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89화 (89/180)

# 89

89화.

Level 34. 블러드 티 로드

세현이 험프티 덤프티 퀘스트 정보를 넘겨준 후-.

정확히 30시간이 지난 시점에 서큐버스 군단 전원은 23층 메인 던전을 클리어하고 24층에 올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 직후, 사카린은 모든 길드원을 회의실로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오늘부터 조를 2개조로 나눈다. 하나는 나를 중심으로, 하나는 부길드장 메디아를 중심으로 나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길드원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허세현이랑 백설희는 막내들이니까 내 조에 넣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니들 편한 대로 정해. 아, 그리고 지영아.”

“훕- 네, 뉍! 길드장님!”

뒤에서 몰래 감자 칩을 먹고 있던 신지영이 화들짝 놀라 번쩍 일어나 대답했다.

“당분간 유튜브에 아무 것도 올리지 마. 괜히 다른 길드 자극해서 좋을 거 없으니까.”

“넵!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당!”

“다들 알겠지만, 우리가 잘나가니 쪼다들이 계속 시비를 걸고 있어. 불편하겠지만 당분간은 최대한 안전에 주의해. 녹음기랑 액션 캠코더도 무조건 챙겨 다니고,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바로 연락하고.”

“네!”

길드원들 모두가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좋아, 이대로 시즌3도 우리가 먹는다.”

곧장 서큐버스 군단 길드원 전체가 2개 조로 나뉘어 24층으로 향했다.

길드원들은 이곳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거나 차밭을 해방시키며 서브 퀘스트를 수행했다. 이런 행동 대부분은 메인 퀘스트의 실마리를 잡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24층 메인 퀘스트를 알고 있는 세현도 딱히 그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레벨링밖에 못 하니까.’

기억이 맞다면, 24층의 메인 퀘스트는 적어도 3주는 지나야 진행이 가능하다. 그 전까지는 최대한 빠르게 레벨링을 하며 장비를 맞추는 것이 메인 퀘스트 클리어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사카린이 조장으로 있는 1조도 일단 차밭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몬스터를 사냥하며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문제는 이런 도중에 종종 끼어들어 신경을 긁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카린 씨, 계속 따라붙는 놈이 있는데요.”

“하, 저것들이 내 인내심 테스트하네.”

지난 며칠간, 먼 거리에서 몇몇 입주자들이 달라붙어 사카린 조의 움직임을 염탐하고 있었다.

제 딴에는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양이지만, 사카린은 처음부터 모든 걸 눈치채고 있었다.

여태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뒀지만, 점점 노골적으로 거리를 좁혀 오는 탓에 슬슬 참는 것도 한계가 온 상태였다.

“야, 다들 잠깐 기다려 봐.”

사카린이 사냥을 멈추고,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쿵-!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 때, 땅에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처박혔다.

“크하하하하학!”

“커허헉!”

흙먼지가 걷히자, 그 자리에는 볼썽사납게 고꾸라진 두 남자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몸을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사카린이 그 옆으로 착지하더니 발끝을 그들의 정수리에 올린 채 살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느 길드 소속이고 누가 보내서 왔냐? 머리 터지기 싫으면 똑바로 말해.”

“히, 히이이이익! 블루울프입니다! 그냥 길드에서 서큐버스 군단의 움직임을 관찰하라는 명령이 들어와서 했던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 사카린이 품속에서 볼펜을 꺼내 뒤꽁무니를 딸깍-소리가 나게 눌렀다.

“니들이 지금 한 말, 다 녹음했다. 돌아가서 길드장 놈한테 똑똑히 전해. 계속 헛짓거리로 시비 걸면 다음에는 진짜 뭉개 버릴 거라고.”

“네, 네에!”

사카린이 정수리에 올렸던 발을 떼서 엉덩이를 걷어차자 블루울프의 정탐꾼들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뛰어갔다.

“쭈, 쭈인님! 저 보라색 머리 사람 아주 무~서운데요.”

그를 지켜보던 에D츄가 걱정스러운 듯 되물었다.

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대꾸했다.

“……너까지 죽기 싫으면 그냥 조용히 있어라, 에D츄.”

정탐꾼들이 사라진 후, 사카린조는 근처의 대형 차밭을 몇 개 더 해방시켰다.

