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94화 (94/180)

# 94

94화.

“김현, 너는 대학교 때나 지금이나 어째 생각이라는 걸 안 하냐.”

세현의 별운검이 세로로 내리치며 김현의 어깨를 갈랐다.

“크아아아악!”

김현은 가까스로 몸을 비틀며 치명상을 당하는 것만은 면했지만, 흰색과 금색으로 교차된 갑옷 위로 붉은 피가 흥건히 배어 나왔다.

“저, 저 새끼 죽여!”

당황한 팔콘 길드원들이 잠시 머뭇거리다 세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잠시간의 머뭇거림은 이미 소환수들이 자리를 잡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소환수들과 팔콘 길드원들 간의 전투가 시작됐다.

“김현, 너는 나랑 한동안 놀아 줘야겠다.”

김현이 상처 치료를 위해 포션을 들이켜기도 전에, 세현은 다시 그에게 따라 붙어 검을 휘둘렀다.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아무리 세현이 SSS급이라고 해도 한계는 있다.

클래스 브레이브킹은 소환사 타입이기에 직접 전투 스킬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게다가 김현과는 레벨이 60~70가량이나 차이가 나기에 ‘작위 수여’, ‘힘의 공유’ 같은 스킬을 쓰지 않고서는 필연적으로 1:1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최대한 카드를 아껴 둬야 하는 상황이기에 지금의 기세만을 이용해 최대한 전투를 유리하게 끌고 가야만 했다.

“미친,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세현과 합을 나누던 김현은 이를 빠득 갈며 외쳤다.

막상 허세현과 합을 나누고 있자니 조금 전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바보짓이었는지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너 이 새끼! 소환사라서 직접 전투 스킬이라곤 쥐뿔도 없지!”

“그걸 이제 알았냐?”

세현이 쿠자이의 발을 이용해 검을 피해 낸 것을 스킬이라 착각했지만, 전투가 지속되며 상대에게 별 스킬이 없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E급 클래스라고, 또 소환사 타입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전투력이지만 김현이 방심으로 어깨에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쉽게 승기를 잡았을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김현은 이를 악물고 전투에 집중했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호흡을 되찾으며 여유를 만들었고 포션을 틈틈이 마시며 어깨의 부상을 회복시켰다.

김현의 클래스는 1:1 대결과 이동기에 특화된 ‘쉐도우’였기에 가능한 대처 방식이었다.

“허세현 이 머저리 같은 새끼! 겨우, 이 정도로 허세 부리던 거냐!”

김현은 컨디션을 안전히 되찾은 후, 본체의 50%의 스펙을 가진 분신을 소환하는 ‘그림자 망령’ 스킬을 사용해 세현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세현은 전투 감각으로 김현과 분신이 퍼붓는 공격을 빗겨 내며 치명상을 면했지만, 몸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점차 누적돼 갔다.

‘아오, 스킬 아끼고 있는 것도 짜증나네.’

마음 같아서는 작위 수여라도 사용해서 김현을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이번 퀘스트의 승리를 위해 분노를 꾹꾹 삼키며 시간을 끌었다.

‘소환수들도 조금씩 밀리고 있으니, 앞으로 10분 정도가 한계다.’

주변 전황도 썩 좋지 않았다.

소환수들이 조금씩 입주자들에게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에D츄와 설희의 오페라 버프와 세이메이의 포박술이 그 차이를 어느 정도 메꿔 주긴 했지만, 애초에 레벨 차이가 너무 났기에 금세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상대 입주자는 하나도 줄이지 못한 상황에서 낮은 레벨의 폰들이 하나둘씩 줄어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마스터키로 시간을 체크하던 세현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쿠자이의 발로 허공을 차내며 김현과 거리를 벌렸다.

“세이메이, 작전대로!”

“예, 주군!”

그것을 신호로 세이메이가 시키가미를 이용해 일순간 적들의 시야를 가렸다.

“어딜!”

김현이 이를 악물고 세현에게 따라붙었지만, 화이트 나이츠가 블링크를 이용해 짧은 공간을 도약하며 그의 옆구리를 밀쳤다.

기습 공격으로 번 찰나의 시간.

세현은 에D츄의 등에 곧장 올라탄 후, 세이메이와 설희를 안장에 끌어올리고 반대편을 향해 내달렸다.

