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69화 (69/180)

# 69

69화.

섬의 끝자락에 작은 선착장과 오두막집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섬의 주변은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졌는데,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졌다.

“일단 저기로 가 보죠.”

세현 일행은 곧장 선착장으로 향했다.

“으응? 외부인인가-도도.”

선착장에서 일행을 반긴 것은 선장복을 차려 입은 사람 크기의 도도새였다.

그는 세현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여긴 무슨 일로 왔냐-도도.”

“시계토끼를 쫓아 왔는데 못 봤어?”

“왔다-브르. 방금 배를 타고 떠났다-브르. 저어어어~기 저 손톱만 한 배가 보이냐-브르?”

새는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켰다.

그곳에 작은 나룻배에 올라탄 시계토끼가 양팔로 열심히 노를 저어 앞으로 가고 있었다.

“나도 배를 빌릴 수 있을까?”

세현의 질문에 도도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저 배가 마지막이다-브르. 저 놈한테도 빌려줄 생각도 없었는데 ‘하트여왕’의 명령이라면서 다짜고짜 배를 빼앗았다-브르.”

“흐음, 다른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있기야 하지만, 쉽지 않다-도도.”

“뭐든 좋으니까 알려 줘.”

“배의 재료를 가지고 오면 만들어 줄 수 있다-도도. 재료는 섬의 서쪽에 있고, 여기 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적어 놨으니 생각이 있으면 모아 와라-도도.”

도도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세현에게 내밀었다.

“자, 배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의 내용을 적어 놨다-도도.”

[#. 메인 퀘스트 / 원더랜드로의 밀항]

-시계토끼를 쫓아 앨리스의 눈물바다를 건너 원더랜드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배가 필요하다.

위험한 몬스터들을 쓰러뜨리고 재료를 모아 ‘도도새’에게 배 제작을 의뢰하자.

적정 레벨: 70

[10인승]

눈물꽃 꽃잎 5개, 눈물꽃 뿌리 10개, 버터비 더듬이 10개, 버터비 날개 10개

[50인승]

눈물꽃 꽃잎 50개, 눈물꽃 뿌리…….

[100인승]

……

[500인승]

……

[1000인승]

……

[수락하기]

배는 각 크기에 따라 필요로 하는 재료가 달랐다. 더 많은 재료를 들이면, 더 크고 좋은 배를 얻을 수 있다는 모양이다.

수락하기 버튼을 누르자 도도새는 날개를 펄럭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겠다-도도. 버터비와 눈물꽃은 위~험한 놈들이니 부디 조심해라-도도.”

세현은 선착장을 떠나 바로 모래사장을 따라 걸었다.

“그럼 바로 가죠.”

“주군, 몇 인승 배를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최소 100인승, 최대 500인승.”

“그, 그건 너무 크지 않아요?”

생각한 것보다 배의 스케일이 커서 두 사람이 놀란 듯했다. 세현은 피식 웃으며 세이메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탁했다.

“미안한데 오니 좀 소환해 봐. 그리고 저~ 바다에 오니가 들어가게 해 줘.”

“네, 주군!”

세이메이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오니를 소환해 바다에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콰아아아앗!”

수면 위로 사람 키의 3배는 족히 되는 거대한 가재가 튀어 올랐다.

놈은 집게발을 오니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콰드득-!

오니 또한 약한 소환수가 아니기에 가재를 붙잡아 몸통을 뜯어 버렸다.

하지만, 이후 숫자가 하나둘씩 늘더니 수십 마리에 달하는 거대 가재가 오니의 몸에 달라붙어 살점을 잘근잘근 찢었다.

“꾸어어어어!”

결국 오니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최후를 맞이했다.

이를 본 설희와 세이메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에 세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10인승 배로 저길 들어가면 저 놈들한테 물고기밥이 되겠지? 거기다 배가 작으면 소환수를 운영하기도 어려울 거고.”

“하하, 그렇겠네요.”

설희는 납득했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뭐 상황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100인승 이상은 만들어야 안전히 건널 수 있을 거예요.”

현실적으로 봤을 때 500인승 배에 필요한 재료를 모두 모으려면 못해도 10일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면 다른 길드가 여기까지 따라붙을게 뻔했고 그랬다간 골치 아픈 일에 엮일 확률이 올라갔다.

반면 100인승의 경우, 2일~3일이면 충분히 재료를 모을 테지만 바다를 건너는 데 있어 거대 가재들에게 당할 리스크가 컸다.

