주군!”

순간 놀라 세현의 목을 끌어안았던 세이메이가 얼굴을 붉히며 양팔을 천천히 풀었다.

이후 진행은 쉽게 풀렸다.

감옥이 어두운 탓에 몬스터가 등장할 때마다 공포 게임이라도 하는 양 깜짝깜짝 놀라게 됐고, 그때마다 세이메이가 세현의 목을 조르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난이도 자체는 별것 없었다.

“감사합니다! 영웅이시여!”

세현은 간수들에게 열쇠를 뺏어 포로들을 하나둘씩 풀어 줬다. 하나같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감사 인사를 표하니 괜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세현은 마지막 감옥 앞에 다다랐다.

철컹-!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자 묵직한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호오-?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더니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온 모양이군.”

그러자 문의 틈새로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짙은 연기가 흘러 나와 세현의 몸을 천천히 감쌌다.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감방 내부에 연기가 자욱했다.

“반군인가? 아니아니, 입주자인가 보군.”

잠시 후, 연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흩어지며 푸른 불길이 치솟더니 방 안을 환하게 밝혔다.

감옥의 중앙에는 커다란 버섯에 사람만 한 크기의 애벌레가 다소곳이 앉아 파이프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늙은 현자와 같은 신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벌레 양반, 댁 구하러 왔어.”

“고맙네. 나는 쐐기벌레, 어머니 앨리스의 반군에서 참모 역할을 맡고 있는 자라네.”

그는 정중히 자신의 신분을 밝혔고 세현도 이에 차분히 대꾸했다.

“자자, 빨리 나가시죠, 참모님.”

30층 메인 던전에 도전할 때, 쐐기벌레를 미리 구해 놓으면 최종장의 전투에서 아군을 돕는 거주자들의 숫자와 레벨이 오른다. 그것 자체가 전투의 대세에서 영향을 주지 않기에 미뤄 뒀지만, 이번 사건으로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미리 클리어를 해 두는 것이었다.

“허허허, 서두르지 말게, 나도 염치가 없는 늙은이는 아니라 자네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군.”

쐐기벌레는 자신이 피우던 파이프 담배의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를 잡아 건넸다.

“내 힘의 정수가 담긴 액체라네. 스티그마를 새길 때 쓸 만할 거야.”

“오호라?”

[#. 재료 아이템 / 쐐기벌레의 체액.]

- 원더랜드의 대현자 쐐기벌레의 체액이 담긴 병. 이를 재가공하면 스티그마에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세현은 흡족한 얼굴로 플라스크를 받아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미래의 지식에서는 쐐기벌레가 이런 액체를 준다는 정보는 없었기에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입주자여, 혹시 알고 싶은 것이 있는가? 혹시라도 알고 싶은 진실이 있다면 내 힘을 이용해 도와주도록 하겠네.”

“알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 좋다네. 자랑은 아니네만 이래 봬도 대현자라 불리는 몸인지라 의식을 통해 두 의지께 질문을 드릴 수 있지. 물론, 많은 힘을 필요로 하기에 자주 질문을 할 순 없지만 말이야.”

“뭐든지?”

“그래, 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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