“도망친다! 쫓아가!”

세현은 살아남은 폰들을 미끼삼아 최대한 시간을 벌었다.

그렇게 2~3분쯤을 달리고 있을 무렵, 아나운서의 음성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앨리스 진영이 4번 거점을 탈환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거점이 탈환됐다는 메시지였다.

“허세현 씨!”

이 메시지가 출력됨과 동시에 석탑 아래에 대기 중이던 10여 명의 아군이 세현에게 빠르게 합류했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제기랄…… 빠진다!”

김현은 거점을 뺏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는지 이를 빠득 갈며 병력을 뒤로 물렸다.

† † †

이번 메인 퀘스트에서 최은철은 승리를 확신했다.

입주자의 숫자도 하트여왕 진영이 많은데다가 이에 속한 구성원들의 퀄리티도, 이 인원들에 대한 장악력도 자신들이 상대에 비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블루울프를 포함한 대부분의 길드가 팔콘의 산하 길드나 다름 없는 상태기에 사실상 최은철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하트여왕 진영의 근 70%에 해당하는 병력을 은철의 한 마디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은철과 계약을 맺은 관리자 ‘제플란’도 이번 전투에서 1시간 이내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상도 못할 최악의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래 오늘 결딴을 내 버리갓어!”

“아새끼들 조져 버리라!”

단체로 광견병에라도 걸린 건지, 조선노동당의 입주자들이 팔콘의 본대를 습격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상대겠지만, 팔콘은 앨리스 진영의 거점을 공략하기 위해 별개의 특공조를 만들어 보냈기에 평소와 비교했을 때 전력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다.

팔콘의 본대는 꼼짝없이 이곳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최은철 이 간나 새끼! 오늘 여기서 결딴을 내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노동당의 사령관이자 최고 전력인 김정권이 직접 들이닥쳤다.

그는 처음부터 붉은 도끼를 휘두르며 전력을 다해 최은철에게 달려들었다.

도끼가 부웅- 부웅-! 허공을 가를 때마다 충격파가 일어나며 길드원들이 나가떨어졌다.

“제기랄, 조사단 놈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원래 이 정도 상황에서 보통이라면 조사단이 개입해 전투를 진정시킬 것이다. 아무리 잘난 입주자라 해도 입주자들은 국제 공동 조약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조사단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문제는 지금 눈앞의 조선노동당이 그런 규칙 따위 개뼈다귀 취급해 버리는 구제불능 양아치들이라는 것이었다.

까아아앙-!

은철의 금빛 양손검과 김정권의 붉은 도끼가 충돌하며 불꽃을 뿜어냈다.

순간 충격파가 일어나며 두 사람은 거기를 벌렸고 근처의 입주자들이 자연스레 바깥으로 밀려났다.

“피, 피해라!”

“두 사람 싸움에 휩쓸리면 죽는다!”

두 S급 입주자를 중심으로 마치 투기장과 같은 원형의 공간이 생겨났다.

부하들의 공격에 휩쓸릴 걱정이 사라지자, 김정권은 더더욱 거침없이 스킬을 쏟아부었다.

“김정권, 이 퀘스트가 어떻게 되는지는 관심도 없는 거냐?”

“네 걱정이나 하라우. 네 멱을 따 버리면 전부 간단해지지 않갔어?”

“미친 개새끼…….”

은철은 김정권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심으로 이빨을 드러낸 이상,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결판을 내려는 것이었다.

어쩌면 팔 한두 개쯤, 아니 목숨을 내놔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럼, 시작부터 전력으로 가 주마.”

이를 빠득 갈며 기합을 내지르자 은철의 몸에 금빛 오오라가 터져 나왔다.

S급 클래스 ‘센츄리온’의 궁극기라 할 수 있는 팔라딘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쿨 타임이 긴 스킬이기에 최대한 결정적인 순간까지 아낄 생각이었지만, 이대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면 메인 퀘스트 승리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

단기 결전, 어떻게든 김정권을 빠르게 무력화시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 싸우는 맛이 나지!”

김정권이 비죽 웃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도끼날로 살짝 베어 냈다.

