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64화 (64/180)

# 64

64화.

3주 후, 서큐버스 군단 길드 건물에 세현을 포함한 모든 길드원이 모였다.

내일 있을 시즌2 마지막 던전 공략에 앞서 브리핑을 하기 위함이었다.

모두가 의자에 앉아 있는 와중, 사카린은 앞에 단상에 팔을 기댄 채 입을 열었다.

“다들 알겠지만 내일 공략에 앞서 임무 브리핑을 하려고 모였어. 오늘 브리핑은 내가 아니라 저~기 구석에 있는 귀엽게 생긴 허세현이 해 줄 거야.”

손을 뻗어 구석에 앉아 있는 세현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한데 쏠렸다.

‘흐미.’

세현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나같이 미인이라 불릴 법한 여성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니 괜히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 같았다.

“우와! 남자다 남자.”

“저번에 그 프링X스 보스 쓰러뜨렸던 사람이 이 사람 맞아?”

“그쪽, 여자 친구 있어요?”

“우리 길드도 드디어 남자가!”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되자 사카린은 단상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려 모두를 침묵시켰다.

“자자, 다들 입 닫고. 허세현은 빨리 나와서 내일 공략의 보스 패턴, 공략법 전~부 브리핑해 줘.”

세현은 헛기침을 하며 일어나 단상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아, 서큐버스 군단에 새로 가입한 허세현입니다. 잘 부탁해요.”

“잘생겼다~!”

“멋있다!”

“목소리 좋다!”

인삿말을 꺼낸 것뿐이었는데 길드원들은 휘파람을 불며 환호의 인사를 건넸다. 반쯤 놀리는 분위기였지만, 화기애애한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일단 샤이탄의 레벨은 110. 패턴의 90%가 마법 계통 스킬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저희 길드의 수준을 생각했을 때 공략에 최장 14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세현은 내일 공략할 보스 ‘샤이탄’에 대한 대략적인 스펙과 특징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 공략에 걸리는 예상 시간, 보스의 패턴 등을 꼼꼼히 설명했다.

전생의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는 것뿐이지만, 길드원들은 세현이 보스에 대해 연구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설명이 끝난 후, 각 길드원들은 세현, 사카린과 함께 면담을 진행했다. 개개인이 내일 임무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디테일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세현은 보스 샤이탄, 길드원들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임무를 구성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멤버도 있었으나 면담이 끝났을 땐 모두가 세현의 통찰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모든 면담이 끝난 후, 다시 길드원들이 한데 모였다.

세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마무리 멘트를 했다.

“면담하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다들 푹 쉬고 내일 아침9시까지 길드 건물로 모여 주시면 됩니다.”

“에엥, 이게 끝? 각자 맡은 임무 합이라도 좀 맞춰 봐야 되지 않음?”

“좀 뭔가 허전한데…….”

길드원들은 아무래도 임무를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이에 세현은 싱긋 웃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여기 있는 분들 모두가 상위 랭커잖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믿을 테니 스스로를 믿으세요. 차라리 오늘은 푹 쉬면서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게 나아요.”

이건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서큐버스 군단 전체는 근 한 달간 매일 10시간이 넘는 전투를 하며 강행군을 이어 왔다. 때문에 전투 감각 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날이 서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말하면 장기간 사냥으로 육체 피로가 누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현은 이럴 땐 그저 푹 쉬는 게 최고라고 판단했다.

“신참 말에 이의 있는 사람? 아, 참고로 나는 지금부터 나자빠져서 잘 생각이다. 솔직히 피곤해 뒈지겠거든!”

가만히 얘길 듣고 있던 사카린이 입을 열어 세현의 말에 무게를 실어 줬다.

결국 길드원들은 오늘 하루 각자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해산한 후, 세현은 사카린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사카린 씨, 아니 길드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편하게 누님~이라고 불러.”

“사카린 씨.”

“누~니이이임~.”

“사카린 씨, 제가 이런 영상을 찍었는데요.”

세현은 계속 누님 타령하는 사카린의 말을 끊고 스마트폰으로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우리 북조선에서 요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남조선 간나 새끼들의 콧대를 짓눌러 버릴 수 있는 거지 기래.]

