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65화 (65/180)

# 65

65화.

“하다 하다 이젠 아예 근처에도 못 오게 막냐, 이 새끼들아!!”

“야이 새끼들아! 아무리 아파트가 힘이면 다지만 이래도 되는 거야?! 이러고도 니들이 무사할 것 같아!”

“남조선 간나 새끼들 이게 무슨 짓이네!! 정정 당당하게 하라우!”

근 천 명에 가까운 입주자들이 근방을 가득 메웠고,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져 자칫 잘못하면 유혈 사태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까지 갔다.

그런 상황에서 최은철을 포함한 나머지 팔콘 길드원들이 저 멀리서 유유히 나타났다.

“최은철이다! 야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이런 짓을 벌이는데!”

다른 입주자들이 항변을 하든 말든, 최은철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머저리 같은 인간들.’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최은철은 욕설을 내뱉는 그들을 향해 바퀴벌레 보듯 경멸의 시선을 보낸 후, 포탈 앞으로 이동했다.

[#. 인스턴트 던전 / 최후의 석양]

-과거 석양추적자들의 아지트였으나 현재는 샤이탄에 의해 아공간으로 변질됐다.

-하사신의 희생으로 포탈의 입구를 차단했으나 언제 다시 봉인이 해제될지 모르는 상태.

적정 레벨: 100

적정 인원: 100명 이상.

※ 100명 미만의 인원이 입장할 경우, 입장 인원수에 비례해 보스의 능력치가 소폭 하락합니다. 하지만 능력치 하락폭이 크지 않으니 100인 이상 플레이를 권합니다.

[입장하기]

“출발한다.”

은철은 고민 없이 ‘입장하기’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근처에 대기 중이던 팔콘 길드 길드원 수백 명이 동시에 인스턴트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앞에는 살풍경한 광경이 펼쳐졌다.

검은 구름 사이로 붉은 번개가 사방에 내리치는 공간.

검붉은 땅의 한가운데는 거대한 육망성이 섬광을 내뿜었고 그 위에 염소의 얼굴과 뱀 꼬리를 가진 대마신 ‘샤이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최은철이 놈에게 다가가자 눈을 번쩍 뜨더니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입주자들인가? 좋아, 네놈들을 제물 삼아 이곳을 빠져나가면 되겠군.>

“글쎄요.”

은철은 곧장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걸 신호로 팔콘 길드원들은 순식간에 산개해 각자 맡은 포지션에 자리를 잡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 같은 움직임. 그건 차라리 예술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철저한 훈련에 의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임무 수행.

이것이 오늘날 세계 랭킹 1위 길드 ‘팔콘’을 있게 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포지셔닝이 모두 끝난 후, 은철은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대기 중이던 길드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돌진했다.

<와라, 하잘 것 없는 필멸자들! 대마신의 공포를 보여 주마!>

샤이탄이 뼈다귀 지팡이를 가로로 휘두르자 바닥에서 수백 개의 그림자가 일어났다.

하급 중급 마신 데바, 쟌, 지니, 이프리트와 상급 마신 마리드까지.

놈들은 갖은 공격형 요술을 퍼부었지만, 팔콘의 탱커들은 마법 방어 스킬들을 전개하며 놈들의 바로 앞까지 동료들을 인도했다.

이후 파상 공세가 시작됐고, 마신들은 등장할 때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갈기갈기 찢겨 흩어졌다.

“1페이즈 돌파! 샤이탄을 원형으로 둘러싸라!”

각 부대장의 지휘 아래, 길드원들은 다시 한 번 빠르게 산개해 샤이탄의 주변을 둘러쌌다.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어 주마!>

샤이탄이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번엔 놈의 몸 주변에 망령의 형상 수천 개가 둥실둥실 떠다니며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아공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잠시 후, 그 망령들은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지상으로 낙하하더니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 탱커들의 방어 스킬만으로 모두 커버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이 과정에서 길드원 한두 명이 폭발에 휩쓸려 중상을 입기도 했다.

“겁먹지 마! 달라붙어서 타격한다!”

길드 내에서도 최정상급 인원들이 순식간에 몸 쪽으로 파고들어 놈의 목덜미에 무기를 박아 넣었다.

원거리 딜러들 또한 질세라 스킬을 퍼부었고, 한바탕 격전이 시작됐다.