손에서 빠져나온 핏방울이 커다란 가시처럼 변해 최은철을 덮쳤다. 그는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틀며 사방으로 제쳐 들어오는 가시를 곡예하듯 피해 냈다.

“어디 이것도 피해 보라!”

김정권이 붉은 도끼를 공중으로 던지자, 빛이 뿜어지며 20여 개의 도끼로 흩어져 부메랑처럼 곡선을 그리며 최은철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피하는 게 불가능한 파상 공세.

이에 은철은 양손검에 금빛 오오라를 집중시켜 바닥을 빠르게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앙-!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 † †

원래는 차가 잔뜩 심겨 있어야 할 차밭 한가운데, 반경 30m 정도 크기로 원형의 크레이터가 움푹 파였고 그 안에는 흙먼지가 자욱했다.

챙-!

챙-!

그 안에서는 두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금속의 마찰음과 기합 소리들을 쉴 새 없이 만들고 있었다.

10분쯤 더 흘렀을까.

“크아아아악!”

귀를 찣는 것 같은 단말마의 비명, 그 직후 금속 마찰음과 기합 소리가 멎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건데?”

“김정권 동무가 이긴 검메?”

크레이터 위쪽에 서 있는 입주자들 몇 명은 심각한 얼굴로 크레이터 안의 먼지가 걷히길 기다렸다.

잠시 후- 먼지가 걷히며 최은철과 김정권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커헉…… 커헉…… 이런 씨부럴 간나 새끼.”

김정권의 오른팔이 피를 흩뿌리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는 왼팔로 도끼를 붙잡고 콸콸 흘러나오는 피를 구체 형태로 변형시켰다.

흘린 피의 양이 워낙 많기에 구체는 거의 사람만 한 크기로 커진 상태였다.

“김정권, 뒤지기 싫으면 그만하지?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네 같잖은 실력이 아니라 메인 퀘스트라서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김정권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은철은 시간이 없었다. 이번 메인 퀘스트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못하면 앞으로 일정이 꼬일 게 뻔했다.

“왜, 천하의 최은철이 쫄리나? 나는 이제 시작인데 기래?”

‘이 또라이 새끼.’

하지만 그런 바람과 달리 김정권은 끝장을 볼 모양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은철은 자신의 양손 대검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 최후의 일격을 위한 준비를 했다.

대검이 황금빛으로 격렬히 발광하며 파직파직 스파크를 일으키며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됐다.

“요단간 건너는 게 소원이면, 내가 그 소원 들어줄게.”

<갓 쇼크>.

오직 팔라딘 모드에서만 쓸 수 있는, 센츄리온의 전용 스킬이자 단일 대상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일격필살의 스킬이다.

“지랄하지 말라.”

김정권의 몸에서 피가 계속 뿜어져 나왔고 피의 구체는 점점 더 빠르게 회전했다. 그의 기술 대부분이 자신의 혈액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팔이 잘린 것이 오히려 기술의 위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리라.

그렇게 두 기술이 격돌하기 직전-.

“그만하십쇼.”

위에서 외침이 들려오더니 대략 스무 개 정도의 그림자가 크레이터 안쪽으로 뛰어내려 두 사람의 사이에 섰다.

검은 갑옷, 어깨 위에 방패 모양 심볼이 새겨져 있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자들.

조사단원들이었다.

“전투가 필요 이상으로 과열됐다고 판단해 두 길드 모두 저희가 제시한 지점까지 돌아갔다가 다시 전투에 합류하셔야 합니다.”

마스터키의 색으로 봤을 때 모두 B~A급으로 이뤄진 인원들이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최은철은 <갓 쇼크>의 시전을 취소하고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김정권은 멈추지 않았다.

“피해라 미친 간나 새끼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조약에 따라 물리력을 행사하겠습니다.”

조사단원들은 제각기 무기를 꺼내 들고 김정권에게 겨눈 채 제각기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들에게서 만만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정권은 분노한 듯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조금 전까지 격렬히 회전하던 핏빛 구체가 하늘로 붉은 섬광을 쏘아 올렸다.

엄청난 굉음과 빛이 주변을 뒤덮었고, 하늘로 날아간 섬광은 구름 사이에 커다란 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저것이 땅에 발사됐다면 어지간한 도시 하나는 박살 낼 수 있을 수준의 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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