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화.
Level 38. 몰락
블루울프의 길드 사무실, 이곳에 길드장 김건과 마상철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마상철, 백설희 쪽 일은 어떻게 되고 있냐?”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쥐어짜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더 밀어붙이면 잘못하면 꼬리를 붙잡힐까 봐서 조심스럽습니다만……”
“잔소리 말고 무조건 푸쉬해. 윗선에서는 어떻게든 시즌3 최종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백설희를 빼내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이랬다가 꼬리 물리면 제대로 탈납니다.”
“하라면 무조건 해. 팔콘에서 직접 떨어진 오더야.”
김건의 태도는 강경했다. 어떻게든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 백설희를 30층 메인 던전 공략 전까지 빼내라는 지시였다.
이는 윗선인 팔콘 길드의 초조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들은 최근 아파트 공략에서 뒤처지고 있기에 어떻게든 서큐버스 군단의 발목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중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는 것이 빚을 지고 있는 백설희를 꺼내 오는 것이었다.
‘이 머저리 새끼들, 이러다가 탈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지만 정작 이를 컨트롤 하고 있는 마상철 입장에서는 이 방법이 탐탁치가 않았다. 이대로 계속 백설희를 푸쉬하다 꼬리를 잡히면 역풍을 맞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잘 풀린다면 모를까, 만약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팔콘과 블루울프는 분명 적당한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꼬리는 마상철이 될 확률이 높았다.
‘씨발…… 외통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사채업이나 하면서 잘 지낼 것을.’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사채업자인 상철이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블루울프나 팔콘의 명령을 거부했다간 더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설희를 압박할 수밖에 없었다.
마상철은 블루울프 건물을 빠져나온 직후, 곧장 전화를 걸었다.
“야. 쓸 만한 애들 불러모아. 오늘도 백설희 푸쉬한다. 뭐…… 못 해? 무서워? 씨발 너 밥 굶고 싶냐? 윗선 명령이야, 까라면 까. 목 잘리기 싫으면.”
상철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씨발.’
입주자 몇 명이 백설희를 찾아갔다가 허세현에게 얻어터진 이후, 설희를 푸쉬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제대로 푸쉬가 될 리가 없었다.
‘허세현 그 새끼는 나를 끝까지 엿 먹이는구나.’
입주 시험에서 엿을 먹이고, 돈을 뜯어 간데다가 이제는 자신의 앞길까지 막고 있다. 세현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아가 치밀었다.
상철은 신경질적으로 길바닥에 놓인 쓰레기통을 걷어찬 후, 음습한 뒷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골목 끝에는 ‘팽론’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뒷문이 연결돼 있었는데, 혹시라도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이 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야야, 쓰레기를 그렇게 걷어차면 치우는 사람이 고생하잖냐.”
그때 상철의 뒤 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상철은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 허세현! 여긴 무슨 일로?”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허세현이 비죽 웃으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온지 알잖아?”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
“어랍쇼, 발뺌하는 거 보소?”
세현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재생시켰다.
[야이 미친 새끼들아! 그거 하나를 똑바로 처리 못해? 허세현?! 허세현이 있으면 돈을 못 받아 오냐?!]
[위쪽에서 얼마나 지랄하는 줄 알아?! 이대로 가면 너도 나도 모가지야 모가지! 30층 트라이하기 전까지 무조건 백설희 나가리 시켜야 돼! 알아 몰라?!]
상철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재생되고 있는 음성은 모두 자신이 사무실에서 부하 직원들과 나눴던 대화들이기 때문이었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뭘 사채업자가 이 정도로 놀라냐?”
세현은 검은색의 손톱만 한 물건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 흔들어 보였다. 그를 본 상철의 표정이 씁쓸함으로 일그러졌다.
“도, 도청?”
“빙고~ 네 부하들 정장 칼라 아래를 찾아 보세요~.”
일전에 설희의 집에서 검은 정장들을 마주쳤을 때, 세현은 놈들의 멱살을 잡는 순간 놈들의 칼라 사이에 도청 장치를 부착했다.