[맞습네다, 동무. 우리 정찰조의 임무가 아주 막중합니다. 팔콘인지 뭔지 하는 간나 새끼들을 응징해야 합네다.]

[기래기래, 하루라도 빨리 악마 놈들을 잡아야 위대한 수령 동무께서 즐거워하실 것임메.]

영상에는 최종장이 진행될 포탈 앞에서 떠들고 있는 조선노동당 길드원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갑자기 이 영상은 왜?”

영상을 본 사카린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세현은 주변 눈치를 보더니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그 얘길 들은 사카린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으으으음- 확실히 재미있는 그림은 나오겠지만, 리스크도 크겠는데.”

“뭐 선택은 사카린 씨가 하세요.”

세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사카린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재미있는 게 낫겠지?”

† † †

다음 날.

팔콘 길드의 거대 사옥 팔콘네스트.

정상의 대회의실에서는 임원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정중앙에 앉은 최은철은 다리를 꼰 채 뭔가 못마땅한 얼굴로 껌을 씹고 있었다.

“시즌2 레이드, 팀별로 하나씩 현황 보고하세요.”

“정찰팀 보고 드립니다. 시즌2 최종장 보스 샤이탄의 패턴 파악은 90% 완료된 상태입니다. 임무 결행일인 10일 후까지 100% 완료 가능합니다.”

“보급팀 보고 드립니다. 필요 재화 150% 보급 완료했습니다. 오늘부로 보급팀은 최소 인원만 남기고 레벨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공격팀 보고 드립니다. 목표 레벨링 95% 도달한 상태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 110%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색이 세계 랭킹 1위 길드답게 팔콘 길드의 최종장 준비는 그 어느 곳보다도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팔콘의 배경이 돼 주고 있는 한성 그룹 또한, 이미 쏟아부은 돈만 천억 단위가 넘어가고 있었다.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매년 수백조의 수익을 내는 기업에서 여기에 왜 돈을 쏟아붓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팔콘이 레이드에 성공했을 때 한성 그룹이 얻게 되는 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한성 그룹은 팔콘 길드의 메인 스폰서다. 때문에 이들이 장착한 장비에는 한성 그룹의 브랜드 로고가 모두 각인돼 있다.

이런 팔콘 길드가 시즌2의 주역이 된다?

여기서 나오는 광고 효과만으로도 투입한 비용을 모두 회수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들이 팔콘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달리 있었다.

그건 한성 그룹을 글로벌 대기업으로 일궈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자 현 회장인 최건희 회장의 뜻 때문이었다.

‘별것 아닌 정부 놈들도 군대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왜 못 가지냐 이 말이야!’

현재 국제법상 사기업이 군대를 가지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사실상 한성 그룹은 ‘팔콘 길드’라는 거대 무력 집단을 간접적으로 보유하며 자신들만의 사적 전투 조직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최건희 회장의 10명이 넘는 아들 중, 없는 자식 취급받던 최은철이 세계에서 몇 명 없는 S급 클래스 입주자가 된 것이 천운이었다.

이 한 방으로 한성 그룹은 합법적으로 팔콘 길드를 배후에서 지배할 수 있게 됐고, 최은철은 한성 그룹의 가장 강력한 1순위 후계자로 거듭난 것이다.

“다른 상위권 길드들은?”

“중국 쪽 길드들의 움직임이 있긴 합니다만, 첩보에 의하면 아직 진척도는 낮은 편입니다. 적어도 100일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군부와 대형 길드 간의 마찰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그쪽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경쟁자들의 지지부진한 상황에 은철은 가소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미국과 중국은 충분히 입주자 강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 그들이 본격적으로 아파트에 뛰어들었다면 팔콘 길드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들은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군, 무기상인, 정부, 대형 길드.

이 네 개의 주체들이 하나로 힘을 모으는 게 아닌, 각자 세력을 견제한 탓에 입주자들이 생각보다 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한성 그룹이 정부 관료 및 군 전체에 영향력을 미쳤고, 조금만 분열이 있다 싶으면 ‘북한’과 ‘조선노동당’ 길드를 이용해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의 유리함도 있었다.

이렇게 거칠 것이 없는 팔콘 길드지만, 최근에는 몇 가지 불미스러운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지.’

