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68화 (68/180)

# 68

68화.

‘미행이 붙었군.’

지상에 내려온 시점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세현 일행을 쫓는 입주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정체와 목적을 모르기에, 섣불리 메인 퀘스트를 시작했다간 경쟁 길드에게 정보만 뺏기는 꼴이 될 수 있었다.

‘일단 저놈들부터 떨쳐 낸다.’

세현은 앞으로 자연스레 걸으며 별 시답지 않은 얘기를 시작했다.

“설희 씨, 혹시 육회 잘하는 집 아는데 있어요?”

“네? 육회집이요?”

“네네, 요즘 육회가 당기더라고요. 소주랑 같이 먹으면 또 그 맛이!”

세현은 그와 동시에 몸 쪽으로 마스터키를 조작해 설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허세현: 미행 붙었어요, 모른 척해요.]

메시지를 본 두 설희가 세현의 잡담을 자연스럽게 받기 시작했다.

“흐음~ 세이메이 씨는 육회 좋아하세요?”

“먹어 본 적은 없지만! 먹는 거라면 뭐든 좋습니다!”

“그럼 같이 먹어요! 사쿠라신 근처 벚꽃 밭에서 술 한잔하면서 먹으면 정말 맛있을 거예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때우던 중, 첫 번째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희 씨! 첫 도시에 온 기념으로 여기서 뭐라도 먹죠!”

“헤헤, 저기~ 골목으로 가 보죠! 보통 맛집은 으슥한 데 있잖아요!”

세현 일행은 태연스럽게 연기를 이어가다 음습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야! 어디로 사라졌어.”

그러자 뒤를 밟고 있던 입주자 셋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불평했다.

“크억!!”

그때, 검은 그림자 몇 개가 그들을 순식간에 덮쳐 제압했다.

“니들 뭔데 따라다니냐?”

소환수를 이용해 그들을 제압한 후, 세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봤다.

“죄, 죄송합니다!”

“소속은?”

“예?”

딱-!

“아아아악!”

세현의 손가락으로 이마를 튕겼다. 단순한 딱밤이었지만, 체력 스테이터스의 힘이 더해져 망치로 친 것 같은 충격이 전달됐다.

“소속 길드 어디냐고.”

“브, 블랙아웃 길드라고 합니다. 허세현 님이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 뒤를 따라다니다 보면 콩고물이라고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해서…… 죽을죄를 졌습니다!”

‘뭐야. 괜한 걱정이었나.’

다행히 대형 길드가 붙은 건 아니기에 세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 다음에 보면 이 정도로 안 넘어간다.”

“네! 네!! 물론입니다요!”

“10초 셀 테니까 그 안에 사라져. 10… 9…….”

“히이이익!”

적당히 겁을 주자 세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귀찮은 일이 계속 생길 것 같은 예감인데.’

지금 세현의 유명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서큐버스 군단에 가입돼 있는 상태여도 귀찮은 일이 생길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다들 이거 입죠. 계속 누가 알아보는 것도 피곤하니까.”

세현은 일전에 사 놓은 로브를 세이메와 설희에게 나눠줬다. 설희는 로브를 입은 후,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심스레 속삭였다.

“흠, 세현 씨. 뭐부터 하실 건가요?”

“메인 퀘스트부터 시작해야죠.”

이는 세현의 입장에선 당연한 말이었다.

메인 퀘스트, 또 거기서 연계된 희귀한 스토리 퀘스트들의 보상은 다른 것들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이미 정보가 있기에, 다른 길드가 건드리기 전에 치고 나가 알짜배기를 최대한 쏙쏙 뽑아 먹을 생각이었다.

기억이 맞는다면, 다른 길드들이 메인 퀘스트의 시작점을 알아내는 데 앞으로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 이 시간은 세현에게 있어서 모든 걸 독식할 수 있는 골든타임인 것이다.

‘알짜배기 먼저 빼먹고, 서큐버스 군단에 정보를 우선적으로 풀면 된다.’

