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95화 (95/180)

# 95

95화.

이후 정권은 똥씹은 표정을 한 채로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곤 바닥에 떨어진 팔을 주워 들어자 잘렸던 단면에서 혈관이 뻗어 나와 팔을 이어 붙였다.

불과 3~4초 정도의 시간, 그의 팔은 애초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끔한 상태로 돌아갔다.

“당원 동무들, 전투는 여기까지라! 이제 거점을 차지하러 가야함메!”

그의 명령에 조선노동당 입주자들은 군말 없이 병력을 물렸다.

최은철은 서둘러 크레이터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인사팀장 정요셉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기, 길드장님.”

“전황보고 하세요.”

“아 네네, 지금 거점 8개중에 3개를 저희 진영이, 그리고 3개를 앨리스 진영이 점령한 상태입니다. 또한 아직 점령되지 않은 2개 지점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은철은 욕지기가 차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마스터키를 조작해 ‘지도’를 켰다.

하트여왕 진영이 점령한 거점은 대략 30~40명의 입주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들! 하여간 일을 맡겨 놓으면 제대로 하는 법이 없어!!”

그걸 보는 순간 또 다시 화가 치밀었다. 하트여왕의 진영에서 가까운 두 개의 거점에 40명이나 병력이 배치가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후...... 정요셉 팀장, 후방 거점에 10명씩만 남기고 다 전선으로 오라고 오더 내리세요.”

“하, 하지만 그러다 기습이라도 당하면 어쩝니까?”

“거점 근처에서 적 병력 목격된 보고 있었어?”

“하, 한두 명 정도 근처에 어슬렁대는 게 보였다는 얘기가……”

요셉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수룩하게 대꾸하자 은철은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이 쓰레기 새끼야, 생각이라는 걸 좀 하라고 했지? 너는 한두 명 막는데 40명이나 필요하냐?”

정요셉은 그 즉시 거점을 지키고 있는 병력들에게 메시지를 전파했다. 이제 곧 60~80명가량의 병력이 추가로 전선에 합류할 터였다.

“30분 내로 끝내 주마.”

이때까지만 최은철은 자신이 내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 † †

조선노동당과 팔콘 본대의 교전이 끝난 후, 전장의 분위기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몰려옵니다!”

“거점 지켜!”

“제기랄, 최대한 시간 끌어!”

팔콘의 잘 조직된 움직임은 조선노동당, 그리고 그 외의 입주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큰 부상을 입은 입주자들은 조사단의 통제 아래 퀘스트 지역 밖으로 내보내졌으며, 앨리스 진영 인원의 숫자가 더 빠르게 줄고 있었다.

[하트여왕 진영이 앨리스 진영의 4번 거점을 탈환했습니다!]

안 그래도 숫자가 적었던 앨리스 진영은 궁지에 몰린 채 1개의 거점을 추가로 내 준 상태.

현재 스코어 3:4로 하트여왕 진영이 1개의 거점만 더 차지하면 승패가 결정됐다.

“길드장님! 슬슬 끝나 가는 것 같습니다.”

은철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정요셉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는 즐거움보다 안도의 미소에 가까웠다.

“정요셉 팀장, 40~50명 정도 규모로 정예조를 꾸려요. 남은 병력으로 거점 방어하고 정예조로 마지막 거점을 먹고 퀘스트 끝낼 겁니다.”

이른바 황금날개, 팔콘내에서도 최대의 전력이라 평가되는 A급 클래스 이상의 최정예 길드원들. 50여 명에 달하는 그들이 불과 2분여 만에 은철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갑시다!”

은철의 외침에 그들은 가장 가까운 적의 거점을 향해 내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구릉 지역에 위치한 앨리스 진영의 거점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을 지키고 있는 인원은 고작 10~20명 정도.

“저 정도는 일도 아니지.”

은철은 승리를 확신하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최소 30~40명은 지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점에 방어 병력이 고작 10명. 게다가 거점 안에 있으면 디버프에 걸리기에 방어하는 쪽이 더 불리한 면도 있다.

황금날개가 질 만한 요소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와아~ 재벌3세다~!”

거점에 접근하자 보는 것만으로도 은철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이 보였다.

보라색 생머리에 날카로운 인상의 미인, 사카린이었다.

그녀는 손에 자신의 주력 무기인 사슬낫을 붕붕 돌리며 황금날개를 미소로 맞이했다.

“오, 은철아. 너 간만이다?”

뒤쪽에서 허세현이 거대한 햄스터를 탄 채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들었다.