그를 눈치채지 못한 얼빵한 놈들 덕에 사무실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허세현, 그 음성 파일은 너 말고 누가 가지고 있냐?”
“음~ 예약 메일을 걸어 뒀는데 말이야. 한 20개 언론사 되나? 아마 오늘 9시 뉴스에 네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방송 한 번 탈거다. 어때, 기쁘지?”
“제기랄……”
그 순간, 상철은 모든 게 끝났다는 절망감에 다리 힘이 풀어져 털썩 주저앉았다. 세현은 그런 상철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게 왜 열심히 사는 착한 사람들을 건드려~.”
“이이이익! 이 개새끼가!”
순간 발끈한 상철이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무기를 소환해 휘둘렀다.
“이크~!”
하지만, 세현은 사뿐히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발을 앞으로 뻗어 철퇴를 걷어찼다. 그 직후, 십 수 명에 달하는 소환수들이 상철을 겹겹이 에워쌌다. 그러자 상철한 실성이라도 한 양 헛웃음을 흘렸다.
“흐, 흐흐흐흐. 이럴 줄 알았으면 아파트에 발을 들이는 게 아니었어.”
그의 머리에 앞으로 펼쳐질 몇 개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또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떤 방향이던 그 끝은 상철의 비참한 죽음으로 귀결됐다.
“죽여, 이 새끼야… 어차피 여기서 뒤지나 팔콘 놈들한테 뒤지나 그게 그거니까.”
상철은 모든 걸 포기한 듯 되는대로 지껄였다. 이에 세현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대꾸했다.
“소중한 목숨을 왜 그리 쉽게 포기해.”
“…어떻게 하던 죽긴 매한가지니까.”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내 말대로 하면 살 수 있을 걸?”
“저, 정말이야? 어떻게 하면 되는데?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상철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원했다. 그러자 세현은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더플백 하나를 꺼내 앞으로 툭 던지며 말했다.
“4억 원이랑 위조 여권, 그리고 오늘 8시 30분에 중국으로 출국하는 비행기 표야. 확인해 봐.”
상철은 허겁지겁 더플백을 열어 젖혔다. 안에는 정말 5만 원 권 뭉텅이와 위조 여권, 비행기 표가 들어 있었다.
“어,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 자리에서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불어. 그럼 순순히 넘겨줄 게. 앞으로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하겠지만 뒈지는 것보단 해외에서 새 출발 하는 게 그래도 더 낫겠지?”
세현의 제안에 상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차피 녹취록이 언론사에 넘어간 이상, 또 그 녹취록에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이상 마상철 본인은 블루울프에 의해서건 팔콘에 의해서건 100% 꼬리 자르기를 당할 것이다.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 또한 안전을 장담할 순 없지만, 그래도 팔콘과 한성 그룹의 눈을 피하기엔 이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다.
어떻게든 목숨은 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상철은 이 약간의 가능성에 도박을 걸어 보기로 했다.
“좋아. 하지만 이 정도 돈으로 중국에 뜨기는 부족해.”
“하아~ 상철 씨 내 사정도 좀 봐줘야지. 그거 안 그래도 내 전 재산 탈~탈 털어서 준 거야.”
“다, 당신 돈은 필요 없어, 내 계좌에 있는 돈만 전부 현금화시켜서 빼내 주면 된다.”
“콜, 뭐 그 정도야 해 줄 수 있지.”
세현은 상철의 계좌와 비밀번호를 건네받은 후, 소환수를 이용해 상철이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 두고 근처 ATM기에서 돈을 수십 번에 나눠 인출했다.
‘야씨,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사채업이나 할 걸.’
계좌에서 뽑아낸 돈은 무려 5억 원이 넘었고, 세현은 이를 종이봉투에 꽉꽉 눌러 담아 돌아왔다. 뭔가 회의감이 들었지만, 이를 꾹꾹 눌러 담고 마상철에게 돈을 건넸다.
