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88화 (88/180)

# 88

88화.

“썩을…… 이놈 말고 소환하는 놈을 노리라!”

룩을 쓰러뜨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자각했는지 노동당원들은 두 룩을 제치고 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어어어 간나 새끼!”

가장 앞에서 뛰어든 입주자가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콰득-!

“뭐이가 이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세현이 아닌, 때려도 때려도 쓰러지지 않는 검은 거인 ‘블랙 룩’이었다.

세현은 조금 전 블랙 룩이 서 있던 자리에 나타나 북한 입주자들에게 검을 휘둘러 쓰러뜨렸다.

“아아아악!”

마치 귀신같이 나타난 세현의 기습 공격. 뒤를 잡힌 입주자들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는 룩의 액티브 스킬인 ‘캐슬링’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위치를 뒤바꿔 버린 탓에 가능한 연계 공격이었다.

“당황하지 말라! 계속 밀어붙이면 이긴다!”

잔뜩 흥분한 노동당원들이 마구잡이로 스킬을 난사했다.

워낙 족보가 없는 공격인 탓에 대부분의 공격은 피해 냈고, 간혹 공격이 먹혀도 두 룩이 가진 패시브 스킬 ‘충신’이 데미지를 극적으로 줄여 줘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현재 세현의 레벨은 50대 후반에 불과하지만, 각종 타이틀과 연계 스킬로 중무장했기에 충분히 80~90대 레벨의 입주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두 룩과 허세현의 연계만으로 조선노동당 길드원 5명은 굴욕적인 패배를 맛봐야 했다.

“자~ 뒈지기 싫으면 다들 무기 버려.”

“미친!”

“우리가 잘못했으네! 살려 달라!”

세현이 손짓하자 모든 소환수가 그들을 에워쌌고, 그들은 별수 없이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항복의 의지를 표현했다.

“워워~ 내가 같은 동포를 왜 해치겠어? 묻는 말만 잘~ 대답하면 손끝 하나 안 건드리고 돌려보낼 테니까 걱정 마.”

세현의 온화한 듯 말했지만, 표정과 억양에는 분명히 협박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뭐, 뭐가 궁금하네?”

“험프티 덤프티 퀘스트는 꽤 어려웠을텐데, 어떻게 이리 빨리 24층에 도착했지?”

“……너도 메시지 읽고 온 게 아니네?”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부터 말해.”

세현이 검을 옆에 탁 내리치자, 그들은 놀라 비명 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기, 길드장 동지에게 메시지가 왔다고 들었음메! 아마 우리당 말고 다른 길드에도 같은 메시지가 간 것이지 않갓어?”

“메시지라고?”

“그 날달걀 놈에게 알려 줄 정보가 적혀 있었음메.”

“그건 누가 보냈는데?”

“그, 그것까진 모름메! 진짜라요!”

‘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세현은 잠시 턱을 쓰다듬다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몇 개 길드가 24층까지 올라왔어?”

“정확힌 모르지만 못해도 열 개는 되지 않겄네?”

“열 개 길드라…….”

세현은 검을 거둔 후, 대장 격으로 보이는 마른 체형의 입주자의 마스터키의 코드를 받아 냈다.

[새로운 입주자의 ‘마스터키 코드’가 등록됩니다.]

[#. 입주자 / 신한철]

레벨: 비공개

등급: 비공개

클래스: 비공개

[메시지 전송] [1:1 채팅] [음성 채팅]

놈이 신상 정보를 대부분을 비공개로 해 놓은 탓에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순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대장 동무’라 불리는 걸로 보아 조선노동당과 접촉이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어 보였다.

용건을 마친 세현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퉁명스레 말했다.

“이제 꺼져.”

후환을 막기 위해 이번 일을 외부에 발설하면 끝까지 찾아가 목을 따 주겠다는 한마디를 보태자, 그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도망쳤다.

‘일단 사카린한테 보고해야겠지.’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쉰 후, 다시 승강의 방으로 이동했다.

† † †

“뭐야? 지금 이게 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데?”

“워워, 진정해요 사카린 씨.”

아파트 23층의 메인 던전 근처에 위치한 잘 보이지 않는 나무 사이 공간, 세현과 사카린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의 대형 길드들이 누군가 보낸 메시지를 이용해 ‘험프티 덤프티’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24층에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지만, 오직 서큐버스 군단만이 메시지를 받지 못한 탓이었다.

“이것들이 혹시 단체로 손잡고 우릴 엿 먹이는 건가?”

사카린은 아마도 그들이 서큐버스 군단을 견제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담합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세현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잠시 고민하던 세현은 사카린에게 자신이 23층 메인 던전에서 겪었던 일을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았다.

“뭐? 관리인이 너를 습격해?”

“뭐 이번 일이 그거랑 관련이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요.”

사카린은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관리인이 아파트의 일에 관여한다라. 아직 그런 일은 겪어본 적이 없어서 감도 안 오는데.”

“뭐 아직까진 그냥 추측이니까 한 가지 가능성 정도로 생각해 두세요. 사카린 씨 말대로 그냥 상위권 길드들끼리 손을 잡았을 확률이 더 크겠죠.”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장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사카린이 양팔을 벌려 허세현을 꼭 끌어안고 등을 두드렸다. 가슴 부근에 부드러운 뭔가가 와 닿아 세현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허세현, 괜히 의기소침하지 마.”

세현의 대꾸에 사카린은 팔을 풀며, 뺨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싱긋 미소 지었다. 평소 악인 같은 모습만 보여 주던 그녀라고 믿기 어려운 따듯함이 느껴졌다.

세현은 자기 귀에 들릴 정도로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흠! 일단 추가 정보들 알려 드릴 테니 최대한 빨리 24층까지 뚫어 줘요.”

