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00화 (100/180)

# 100

100화.

Level 37. 자바워키

옆에 용암을 철철 뿜어내는, 차라리 작은 산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석문.

이곳은 ‘마룡의 문’이라 불리는 곳으로, 하트여왕군의 수호신인 자바워키를 쓰러뜨려야만 하트여왕군의 점령지인 26층으로 향할 수 있다.

마룡의 문 앞에는 여느 던전에 있는 것처럼 두 개의 여신상과 함께 작은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잠시 후, 제단 위로 수십 개의 빛이 떨어져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서큐버스 군단 멤버들이었다.

“허억…. 허억……. 미친, 진짜 죽을 뻔했네. 허세현 이 또라이야! 거기서 무턱대고 들어가면 어떻게 해!”

“아 쓰러뜨리면 됐지, 왜 잔소립니까.”

“니가 길드장이냐! 니가 길드장이야!!”

“아 저번에는 길드장 하라면서요! 그럼 팔콘 길드에 최초 클리어 뺏길래요?”

“아 이게 할 말 없게 만드네! 다 해라! 다 해 먹어 아주!”

세현과 사카린이 나오자마자 투닥댔다.

사카린의 말대로 자바워키 공략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마검 크로우를 이용해 놈에게 걸린 축복들을 벗겨 내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까다로운 공격 패턴과 스펙은 가히 미쳤다고 할 수준이었다.

길드원들의 얼굴의 다크서클과 몸 곳곳에 난 흉터들은 이번 전투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카린은 이번 트라이에 클리어가 어렵다고 생각해 병력을 물리려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렸다.

문제는 퇴각 명령을 내린 순간, 허세현이 작위 수여를 쓰고 앞으로 뛰어들어 전투를 강행했다는 것이었다.

누가 보면 자살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무모한 선택이지만, 세현은 아슬아슬한 움직임으로 자바워키의 HP를 착실하게 깎아 나갔다.

어쩌다 위기 상황이 찾아온다 싶으면 두 마리의 룩과 캐슬링으로 위치를 바꾸며 도리어 자바워키의 급소를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각도에서 공격이 들어올 때에는, 순간 육체가 가속하는 듯 빠르게 움직이며 위기를 탈출해 내는 곡예에 가까운 전투를 보여 줬다.

이렇게 세현이 시간을 버는 사이, 다른 길드원들은 포션을 마시며 재정비를 한 후 다시 자바워키에게 달려들었다. 결국 서큐버스 군단은 25층의 최초 클리어 길드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

‘후우, 이번에는 진짜 뒤질 뻔했네.’

세현은 한 숨을 푹 내쉬며 주저앉았다. 사카린이 호들갑을 떨었던 만큼, 실제로 자바워키 공략은 아슬아슬했다.

이건 단순히 오판 때문이 아니었다.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놈의 스텟이 묘하게 높은데다 세현이 기억하지 못한 패턴이 2~3개나 추가돼 있었다.

‘제기랄, 이놈의 힘은 빌려 쓰기 싫었는데.’

위기 상황 때마다 발현된 크로노스의 힘이 아니었다면, 세현은 정말 삼도천을 건너 염라대왕과 미팅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힘을 빌려 쓴 만큼, 크로노스의 영향력이 몸속에서 서서히 커지고 있는 것을 느꼈기에 세현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자바워키가 쓸 만한 아이템을 꽤 많이 드랍했고, 놈에게서 채집해 낸 피나 가죽 등이 스티그마나 장비의 중요한 재료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자자, 두 사람 그만들 싸우고! 빨리 위층으로 올라가자고요.”

사카린과 세현의 말싸움이 길어지자, 이를 지켜보던 부길드장 메디아가 두 사람의 팔을 잡아서 마룡의 문 안으로 끌고 갔다.

끼이이이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축하드립니다! 25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마룡 사냥꾼’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올 스텟 +2]

[‘승강의 방’에서 26층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들과 함께 빛이 모두의 몸을 덮치자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와, 이건…….”

“이런 스테이지 콘셉트는 완전히 처음인 것 같은데?”

그리고 그 풍경에 길드원들은 놀란 듯 탄성을 내질렀다.

과자로 만들어진 집과 나무, 사탕으로 만들어진 열매, 초콜릿이 흐르는 냇물과 호수까지.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시키는, 과자로 만들어진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주군! 이것 모두 먹어도 되는 겁니까?!”

세이메이가 바닥의 과자로 만들어진 타이틀 뜯어 입으로 가져가며 외쳤다.

“먹어도 될 리가 있겠냐.”

세현은 세이메이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다 멀리 던져 버렸다.

