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86화 (86/180)

# 86

86화.

마켓 쇼핑을 마친 후, 두 사람은 입주자 마트에 들러 에D츄와 세이메이에게 줄 치즈와 빵, 케이크 등을 잔뜩 구입해 곧장 8층의 자택으로 이동했다.

짐이 꽤 많아 아파트 앞까지는 마트 직원들의 도움을 받고, 아파트 내부에서는 소환수들을 이용해 짐을 날라야 했다.

“오 주군! 오셨습니까!”

“쭈인님 오셨츄! 지금 제 집을 짓고 있다츄!”

8층 집에 도착하자 흰 일본식 팬티를 둘러 입은 목수 여럿이 세현의 집 마당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만들고 있었다.

“주군의 말씀대로 공주님께 요청을 드렸더니 목공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잘했어.”

세현은 마켓으로 향하기 전에 세이메이를 8층에 데려다 준 후, 에D츄를 타고 벚꽃성으로 가라고 말해 놨다.

그러곤 세현을 대신해 벚꽃공주에게 현재 상황을 말한 후, 에D츄가 살 만한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게 했다.

공주의 입장에선 세현은 나라를 구한 위인이니만큼, 대수롭지 않게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자~ 완성됐습니다. 어떻습니까, 허세현 공? 마당에서 쓰실 평상도 만들어 봤습니다.”

목수들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에D츄가 넉넉히 다리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거대한 ‘개집’ 같은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그 개집이 다 지어졌을 때, 목수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근사한 미소와 함께 세현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나리?”

“아아 마음에 들어.”

“마당에 평상도 하나 만들어 드리도록 하지요.”

그는 세현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더 화이팅해서 평상도 뚝딱뚝딱 만들어 버렸다. 앞으로 평상에서 간단히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거나 하면 꽤 운치가 있겠다 싶었다.

목수들의 작업이 끝난 직후, 세이메이는 에D츄의 집과 평상에 술식을 새겨 넣어 내구성, 단열성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이를 지켜본 에D츄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와이~ 에D츄 집이 생겼어요 쭈인님!”

그러곤 집 안으로 꼬물꼬물 기어들어 가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야, 지금 눕지 마! 치즈 가져왔으니까 이거부터 먹어.”

“치, 치주!!”

콰드드득-!

“야아아아! 지붕 조심해!”

세현은 경악했다. 에D츄의 머리가 집 지붕을 박살 내고 위로 뚫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막 돌아가려던 목수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굽신 대는 것으로 집을 다시 보수했다.

“이번엔 정말 튼튼하게 지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나리.”

“고마워. 이걸로 들어가는 길에 뭐라도 사 먹으쇼.”

목수들은 이번에는 천장을 더 높게 확장해 조금 전 같은 불상사가 없도록 해 줬다. 이에 세현은 감사 인사와 함께 골드를 조금씩 쥐어 주었다.

“망할 놈의 쥐새끼….”

세현이 심란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동안, 에D츄는 행복한 얼굴로 바닥에 놓인 커다란 에멘탈 치즈를 입으로 가져갔다.

“잘 먹겠쯉니다!”

그 덩어리가 거의 사람 머리만 했지만 에D츄는 그걸 비스킷인 양 한입에 쏙 집어 삼켰다.

그렇게 서른 덩이를 먹어 치운 후에야 만족했다는 듯 배를 두드리며 트림을 했다.

“에D츄 감동했어요, 쭈인님! 치즈라는 건 이런 맛이군요!”

‘젠장, 내 300만 원…….’

세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 덩이에 근 10만 원 하는 고급 치즈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꼬르르륵-!

그때,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바쁘게 일처리를 하는 통에 식사를 못 했기에 나는 소리였다.

세현은 구석에 밀어 놨던 종이봉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린 이거 먹죠.”

“주군! 저는 대찬성입니다!”

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세 개의 조각 케이크와 더치커피였다. 마트에서 구입한 것치곤 맛과 식감이 꽤 근사해 커피와 잘 맞았다.

세 사람이 평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로 수다를 떠는 사이, 에D츄가 새로 지어진 집 안에서 배를 볼록 내놓고 잠에 들었다.

그걸 본 세현이 피식 웃으며 에D츄의 배를 쓰다듬었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잠시간의 여유에 정신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불과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지난 몇 달간 멈춤 없이 달렸던 세현이기에 나름의 위안이 됐다.

Level 33. 오리무중

짧은 휴식을 끝마친 후, 세현은 혼자 마사무네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나 왔어, 마사무네 선생.”

평소와 같이 대장간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마사무네가 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흔쾌히 의뢰를 수락해 줬던 그녀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세현 공. 의뢰를 들어 드릴 수는 있으나 평소보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소?”

“응,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세현은 혹시 이게 다른 퀘스트로 연결되는 브릿지일까 싶어 적극적으로 궁금해하는 걸 어필했다.

