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62화.
[경험치를 부여할 소환수를 선택해 주세요.]
1. 블랙 나이츠 / 레벨 33
2. 백설희(NEW) / 레벨 32
3. 화이트 폰B / 레벨 23
4. 블랙 폰C / 레벨13
5. 블랙 폰D / 레벨9
6. 화이트 나이츠 / 레벨 5
7. 블랙 비숍 / 레벨 4
8. 화이트 폰C / 레벨 2
‘역시!’
세현은 자신의 가설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환수 목록에 작위 수여를 받은 ‘백설희’가 출력되고 있던 것이다.
이 말인 즉슨, 작위 수여의 발동 시간 동안 시전 대상이 세현의 소환수로 인식된다는 뜻이었다.
세현은 그동안 경험의 관리자에 비축 된 경험치를 설희에게 몽땅 몰아줬다.
[백설희 님의 레벨이 32 > 34(으)로 상승했습니다.]
그러자 설희의 레벨이 단숨에 2나 상승했다. 경험의 관리자로 모은 6명분의 경험치를 한 사람에게 몰아줬기에 생긴 현상이었다.
‘대박이다!’
세현은 소름이 돋았다. 이는 ‘작위 수여’를 통해 다른 사람의 레벨을 인위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허세현 본인의 경우 이 꼼수를 쓸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이를 통해 세이메이를 성장시키거나 전략적으로 특정 입주자를 성장시킨다든가 하는 응용이 가능할 터였다.
‘어쩌면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애초에 세현이 목표로 했던 설희의 레벨은 30레벨 중반 정도였다. 하지만 이 방법을 응용하면 기간 내에 40레벨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소환수들의 레벨 업이 더뎌지겠지만, 이번 레이드에서 설희의 중요성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투자할 만했다.
“어라?”
설희는 순식간에 레벨이 오른 것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설희 씨?”
“아뇨, 레벨이 생각보다 많이 올라서…….”
“보스가 경험치를 많이 주는 놈이었나 보네요.”
하지만 세현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잡아뗐다.
아무리 설희를 믿고, 같은 길드원이라 해도 이 방법을 알려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다음 목적지로 가죠.”
세현은 적당히 상황을 얼버무린 후, 설희를 재촉해 곧장 다음 석상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도 금빛 아우라를 내뿜는 석상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필멸자여! 이 세상에 혼돈이 올 것이다! 오늘의 일을 후회할 것이다!>
두 개의 석상을 모두 파괴한 후, 세현 일행은 석양의 추적자 아지트로 곧장 돌아왔다.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길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지트의 포탈 너머에서 하사신과 안타르, 그들과 함께했던 석양의 추적자 단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어구와 몸에 남은 흉터와 핏자국은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전투를 겪었는지 추측하게 했다.
“자네들도 석상을 파괴하는데 성공했나?”
“네.”
세현의 짧은 대답에 하사신은 흡족한 듯 미소 지었다.
“다행이야, 이걸로 샤이탄의 위기를 완전히 잠재웠어.”
그녀의 말에 석양추적자 단원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끝났음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마스터키가 메시지를 출력했다.
[시즌2 메인 퀘스트의 스토리 연출이 출력됩니다.]
[스토리 연출이 출력되는 동안 입주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음성이 나온 직후, 세현의 시선과 몸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아파트 내에서 스토리를 보여 주기 위한 연출로, 콘솔 게임 등을 할 때 출력되는 시네마틱 영상을 직접 보는 것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하사신 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토리 연출이 시작됨과 동시에 안타르가 등 뒤에서 양팔을 뻗어 하사신을 껴안았다.
“가, 갑자기 무슨…….”
당황한 하사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주변에 서 있던 단원들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하사신 님을 사모했습니다. 제 마음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하사신이 얼떨떨한 얼굴로 서 있자, 주변 단원들이 대뜸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외쳤다. 아무래도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었더니 연인 관계인 듯했다.
“받아주십쇼, 하사신 님!”
“저희 눈치 보지 마십쇼!”
모두가 한참 환호성을 보내고 있던 도중-.
“하사신 님……”
“안타르,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냐?”
그때, 안타르가 갑자기 양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 새겨진 문신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핏줄과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하사신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며 발버둥 쳤지만 이를 벗어날 수 없었다.
“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잠시 후, 하사신의 몸 곳곳의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단원들이 부랴부랴 달려들어 안타르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퍼엉-!
짓눌린 하사딘의 몸뚱이가 물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그를 본 안타르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작게 읊조렸다.