“너, 너무합니다, 주군! 이렇게 지천에 과자가 널렸는데 겨우 한 조각 먹는 게 뭐가 문제입니까!”

“아우…… 조금만 기다려 봐.”

세현은 세이메이의 귀를 잡아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침입자다! 침입자!”

“막아라!”

그러자 저 멀리서 카드 병사들과 생쥐, 토끼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길드원들이 곧장 무기를 꺼내 들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잠깐 기다려요.”

세현은 손을 펼쳐 길드원들이 놈들에게 먼저 달려드는 것을 막았다.

“여왕님의 은혜를 먹어라!”

그러자 카드 병사들과 동물들이 바닥에 있는 과자 타일과 고여 있던 초콜릿을 퍼먹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끄으욱!”

잠시 후, 놈들의 몸이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살덩이가 눌어붙은 끔찍한 괴물의 형상으로 변이했다.

“저래도 먹을 거냐, 세이메이?”

“아, 아닙니다, 주군……”

세이메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대꾸했다.

“꾸어어어어어!”

그사이, 과자를 먹고 변형된 카드 병사들이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내지르며 갈퀴처럼 변한 손을 내리찍었다. 세현은 손끝이 정수리에 닿기 직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뒤로 발을 뺐다.

콰아아앙-!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남았다. 이는 여태 봐 왔던 카드 병사의 위력을 훨씬 상회하는 일격이었다.

“한 번 혼자 상대해 볼게요.”

세현은 당부와 함께, 적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그렇게 4분~ 5분이 지나자 괴물 같은 위력을 뽐내던 카드 병사와 동물들의 몸뚱이가 서서히 쪼그라들었다. 놈들의 몸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눈에 띄게 위력이 약해졌다.

시간이 더 지나자 카드 병사는 완전히 탈진해 바닥에 드러누웠다.

세현은 카드 병사의 목전에 별운검을 들이밀며 말했다.

“야, 니들이 먹은 과자. 이거 정확한 효능이 뭐냐.”

“그, 그걸 말할 리가……”

콰드득-!

“끄아아아악!”

카드 병사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놈이 비명을 내지르자 세현은 상처 부위에 붉은 포션을 흘려 지혈한 후 되물었다.

“그래서 효과가 뭐라고?”

“이, 이곳의 과자들은 하트여왕께서 내린 은총이다. 일시적으로 힘을 강하게 해 주는 힘이 담겨 있지.”

“더 크게 말해.”

세현은 되물었다. 과자들의 효능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길드원들이 모두 확실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외에 다른 주의 사항은?”

“과, 과자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힘이 강해지지만 지속 시간은 길지 않다. 4~5분이 지나면 순식간에 힘이 빠지고 당분간 꼼짝도 못하게 되지. 그 때문에 과자를 먹으면 빠르게 전투를 끝내야 한다.”

“좋아. 확실히 그게 네가 알고 있는 전부지?”

“다, 다 말했으니까 목숨은 살려……”

콰드득-!

별운검이 카드 병사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 냈다.

“이렇다고 하네. 다들 잘 들었죠?”

세현은 뒤를 돌아보며 길드원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실제로 26층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세현이 보여 준 게 전부였다.

첫째, 몬스터를 상대할 때, 과자를 먹기 전에 공격할 것.

둘째, 혹시라도 과자를 먹게 된다면 시간을 끌어 약효가 떨어지길 기다릴 것.

이 두 가지 수칙만 잘 지킨다면 별 어려울 것이 없었다.

현재 서큐버스 군단 실력이라면, 26층은 세현이 약간의 정보만 준다면 금방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다음 주 길드 회의에서 만나기로 하고 모두 해산!”

잠시 후, 언제나와 같이 사카린이 당부의 말을 전하고 길드원들은 해산했다.

세현 일행 또한 26층 곳곳에 있는 히든 퀘스트들을 먼저 수행하기 위해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오호라, 저 친구 이미 공략법을 알고 있는데요?>

그때, 저 멀리서 허세현을 바라보는 네댓 명의 인영이 있었다. 하나하나가 캐럴과 비슷한 광대 가면을 쓴 인원들로, 모두가 고상한 중세 귀족풍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역시 뭔가 있어요, 단순히 SSS급이 된 건 아닌 모양이군요.>

<하필이면 저런 놈을 커플러가 담당하다니……>

<뭐, 슬슬 저희도 움직여야겠지요. 아파트의 주도권을 그 재수 없는 멍멍이에게 뺏기고 싶지 않다면요.>

대화를 끝낸 순간, 광대 가면을 쓴 그림자들은 검은 연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 †

[서큐버스 군단이 26층의 보스인 ‘마시멜로 트랩’을 최초로 클리어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길드원 11명으로 이뤄진 서큐버스 군단은 전직 금메달리스트인 백설희 양과 슈퍼루키 허세현 등의 멤버가 포함돼 있으며, 멤버들 전체가 유튜브에서 많은 인기를 끌어 흥행 돌풍을…….]