바로 민들레 씨앗 레이드를 예상치 못한 존재에게 빼앗긴 것이었다.

은철은 그때의 기억에 기분이 상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브레이브킹이라는 놈의 동향은 어떻게 됐습니까. 또 서큐버스 군단은요?”

“소재를 쫓고는 있지만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서큐버스 군단은 계속 사냥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보아 최종장에 도전할 모양입니다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인원수가 너무 적어 최소 스펙을 맞추는데 앞으로 100일은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심하지 말고 철저히 추적하세요. 또 저번처럼 뒤통수를 맞으면 여기 계신 분들, 제가 손수 갈기갈기 찢어 드리는 수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은철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임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대꾸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 가려던 무렵이었다.

“크, 큰일입니다!”

인사팀장 정요셉이 회의실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다.

“뭡니까.”

이에 은철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듯 테이블에 놓인 펜을 그에게 집어던졌다.

빠직, 펜이 요셉의 이마에 부딪히며 깨졌다. 물론 요셉 또한 입주자기에 별다른 충격은 없었지만, 결코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길드장님, 임원 분들. 죄송합니다만 이 영상을 봐 주십쇼. 조금 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입니다.”

요셉은 곧장 프레젠테이션용 노트북으로 유튜브 영상을 재생시켰다.

제목은 [북조선 노동당, 석양의 추적자 아지트 앞에서]였다.

영상 속에는 조선노동당 길드원으로 추정 되는 세 명의 입주자가 등장했다.

대화로 추측하건데 이들은 곧 최종장에 트라이를 시도 할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영상을 본 임원들이 웅성댔다. 조선노동당이 애초의 예측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탓이었다.

이를 본 최은철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차갑게 말을 뱉었다.

“야, 아까 보급팀 인원들 레벨링 들어간다 했었죠?”

“네, 네!”

“그 인원들 정찰조로 싹 다 돌리세요. 그리고 지금 당장 포탈 근처 싹 틀어막으십쇼. 레이드 시도하려는 놈 있으면 때려죽여도 상관없으니까 못 들어가게 막고, 보급품 당장 전 길드원한테 나눠주세요. 내일 레이드 들어갈 거라고 전파하고요.”

“네?! 하지만 아직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은….”

쾅-!

임원 하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묻자, 최은철은 주먹을 내리쳐 회의 테이블을 반쪽 내더니 화가 가득한 얼굴로 한마디를 보탰다.

“씨발, 제가 지금 말 절었습니까? 왜요, 이번에도 우물쭈물하다가 다른 놈들한테 성과 뺏기게요?”

“아, 아닙니다!!”

“그럼 입에 지퍼 채우고 1초라도 빨리빨리 움직여요.”

임원들은 서둘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예상보다 빠르게 시즌2의 최초 클리어를 건 상위권 길드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 † †

몇 시간 후, 석양의 추적자 아지트가 위치한 포탈 앞은 대 혼란에 빠졌다.

“아니, 왜 못 들어간다는 겁니까!”

“1위 길드라고 이런 짓해도 되는 겁니까!!”

팔콘 길드가 이곳을 통제하자 메인 퀘스트를 진행 중인 입주자들이나 타 상위권 길드의 정찰조원들이 격렬히 항의를 해 온 것이다.

개중에는 조선노동당 길드원, 중국, 미국의 길드들도 있어 자칫 잘못하면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팀장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이 새끼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무조건 막아! 무조건 우리 길드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돼!”

“하, 하지만.”

“시끄러! 까라면 까는 게 우리 일인 거 몰라?! 아 거기 그쪽! 영상 찍지 마! 야 빨리 저 새끼 영상 못 찍게 막아!”

이곳에 버티고 있는 100명의 팔콘 길드원들 또한 타 길드의 접근을 막을 명분이 없기에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길드장 최은철의 명령은 절대적이기에 모두가 필사적으로 타 입주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가벼운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고, 몇몇 입주자들은 이런 모습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남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거의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 준비를 끝마친 팔콘 길드의 본대가 속속들이 앞으로 도착했다.

문제는 이들뿐 아니라 팔콘에 제지당한 길드의 길드원들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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