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97화 (97/180)

# 97

97화.

“시, 시대가 어느 때인데 빨갱이 타령이냐. 팔콘 길드 막장이네. 한성 그룹에서 언론사에 뒷돈 칠한 거 아니냐? 한국 머기업 클라스가 그렇지 뭐. 최, 최은철은 대체 무슨 생……”

“정요셉 팀장. 아직도 그게 효과가 좋아 보입니까?”

정요셉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은철은 다음 사냥감을 찾는 듯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김건, 당신 대체 뭡니까? 여태 밀어준 자금이 얼만데 이것밖에 못하죠? 이번 퀘스트에서 대체 당신들이 한 게 뭔지 궁금한데요?”

블루울프의 길드장 김건. 그는 최은철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길드장이 다른 길드장을 ‘도련님’이라 호칭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외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지만, 블루울프는 팔콘 길드의 하부 조직이나 다름없는 길드였다.

창설부터 현재까지 한성 그룹 측에서 블루울프의 자금이 흘러들어 갔고, 이들은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 팔콘 대신 온갖 더러운 일들을 처리하며 성장해 왔다.

이런 흐름을 중심에서 이끈 것이 그 악명 높은 ‘블루울프’ 김건이었다.

한성 그룹의 돈을 잔뜩 처먹은 김건이 최은철을 깍듯이 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두 길드 내에서도 소수의 고위급 간부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김건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말씀을 드리긴 송구스럽지만, 보고 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후우... 말하세요.”

“일전에 사채놀이 하던 마상철이라는 친구를 영입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저희 장부를 그 친구가 관리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여태 무표정하던 김건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블루울프 길드는 자신들의 산하에 ‘팽론’이라는 이름의 제3금융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입주자들에게 대출을 해 준 후 지속적으로 빨대로 빨아먹거나, 여기저기서 흘러들어 오는 검은돈을 세탁하는 창구로 쓰였다.

반년 전쯤 영입된 마상철은 최근 이 ‘팽론’의 이사직에 임명됐다. 악랄한 사채업자로 이름 날리던 그를 스카우트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뜸들이지 말고 말해요.”

“저희 쪽에 돈을 빌린 사람 중, 서큐버스 군단 멤버의 부모가 하나 있다는 모양입니다. 백설희라고… 아마 아실 겁니다.”

“백설희, 백설희! 아하하, 그래, 그 여자 잘 알지!”

은철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광인 같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마 그쪽을 통해서 잘 쫀다면, 그 친구를 빼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당연히 해야죠, 뒤탈 생기지 않게 조용히 잘 진행해요.”

백설희는 팔콘 쪽에서도 계속 러브콜을 보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 명 한 명 인원이 소중한 서큐버스 군단에서 A급 클래스를 빼낸다? 이는 뼈아픈 타격이 될 게 확실했다.

김건이 꺼낸 제안 덕에 심각하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졌고, 그대로 회의는 종료됐다.

“하아…….”

최은철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후, 의자에 주저앉았다.

[일이 조금 꼬여 버렸군요.]

그러자 그의 머릿속으로 사념이 들려오더니 눈앞에 붉은 빛이 일렁였다. 그 빛은 천천히 형체를 갖추더니 어느새 정장 차림을 한 광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과거 은철의 입주 시험을 감독했던 관리인 ‘캐럴’이었다.

“모두 당신 말대로 했는데 결과가 이렇습니다.”

은철은 차마 관리인에게 화를 낼 수 없기에 최대한 분노를 삭이며 차갑게 말했다.

[하하~ 그야 그 허세현 군이라는 친구가 규격 외의 존재라서요.]

캐럴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22층에서 제가 손을 좀 봐주려고 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됐네요. 참 대단한 친구에요.]

“허세현의 칭찬 따위나 하러 온 겁니까?”

[아뇨아뇨. 그럴 리가요~ 그냥 은철 씨가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해서 온 겁니다.]

“걱정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아아 그건 걱정 마세요. 저도 은철 씨와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거니까요.]

