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85화.
<오힛, 쥐새끼 엉덩살 맛이나 좀 볼까?>
콰직-!
“츄우우우웃!”
체셔캣이 웅크리고 있던 에D츄의 엉덩이를 한 움큼 깨물었다.
“히에에에엑! 꺼져, 꺼져라 고양이!!”
에D츄는 눈을 꼭 감은 채 허공에 짧은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러던 중, 앞발이 체셔캣의 미간을 빡-!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강타했다. 별 데미지는 없었지만, 소리 하나만큼은 찰진 럭키 펀치였다.
<이익! 건방진 쥐새끼다냥.>
놀란 체셔캣은 꽉 깨물었던 엉덩이를 놓고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말 그대로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고양이를 문 격이었다.
“오오오잉?”
에D츄 본인도 조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에.D.츄의 피어가 약화됩니다.]
메시지를 들은 순간, 세현은 조금 전 럭키 펀치가 피어를 약화시켰다는 것을 눈치챘다.
“에D츄, 잘했다! 고양이는 그렇게 패 버리면 돼!”
“츄우?”
세현은 본능적으로 다음에 던져야 할 수를 떠올렸다.
“세이메이, 체셔캣이 쥐새끼 근처에 왔을 때 포박술을 걸어 줘!”
“네, 주군!”
곧장 왕의 명령을 사용해 소환수의 진형을 바꿔 에D츄가 가장 앞에 서게 만들었다. 노골적으로 체셔캣을 유인하는 함정이었다.
<오히힛, 쥐새끼를 버리기로 한 거냥?>
체셔캣은 처음엔 이런 움직임을 경계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땅히 찌르고 들어올 틈이 보이질 않는지, 에D츄의 근처에서 몸을 드러내 공격을 시도했다.
“츄우우우!”
겁에 질린 에D츄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 순간 세이메이가 포박술을 이용해 체셔캣의 움직임을 일순간 봉쇄했다.
“쥐새끼 공! 빨리 저 고양이를 공격하시오!”
“오, 오잉?”
<오히히힛! 서, 성가신 사슬!!>
에D츄가 눈을 뜨자 바로 앞에는 사슬에 몸이 칭칭 감긴 체셔캣이 눈에 들어왔다. 세현은 이 타이밍을 놓칠세라 외쳤다.
“뭐 하냐, 쥐새끼! 한 방 먹여 버려!”
“쭈, 쭈인님?”
에D츄는 고개를 돌려 애처로운 얼굴로 모두를 바라봤다.
“쥐새끼 공! 어서 주먹을 뻗으십시오!”
“힘내라!”
세이메이와 설희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세현은 에D츄가 피어를 극복할 수 있을 법한 메시지를 떠올렸다.
“저놈 한 방만 패 버리면 네가 먹고 싶은 거 배 터질 때까지 먹여 줄게!”
“먹고 싶은 거?”
순간, 에D츄의 입가에 침이 주륵 흘러나왔다.
그러곤 뭔가를 결심한 듯 진지한 표정을 해 보이며 외쳤다.
“쭈인님! 에D츄는, 에D츄는!!”
에D츄는 두 발을 딛고 섰다.
“치즈를 산처럼 쌓아 두고 먹고 싶어요오오오!”
그러곤 짧은 앞발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힘껏 앞으로 내질렀다.
마치 복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주인공이 스스로의 약점을 극복하며 날리는 통쾌한 일격 필살의 펀치.
빠악-!
주먹은 체셔캣의 이빨을 정확하게 때렸고, 놈의 앞니 두 개가 뽑혀 피를 쏟아 냄과 동시에 몸을 휘감은 사슬들이 끊어졌다.
<이이익! 쥐새끼!>
체셔켓은 분하다는 듯 침음을 흘리며 다시 어둠속으로 숨어들었다.
[에D츄가 피어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됩니다!]
[타이틀 ‘트라우마를 극복한 자’를 획득합니다!]
- HP +2000
- 고양이에게 ‘피어’ 면역.
“잘했다 에D츄!”
밥값만 축낼 것 같았던 쥐새끼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식의 성장을 보는 것 같이 눈물이 핑 돌았다.
“슈슉! 고양이 따위! 고양이 따위! 야수왕 에D츄의 적이 되지 못한다츄!”
에D츄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허공에 앞발을 섀도복싱 하듯 휘두르며 여유를 되찾았다.