“자, 이거 받아.”
“고맙다! 고마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현을 철천지원수처럼 보던 마상철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고개를 건넸다.
‘목숨이 걸리니 그 양아치 같던 새끼도 저리 순한 양이 되네.’
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쾌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곤 캠코더 하나를 꺼내 빙긋 웃었다.
“자, 그럼 오붓하게 진실의 시간을 가져 보자고.”
띠릭-!
녹화 버튼이 눌렸다. 마상철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블루울프 길드원인 마상철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할 생각입니다.”
† † †
“최은철! 너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이 새꺄! 저번에 내가 너 두고 본다고 했지? 어!”
한성 그룹 본사의 회장실.
최진형 회장이 시뻘게진 얼굴로 최은철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이는 한성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밀어주고 있는 팔콘 길드가 최근 서큐버스 군단에 밀리고 있는 것에 대한 화풀이였다.
여러 악재가 겹쳤다고 하지만 애초에 들어가는 자금과 길드 규모 자체가 체급이 다르기에 은철의 입장에서는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님!”
“죄송해? 죄송하다는 놈이 이따위야?! 이대로 시즌3까지 지면, 주식 폭락하면 대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건데! 이 버러지 같은 놈아!!!”
최진형 회장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책상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그것이 얼굴에 부딪히자 재떨이는 그대로 반 토막이 나더니 화르륵-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산화해 버렸다.
‘이 썩을 놈의 영감탱이, 내가 그룹만 물려받으면 회를 쳐 주마.’
은철은 어떻게든 한성 그룹을 집어삼키겠노라 다짐하며 분노를 속으로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얼굴 근육이 분노로 움찔대는 것을 참느라 경련이 날 지경이었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십쇼. 지금 서큐버스 군단이 가장 앞서 있긴 하지만 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곧 그쪽에서 핵심 인력을 빼내면 충분히 시즌3은 팔콘에서 가져갈 수 있을 겁니다.”
“최은철, 계속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면 그 말이 반드시 사실이어야 할 거다.”
“걱정 마십쇼, 아버님.”
“……가 봐.”
최진형 회장은 가까스로 분노를 집어삼키며 은철을 내보냈다. 은철은 최대한 감정을 감춘 채 그대로 등을 돌려 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는 순간-.
“회, 회장님!”
최진형 회장의 비서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런 씹-.”
그 과정에서 문으로 은철의 얼굴을 치고, 어깨까지 밀쳤지만 그는 조금의 미안한 기색도 없이 곧장 회장에게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조 비서?”
“크, 큰일입니다, 회장님! 뉴스, 뉴스를 보셔야 합니다!”
비서의 말에 최진형 회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 위에 놓인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반대편 벽면에 위치한 커다란 TV가 때마침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저희 SBB쪽으로 한 통의 제보 메일이 왔습니다. 이 메일에는 ‘팽론’이라 불리는 소비자 금융 기업이 현재 아파트 최고 길드인 ‘블루울프’, ‘팔콘’과 연관돼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팽론’은 입주자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이용해 아파트 내부의 입주자들을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파문이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조사단은 현재 제보자의 신원을 파악 중이며, 해당 사건을 원칙에 따라 신속 정확하게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이게 무슨!”
“어… 이, 이건.”
뉴스를 보던 은철과 회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이 외에 ‘마상철’이라 불리는 입주자의 자백 영상이 함께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상을 보시죠.]
[저는 블루울프 길드장 김건의 사주로 소비자 금융 기업인 ‘팽론’에서 일했습니다. 여기서 서큐버스 군단, 백설희 입주자에게 빚이 있는 걸 이용해 어떻게든 길드에서 탈퇴하도록 만들라는 오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윗선은 팔콘 길드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팔콘 길드에서도 백설희 입주자에게 접근해서 계약금을 제시한 걸로 알고 있고요, 빚이 35억이니 그 전후 금액을 불렀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