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63화 (63/180)

# 63

63화.

‘지금 내가 가진 예산이, 어디 보자아…….’

세현은 일단 예산을 먼저 점검했다.

시즌2에서 얻은 골드, 잡템 등을 모두 정리하자 총 3억 8천만 원이라는 돈이 모인 상태였다.

이 정도면 40레벨 중후반의 입주자라 해도 전신을 레어~유니크 급으로 뒤덮을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제기랄, 이걸로 어떻게 장비를 맞춰.’

하지만, 지금의 세현은 얘기가 좀 달랐다.

일단 보유한 소환수의 숫자만 7명에 세이메이, 백설희의 장비도 신경을 써 줘야 했다.

이 말인 즉은, 동 레벨의 입주자보다 못해도 6~7배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는 걸 뜻했다.

‘장비 다 맞추면 100% 파산하겠는데.’

몇 번이나 계산기를 두드려도, 심지어 아이템의 평균 등급을 레어 아래 단계인 ‘매직’까지 떨어뜨려도 지금 가진 돈으로는 답이 안 나왔다.

세현은 숨이 턱 막혀 오는 기분이 들며 몇 가지 대안을 떠올렸다.

‘또 마사무네 선생을 찾아야겠구만.’

그간 시즌2를 진행하며 모은 재료 아이템이 꽤 된다.

거기에 3억 8천만 원의 자금을 동원해 완제품이 아닌 재료를 사 모아 마사무네에게 의뢰를 하면, 보다 싼 가격에 질 좋은 장비를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런 생각을 마친 후 승강의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움직이던 도중, 멀리서 왁자지껄한 음성이 들려왔다.

“설희 씨, 세이메이. 숨어!”

세현은 그 즉시 소환을 모두 해제한 후, 일행과 함께 미로 한구석에 몸을 숨겼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북조선에서 요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남조선 간나 새끼들의 콧대를 짓눌러 버릴 수 있는 거지 기래.”

“맞습네다, 동무. 우리 정찰조의 임무가 아주 막중합네다. 정확한 정보로 팔콘인지 뭔지 하는 아새끼들을 묵사발 내야 합네다.”

“기래기래, 하루라도 빨리 악마 놈들을 잡아야 위대한 수령 동무께서 즐거워하실 것임메!”

황색 베이스에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인민복을 연상시키는 갑옷을 입은 입주자들. 북한 유일의 길드 <조선노동당> 소속 입주자들이었다.

‘저것들도 슬슬 시즌2 준비 중이라 이거지.’

북조선 노동당의 정찰조가 이 근처에 어슬렁댄다는 건 최종장 레이드의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며칠 후면 최종장을 준비하는 상위권 길드 정찰조들이 이곳에 심심치 않게 보일 게 분명했다.

‘저놈들 떠드는 거 좀 찍어 둘까? 쓸 데가 있을 것 같은데.’

세현은 일단 액션 캠코더의 녹화 버튼을 눌러 놈들이 떠드는 것을 촬영했다.

잠시 후, 놈들은 정찰을 위해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세현 일행은 그제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설희 씨, 세이메이, 일단 둘은 적당한 사냥터에서 레벨링하고 있어요. 난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요.”

“네!”

† † †

세현은 두 사람을 남겨 두고 마켓으로 향했다. 그리고 최대한 흥정을 통해 3억 원어치의 재료 아이템을 구입했다.

이후 마사무네의 대장간으로 가서 재료를 몽땅 넘기며 제작을 의뢰했다. 마사무네는 세현이 건넨 엄청난 물량의 재료에 짐짓 놀란 듯 보였다.

“이렇게 많은 재료라니, 세현 공은 진짜 전쟁이라도 나가시는 겁니까?”

“전쟁이라, 뭐 그거 비슷한 거긴 한데…. 어때요, 해 줄 수 있어, 마사무네 선생? 무기랑 방어구 한 열 세트씩 만들어 주면 좋겠는데.”

마사무네는 고심하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빠르다 해도 15주야는 걸릴 텐데, 괜찮으신지…?”

“응응 그거면 충분해.”

“맡겨 주시지요.”

마사무네는 흔쾌히 세현의 의뢰를 수락했다.

세현이 선금을 치르고 인사와 함께 자리를 뜨려는 중, 마사무네가 한마디를 보탰다.