‘뭐, 되도록이면 500인승이 좋긴 하지.’

세현은 잠시 고민하다 마스터키를 조작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움직였다.

“일단 재료부터 모으죠.”

세현 일행은 섬의 서쪽에 위치한 숲에 도착했다.

열대우림을 연상시키는 숲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과 동식물들이 가득했다.

“저게 눈물꽃입니다.”

숲의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자, 다른 꽃들과 확연히 다른 크기를 가진 거대한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를 이룬 앨리스의 눈물을 빨아들이는 데 최적화된 두껍고 긴 뿌리와 줄기. 이는 마치 괴물의 촉수를 연상시켰으며, 그 위에 달린 사람만 한 푸른 꽃은 흉측한 이빨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한 마리씩 천천히 가자고요.”

“넵!”

세현은 눈물꽃과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소환수들을 모두 불러냈다.

그러곤 블랙 나이츠, 화이트 나이츠를 앞세워 완벽히 진형을 갖춘 상태에서 공략을 시작했다.

이는 그만큼 눈물꽃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F급이던 시절엔 여기서 정말 개고생했지.’

눈물꽃의 레벨은 80 수준으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막상 상대해 보면 동레벨 몬스터에 비해 압도적인 스펙을 가졌다. 농담으로 입주자들 사이엔 눈물꽃이 준보스급이라는 얘기가 종종 나올 정도였다.

꽃 부분은 강력한 독액과 이빨로, 줄기와 뿌리는 엄청난 힘과 긴 거리로 입주자들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아 뼈째로 으깨 버린다.

‘최대한 조심해서 간다.’

세현의 전략은 심플했다.

상대적으로 이동속도가 빠른 화이트 나이츠, 블랙 나이츠를 앞세워 눈물꽃의 어그로를 끌고 나머지 원거리 타입 소환수로 안전한 위치에서 딜을 넣는 것이었다.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처음 조우한 눈물꽃과 교전한 지 10분여가 지날 무렵-.

쿠드득-!

블랙 나이츠의 리프 어택이 놈의 줄기를 갈기갈기 찢었고, 모든 생명력을 잃은 눈물꽃은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땅에 나뒹굴었다.

“후우, 이제 한 마리……”

세현은 재빨리 눈물꽃의 뿌리와 꽃 부분에 칼을 박아 결대로 뜯어냈다. 시체가 녹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재료를 최대한 많이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꽃잎과 뿌리 채취를 마친 세현은 꽃받침 위에 칼집을 내더니 그 안에서 흘러나온 노란 꿀을 포션 플라스크에 담았다.

“주군 그건 어디 쓰는 겁니까?”

“다른 재료를 모을 때 이게 필요해. 그런데 너, 왜 군침을 흘리냐?”

“맛있어 보여서.”

“……참아라.”

이후 세현 일행은 50분 사냥에 10분 휴식의 루틴으로 눈물꽃을 사냥했다.

그렇게 5~6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어이, 허세현~!”

등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서큐버스 군단 멤버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네.’

조금 전, 세현에게 마스터키 메시지로 연락받은 사카린이 길드원을 모아 온 것이었다.

“오셨어요.”

“뭐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됐고, 뭘 해야 되는지부터 일단 알려 줘.”

세현은 자신이 500인승짜리 배를 만들 생각이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인력이 동원되어 함께 재료를 모을 필요가 있다 설명했다.

“일은 눈물꽃의 꽃잎, 뿌리랑 꽃받침에서 꿀을 채취하면 된다 그거지? 자자 다들 2인 1조로 흩어져서 진행해!”

사카린의 지휘 아래 길드원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반나절이 지날 무렵, 서큐버스 군단은 500인승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눈물꽃의 꽃잎, 뿌리를 모두 모을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허세현, 나머지 재료는 어떻게 모을 건데?? 버터비라는 몬스터, 아직 한 마리도 못 봤어.”

“그 동안 모은 꿀, 저한테 전부 넘겨주세요.”

길드원들은 플라스크에 담은 꿀을 군말 없이 모두 넘겼다.

“자~ 그럼 시작해 봅시다.”

쨍그랑-!

세현은 입꼬리를 싱긋 올리며 플라스크를 모조리 바닥에 집어던져 깨뜨렸다.

바닥은 웅덩이가 만들어질 정도로 노란 액체로 흥건했고, 달달한 꿀 냄새가 온 사방에 진동했다.

“다, 달콤한 냄새!”