그녀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실은 왕성에서 다량의 무기를 주문해 왔습니다. 대장간 전체가 왕성에서 요구하신 물량을 맞추기 위해서 모두 일하는 중이라-.”

“왕성에서 무기를? 뭐 때문에….”

마사무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왕성의 주문을 받았다는 것도 비밀이지만 세현 공이기에 알려드린 겁니다. 저 또한 왕성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모릅니다. 다만 저를 제외한 다른 삼작의 대장장이들의 대장간에도 주문이 들어갔다고 하더이다.”

“세 개 대장간에 모두?”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벚꽃국에 존재하는 최고의 대장간들이 모두 왕궁의 무기를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새로운 이벤트라고 벌어지는 건가? 공주가 따로 언질을 해 준 적은 없는데.’

세현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봤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말인 즉은 이 사건 또한 세현의 예측에서 벗어난 일이라는 뜻이었다.

“뭐, 조금 걸려도 좋으니 부탁할게.”

일단 준비한 재료를 모두 마사무네에게 넘겼다. 그러자 마사무네가 체셔캣의 몸에서 나온 재료들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 재료에는 어둠의 기운이 서려 있군요. 음, 잘 다듬으면 재미있는 물건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대장장이의 본능이 들끓는지, 세현이 내놓은 흥미로운 재료들에 두 눈을 반짝였다.

‘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지.’

세현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품속에서 이전에 캐 두었던 오라나이트를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어쩌다 주운 재료인데 쓰려면 써 봐. 심심하면 내 장비에도 조금 섞어 줘도 좋고.”

“오오! 고맙소, 세현 공!”

[마사무네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피로로 그림자가 드리웠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활력이 돌았다. 마치 심마니가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한 반응이었다.

오라나이트 자체가 지금 시점에선 꽤 귀한 아이템이지만, 그녀의 환한 얼굴을 보니 건네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호감도가 오르면 장비도 잘 만들어 줄 테니 장기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럼 잘 만들어 줘, 마사무네 선생.”

그녀의 말로는 의뢰한 장비는 빨라도 3주, 넉넉히 한 달은 있어야 만들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아아, 그리고 미안한데 당장 좀 쓸 만한 장비들 좀 빌려줄 수 있어? 사례는 할게.”

장비 제작을 위해 모든 돈을 탈탈 털어 쓴 탓에, 당장 지금 쓸 아이템이 없는 게 문제였다.

마사무네는 흔쾌히 대장간에 있던 일반, 매직급 장비들을 값싼 가격에 세현에게 빌려줬다.

등급은 원래 쓰던 것들보다 낮지만 렙제가 높은 탓에 그럭저럭 쓸 만했다.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나머진 길드에서 빌리자.’

세현은 마사무네에게 인사를 건넨 후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그러곤 차분히 머리를 식히며 앞으로의 그림을 그렸다.

‘장비 완성까지 3주라. 어차피 자바워키를 잡으려면 천천히 레벨링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차라리 잘됐어.’

현시점에서 제1목표는 길드원들과 함께 시즌3의 중간 보스격인 자바워키를 가장 먼저 잡는 것.

그사이 성장을 지속하며 장비가 완성되길 기다리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그림이었다.

‘그럼 지금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현재 세현의 소환수는 에D츄와 세이메이를 제외하면 총 11명이다.

폰 7명, 나이츠가 둘에 비숍이 둘.

이제 ‘룩’ 2명과 과 ‘퀸’ 1명을 추가하면 풀 파티를 완성할 수 있다.

‘일단 룩 두 마리를 만들어 주는 게 현실적으로 제일 빠르겠네.’

룩은 폰의 레벨을 50을 찍어 주면 진급을 통해 만들 수 있다.

아직 정확한 능력이나 특징은 모르지만, 여태 프로모션을 통해 만든 기물들의 위력을 생각해 봤을 때 룩 또한 충분히 기대를 걸어 볼 만했다.

‘일단 24층을 슬슬 돌아보자.’

세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냥을 진행할 수 있는 24층으로 향했다.

† † †

체스판을 길게 펼쳐 놓은 것 같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무한한 공간.

그 공간에 두 여신이 의자에 마주보고 앉아 사람만 한 크기의 기물을 손짓만으로 움직이며 체스를 두고 있다.

두 여신은 각각 한쪽은 온통 검은 빛으로, 또 한쪽은 흰 빛의 뿜어냈는데, 두 존재 모두 여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고,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번에는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단 말이지, 역시 커플러의 말을 듣길 잘했어.>>

백색의 여신이 체스말을 움직이며 입꼬리를 싱긋 올렸다.

이에 흑색의 여신이 대꾸했다.

