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67화 (67/180)

# 67

67화.

그것을 헬시안의 쇄골 아래에 가져다 대자, 고기 굽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살이 타올랐다.

“흐으읍!”

커플러의 손가락이 요란스레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자 헬시안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쇄골 위에는 원형의 스티그마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계약의 스티그마’라는 것으로, 이를 통해 계약을 할 경우 강제력을 가지게 해 주는 일종의 구속 장치다.

<’계약의 스티그마’에 담긴 계약 조항들을 설명하겠습니다.>

<제 1조. 관리인 ‘커플러’이 운명 공동체임을 인지하고 활동을 진행한다. 이 활동의 범주는 ‘헬시안’, ‘커플러’ 두 주체가 협의를 통해 진행한다.>

<제 2조. 입주자 ‘허세현’이 아파트의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제 3조. 관리자 ‘커플러’가 하는 일을 타인에게 발설하지 않는다.>

<제 4조……>

<제 5조……>

<모든 계약 내용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헬시안의 머릿속으로 스티그마에 담긴 계약의 세부 내용이 사념의 형태로 전달됐다.

모든 내용을 이해한 후, 그녀는 마음속으로 긍정의 뜻을 전달했다.

“오홍홍! 계약 완료옹!”

그 순간, 스티그마가 붉은 빛을 내뿜으며 주변으로 핏줄이 다닥다닥 뻗어 나갔다. 이것으로 계약이 완료된 것이다.

커플러는 자신의 뺨의 피부를 나무 껍데기처럼 쭉- 소리가 나게 찢더니 그것을 스티그마 위에 펴 발랐다.

그러자 그 자리엔 아무 것도 없었다는 듯 스티그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용, 헬.시.안.님.”

† † †

강남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4층 높이의 작은 건물. 이곳은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서큐버스 군단’의 길드 사무실이었다.

길드원 수가 적어 건물이 크진 않지만, 건물 외관은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눈을 돌릴 정도로 세련됐었다.

게다가 내부에는 회의실, 영상 편집실, 방송 스튜디오와 카페테리아 등,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이곳의 회의실, 서큐버스 군단 멤버 전체가 모여 앉아 빔 프로젝트로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샤이탄 레이드 당시 길드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 이 부분이 엄~청 하이라이트니까 집중하세요!”

영상이 재생되던 중, 신지영이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그러자 영상 속 허세현이 커다란 깃발을 양팔로 들어 올리더니 그걸 바닥에 힘껏 꽂고 외쳤다.

[이스칸다르의 깃발… 간다!]

그러자 붉은색 폭풍이 몰아치더니, 그것이 걷히자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수만은 될 듯한 거대 군단.

세현은 그들의 한가운데 서서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돌격!!]

그들은 엄청난 기세로 샤이탄을 향해 돌진했다.

백설희가 하모니를 사용하는 것으로 군단 전체에 버프가 덧씌워졌고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샤이탄을 향해 돌진했다.

<이, 이런 미천한 것들이! 필멸자들 따위가!!>

엄청난 숫자의 병력은 순식간에 샤이탄을 둘러싸고 그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자자! 여기서 또 두 번째 하이라이트 갑니다! 드론으로 촬영한 특제 영상!”

신지영이 다시 또 외치자, 카메라가 전장 전체를 멀리서 잡아 줬다. 레이드 직전 특별히 챙겨 갔던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이었다.

그 웅장한 광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탄성이 나오게 할 정도였다.

이 엄청난 영상은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보지 못할 전쟁을 연출하고 있었다.

<내가, 대마신인 이 내가 필멸자들 따위에게!>

마지막으로, 사카린이 놈의 머리를 사슬낫으로 베어 내는 것으로 전투가 종료됐다.

보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소모되는 것 같은, 박력 넘치는 영상이었다.

이는 현재 서큐버스 군단 유튜브 채널에 올라간 것으로, 신지영이 며칠 밤을 새 가며 만든 역작이었다.

업데이트한 지 불과 1시간이 지났음에도 조회수는 이미 천만 단위를 훌쩍 넘고 있었다.

“최고다! 멋있다!”

“크으~ 우리 길드에 취한다!”

길드원들도 만족스러운 듯 영상 종료와 함께 박수갈채를 보냈다.

잠시 후, 회의실에 다시 불이 들어왔고 사카린이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다들 고생했어. 지금부터 간단히 일 얘기를 하자고.”

사카린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이번 시즌 3도 저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거야. 각자가 알아서 조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이 회의실에서 모여서 일주일 간 얻은 정보와 진행 사항을 보고하자고.”

서큐버스 군단의 기본 방침은 각 길드원을 믿고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이는 소수 정예인 덕분에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유튜브 영상 촬영이나 퀘스트 발굴 같은,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에서 이 방식이 더 좋은 결과를 종종 낳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번에 코스프레하고 전투하는 콘셉트로 영상 찍는다고 했지? 그거 나도 같이 하자.”

“나는 메인 퀘스트 먼저 탐색해야지!”

“같은 조 할 사람!”

길드원들은 마치 여학생들이 짝을 정하듯 들뜬 분위기에서 빠르게 2~3명씩 조를 구성했다.

세현은 가장 뒷자리에서 엄격, 진지, 근엄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누가 말 안 걸어 줬으면 좋겠는데.’

되도록 혼자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길드원의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 2인이 조를 이뤄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적 갈등으로 끙끙대고 있을 때, 몇몇 길드원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신입! 우리랑 같은 조 할래?”

“아니아니, 우리가 잘해 줄게, 우리 조는 어때?”

심지어 몇몇은 대놓고 세현에게 들이대기까지 했다.

‘미치겠네.’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타인에게 관심을 받아 본 경험이 없기에, 전혀 대처가 안됐다.