[27층이 클리어됐습니다. 이번에도 최초 클리어는 서큐버스 군단입니다. 세간에서는 팔콘 길드의 세대가 끝나고, 완전 다른 세대가 왔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28층이 클리어됐습니다. 서큐버스 군단 유튜브 영상의 회당 조회수가 평균 5억 뷰를 넘어가고 있으며…….]

[29층이 서큐버스 군단에 의해 클리어됐습니다. 서큐버스 군단은 현재 공식 랭킹 5위로 올라섰으며, 이는 길드원이 11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나온 수치입니다. 입주자들 사이에서는 서큐버스 군단이 사실상 길드 랭킹 1위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서큐버스 군단이 아파트를 한 층 한 층 돌파할 때마다, 언론의 집중도와 대중의 관심은 그에 비례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 번은 세현과 설희가 먹거리를 사러 아파트 밖에 나온 적이 있는데, 취재 기자들에 둘러싸여 아무 것도 못 하고 돌아온 적이 있을 정도였다.

팔콘을 포함한 상위권 길드들은 빠르게 서큐버스 군단을 따라 위로 올라왔지만, 이미 물리적인 속도에서 한 달 정도나 공략이 뒤쳐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차이가 어지간해서는 쉽게 메워지지 않으리라 전망했다.

“으으, 다들 딱 일주일만 쉬자. 30층에서는 쉬고 싶어도 못 쉴 테니까.”

29층을 클리어한 후, 사카린은 시즌3 최종장 공략을 위해 길드원들에게 일주일간 휴식을 권했다.

몇 달에 거친 강행군으로 길드원 전체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가고 있었기에 모두 사카린의 결정에 환호했다. 이는 세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아, 피곤하다 피곤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몬스터만 잡다가 8층 집에서 빈둥대고 있자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지경이었다.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다 질릴 때면, 가끔 마당에 나가 에D츄를 간지럽히고 세이메이와 맛있는 걸 먹는 등 소소한 일상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 지 3일째 넘어가는 날이었다.

“세현 씨, 계세요?”

“어라. 무슨 일이세요, 설희 씨?”

휴가 중이던 백설희가 집에 찾아왔다.

세현은 그녀가 무슨 일로 찾아왔을지는 대강 짐작했다.

지난 몇 주간 주기적으로 입주자 신분의 사채업자들이 설희의 집에 지속해서 들이닥쳤고 계속 압박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설희에게 상위권 길드의 헤드헌터들이 은밀한 제안을 넣고 있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세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며 되물었다.

“그게…… 말이에요.”

설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요약하자면, 최근 대형 길드 몇 곳에서 설희에 대한 오퍼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계약금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35억 내외로 설희의 레벨이나 클래스 등급을 생각한다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모양.

‘이것들이 장난하나. 딱 35억이라, 장난질하려면 티라도 안 나게 하던가.’

세현은 그들이 제시한 35억이라는 금액의 의미를 알기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떤 그림인지 뻔했다. 백설희에게 빚을 이용해 압박을 주고, 그녀를 서큐버스 군단에서 떨어내려는 수작이었다.

설희에게 제안을 했다는 대형 길드 모두가 팔콘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고, 하필이면 타이밍이 시즌3의 최종장만 남긴 시점에서 이런 푸쉬가 들어왔다? 이건 구린 냄새가 풍기다 못해 코가 썩을 지경이었다.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해요.”

고민을 털어놓은 설희는 죄인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조아렸다. 눈 끝에는 투명한 액체가 뭉글뭉글 맺혀 있었다. 돈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는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왜 설희 씨가 죄송해요. 솔직히 저라도 빚 있고 쪼들리면 고민할 만하죠. 그런데 말이에요, 설희 씨. 그래도 시즌3 최종장까지는 같이 하는 게 어때요?”

“아 예, 그게…… 최대한 빨리 갚아 달라고 계속 연락이 와서.”

“아아 그건 걱정 말아요~ 그거, 어떻게든 될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비밀이라 지금은 말 못 해요.”

세현은 적당히 얼버무린 후, 스마트폰을 열어 메일을 작성했다.

‘이 개새끼들.’

[보낸 이: 익명의 제보자]

[수신자: 오늘의 뉴스, 입주자 투데이, 아파트 데이즈, …….]

[제목: 블루울프 길드에 관련된 제보 드립니다.]

[첨부파일] / 녹음파일.ZIP

‘한번 다 같이 뒤져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