“아, 세현 공. 공주께서 그대를 찾으신다고 들었소.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 찾아뵙는 게 좋을 것 같소.”

“응, 벚꽃공주가 나를? 갑자기 왜?”

세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벚꽃공주는 보통 시즌1을 종료한 이후에는 볼 이유도, 볼 기회도 잘 없는 거주자이기 때문이었다.

“그거야 모릅니다만 아랫사람 된 도리로 찾아뵙는 게 좋지 않겠소?”

‘아랫사람이라, 하긴 그렇긴 하네.’

세현이 가진 ‘다이묘’의 직책. 이건 단순한 타이틀이 아니라 세현이 벚꽃공주에게 직위를 받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그 덕에 8층에서 공짜로 좋은 집에서 살고, 시즌1 구간에서 갖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왕 온 김에 들렸다 가지 뭐.’

세현은 동선을 아끼기 위해 그대로 벚꽃성으로 직행했다.

“누구냐! 용건과 신분을 밝혀라.”

그러자 정문의 경비들이 창을 뻗어 앞을 막아섰다.

“으으음, 공주한테 브레이브가 왔다고 전해 줘.”

“브레이브? 무슨 그따위 괴상한 이름이….”

경비들은 의심쩍은 눈으로 세현을 쳐다보더니 그중 한 명이 확인을 하기 위해 성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5분이 지났을까. 들어갔던 경비 한 명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뛰쳐나와 외쳤다.

“브, 브레이브 님! 어서 들어오시지요! 공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현은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 곧장 벚꽃공주를 알현할 수 있었다.

생기를 머금은 봄철 벚꽃 같은 공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현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레이브 공!”

“갑자기 어쩐 일로?”

그녀는 꽃잎이 띄워진 찻잔을 홀짝이더니 앵두 같은 입술을 천천히 달싹였다.

“중요한 부탁을 드리려 합니다.”

“부탁?”

“이걸 받아 주세요.”

세현은 공주가 내민 작은 목갑 하나를 받아 들었다.

“세현 공은 최근 위쪽 세계를 왕래하는 걸로 압니다. 우리 벚꽃국은 그들과 동맹을 바라고 있으나 여태 마땅한 기회가 없었지요. 혹 괜찮다면 세현 공이 사자가 되어 그들의 왕에게 이걸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아아…….”

공주의 말이 끝날 무렵, 세현의 눈앞에 메시지 박스가 떠올랐다.

[#. 서브 퀘스트 / 그레이 로드]

-벚꽃공주의 친서를 시즌2 구간에 있는 왕족에게 전달해라.

▶ 퀘스트 보상

1. 타이틀: ‘교역의 사자’.

벚꽃공주 호감도 +3

친서를 받는 대상의 호감도 +3

[수락하기]

‘호감도라?’

특별한 보상이랄 것 없이 단순히 공주의 호감도를 올려 주는 퀘스트였다.

잘 몰랐다면 이 퀘스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터. 하지만 호감도 때문에 퀘스트나 분기점에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몇 번이나 봤다.

세현은 조금 귀찮아지더라도 퀘스트를 해 놓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뭐 할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을 좀 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왜 굳이 다른 층의 국가와 동맹을 맺으려는 겁니까? 오로치의 위협은 사라졌고, 다른 위협도 없을 텐데.”

세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아파트 전체는 ‘관리자’들의 통제하에 있다.

각 메인 스토리상 보스들이 사라진다면 그들에겐 영원한 평화가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부분은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유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는요….”

공주는 두려움이 가득한,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뭐야 이거?’

뭔가 중요한 사실을 숨긴 듯했지만, 세현은 더 이상 캐물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성을 빠져나갔다.

“뭐, 답도 안 나오는 문제 고민해 봤자지.”

세현은 찝찝한 마음을 떨쳐 내며 곧장 승강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시즌2에서 현재 ‘왕’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거주자를 찾아갔다.

“안녕하쇼, 살라웃 왕자.”

“오오 자네, 여기는 무슨 일인가!”

그는 바로 사막의 유령단 단장 살라웃이었다.

세현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사정을 설명한 후, 벚꽃공주가 준 목갑을 건넸다.