“세이메이 씨! 바닥에 떨어진 건 먹으면 안돼요!”

세이메이가 땅에 손가락을 찍어 먹으려 하자 옆에 있던 설희가 그걸 뜯어 말릴 정도였다.

위이잉-!

잠시 후, 허공에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음 같은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와, 뭐가 새까맣게 몰려오네.”

하늘에는 나비와 벌을 반반 섞어 놓은 듯한 생물이 무리를 지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저것들이 바로 ‘버터비’라 불리는 몬스터다.

놈들의 내장에는 배를 제작할 때 필요한 방수, 접착제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최대한 많이 때려잡아!”

잠시 후, 버터비들과 전투가 시작됐다. 놈들은 눈물꽃보다 각 개체의 전투력은 약했지만 그 숫자가 워낙 많고, 하늘에 떠 있는 덕분에 상대가 쉽지 않았다.

서큐버스 군단은 근 한 시간의 전투를 거친 끝에 모든 버터비들을 정리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이제 재료를 모아서 갑시다.”

세현은 버터비를 잡아 나온 재료를 모아, 바로 도도새에게 돌아갔다.

“500인승 배로 만들어 줘.”

“오오, 재료를 이렇게 빨리 모아 오다니! 솔직히 놀랐다-도도. 바로 배를 만들어 주겠다 ?도도.”

도도새는 바닥에 500인승 배의 종이 도면을 펼친 후 세현이 건넨 재료들을 종이 위에 던졌다.

그러자 종이 도면이 빛을 내뿜으며 재료들을 빨아들였고 서서히 거대한 배의 형체로 변이했다.

“다 됐다, 도도!”

어지간한 여객선보다 웅장한 배가 바다 위에 만들어졌다.

“전부 배에 올라타요! 바로 출발합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길드원 전체가 배에 올라탔다.

허세현이 키를 붙잡고 페달을 밟자 배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파도가 배 밑동을 칠 때마다 거대 가재들이 공격을 해 왔지만, 다행히 겉 표면에 스크래치가 조금 나는 정도가 전부였다.

간혹 한두 마리가 몸을 튕겨 내 선상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길드원들에 의해 간단히 격퇴됐다.

그렇게 3~4시간의 항해가 이어질 무렵, 저 멀리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섬, 꼭 버섯처럼 생겼네?”

섬의 중앙에는 버섯을 꼭 닮은 거대한 돌산이 솟아 있었다.

그 벽면에는 [입주자님! 원더랜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크게 새겨져 있었다.

해안가에는 분홍 빛 모래들이 깔려 있어 이곳의 관리인이 마치 마약이라도 하고 만든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어라? 저건 뭐야?”

“해안가에 뭐가 있는데?”

배가 해안가와 가까워지자 그곳엔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반역자들을 처치해라-트!”

“독재자는 물러가라!”

몸이 포커 카드로 만들어진 카드 병사 수백과, 허름한 가죽 장비를 입은 병사 수백 명이 뒤섞여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던 것이다.

카드 병사들의 몸에는 클로버 문양과 숫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 숫자가 클수록 무장상태가 좋고 큰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가 제일 큰 분기점이지.’

세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홀로 생각했다.

시즌3, <앨리스 인 원더랜드>은 이곳을 독재 지배하는 ‘하트여왕’,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방랑자 ‘앨리스’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입주자는 ‘하트여왕’이나 ‘앨리스’ 중 한 세력에 소속돼 메인 퀘스트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이 해변에서 어떤 세력을 돕느냐에 따라 메인 퀘스트의 큰 줄기 자체가 변해 버린다.

“허세현, 저건 어떻게 할 건데?”

“카드 병사들 제거하고 인간 병사들 쪽을 도우면 되요.”

사카린의 질문에 세현은 명쾌히 답했다. 길드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앨리스의 편에 서는 것이 허세현에게 빼먹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앨리스 쪽이 타투이스트를 만나기 더 편하니까.’

‘타투이스트’란 잉크를 이용해 스티그마를 새길 수 있는 전문가를 말하는 것이다.

앨리스와 하트여왕 진영에 있을 때 각각 다른 타투이스트를 만날 수 있는데, 큰 차이는 없지만 세현의 경우 앨리스 진영의 타투이스트가 조금 더 낫다고 평가했다.

“좋아, 카드 병사들을 전부 때려눕혀!”

배가 해안가에 정착함과 동시에 서큐버스 군단 전원이 뛰어내려 카드 병사들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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