<오히히! 죽어어!>
마음이 다급해진 체셔캣은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에D츄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놈을 방해했고, 소환수들의 피해를 확실히 줄이며 안정적으로 딜을 넣는 게 가능해졌다.
체셔캣의 HP는 이윽고 10% 미만까지 줄어들었다.
<오히힛, 반군 끄나풀치고는 제법 한다만! 내 마지막 기술로 끝을 내 주겠다냥!>
비장의 카드, 세현은 체셔캣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놈이 숨긴 기술은 마지막 페이즈에 등장하는 ‘어둠의 춤’이라 불리는 스킬로, 어둠 속에서 빠르게 적을 연타하는 체셔캣의 필살기다.
그 데미지가 괴랄하고 움직임이 변칙적이어서, 놈을 무난하게 공략하다가도 이 패턴에 목숨을 잃는 입주자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것만 넘기면 끝이다.’
세현은 놈의 마지막 패턴을 파훼하기 위해 화이트 나이츠의 옆으로 다가갔다.
다른 소환수로는 놈의 속도를 따라붙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가장 기동력이 뛰어난 화이트 나이츠에게 ‘작위 수여’를 쓸 심산인 것이다.
“설희 씨. 이동 속도 버프 사용해 주세요.”
“넵!”
마지막으로 설희가 이동속도 버프를 주는 ‘신속의 찬가’를 흥얼거리자 세현의 몸을 바람의 기운이 감쌌다.
세현은 곧장 작위 수여를 사용해 화이트 나이츠와 결합했고, 전신에 가벼운 기운이 충만해졌다.
<오히히힛! 죽어라!>
그 직후, 체셔캣이 어둠의 춤을 발동하자 몸 전체가 검붉은 연기처럼 변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놈의 첫 목표는 세이메이. 포박술을 사용해 놈의 발을 종종 묶었기에 가장 먼저 처리해야겠다 생각한 것이리라.
검붉은 손톱이 허공을 할퀴며 총알같이 날아들었다.
챙-!
순간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세현이 양손검을 휘둘러, 놈의 몸뚱이를 후려친 탓이었다.
<오히히히힛 소용없다!>
체셔캣은 멈추지 않고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어지간한 입주자라면 눈으로 쫓는 것도 힘들 정도였지만 화이트 나이츠와 신속의 찬가 버프를 받은 세현은 그 속도를 따라잡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속도만큼은 놈을 상회할 정도였다.
거기에 블링크와 쿠자이의 발을 이용한 2단 점프를 활용한 변칙적인 움직임이 더해지니 체셔캣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수 없는 고양이, 그 입을 완전 찢어 버려 주마!!”
세현의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놈은 전투의 호흡을 잃고 빈틈이 생겼다.
그때마다 세이메이는 포박술과 시키가미를 연계해 놈의 발을 최대한 묶었고, 그 뒤로 소환수들의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결국 체셔캣의 HP는 작위 수여의 지속 시간인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바닥을 드러냈다.
놈은 세현의 양손검에 목이 뎅겅 잘려 나가는 허무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이히히힛! 이히히히히히히힛!>
잘린 체셔캣의 목은 광기 가득한 웃음소리를 뱉어내더니 천천히 침묵했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보스룸에 가득했던 어둠이 걷히며 알록달록한 벽지로 도배된 서커스단 텐트 같은 공간으로 변했다. 그 안에서는 스테이지 클리어를 축하하듯 불꽃놀이가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23층을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23층을 최초로 클리어 한’을 획득했습니다.]
- 올 스탯 +3
[승강의 방에 ‘23층’이 해금됐습니다!]
연속으로 울려 퍼지는 마스터키 메시지에 세현은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밥만 더럽게 처먹을 것 같은 에D츄가 나름(?) 쓸 만하다는 걸 확인한 것이, 또 고양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1인분 역할을 해 줬다는 것이 기특했다.
세현은 다소 출혈을 각오하고서라도 치즈를 사 줘야겠노라 다짐했다.
“아차차, 시체 녹기 전에 파밍부터 해야지.”
세현은 체셔캣에게 다가가 채집의 단검으로 놈의 이빨과 눈알, 손톱 등을 뽑아냈다.
아직 샤이탄 레이드 직전에 맞춘 적당한 장비들을 쓰고 있고 곧 장비를 대대적으로 교체할 생각이기에 재료 파밍에 꼼꼼해질 수밖에 없었다.