세현 일행은 곧장 메인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 † †

“와아…… 나무 아래 이런 공간이 있다니, 신기해요.”

“주군은 어떻게 이런 장소를 알고 계신 겁니까?”

세현 일행이 향한 곳은 숲의 한가운데 거대하게 솟은 나무 밑동의 구멍 속이었다.

꼭 사람 몸 크기 정도의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자, 그 내부가 서서히 넓어져 거대한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어느 지점에 제단이 세워져 있었고, 그 뒤로는 푸른 방어막이 형성돼 더 이상 뒤로 갈 수 없었다.

세현이 제단에 올라가자 메시지 박스가 출력됐다.

[#. 인스턴트 던전 / 토끼굴]

-토끼 수인들이 사는 동굴. 워낙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어 다른 세계로 연결돼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있다.

적정 레벨: 80

적정 인원: 10명 이상.

[입장하기]

입장하기 버튼을 누르자, 제단과 뒤쪽의 푸른 방어막이 사라지며 자연스레 동굴 안쪽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인스턴트 던전 안으로 진입한 것이었다.

그렇게 안으로 한 4~5분을 더 걷자 이곳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칰, 치이이잌! 치, 침입자닼!”

꼭 사람만 한 크기에 근육질 몸매를 가진 토끼의 상체를 가진 40~50명의 수인들, 이른바 ‘캥거루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그들은 번뜩이는 붉은 눈으로 세현 일행을 노려보며 주변을 원형으로 둘러쌌다.

“치이이이잌!”

“죽여 버렼!”

토끼 수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맹수처럼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설희 씨 버프! 세이메이는 소환수 전개해!”

세현의 작은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소환수들이 일제히 나타나 토끼 수인들의 공격을 받아 냈다.

토끼 수인들은 커다란 이빨과 근육질 몸뚱이로 근거리 타격전을 하는 격투가 타입이었다.

수가 꽤 되는 데다 레벨이 높아 공격 한 방 한 방에 묵직함이 담겨 있었다.

어설픈 수준의 입주자들이 이곳에 발을 들이면 저 무지막지한 토끼들의 주먹에 피떡이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블랙 비숍과 화이트 나이츠, 거기에 백설희의 광역 버프로 보강된 세현의 소환수 군단은 놈들의 숫자를 하나씩 착실하게 줄여 나갔다.

전투가 시작된 지 30여 분이 지났을 무렵, 남은 수인의 숫자는 고작 다섯 마리였다.

“히이이잌! 대, 대장니잌!!”

놈들은 겁에 잔뜩 질려 비명을 내지르더니 개미굴 같이 복잡한 동굴 안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쫓아갑시다!”

세현 일행은 재빨리 놈들을 쫓아 미로 같은 토끼굴을 굽이굽이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그 끝에서 유리 재질로 된 천장에서 햇빛이 쏟아지는 돔 형태의 공간이 나왔다.

천장에서 모인 햇빛은 공간의 정중앙에 있는 한 지점으로 떨어졌다.

그곳에는 다른 수인들 보다 4~5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토끼 수인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놈은 금색 정장을 입고 금으로 만들어진 회중시계를 목에 걸었는데,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이에 반사돼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대장니잌! 살려 주세욬!”

“저, 저기 괴물 같은 입주자가 나타났습니닼!”

도망치던 토끼 수인들이 재빨리 놈에게 다가가 절을 올렸다.

놀이터에서 얻어맞은 아이가 부모에게 고자질을 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우오오오! 명상 중인데 언 놈들이얔!”

대장 토끼는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른바 시계토끼라 불리는 녀석으로, 이 인스턴트 던전의 보스였다.

목에 걸린 황금 회중시계를 이용해 최대 2배까지 상대의 속도를 느리게 하거나, 자신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스킬 구성을 가졌다.