“그 노력이라는 게 말뿐만이 아니면 좋겠군요.”

[이번에는 확실할 거예요. 시즌3 마지막에 허세현 군에게 주기 위한 아주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선물?”

캐럴은 신이 나서 선물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Level 36. 언론전

<자자! 차를 다 마셨으면 옆 자리로! 음 이번에는 현미 녹차군! 얼그레이의 시큼한 맛을 구수함으로 잡고 있어! 또 오른쪽! 또 오른쪽으로!>

<현미 녹차? 그 트로트 가수가 현미가 만든 녹차인 건가?!>

<아하하하! 현미는 쌀을 말하는 거야 이 멍청아!>

24층의 메인 던전, ‘매드 티파티’.

이곳에는 서큐버스 군단, 그리고 서큐버스 군단과 계약했던 입주자 70여 명이 함께 들어와 보스 등장 연출을 보고 있었다.

보스룸은 안쪽으로 숲이 크게 펼쳐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 차와 다과가 잔뜩 차려진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매드 해터’, ‘도마우스’, ‘마치 헤어’가 함께 등장한다.

이들은 테이블 위에 차려진 차를 마시며 되도 않는 말장난을 치는데 이때 마신 차와 다과의 종류에 따라 스킬 구성과 적용되는 버프가 완전히 바뀐다.

보스가 동시에 셋이나 등장하는데다가 각 페이즈에 맞춰 공략법을 바꿔야 하는 점이 다소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나마 공략을 쉽게 하는 방법은, 각 보스가 차를 마실 때마다 찻잔을 공격해 먹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상위권 길드라 해도 공략법을 모르면 꽤 난이도가 있는 보스다.

하지만, 허세현이라는 존재는 이런 문제를 너무나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도마우스한테 붙어! 탱커 어그로! 매드해터 차 못 마시게 해!”

전장 전체를 넓게 보며 쉴 새 없이 이뤄지는 정확한 오더. 이로 인해 총 80명에 달하는 입주자들은 시시각각 움직이며 보스들의 움직임에 알맞게 대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입주자들도 적극적으로 전투에 동참했다. 이번 던전 클리어 보상이 어차피 자신들에게 온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행동이리라.

세현의 오더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으로 보스들에게 데미지를 누적시켜 나갔다.

<저는, 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트여왕 폐하!>

전투에 돌입한 지 약 40여 분. 매드해터를 포함한 세 명의 보스는 모두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축하드립니다! 24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티 파티의 최초 파괴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올 스텟 +2]

[‘승강의 방’에서 25층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울려 퍼지고, 레이드에 참가한 입주자들은 환호했다. 세현은 그 틈에 보스의 시체로 다가가 재료 아이템을 갈무리한 후, 보상으로 드랍된 아이템들을 한데 모았다.

‘하… 아깝다.’

완제품 아이템이 몇 개 떨어진 상태였다.

못해도 수십억은 될 물건이지만, 이건 서큐버스 군단 것이 아닌 ‘블러디 티 로드’에 참가했던 입주자들의 몫이었다.

아이템을 분배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드랍된 골드는 N분의 1로 나누고 아이템들은 리스트를 작성해 경매장에 올리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판매된 금액을 서큐버스 군단이 입주자들에게 일주일 내로 다시 N분의 1로 나눠 주기로 약속했다.

여기 있는 입주자들 개개인이 아무리 못해도 몇 억씩은 땡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일손 필요하면 불러요!”

“서큐버스 군단 응원하겠습니다.”

분배가 끝난 후, 입주자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다들 이번 거래가 만족스러웠는지 떠나면서 친절한 인사과 덕담들을 남겼다. 혹시 다음에도 타 입주자들의 힘이 필요할 때, 이번에 쌓은 신뢰는 틀림없이 서큐버스 군단에게 힘이 될 터였다.

“자, 기왕 모인 김에 다 같이 얘기 좀 하자.”

모든 입주자가 떠나간 후, 서큐버스 군단은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 보스룸에서 잠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마침 매드해터가 사용하던 티 테이블이 훌륭한 회의용 테이블이 돼 줬다.

