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98화 (98/180)

# 98

98화.

2주가 지났다.

서큐버스 군단의 각 멤버들은 꾸준히 스펙을 올렸고 유튜브에서 24층의 전투 영상들을 하나둘씩 풀어 조회수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2주간 서큐버스 군단이 북한과의 연계가 있느니, 허세현이 사기꾼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여기저기 돌았다.

대중들은 처음에는 이런 주장들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언론이 전방위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주장을 하니 슬슬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개 같은 한성 그룹 놈들.’

이를 보고 있는 세현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화를 꾹꾹 집어삼키며 미래를 기약했다.

“잘 먹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세현은 길드 건물에서 길드원 몇 명과 함께 중국집 배달 음식을 먹고 있었다.

모두 다 맛있게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세현은 옆에 켜 놓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좋아, 어떤 반응이 오나 한 번 보자고.’

잠시 후면, 서큐버스 군단 채널에 허세현이 미리 촬영해 놨던 영상이 공개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떴다!”

“아우 깜짝이야!”

세현의 외침에 놀란 사카린이 젓가락을 짬뽕 그릇에 떨어뜨렸다.

“허세현! 밥 먹는데 스마트폰 좀 그만 봐라.”

“중요한 일이라 그래요.”

[브레이브킹, 클래스 등급 상향?]

굉장히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이 업데이트 됐다.

아파트에서 ‘클래스의 등급 상향’이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화면 너머에는 책상에 앉아 있는 세현이 보였다. 마치 화장품이나 전자 제품 리뷰를 하는 유튜버 같은 폼이었다.

[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브레이브킹 허세현입니다.]

[최근 저에 대해 언론사에서 많은 루머를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방송은 그에 대한 해명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일단 제 마스터키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화면 속 세현은 왼쪽 팔목을 내밀었다. 하지만 팔목에는 E급의 붉은색 팔찌는커녕, 아무 것도 묶여 있지 않았다.

이는 여태까지의 상식으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한 번 입주자가 된 입주자는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마스터키를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여러 실험들을 통해 수없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왜 아무 것도 없지? 하고 생각하셨겠죠. 하지만 여기 마스터키는 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마스터키 색이 투명하게 변했습니다. 현재 상태창을 열어 보면 제 클래스 등급은 ‘조정 중’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주장은 물론 뻥이다.

하지만 실제로 세현의 팔찌 색은 최초에 붉은색에서 서서히 색이 빠지다가 최근에 완전히 투명하게 변한 상태였다.

게다가 마스터키의 상태창은 착용자 본인밖에 볼 수 없기에 검증이 불가능했다.

[리플]

[Jangbob: 아파트에 전직 시스템도 있었나? 사실이라면 대박인데.]

[Kumtata: 게임으로 치면 버그 같은 걸지도? 그럼 사실상 클래스 등급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거네.]

세현의 예상대로 영상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브레이브킹 허세현, ‘클래스 조정’내용 발표 진짜?]

[‘클래스 조정’ 사실인가? 진실 공방 우려.]

[서큐버스 군단 유튜브 채널, 브레이브킹 폭탄 영상 업데이트. 무슨 내용이길래?]

밥을 다 먹어 갈 때 즈음엔 이미 언론사들이 세현의 영상 내용을 이곳저곳에 신나게 뿌리고 있었다.

마스터키로만 접속할 수 있는 입주자 커뮤니에서도 허세현에 대한 이야기로 추측과 가설들에 대한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토론이 벌어졌다.

세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모든 패러다임이 흔들린다. 이 정도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와~ 개판이네 개판이야, 주식시장 조작하는 놈들이 딱 이런 기분이겠어. 이거, 졸라 쾌감 쩔어!’

세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이 벌려 놓은 아수라장을 스마트폰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메일 계정은 실시간으로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 메일로 숫자가 치솟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현의 마스터키로 메시지가 전해졌다.

‘오 이건?’

[조사단 김성령 차장: 조사단 김성령 차장이라고 합니다. 관리사무소에서 허세현 입주자에 대한 조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곧 저희 대원들이 허세현 입주자가 계신 길드 건물로 방문할 테니 동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현은 관리사무소에 ‘E’급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조금 전 영상이 이슈가 된 이상, 그들 입장에서도 보다 면밀한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완전히 털고 간다.’

또한, 이번 영상을 올리면서 세현이 가장 바라고 있던 부분도 관리사무소가 자신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허세현 입주자님 계십니까?”

불과 몇 시간 후, 유니폼을 입은 조사단원들이 찾아왔고 세현은 얌전히 그들을 따라나섰다.

† † †

연구실 같은 분위기의 정돈된 공간.

3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나이의 여성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세현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흰 가운 차림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것이 얼핏 보기에도 연구원 같은 인상이었다.

‘저 여자, 다큐멘터리 같은데서 종종 봤던 기억인데.’

그녀의 이름은 김성령 차장.

한국 내에서 아파트와 입주자 관련해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허세현에 대한 조사 또한 그녀의 주관하에 이뤄졌다.

“조사 끝났습니다. 타이틀을 엄청 많이 얻으셨네요? 타이틀로 인한 상승치를 제외하면 현재 스펙은 B급에서~C급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오오, 그래요! 사실상 B급이라고 봐도 된다 그거죠? 와 대~박.”

세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 뭐 그렇네요. 솔직히 이런 경우가 완전히 처음이라 뭐 해 드릴 말은 없네요. 논의를 해봐야 하지만 행정 시스템도 B급 정도로 등급을 갱신해야 될 것 같습니다. 소환수들의 성능이 괜찮아서 아마 실제 전투 능력은 A급을 넘을 수도 있고요.”