살라웃 왕자는 안에 든 편지를 진지한 얼굴로 읽은 후, 목갑 안에 놓인 벚꽃 형태로 조각된 보석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자네의 도움을 많이 받는군. 타국과의 동맹이라, 당연히 해야지. 아직 왕권이 안정되지 않은 나로서도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거야.”

“그럼 제안은 수락하는 걸로 알게.”

“물론! 조만간 내가 벚꽃국으로 사신을 보내도록 하지. 아니야……. 내가 직접 행차하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이런 시기에 왕궁을 비우는 것도 조금 그런데.”

살라웃 왕자는 자신이 직접 벚꽃국에 갈지, 사신을 보낼지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는지 고개를 번쩍 들어 세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 말이야, 그 이런 질문은 좀 그렇지만 벚꽃공주라 불리는 분은…… 예쁜가?”

“이잉?”

엉뚱한 질문에 세현은 반사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그러자 살라웃 왕자 본인도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작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 그러니까 말일세. 그 공주님께서 미인이시냐~ 이 말일세.”

세현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명색이 왕에, 사막의 유령단 단장이던 사람이 꺼내는 질문치곤 지나치게 찌질했기 때문이었다.

“뭐, 이름부터 ‘벚꽃’공주잖아.”

“벚꽃이라는 게 어떤 꽃인지 모르겠지만 꽃이라 함은 아름다운 분이라는 거겠군!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야겠어,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세현이 에둘러 표현하자 살라웃 왕자는 그 즉시 신하를 불러 벚꽃국에 친서를 전달할 것을 명했다.

‘이 인간도 참 단세포 생물이란 말이야.’

분위기로 봐서는 당장에라도 달려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일국의 왕인지라 절차를 지키는 모양이었다.

[‘스토리 퀘스트 / 그레이 로드’(을)를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교역의 사자’를 획득합니다.]

- 벚꽃공주 호감도 +3

- 살라웃 호감도 +3

잠시 후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출력됐고, 세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1분 1초라도 빨리 사냥터로 복귀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라웃은 세현의 그런 마음을 전혀 모르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자네 근황은 좀 어떤가? 듣자 하니 석양추적자들과 함께 샤이탄의 뒤를 쫓는다고 들었는데.”

“흐음……”

세현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짧게 요약해 설명했다. 그러자 마냥 해맑았던 살라웃 왕자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그런 일이 있었군. 하사신은 같은 왕족 출신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건만, 국가 재건에 바빠 내가 너무 무신경했어.”

그의 말투엔 뭔가의 죄책감마저 서려 있었다.

‘어라 이거? 뭔가 나올 분위긴데?’

세현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메인 퀘스트에 새로운 분기를 만들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라웃 왕자, 아직 안 늦었어. 지금이라도 힘을 보태 주면 샤이탄을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걸?”

여기서 말한 ‘힘을 보태라’는 표현은 정치적 의미를 담은 표현이었다.

이를 솔직한 언어로 번역하면 ‘야, 샤이탄을 물리쳐 줄 테니 돈, 아이템, 병력을 지원해라.’는 말이 된다.

[호감도 수치가 높아 살라웃 왕자가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잠시 후, 메시지가 출력됨과 동시에 살라웃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어차피 샤이탄이 나타난 이상, 그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위협이 덮쳐 올 테지. 우리 왕국도 병력을 보내겠네.”

[‘아라비안 나이츠 ? 최종장’ 레이드에 입장할 경우, 거주자 ‘사막의 유령(30인)’이 함께 입장합니다.]

순간 흥분한 세현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오오~ 땡큐.”

“아닐세 아닐세! 작전에 들어갈 때 말해 주게, 우리가 자네와 함께할 테니.”

“그럼 가 볼게~!”

세현은 살라웃에게 작게 손을 흔든 후 성을 빠져나갔다.

‘호감도를 올리는 게 답이었어.’

전생의 세현은 클래스 등급이 낮은 덕에 거주자의 호감도를 쌓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호감도가 주는 영향력을 정보로만 알고 있을 뿐, 몸소 체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세현은 앞으로 거주자의 호감도를 꾸준히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곤 곧장 설희와 세이메이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금부터 시즌2 최초 클리어까지,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밖에 없었다.

‘앞으로 3주간 미친 듯이 레벨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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