그 와중에 세이메이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과를 애처로운 눈으로 보고 있기에, 세현은 이를 한 움큼 집어다가 몰래 챙겨 줬다.

“가, 감사합니다. 주군!”

세이메이의 외침에 모든 길드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아, 세이메이….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건 좋지만 몰래 챙겨 줬으면 티를 안냈으면 좋겠는데.

세현은 빨개진 얼굴로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25층 선행 퀘스트를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는 게 우선이에요. 자연스러운 흐름상 25층 보스는 거주자들이 계속 언급했던 자바워키일거고 예상되는 스펙은…….”

회의가 시작과 동시에 세현은 25층의 자바워키를 최초 클리어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쏟아 냈다.

딱히 누가 말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아이디어에 사람들의 생각을 하나둘씩 보태고 의견을 교차 검증하는 걸로 회의의 가닥이 잡혔다.

‘아, 티 안 나게 거짓말하는 것도 힘들구만.’

물론, 지금 아이디어랍시고 꺼내는 말들은 세현이 전생의 경험이 있기에 하는 말들이었다.

이를 최대한 티내지 않기 위해서 그럴싸하게 분석해 미래를 추측하는 것처럼 포장하느라 진땀이 빠졌다.

“이렇게 하면 자바워키를 공략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다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세현이 설명을 끝내자 길드원들에게서 작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칭찬인지, 놀림 받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지만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애초에 미모의 여성들의 자신에게 칭찬 세례를 해주는 걸 싫어할 남자는 없으리라.

그러던 중, 사카린이 흡족한 얼굴로 세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역시 허세현이야! 얘가 길드장 해야 될 것 같은데. 안 그래, 메디아?”

“아니면 부길드장 자리는 세현 씨가 원한다면 넘길 생각 있습니다. 어차피 하기도 귀찮았고.”

길드장과 부길드장, 두 사람은 세현의 의사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제멋대로 떠들고 있었다.

“농담이라도 끔찍한 말하지 마세요.”

세현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강력히 거부의 의사를 전달했다.

“뭐 어쨌든 25층은 대강 허세현이 윤곽 잡은 대로 진행하자고. 다들 불만 없지?”

회의가 끝난 후, 서큐버스 군단 모두 곧장 25층으로 올라갔다.

“와, 여긴 뭐냐?”

“한동안 고생이겠네.”

길드원들은이 갑자기 환경에 변한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곳에는 용암이 끓어 넘치고 여기저기 해골이 널려 있는, 흡사 지옥을 연상시키는 공간이 펼쳐졌다.

온도도 너무 뜨거워 호흡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곳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메인 던전 ‘마룡의 문’.

그곳에는 하트여왕군 최대의 전력인 자바워키가 여왕군의 영토인 26층으로 넘어가는 길을 틀어막고 있다.

입주자는 아래층에서 만든 ‘마검 크로우’를 이용해 놈에게 걸려 있는 축복을 해제하고 놈을 쓰러뜨리는 게 25층의 최종 목표였다.

말은 쉽지만 이곳은 시즌3 부분에서 최종 보스인 ‘하트여왕의 군대’를 제외하면 전투 난이도가 가장 높은 구간이다.

시즌2 클리어 이후로 24층까지는 실력만 좋다면 별도의 스펙 업이 필요 없이 달릴 수 있지만, 이곳에선 허들이 갑자기 높아진다.

물론 난이도가 어려운 만큼 필드, 던전 몬스터들이 주는 경험치와 보상이 자연스레 늘어난다.

25층에서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레벨과 장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정석이다.

허세현의 주장에 따라 서큐버스 군단 또한 25층의 고레벨 몬스터들을 잡으며 레벨링을 할 계획이었다.

“자, 한동안 각자 열심히 레벨링한 후에 보자고. 메인 퀘스트 관련 정보 모으면 바로바로 공유하는 거 잊지 말고.”

사카린의 말을 마지막으로 길드원들은 제각기 조를 이뤄 25층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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