“A급이요? 와! 와!! 감사합니다, 차장님!”

세현은 김성령 차장의 손을 붙잡고 흔들며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지쳤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사 끝났으니 이만 들어가세요.”

“넹~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봬요, 차장님!”

세현은 조사단원들의 보호 아래 고급 세단을 타고 아파트로 이동했다. 창문 밖으로는 근방에 기자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워, 저 데리러 온 거에요? 이거 연예인이라도 된 느낌이네.”

“오늘 조사 결과는 저희 측에서 발표할 테니 며칠 동안 언론사와 접촉을 피해 주십쇼.”

세현이 너스레를 떨자, 앞자리에 앉은 조사단원이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근슬쩍 왼팔의 파란 마스터키를 노출시키는 것에 세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깜찍하네 깜찍해, 다치기 싫으면 입 닥치라 그거지?’

지금 세현이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 그것만으로도 주가가 출렁이고, 사회 각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사단 입장에서는 최대한 그러한 변수를 줄이고 싶은 것이리라.

세현은 예상치도 못하게 VIP대접을 받으며 승강의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현 씨!”

“주군!”

“쭈인님!”

승강의 방에 내리자 설희와 세이메이, 에D츄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사카린에게 승강의 방으로 간다고 미리 메시지를 전해 놨는데 그걸 전해 듣고 마중을 나온 모양이었다.

“주군! 이걸 드시지요.”

세이메이가 양손을 뻗자 그 위에 흰색 사각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두, 두부는 왜?”

“사카린 공이 먼 곳에 다녀오면 이걸 먹는 게 관례라고 했습니다.”

“내가 다녀온 게 감옥이냐……”

아무래도 사카린이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세이메이가 준 걸 그냥 버리기도 곤란했기에 세현은 하는 수 없이 두부를 입에 밀어 넣었다.

아무런 맛도 없이 퍽퍽하지만 계속 씹고 있으니 고소한 향이 코에 올라온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조폭 두목의 느낌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기, 허세현 님! 실례합니다, 잠시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잉?”

한참 두부를 우물대고 있을 때, 오른편에 한 무리의 입주자들이 몰려왔다.

팔목에 채워진 마스터키들을 보니 대다수가 검은색과 붉은색, 즉 F급 아니면 E급 입주자들이었다.

“뭘 물어보려고요?”

“대체 어떻게 클래스 등급을 올리신 겁니까? 방법을 좀 공유해 주실 수 없을까요?”

세현의 대꾸에 그들은 최대한 절실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아 그게…….”

순간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질문을 던진 입주자들은 팔찌 색으로 보아 대부분 F급 아니면 E급. 즉, 아파트의 최하층민이다.

그들에게 있어 E급 클래스인 허세현이 보인 성과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나도 혹시?’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희망일 수도 있다.

허세현 또한 전생에는 F급 입주자 생활을 길게 해 봤기에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는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현은 그들에게 섣불리 조언을 해줄 수 없었다.

세현은 실제로 E급 입주자가 아니며, 입주자 시험을 통과한 자들 중에서도 7700만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얻을 수 있는 SSS급의 능력자다.

이런 상태에서 섣불리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기만이고 조롱이다.

“솔직히 잘 몰라요. 그저 미친 듯 사냥하고 미친 듯 타이틀을 모았어요, 그게 답니다.”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숨겨진 비법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은요?”

“그런 거 없습니다.”

단정적인 대답, 이에 희망 가득했던 입주자들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하지만….”

잠시 떠오른 동정심에 위로의 말을 건네주려던 세현이 다시 입을 닫았다.

노력하면 된다.

열심히 살면 된다.

이것 거짓말이고 싸구려 동정이다.

F급 시절을 겪어 본 세현은 이런 조언이 근본적인 문제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세현은 불편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오만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저 운으로 결정되는 클래스의 등급.

낮은 등급은 절대 성공할 수 없고, 무시당하고, 평생을 굽실대며 살아야 한다.

지금의 세현이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 더러운 세상, 내가 싹 다 뒤집어엎어 주마.’

† † †

거대한 붉은 도마뱀에 올라타 기다란 창을 들고 있는 카드 병사, 이른바 ‘라바 라이더’들 10여 체가 세현 일행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놈들은 일렬로 쭉 늘어서서 앞으로 쿵쿵 발을 구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카드 병사의 창끝과 리자드의 어금니가 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세현은 그들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외쳤다.

“에D츄 정면에 세 명 막아, 설희 씨 버프 나한테 집중, 세이메이 오른쪽 한 놈 속박.”

세현의 일목요연한 오더에 소환수들이 빠르게 진영을 바꾸며 마치 댐 같은 형태를 이뤘다.

그러자 라바 라이더들의 방향이 한쪽으로 쏠리더니 세이메이가 발사한 속박 그물과 뒤엉켰다.

“꾸에에에엑!”

당황한 라바 리자드들이 몸부림쳤고, 카드 병사들이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심지어는 리자드에게 짓밟혀 사지가 으깨지는 놈도 있을 정도였다.

“에D츄, 피해!”

세현의 명령에 앞을 막고 있던 에D츄가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마치 댐이 터져 나가듯 라바 리자드들이 그 방향으로 일제히 달려 나갔다.

“으아아아, 멈춰! 멈춰 이 멍청한 도마뱀!”

문제는 그 방향의 끝에, 절벽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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