그렇게 허우적대고 있을 때, 사카린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

“허세현, 너는 설희랑 같이 일해라.”

“좋아요!”

설희는 그 제안이 마음에 드는 듯 싱긋 웃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겠어.’

다른 길드원들과 조를 이뤄 활동할 경우, 세현이 숨긴 정보들이 탄로 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설희의 경우 그동안 얼마나 입이 무거운지 봐 왔고, 어떤 성격인지 알고 있다.

세현의 입장에서는 변수가 가장 적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설희의 클래스, 팬텀싱어의 광역 버프 스킬들은 소환수를 부리는 세현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사카린 입장에서도 여러 이유를 고려해 건넨 제안이리라.

세현이 그런 뜻을 이해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뭐, 설희 씨가 괜찮으면 저야 좋죠.”

Level 26. 앨리스 인 원더랜드

“자, 주간 회의는 여기까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라.”

“네에~”

“시작하기 전에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갈래?”

“콜콜! 그 홍대에 새로 생긴 데 가 보자고.”

회의가 끝나고 길드원들이 삼삼오오 길드 건물을 빠져나갔다.

세현이 설희도 뒤를 따라 나가려는 순간.

“허세현, 잠깐만.”

사카린이 세현을 잠시 불러 세웠다.

“왜요?”

“이거 받아, 샤이탄 잡을 때 드랍된 물건이야.”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은은한 보랏빛을 내뿜는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였다.

[#. 재료 아이템 / 샤이탄의 잉크]

-샤이탄의 마력이 담긴 잉크, 이를 가공해 뭔가에 쓸 수 있을 듯하다.

등급: 에픽(B)

‘스티그마에 쓰는 잉크구만.’

이런 마법이 담긴 잉크들은 시즌3부터 등장하는 스티그마를 새길 때 필수 재료 아이템이었다.

워낙 가격이 나가는 물건이기에 세현은 군침을 다시며 되물었다.

“이거 저한테 줘도 되요? 꽤 비싼 물건일 텐데.”

“뭐 괜찮아, 나 쓸건 이미 챙겨 뒀으니까.”

사카린은 품속에서 물약 하나를 더 꺼내 흔들었다. 아무래도 샤이탄의 잉크는 여러 병이 나왔던 모양이었다.

“이거 사용 방법은 알고 있어?”

“저라고 뭐든 다 아는 건 아니라서……”

세현은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사용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걸 밝혔다가 괜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적당한 시점에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다 알게 된 것’을 핑계로 알려 줄 생각이었다.

사카린 또한 별 기대는 없었다는 듯 콧김을 피식 내뿜으며 대꾸했다.

“뭐, 알게 되면 바로 알려 줘.”

“네~!”

세현은 피식 미소 지으며 길드 건물을 빠져나갔다.

† † †

세현과 설희는 아파트에 들어간 후, 곧장 세이메이를 데리러 8층으로 이동했다.

“헤헤, 잘 부탁드려요, 세이메이 씨.”

“오, 앞으로 설희 공과 함께하는 겁니까?”

“그렇게 됐네요. 아, 이거 오는 길에 사온 선물이에요 세이메이 씨.”

“뭡니까 이건? 떡?”

“마카롱이라는 건데 한 번 드셔 보세요.”

세이메이는 설희를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레 마카롱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뭐, 뭡니까 이 떡은! 마치 꿀과 같이 달고! 솜털처럼 부드럽습니다!”

구겨진 얼굴이 순식간에 풀어져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맛있어 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다음에 또 맛있는 것 사 드릴게요, 세이메이 씨.”

“하하! 설희 공이 함께한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설희가 보여 준 수완에 세현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래도 여자 입맛은 여자가 더 잘 알겠지 뭐….’

자신이 치킨이나 다른 음식을 사 왔을 때보다 세이메이가 보인 반응이 훨씬 격했기 때문이었다.

“자자, 일하러 갑시다.”

이후 세 사람은 승강의 방을 통해서 시즌3의 시작 지점인 21층으로 향했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거대한 원형 공간이 나타났고, 그 안에 많은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메인 퀘스트 시작점 아직도 못 찾았어?”

“여긴 대체 시즌 특징이 뭐야? 너무 평범한데.”

새 시즌이 시작되자 약화 된 샤이탄을 쓰러뜨리고 21층으로 올라온 상위 랭커들이 꽤 있는 것이었다.

세현이 등장하자 그들의 시선이 한데 쏠렸다.

“저거 허세현 아니야? 그 브레이브킹.”

“와, 진짜네 진짜. 옆에 여자 두 명 끼고 다니는 거 봐. 역시 사람은 잘나가고 봐야 돼.”

세현은 그런 입주자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유리로 이뤄진 원형 공간의 외각으로 걸어갔다.

‘머저리들….’

그러곤 손가락으로 아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희 씨, 세이메이, 한 번 내려다봐요. 여기서 21층 전경이 다 보일 테니까.”

“와아~”

주변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거대한 탑의 정상이었다.

푸른 숲과 바다, 중세풍 도시들이 군데군데 세워진 세계.

얼핏 보기엔 21층의 시작 지점은 별다른 특색이라곤 없어 보였지만, 아름다운 풍광은 이곳을 찾은 입주자들의 눈을 충분히 즐겁게 만들었다.

세 사람은 잠시 주변 풍경을 관찰하다 탑의 아래로 이동했다.

그러자 백설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현 씨,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이에요?”

“이번 시즌은 아는 게 없으니 천~천히 주변부터 둘러봐야죠. 아까 보니까 앞으로 쭉 가면 마을이 나오던데 거기부터 가 보죠.”

세현은 메인 퀘스트의 시작 지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달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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