“피 빠진 탱커는 힐러 쪽으로 빠져! 다음 라인과 교체해!”

팔콘 길드원들은 샤이탄의 어그로를 절묘하게 관리함과 동시에 탱커들의 HP를 관리했으며, 그와 동시에 딜러들이 꾸준히 딜을 박아 넣었다.

거기다 최은철은 정예 멤버들과 함께 샤이탄이 스킬을 발동하려 할 때마다 해골 지팡이를 타격해 요술이 발동되는 것을 캔슬시켰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정석적인 공략이었다.

몇 시간 전투가 지속되고, 샤이탄의 HP가 반절 정도 남았을 무렵. 최은철은 자신의 주력 스킬 ‘팔라딘’을 발동시켰다.

등에 날개가 돋아나고, 신성한 기운이 은철의 전신을 감쌌다.

“하아아아아아아!”

은철의 몸뚱이가 놈의 거대한 뿔에 총알처럼 쇄도해 들어갔다.

잠시 후, 양손검이 뿔을 두드리는 순간.

까앙-!

경쾌한 울림과 함께 샤이탄의 몸에 갑자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뿔이 데미지를 받아 그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뿔에서 시작된 균열은 빠르게 아공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샤이탄도, 놈이 소환한 마신들도 공격을 멈췄고 마치 유리 공예품처럼 몸이 깨져 버렸다.

그리고 공간 그 자체가 금이 가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어떻게 합니까!”

“무너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팔콘 길드원들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잠시 후, 공간 전체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즌2 - 아라비안나이트’의 최초 클리어자가 나왔습니다. 인스턴트 던전을 강제 종료합니다.]

Level 25. 승자와 패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은철의 얼굴에 당혹감과 분노가 동시에 떠올랐다.

모든 공간이 무너졌을 때, 은철과 팔콘 길드원들은 애초에 포탈이 있던 ‘사막의 미로’로 튕겨져 나왔다.

넓은 미로 안에는 조금 전까지 팔콘과 실랑이를 벌이던 입주자들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한 채 웅성대고 있었다.

“씨발, 포탈이 없어졌잖아! 벌써 클리어된 거냐?”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건데? 팔콘이 벌써 잡은 거야?”

“저기, 뒤에 저거 서큐버스 군단 아니냐?”

입주자들의 말을 듣는 순간, 은철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그곳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서큐버스 군단 멤버들이 서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 상태와는 상반되게 흡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보라색 머리의 미인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은철에게 손으로 V자를 만들어 내밀었다.

“사카린……”

그때, 모든 입주자들의 마스터키가 빛을 뿜으며 음성을 출력했다.

[시즌2가 종료됐습니다. 시즌3-‘앨리스 인 원더랜드’가 개방되어 현 시간부로 ‘승강의 방’의 21층 버튼이 활성화됩니다!]

[시즌2 메인 던전의 난이도가 하락합니다!]

그걸 신호로 미로의 상공으로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WINNER IS ‘서큐버스 군단’!]

그것은 20층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볼 수 있을 정도로 허공에 커다란 글씨를 그려냈다.

“뭐야?! 서큐버스 군단이 쓰러뜨린 거야?”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팔콘은 왜 그 난리를 친 건데?”

“하, 겨우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즌2 최초 클리어? 말이 되냐?”

“와, 서큐버스 군단이라고? 미쳤네 이거. 잘하면 랭킹 뒤집히는 거 아니냐?”

그걸 본 입주자들은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를 쏟아 냈다.

누구라도 시즌2는 팔콘 길드의 독주를 예상했지만, 겨우 10인 남짓한 숫자의 서큐버스 군단이 시즌2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대이변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런 들뜬 분위기 속에서 최은철은 썩은 고기라도 씹은 얼굴로 사카린에게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카린 씨, 어떻게 된 겁니까?”

“뭘 어떻게 해, 우리가 먼저 클리어한 거지.”

짧고 심플한 답변이었다.

은철은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기며 오른팔을 뻗었다.

“축하드립니다. 시즌2 최초 클리어도 한국에서 나와서 다행이네요.”

“어이구 웬일? 천하의 최은철 도련님이 축하를 다 해 주시네.”