‘저 년놈들은 언젠간 내손으로 직접 찢어 죽인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서큐버스 군단 멤버들은 유튜브 영상 촬영을 위해 온몸에 액션 캠코더를 달고 있는 걸 알기에 속으로 꾹꾹 참아 넘겼다.

지금 은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진지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아군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뿐이었다.

“쳐라.”

황금날개 전원이 그 즉시 앞으로 날아들었다.

“와~ 잘생긴 남자들이 한가득 덤벼드네!”

사카린이 사슬낫을 크게 휘둘렀다.

부웅-!

공간 그 자체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이에 팔콘들이 잠시 밀려났다.

“잘생긴 남자들한테는 진심으로 대해야지.”

그녀가 썩은 미소를 짓더니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심장 쪽에서 시작한 보라색 핏줄이 전신에 덧씌워지며 사방에 빛을 발했다.

이는 S급 클래스인 나이트 스토커의 고유 스킬인 <밤의 주인>. 일시적으로 능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킬 뿐 아니라 몸에서 뿜어지는 빛을 활용해 전용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최은철의 팔라딘이 전반적으로 밸런스 있게 능력을 증폭시킨다면, 밤의 주인은 공격력과 기동성에 극단적으로 성능이 집중된 버프 스킬.

하지만 밤의 주인은 사용하는 순간 사용자의 경험치 5%가 날아간다는 꽤 큰 패널티가 있었다. 때문에 그 호전적인 사카린조차 어지간하면 잘 꺼내지 않는 카드다.

사카린이 이걸 바로 꺼내 들었다는 건 그만큼 이곳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의미했다.

“백설희 버프! 에D츄 탱킹해!”

바로 옆에 있던 세현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곧장 이곳이 입주자들에게 오더를 내림과 동시에 전투에 돌입했다.

“아하하하! 어때, 이 누님 실력이!”

“미친, 무슨 저런 괴물이!”

“원거리 딜러는 뭐해! CC기를 쓰라고!”

‘밤의 주인’을 사용한 사카린이 사슬낫을 몰아칠 때마다 보라빛 섬광이 일어나며 적들을 두셋씩 날려 버렸다.

괴물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 가히 투신이나 악마라 불려도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최은철이 가장 앞에서 그녀를 상대하긴 했지만, 주력 스킬인 팔라딘을 쓸 수 없는 상태기에 쉽사리 그녀를 당해 내지 못했다.

사카린의 압도적인 포스 덕에 전장의 분위기는 오히려 숫자가 적은 앨리스 진영이 주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이겠지.’

세현은 쉴 새 없이 별운검을 휘두르면서도 틈틈이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은 비등비등하거나 오히려 밀어붙이는 것 같지만, 사카린의 ‘밤의 주인’이 끝나는 순간 이 기세가 바로 꺾일 것을 알았다.

세현은 사카린과 검을 주고받는 최은철을 보며 입꼬리를 씨익 추켜올렸다. 지금이 은철에게 빅엿을 먹일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가기 전에 시간을 좀 벌어 줘야지.’

그리고 즉시 화이트 나이츠를 소환한 후, 작위 수여와 힘의 분배를 동시에 사용했다.

순간 스테이터스가 몇 배나 폭증했고, 세현은 그대로 영광의 가속을 사용해 총알처럼 튕겨 나가 최은철의 배후에 빠르게 접근했다.

“허, 허세현 너!!”

두 사람의 거리는 10m 내외.

이를 알아챈 최은철이 몸을 틀어 금빛 양손대검을 휘둘렀다.

이 속도로 간다면 세현의 일격은 꼼짝없이 막히고 말 터.

“훼이크다, 이 머저리야.”

순간, 세현의 몸이 몇 번이고 번쩍하며 사라졌다 나타나더니 은철이 예상한 타이밍보다 반 박자 빠르게 눈앞에서 나타났다.

뻐억-!!

세현의 어깨가 그대로 상대의 가슴을 때렸다.

두 사람은 그대로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른 후 몸을 재빨리 일으켰다.

“내 기술 어때, 최은철? ‘몽톰 박치기’라는 기술인데, 포켓몬에 나오는 그거 있잖아.”

“이이이익……!”

은철의 미간이 분노로 구겨졌다.

‘허세현 같은 새끼한테 이 내가 공격을!!’

자신의 기준에선 만년 찌질이, 패배자였던 허세현에게 공격을 허용한 것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세현이 조금 전 사용한 것은 스킬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1m의 공간을 도약하는 화이트 나이츠의 전용 스킬 블링크를 10연속으로 사용해 그 가속도로 최은철에게 충돌했을 뿐이다.