“오케이, 오늘 내일 중으로 도착할 거니까 그때까지만 좀 참아.”

세현은 조선노동당 길드원들에게 뜯어낸 정보를 모두 알려 준 후, 이곳을 벗어났다.

‘이제 뭘 해야 하나.’

길드원들이 23층을 클리어하기까지 시간이 붕 떠버린 상태였다.

사냥을 하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이런 상황에 시즌3 구역에서 움직이는 건 위험하기에 그건 선택지에서 지워 버렸다.

마사무네와 약속했던 날도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

시즌 1~2 구간에서 사냥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즌3에서 사냥하는 것에 비하자면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기에 딱히 끌리진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정보가 제일 중요한데.’

세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설희를 노렸던 검은 로브가 누구인지, 지금 상위권 길드들에게 ‘험프티 덤프티’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게 메시지를 뿌린 것은 누구인지.

그것들을 알아내야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던 중, 세현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스치듯 떠올랐다.

‘헬시안! 헬시안을 찾자!’

튜토리얼 구간의 ‘선택의 신전’에서 세현에게 클래스를 주고 마스터키의 색을 바꿔 줬던 관리장.

그녀라면 지금 상황에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세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서 오시지요. 헬시안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선택의 신전에 도착하는 순간, 무녀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세현을 지하로 안내했다.

미로 같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 그 끝에 놓인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부좌를 틀고 평온한 얼굴로 앉아 있는 헬시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왔구나.”

그녀는 세현이 어떤 이유에서 찾아왔는지 이미 안다는 듯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이에 세현은 살짝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왜 찾아온 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야 이 일 때문이겠지.”

그녀가 손가락을 일렁이듯 흔들자 세현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출력됐다.

검은 로브에게 습격당해, 설희가 보스룸에 갇혔던 바로 그때의 영상이었다.

“검은 로브는 누구야? 그리고 상위권 길드들이 ‘험프티 덤프티’ 퀘스트를 클리어한 것도 저 검은 로브랑 관련이 있나?”

“모른다.”

“엥?”

헬시안은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들며 말했다. 세현이 당황에서 고개를 갸웃대자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관리인이라는 것 정도는 알려 줄 수 있겠군.”

“관리인이 왜 날 노린 건데?”

“아직 조사 중이다.”

“하…… 이거 미치겠네. 그따위 대답밖에 못 하는 거야?”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세현은 숨이 콱 막혀 오는 기분이 들었다.

관리인은 게임으로 치자면 운영자다. 세현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운영자가 일개 유저를 공격한다면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관리인의 의무는 그저 아파트의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 입주자를 습격하면 인과율의 제제를 곧 받을 것이다.”

“그럼 말만 하지 말고, 뭐라도 좋으니 조치 좀 취해 봐.”

“서둘러 보지.”

“제발 내가 죽기 전에 그놈의 조사가 끝났으면 좋겠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저놈도 인과율을 어긴 이상 한동안은 눈치를 볼 테니.”

“아오 씨, 무슨 한국 경찰 같은 말만 하고 있어.”

세현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바빠서 이만.”

그렇게 나가려던 찰나, 등 뒤에서 한마디가 더 들려왔다.

“떠나기 전에 조언 몇 개 정도는 듣고 가지 않겠나.”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세현은 그대로 몸을 빙글 돌려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바로 앉았다. 그러자 헬시안은 해골 팔을 뻗어 세현의 왼쪽 손목을 붙잡았다.

“네 힘이 강해지며 마스터키가 원래의 색을 되찾아 가고 있다. 색이 원래대로 돌아갔을 때 생길 일들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군.”

“어라, 진짜네?”

그녀의 말대로 세현의 마스터키는 E급의 선명한 붉은색이 아닌, 물이 빠진 것 같은 다홍빛으로 변해 있었다.

항상 팔에 끼고 있어 자각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한 징후가 보였다.

“거기다 몸속에 잠든 기운도 꽤 강해졌어. 그것도 곧 시련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기, 좋은 말도 좀 해 주면 안 될까……?”

“사실을 말할 뿐이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반달 모양으로 씨익 추켜올렸다.

“쩝, 뭐 고마워. 덕분에 내가 졸~라 위험한 상황이라는 거 하나는 확실히 알고 가네.”

세현은 퉁명스레 대꾸하며 무녀의 안내를 받아 방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헬시안은 고개를 숙인 채 허공에 혼잣말을 읊조렸다.

“나와라, 커플러.”

“녜잉~★”

헬시안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덩어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달마시안 관리자, 커플러였다.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려 다오.”

“우움~ 허세현 군을 습격한 관리인이 누군지는 대~충 밝혀 냈어용. 다른 길드들이 24층에 빠르게 올라갈 수 있던 것도, 특정 길드를 밀어주면 티가 나니까 세현 군이 있는 길드만 빼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고용~!”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놈도 참 대담하군.”

“그쵸그춍,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왔다가 두 의지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목이 끽-! 하고 날아갈 텐데용! 뭐 그래서 지금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지만용. 아마, 두 의지께서도 한동안은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실 거예용.”

“우리는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오홍홍, 계획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용, 시즌3이 끝나기 전에 대청소를 위한 기똥찬 계획을 만들 테니까용. 오호호호홍!”

“대청소라…… 음흉한 계략을 꾸미는가 보군.”

헬시안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도 커플러의 계략에 당했기에, 그가 뭔가를 꾸미는 것에 본능적인 불쾌함이 느낀 것이었다.

“그거 저한테는 칭찬인 거 아시죵? 그럼 저는 다시 일~하러 가 보겠습니다용!”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커플러는 다시 헬시안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헬시안은 두 눈을 감고, 혼잣말을 웅얼댔다.

“관리인들의 싸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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