그렇게 5일쯤 사냥을 반복하고 있을 때, 아이템 보급을 위해 주변 마을 상인에게 들르자 거주자들이 뭔가의 얘기를 꺼냈다.

“입주자님, 요즘 돌고 있는 소문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소문? 허세현. 이건 네 담당이다.”

그를 듣는 순간, 사카린이 세현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세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거주자와 눈을 마주치며 대꾸했다.

“그 소문이 뭔데?”

“흠흠, 입주자님들은 선한 분들이시니 슬~쩍 말씀드리지요. 얼마 후, 차밭에서 탈출한 노예들과 앨리스 혁명군이 합세해서 이곳의 가장 거대한 차밭인 ‘아삼’을 공격할 거라 들었습니다.”

“아삼?”

“네네, 동부에 위치한 차밭입니다. 아마 그곳에서 승리하는 쪽이 24층의 전황을 주도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왜요? 관심 있으십니까?”

그 말이 끝나는 순간, 1조 길드원들의 눈앞에 팝업창이 출력됐다.

[#.메인 퀘스트 / 블러디 티 로드]

- 앨리스의 반군이 매드해터의 가장 큰 차밭 ‘아삼’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매드해터의 병력들이 결집하고 있으며, 큰 전쟁이 일어날 거라 예측된다. 다른 반군들과 함께 아삼을 탈환하자.

퀘스트 클리어 조건: 블러디 티 로드 전투에서 승리.

전투 승리 조건: 아삼의 총 8개의 거점 중, 5개 이상의 거점을 동시에 보유.

적정 레벨: 90 이상

퀘스트 시작까지 남은 시간: 2주 22시간 30분 21초

- 앨리스 반군 참가 인원수: 43명

- 하트여왕군 참가 인원수: 148명

#. 퀘스트 종료 직후 3주 후에 다음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수락하기]

팝업창을 보던 중, 사카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허세현, 이 참가 인원수라고 표시된 건 뭐야?”

“말 그대로 각 진형별 입주자 수에요. 서로 선택한 진형에 따라 각자 편을 먹고, 싸우는 겁니다.”

현실 시간으로 3주에 한 번씩 열리는 블러디 티 로드 퀘스트. 이는 앨리스 반군 루트, 하트여왕군 루트를 선택한 입주자들이 나뉘어 전투를 하는 콘셉트다.

여기서 승리한 쪽은 퀘스트가 완료되며 다음 메인 퀘스트로 진행할 수 있는데, 퀘스트가 3주에 단 한 번씩만 진행되기에 여기에서 지면 손가락만 빨며 3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때문에 이번 퀘스트를 깨기 위해선 어느 진형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대강의 룰을 설명하자 사카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제기랄, 이 숫자대로라면 우린 50명도 안 되는 숫자로 150명을 상대해야 된다는 거냐?”

“……그렇죠.”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카린의 말대로 현재 퀘스트 창이 알려 주는 앨리스군, 하트여왕군의 비율은 43명 대 148명, 즉 3배나 차이가 나는 상태였다.

‘젠장, 이건 생각도 못 했다.’

세현의 전생에서는 이 퀘스트에서 이렇게까지 밸런스가 심각하게 무너진 걸 본 적이 없기에 예측하지 못한 문제였다.

“이거 숫자 이렇게 많은 거, 팔콘이랑 블루울프 놈들 때문 아니냐?”

“아…….”

뒷통수를 딱 맞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길드원들의 첩보에 따르면 블루울프와 팔콘, 두 길드 모두 하트여왕군을 선택했다. 저건 분명 그들이 포함된 숫자임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서큐버스 군단이라 해도 이들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것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뒤에서 얘기를 듣던 설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이번 퀘스트를 넘기고 다음 기회를 노려 보는 건 어때요? 1회차에 강한 길드들이 지나가고 그동안 준비해 두면 한결 클리어가 쉬울 것 같은데요.”

“뭐 그 말도 일리는 있다만, 허세현 네 생각은 어때?”

사카린은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다 세현을 보며 되물었다.

“안 돼요. 그럼 시즌3 경쟁에서는 적어도 3주는 뒤쳐집니다.”

간단한 결론이었다.

시즌2를 제패한 서큐버스 군단은 시즌3 또한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즌2의 경우는 고작 몇 시간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그걸 생각하면 3주라는 시간은 도저히 그 갭을 메우기 힘든 수준의 시간이었다.