이렇게 좋은 말을 주고받지만, 두 사람이 맞잡고 있는 손에는 은근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클리어를 했지요? 현재의 서큐버스 군단은 보스 클리어에 필요한 최소 스펙에 도달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요?”

“뭐야~ 다른 길드 스펙까지 다 체크하고 있었어? 역시 팔콘은 남 신상 터는 능력 하나는 최고야. 그 시간에 레벨 업을 했으면 아주 온 우주를 재패했겠네.”

“비아냥은 적당히 하시죠.”

최은철이 입술을 질끈 깨물자, 사카린은 너털웃음과 함께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농담이야 농담~. 정색하지 마. 뭐 다른 건 아니고 그동안 피나는 노~오력과, 비밀 병기들을 동원했거든!”

엄지손가락의 건너편에는 기존의 서큐버스 군단에 없던 두 인물이 보였다.

한 명은 팔콘 길드에서 여러 번 스카우트 시도를 했던 전 펜싱 금메달리스트 백설희였고, 나머지 한 명은…….

“반갑다, 최은철. 이런 데서 또 보네.”

“네가 왜 여기에……?”

그 자리엔 얼마 전 있었던 동창회에서 스치듯 봤던 인물이 서 있었다.

최은철의 대학 시절, 체육 교사가 되겠다며 구석에 처박혀 공부만 하던 찌질이 허세현이었다.

“어우~ 동창회 때 말했잖아! 나 입주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는데 기억 안 나냐?”

세현이 입주자가 됐다는 건 분명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네가 이번 레이드에 참가했어? 하지만 너는 E급…….”

아주 무례한 말이지만, 은철의 입장에선 충분히 할 법한 발언이었다.

아파트에서 클래스의 등급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E급 입주자가 서큐버스 군단에 어떻게 들어갔으며 이번 전투에 참가까지 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아 그게 말이지.”

이에 세현은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으며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자신의 머리에 얹었다.

붉은 왕관이었다.

“너 브레이브킹이라고 아냐? 그게 나거든.”

“이익…….”

은철은 입술을 깨물며 세현의 얼굴을 노려봤다.

‘이 개새끼가!!!’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는 듯 보였지만, 온몸이 떨리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 은철이 분노를 간접적으로 알려 왔다.

“팔콘 길드도 고생 많았다 야. 우린 피곤해서 이만 가 볼게!”

세현은 놀리려는 듯 은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반대편으로 걸어갔고, 서큐버스 군단 전원이 그 뒤를 따라 사라졌다.

“기, 길드장님!”

은철을 지켜보던 임원들이 호들갑을 떨며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은철은 바닥에 침 퉤 뱉은 후, 그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전 임원, 뒤지기 싫으면 전부 대회의실로 튀어 와.”

† † †

[어제 오전 11시, 아파트의 시즌2 구역의 최초 클리어 길드가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이번 시즌 최초 클리어 길드는 ‘서큐버스 군단’이라는 인원이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군소 길드로……]

[길드원 대부분이 유튜브 스타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전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백설희’ 씨와 신흥 유튜브 스타 ‘브레이브킹’ 또한 서큐버스 군단에 가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즌2가 종료된 당일,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Jangbob: 시즌2 최초 클리어를 서큐버스 군단이 했다는데? 겨우 열 명 남짓한 길드가 최초 클리어면, 팔콘보다 훨씬 대단한 거 아니냐?]

[Kumtata: 그건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민들레 씨앗 레이드도 뺏기고, 팔콘 길드 한물 간 듯.]

[Digma: 어쨌든 강한 입주자가 많으면 인류한테는 무조건 좋은 거임ㅋ]

[Jangbob: 아 빨리 영상 공개됐으면 좋겠다, 개 쩔듯.]

TV는 물론이고, 인터넷 기사 및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서큐버스 군단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그 과정에서 사카린은 물론이요, 금메달리스트 백설희와 유튜브 스타 ‘브레이브킹’, 즉 허세현이 이번 레이드에 참가했다는 소문이 들리며 두 사람에 대한 집중 조명이 이뤄졌다.

특히 남한 정부는 ‘국위 선양’이니,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과 아들’이라는 등 낯부끄러운 단어를 공식 성명에 사용할 정도였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모두가 놀랐지만, 이 사실에 더더욱 놀란 사람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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