놈은 화가 잔뜩 난 듯 미간을 찌푸린 체 회중시계를 한 손으로 들고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달팽이처럼 기어라아아앜!”

그러곤 회중시계를 앞으로 뻗으며 외치자 금빛으로 작게 빛났다. 곧 저기서 광선이 뿜어져 모두에게 이동속도 저하 버프를 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 어라 이거 고장 났낰?”

어쩐 일인지 빛이 금방 사그라지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계토끼는 당황한 듯 회중시계를 만진 후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가속하지도, 상대의 시간을 늦추지도 못했다.

“너, 뭐하냐?”

놈의 당황한 모습을 본 세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계토끼’가 ‘거북이의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봉인된 시간의 신’이 이를 무력화시킵니다.]

시계토끼가 회중시계를 쓸 때마다 마스터키가 세현의 머릿속으로 메시지를 전해 왔다.

‘비슷한 계통의 스킬이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건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현의 입장에서는 자칫 귀찮아질 수 있는 전투를 손쉽게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에이이잌!”

시계토끼는 홧김에 그대로 달려들었지만, 자신의 주력 스킬을 원천 봉쇄당한 탓에 세현의 소환수들에게 거의 몰매를 맞으며 생명력이 깎여 나갔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시계토끼의 HP가 10%가량 남았을 무렵 마스터키가 메시지를 전달했다.

[시계토끼가 도망칩니다!]

[‘인스턴트 던전’이 종료됩니다.]

“사, 살려 줘어어엌!”

시계토끼가 애처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동굴 반대편으로 달리자 길을 따라 바닥에 발자국이 남았다.

“따라가자.”

세현 일행은 발자국을 따라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조금씩 공간이 뒤틀리더니 어디가 위고,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의 반대편에는 20m가량의 거대한 문과, 20cm정도 크기의 쥐방울만한 문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문 사이에는 평범한 크기의 유리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세 개의 바구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왼쪽에 놓인 바구니에는 분홍색 포션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병의 옆면에 붙은 이름표에는 <커지는 콜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른쪽 바구니에는 투명한 포장지에 먹음직한 쿠키가 담겼는데 <작아지는 쿠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 바구니 사이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세현 일행은 그걸 들어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원더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개의 문에 입장하는 순간 환상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앨리스와 하트여왕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동화풍 지옥 버라이어티 드라마!

당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선택하시라 Dead or Live!」

‘뭘 선택해야 하려나.’

시즌3은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때 매 순간, 두 개의 선택지를 준다.

입주자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바뀌게 되며, 얻을 수 있는 보상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시즌3의 특징이었다.

‘이 루트로 가면 저게 걸리고, 저 루트로 가면 저게 걸리고.’

세현은 대강의 흐름을 알고 있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시즌3은 딱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선택에 장단점의 양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이메이, 설희 씨. 둘 중에 뭐 먹어 볼래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세현은, 일행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흐으으음.”

잠시 고민하던 중, 세이메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 주군. 저 쿠키라는 것이 먹어보고 싶… 아니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금 본심이 나온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세현은 피식 웃으며 테이블의 <작아지는 쿠키>를 집어다 세이메이와 설희에게 하나씩 넘겼다.

“다들 하나씩 먹자고.”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쿠키를 입에 넣었다.

“오~ 이거 퀘스트용 아이템치고 맛있는데.”

“헷, 그러게요. 어지간한 베이커리에서 파는 것보다 나아요.”

“주, 주군! 맛있습니다!”

이런 평가는 과장이 아니었다.

작아지는 쿠키의 촉촉한 식감과 달큰한 향과 맛은 세 사람의 혀를 충분히 즐겁게 해 줬다.

“어어라? 몸이 작아집니다 주군!”

잠시 후, 세 사람의 몸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작아지던 몸은 끝에 가서는 20cm까지 줄어들었고 세 사람은 작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문을 열고 나서자 밖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세현 일행을 기다렸다.

“바다?”

그곳은 따스한 기후를 가진 작은 섬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