<<헤에~ 하지만 그놈 때문에 관리자 중에 규칙을 어기는 것들이 슬슬 늘어나는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겠어?>>

<<규칙이 뭐가 중요해? 어차피 다 우리가 재미있자고 만든 것들이잖아. 나는 지금 충분히 즐거운데.>>

<<커플러 놈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러엄! 우리를 대면한 자리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 그 강아지가 아닌 따분한 다른 관리자들이라면 아무도 말 못 할 걸! 나는 그 말이 진짜가 되길 정말로 기대하고 있다고. 덕분에 아파트도 활기를 띄고 있잖아? 거주자들도 움직이고, 관리자들도 전~부 다른 꿍꿍이를 하고 있어. 우리조차 예측 불가능한 역사가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거라고! 우린 이걸 즐겨야 해 ‘렌’!>>

이에 흑색의 여신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은 알겠지만, 영~ 찝찝하단 말이지. 그 커플러 놈이 말한 대로 된다면, 그때 가서도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네.>>

흑색의 여신 ‘렌’의 말대로 커플러는 지난번의 대면식에서 두 의지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했었다.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두 분을… 죽여 드리겠습니다용!’

두 여신의 피조물일 뿐인 관리인이 그녀들을 죽이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보통이라면 커플러를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겠지만, 두 여신, 특히 백색의 여신 ‘델’은 커플러의 제안에 극도로 기뻐했다.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그녀에게, 진심으로 ‘죽여 주겠다.’는 말을 뱉은 존재를 만난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하여간 렌은 걱정도 많아~ 관리인 따위가 아무리 발악한다고 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야 그렇지.>>

이에 렌은 차분히 손을 흔들어 거대한 기물들을 차근차근 움직였다. 그렇게 두 여신은 계속 수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체크메이트.>>

<<어라? 분명히 내가 이기고 있었는데.>>

흑색의 여신이 둔 필사의 한 수가, 외통수로 들어왔다.

기물의 숫자는 백색 측이 훨씬 많았지만, 이 한 번의 수로 승패가 역전된 것이었다.

렌이 손을 흔들자 흑색의 비숍이 백색의 킹에게 빠르게 날아갔고, 킹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델이 멍한 얼굴로 입을 벙끗대자, 렌이 혀를 날름대며 말을 꺼냈다.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가져도, 언제든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델’.>>

<<이이잉…….>>

델은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이 빨개져선, 뺨을 힘껏 부풀렸다.

이에 렌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아 삐치지 마~ 기분 상하라고 한 말은 아니거든?>>

<<하여간 렌은 항상 그렇게 잘난 척이라니깐! 재미없어!>>

<<그래?>>

렌이 의자에서 일어나 한 손을 휘두르자, 앞에 놓여 있던 체스 기물들이 연기를 뿜으며 단번에 증발했다.

그녀는 델이 앉아 있는 의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종아리 부근부터 천천히 입술을 맞추며 위로 올라갔다.

델 또한 이게 싫진 않았는지, 미묘한 표정으로 그것을 음미했다.

<<우리 델의 기분을 어떻게 해야 풀어 줄 수 있을까?>>

입술이 허벅지로, 허리로, 가슴으로, 어깨로 올라오더니 두 여신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의자에 기대 끈적하게 입술을 나눴다.

토라짐이 가득했던 델의 얼굴에 어느새 흥분과 환희가 떠올랐다.

렌이 입술을 떼어 내자, 물을 머금은 앵두 같은 입술에서 투명한 액체가 끈적하게 떨어졌다.

그녀는 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천천히, 흥분과 광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그냥 델이 걱정되서 그러는 거야. 쓰레기 같은, 하찮은 것들이 네 아름다운 몸에 손끝이라도 닿는다고 생각하니 다 찢어 죽이고 싶어지거든.>>

<<그거야 잘 알지만…….>>

델은 강렬한 눈길을 보내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렌은 이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빙긋 입꼬리를 올렸다.

<<뭐 한동안은 네 말대로 할께,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나도 그 커플러라는 놈은 재미있을 것 같거든.>>

<<그치그치? 드디어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구나?>>

이에 델은 부모의 칭찬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었다.

<<하여간 델은 위험한 장난감을 좋아한다니까.>>

렌은 델의 몸을 공주님처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자 아무 것도 없던 공간속에서 몇 개의 도형들이 두 사람의 아래에서 솟아올라 뒤틀리더니, 어느새 주변의 풍경은 온통 흰색으로 이뤄진 중세 왕족의 침실로 변해 있었다.

렌은 안고 있던 델을 침대 위에 사뿐히 내려놓고, 그녀의 옆으로 몸을 눕히며 말했다.

<<델, 오랜만에 재미있게 즐겨 볼까?>>

이에 델은 얼굴을 붉히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색과 흑색의, 두 몸뚱이가 서로를 느끼기 위해 몸을 흔들 때마다 물방울들이 떨어져 이 공간을 검은색으로 물들여 갔다.

때로는 가느다란, 때로는 격정적인 신음이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가며 두 개의 의지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육체를 탐닉했다.

두 여신의 이름은 ‘델’과 ‘렌’.

오직 재미와 쾌락만을 추구하는, 아파트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낸 두 개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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