“그럼 대안은 있어?”

“아마 단순히 무력으로만 하는 전투가 아닐 거예요. 전략을 잘 짜면 승산이 있을지도….”

세현은 이미 이 퀘스트의 규칙을 알고 있기에 이를 애둘러 표현했다.

“일단, 우리랑 같이 싸울 길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네요.”

“잠깐 기다려 봐.”

사카린이 말을 끊고 마스터키를 이용해 여기저기 메시지를 날렸다. 이번 전투에 앨리스군으로 참가하는 길드들을 수소문하는 것 같았다.

“젠장.”

잠시 후, 답장이 오며 마스터키가 번쩍이자 사카린이 미간을 강하게 구겼다.

“왜요?”

“앨리스 진형에 있는 길드 중에 조선노동당이 있단다. 나머지는 어중이떠중이 중상위권 길드원들인 모양이고.”

“조선노동당?”

순간 눈앞이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 길드는 아니어도 차라리 미국, 중국 아니면 제3세계 국가라면 어떻게든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함께 전투에 나선다?

이건 통제 불능의 미친개랑 같은 편을 먹고 싸우라는 것과 다름없는 얘기다.

잘해서 어떻게든 협력 관계를 만든다 쳐도, 조선노동당과 편을 먹고 팔콘 길드를 이기는 그림도 그닥 언론 플레이의 관점에서 좋지 않았다.

‘나를 빨갱이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광고하는 꼴이겠네.’

앞뒤가 꽉 막힌 기분에 세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군가가 함정을 파 놓고 그곳에 세현을 강제로 밀어 처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일단 조선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길드들이랑 접촉하죠.”

“하아… 그러자.”

결정된 내용은 서큐버스 군단 전 길드원들에게 신속히 전달됐다. 그리고 이번 메인 퀘스트에 앨리스 진영에 속한 길드들에게 공문의 형태로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2일 후, 관리사무소에서 앨리스 진영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아아, 지친다 지쳐, 무슨 정치판 뛰어든 것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힘내자구요.”

사카린은 지쳤다는 주저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현은 그녀의 등을 작게 탁탁 두드리며 한마디를 더했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아래층 좀 다녀와도 될까요?”

순간 마사무네에게 의뢰했던 장비가 슬슬 완성됐을 거란 생각이 들어 꺼낸 말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 효율적인 레벨링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장비를 찾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쓸데없는 짓은 무슨, 저 갈게요.”

“아 허세현, 뭣 좀 물어봐도 되냐?”

“뭔데요.”

“나중에 너 집 한번 놀러 가 봐도 되냐? 요즘 심심해서 그런데.”

“뜬금없이 왜요?”

“그냥이지 그냥, 뭐 길드장이 길드원 집에 꼭 이유 있어야 놀러 가냐?”

“맘대로 하세요.”

세현은 어깨를 으쓱한 후 에D츄의 등에 올라타 곧장 승강의 방으로 향했다.

† † †

“뭐야, 바쁜 일은 마무리된 건가?”

세현 일행이 마사무네의 대장간을 찾자, 항상 활기가 가득했던 대장간이 한산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안내원 소녀를 따라 마사무네의 작업 공간까지 가자, 그녀가 모루에 녹색빛이 은은하게 나는 검 한 자루를 있는 힘껏 두드리고 있었다.

일에 한창 몰입했는지 눈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안내원이 그녀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세현은 곤란한 얼굴을 한 소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그냥 조금 기다릴게.”

깡-! 깡-! 깡-!

그렇게 한 10분쯤을 더 기다리자, 마사무네는 땀을 닦으며 세현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세현 공, 언제 오신 겁니까?”

“얼마 안 됐어.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 마사무네 선생.”

“흠, 그럼 금방 끝내겠습니다.”

마사무네는 거절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나갔다. 세현은 멍하니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모루를 내려칠 때마다 불꽃이 내리친다.

등과 팔 근육이 꿈틀대며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리며 치이익- 하는 소리를 냈다.

‘오-.’

장비에 혼을 담아내는 듯한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름답네.”

순간, 떠올린 단어를 무심결에 입으로 뱉었다.

“그게 무슨……?”

그러자 마사무네가 들고 있던 망치를 떨어뜨렸고, 세이메이와 백설희가 놀란 눈으로 세현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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