재료 파밍을 끝내자 체셔캣의 시체가 녹아들면서 바닥에 다량의 골드와 아이템을 드랍했다.
‘그래도 꽤 쓸 만한게 나와 주긴 했네.’
[#.액세서리 / 어둠 고양이의 팔찌]
- 체셔캣의 이빨을 깎아 제작한 팔찌, 이를 착용하면 체셔캣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등급: 유니크(C)
적정 레벨: -
▶ 추가 능력
어둠 보행(사용 횟수 5 / 5): 어둠 속에 몸을 숨겨 이동할 수 있습니다. 최대 지속 시간 5분.
어둠의 춤(사용 횟수 1 / 1): 어둠에서 어둠으로, 빠르게 연속으로 공간을 도약해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 모든 능력을 사용하면 아이템은 자동으로 파괴됩니다.
‘흐음, 딱 비상용이네.’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체셔캣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었다.
어둠 보행을 5번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위기 상황에서 5번은 탈출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설희 씨. 이거 쓰세요.”
“아뇨,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그걸 받아요.”
잠시 고민하다 설희에게 팔찌를 건네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받아요. 다 필요해서 그런 거니까.”
“음, 그래도 좀….”
“빨리 성장해서 나중에 갚아요. 설희 씨가 뒤쳐지면 제가 골치 아파서 그래요.”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계속되는 권유에 설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찌를 받았다.
‘후우……’
세현은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지난번 검은 로브 사건 때처럼 설희가 위기에 빠지면, 저 팔찌가 그나마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 슬슬 24층 찍고 돌아가죠. 레벨도 올랐으니 슬슬 아이템도 새로 맞추고…….”
“쭈, 쭈인님. 치즈라는 것도 사 주시는 건가요?”
“주군! 저도 맛있는 게 먹고 싶습니다!”
에D츄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세이메이까지 이에 합세해 한마디를 보탰다.
이를 본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러다 평생 알거지로 사는 거 아닌가 몰라.”
† † †
24층 돌입 직후, 세현과 설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곧장 관리사무소의 마켓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난번 샤이탄 레이드 때 제작했던 장비 중 절반 정도를 정리했다.
이걸로 모인 돈은 총 4억 4천만 원. 세현은 이 중 마사무네에게 의뢰비로 줄 1억을 떼어 놓고 남은 돈으로 재료 아이템을 몽땅 쓸어 담았다.
“이거 전부 살 테니까 20% 깎아 주세요.”
“이건 질이 별로니까, 빼고 다른 걸로.”
“물약 100개 끼워 줘요.”
능수능란한 협상력으로 재료를 최대한 싼값에 쓸어 가는 세현의 모습에 마켓 상인들의 시선이 끌렸다.
“당신이 그 브레이브킹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 아니야? 와, 실물로 보니까 신기하네.”
“말한 가격대로 쳐줄 테니까 사진 한 장 같이 찍읍시다. 사진은 왜 찍냐고? 유명한 사람 사진 문 앞에 걸어 놓으면 장사 잘~되잖아.”
“옆에 그 여자 분은 펜싱 금메달 땄던 그분 아뇨? 둘이 혹시 애인입니까?”
거래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현을 미리 알아보고 알아서 할인을 해 주거나 덤을 얹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본 게 난생 처음이라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법.
“당신 서큐버스 군단 소속 아뇨? 안 팔아 안 팔아, 블루울프한테 찍히면 우리도 골치 아파.”
“아휴, 나도 맘 같아서는 팔고 싶긴 한데, 그게 좀 곤란해.”
상인들 중, 몇몇 사람들이 세현이 서큐버스 군단 소속이라는 이유로 판매 거부를 한 것이다.
어차피 재료야 다른 상인에게 사면 됐지만 찜찜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견제가 시작됐군.’
상인들이 대놓고 판매를 거부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큰손’들, 즉 상위권 길드들이 판매를 금지한 것이리라.
최근 기세가 좋은 서큐버스 군단에 위기감을 느낀 길드들이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 이슈는 사카린 길드장한테도 말해 둬야겠어.’
세현은 다음 회의 때 이와 관련하여 보고하기로 결심한 후, 나머지 재료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이번엔 제대로 맞춰야지.’
저번에는 샤이탄 레이드가 급박하게 돌아갔고 돈도 부족했기에 장비를 적당한 수준에서 맞춰 썼다.
하지만 지금은 위협이 많아진 만큼 제대로 된 아이템을 맞추자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