“최은철, 열 받지? 좆밥 같은 놈이 깐죽대니까. 그치?”

세현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거다.”

“히익~ 조심해야지, 괜히 잘못 입 놀렸다가 한성 그룹이 내 신상털이 할지도 모르잖아?”

세현은 별운검을 양팔로 땅에 박아 넣고 손잡이에 팔을 기댄 채 말했다. 어느 모로 보나 최은철을 도발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다물라고 했다!”

“아쉽다 아쉬워~ 나도 금수저 물고 태어나면 능력 없었어도 편하게 사는 건데~.”

금수저. 이는 최은철이 극도로 싫어하는 역린이나 다름없는 단어다.

지금이야 최은철이 전 세계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입주자가 되기 전까지 마땅히 특출 난 성과 없이 사고만 치던 시기가 있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중과 언론은 그에게 ‘금수저’라는 비아냥을 던졌고,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이 새끼가!!”

분노한 은철은 검의 손잡이가 으스러져라 꽉 움켜쥔 채 앞으로 내달렸다. 그럼에도 세현은 여유 만만한 태도로 바닥에 박힌 별운검을 뽑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돌 노래를 흥얼대며 가벼운 춤까지 출 정도였다.

“뒤져! 이 천박한 새끼!!!”

최은철의 금빛 대검이 정확히 세현의 목덜미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응, 싫거든!”

순간 세현은 허리를 숙여 검을 피함과 동시에 오른손을 위로 뻗어 최은철의 턱을 두드렸다.

빠악-!

물론, 이런 주먹 따위가 데미지를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은철은 이를 악다문 채 아래를 내려다봤고 이에 세현은 머쓱한 듯 웃으며 대꾸했다.

“오메, 역시 금수저는 금수저야! 턱도 튼튼하네!”

“이이이이이익!!”

은철이 다시 검을 살짝 들어 아래로 내리찍자 금빛 스파크가 튀며 빠르게 추락했다.

진입각과 속도로 볼 때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검이 이마에 닿기 직전, 세현은 작게 읊조리듯 말했다.

“캐슬링.”

그러자 세현의 몸이 짧게 빛을 내뿜었다.

채애애애앵-!

대검이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금속 마찰음이 일어났고 무언가 잘못된 것을 직감한 최은철은 곧장 뒤로 물러났다.

“뭐야 이건…….”

조금 전까지 허세현이 서 있던 그 자리에 키가 두 배는 돼 보이는 무언가가 서 있었다.

흰색 중갑옷에 커다란 건틀렛을 장착한 거구의 전사 화이트 룩. 그가 허세현 대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몇 분 전-.

하트여왕 진영의 최후방에 위치한 2개의 거점 중 하나인 2번 거점.

이곳은 비교적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기에 겨우 세 명의 병력만을 남기고 모든 병력이 전방으로 투입된 상태였다.

이 거점을 지키고 있는 입주자들 대부분이 대형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자들로, 팔콘이나 대형 길드들에게 숟가락을 얹어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할 생각이었다.

“야. 저거 되게 거슬리지 않냐? 필드 몬스터인가?”

“에이 냅 둬, 공격도 안 하는데 뭘. 벌써 몇 시간째 저기서 어슬렁대고 있었어.”

2번 거점에는 전투가 시작된 직후부터 먼 곳에서 검은색 중갑옷을 입은 몬스터가 어슬렁대고 있었다.

몬스터는 이따금씩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딱히 공격을 해 오지 않았고, 입주자들은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러던 중이었다.

“야, 저거 폼이 이상한데?”

“응? 저건 뭐야.”

여태 잠잠했던 검은색 몬스터가 온몸에서 증기기관차처럼 증기를 뿜어 댔다. 설상가상으로 뒷발까지 구르는 것이 당장에라도 앞으로 달려들 기세였다.

“어어어어?”

“온다아!!!”

“거점 지켜 이 새끼들아!”

중갑옷 몬스터가 돌진하자 몸 주변에 푸른빛이 맴돌았다. 그건 마치 추락하는 유성 같은 기세로 거점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콰아아아앙-!

순간 폭발과 함께 방어 중이던 입주자 몇 명이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큰 데미지는 없었지만, 이 일대가 흙먼지에 뒤덮이고 진영이 박살났다.

“다들 흩어져!”

입주자들은 서둘러 연기가 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넓게 산개했다.

적이 하나라는 것 외에는 정보가 없는 지금, 이것이 가장 대응력이 좋은 진형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연기 속에서 나타난 존재는 하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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