굵고 음산한, 마치 악마를 연상시키는 듯한 목소리였다.
<제기랄……. 명색이 대장이라 쉽게 죽어 주지 않는다 그거냐?>
안타르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후, 세현의 바로 옆 바닥에서 하사신이 불쑥 솟아올랐다. 분신술을 이용해 안타르의 공격에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코에서 주륵 흘러내리는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슥 닦아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누구냐니요, 하사신 님! 저입니다, 하사신 님을 사모하는 영웅 안타르입니다!>
안타르가 불쌍한 표정을 하며 연기 톤으로 호소했다.
이에 하사신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림과 동시에 수십 개의 암기를 동시에 날려 보냈다.
하나하나가 급소를 노리는 치명적인 공격이었지만, 안타르의 몸 앞에 붉은 장막이 펼쳐지더니 암기를 공중에서 증발시켜 버렸다.
“안타르가 그런 요술을 쓸 수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호오~ 들켰나?>
안타르는 재미있다는 듯 광소를 내뿜었고, 하사신은 분노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답해, 네 놈은 누구냐!!!”
<너희들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존재.>
“……샤이탄!”
그 한 마디에 단원들 모두가 경악했다.
스스로를 샤이탄이라 밝힌 그는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대며 말을 이었다.
<아둔한 것들. 자하크가 새긴 스티그마를 보고도 몰랐단 말이냐?>
“안타르는 어떻게 된 거냐!”
<내가 안타르고, 안타르가 곧 이 몸 샤이탄의 육체다! 거기다 네 놈들이 내 힘을 봉인하던 대천사들의 봉인도 파괴해 주지 않았나?>
“대천사의 봉인? 그, 그게 대천사들의 봉인이라고?!”
금빛 아우라를 내뿜는, 흰 날개가 달린 전사들. 세현 일행이 악마라 여기고 박살냈던 놈들이 실은 샤이탄의 봉인을 지키는 대천사들이라는 모양이었다.
“우리를, 우리를 속인 거냐! 이 사악한 놈!”
석양의 추적자 단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들의 손으로, 그토록 증오하던 샤이탄의 힘을 되찾게 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온전한 힘을 되찾았으니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이것이 나의 자비다.>
안타르의 문신이 격렬하게 빛을 내뿜으며 빠르게 팽창했다.
쫘아악-!
잠시 후, 피부가 거칠게 찢어지며 그 안에서 칠흑 같은 몸뚱이를 가진 거인이 나타났다.
얼굴은 염소를 닮았으며, 꼬리에는 뱀이 달렸고 한 손에는 뼈를 엮어 만든 기이한 형태의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그는 대마신 샤이탄.
시즌2 곳곳에 퍼져 있는 지니, 데바, 이프리트 같은 모든 마신들의 정점에 선 왕 중의 왕이었다.
놈의 몸에서 뻗어 나온 검은 기운은 석양빛이 가득한 아지트 내부를 순식간에 오염시켰다.
“히이이이익!”
“우, 우린 죽을 거야.”
이 모습을 본 단원들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전신을 덜덜 떨었다. 샤이탄이 내뿜는 압도적인 기운이 모두의 정신력에 영향을 준 것이리라.
“모두 무기를 들어라! 우리는 여기서 샤이탄을 막는다!”
그런 와중, 하사신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하, 하지만. 우리가 저놈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사신 님. 이건 개죽음입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입주자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이 아지트의 포탈을 닫는 거야!”
그제야 단원들은 하사신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내 불찰이다. 살고 싶은 놈들은 입주자와 함께 이곳을 어서 빠져나가라.”
그 말을 하는 순간, 단원 중 3할 정도가 아지트의 입구인 포탈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갔다.
“입주자! 너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 안쪽에서 포탈을 닫을 테니 최대한 많은 병력을 모아 샤이탄을 제거해라!”
그 말을 한 직후, 하사신은 왼팔을 걷어붙였다. 팔등에는 푸른색에 태양의 형태를 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하사신은 자신의 손가락 끝을 꽉 깨물더니 문신 위에 피를 한 방울 흘렸다. 그러자 문신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하사신의 몸에서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세현은 그 모습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거, 스티그마군.’
스티그마, 이는 마법의 잉크로 새겨 넣은 문신을 칭하는 단어였다. 문신의 형태에 따라 사용자에게 여러 가지 추가 효과를 부여한다.
입주자들은 시즌3이나 되어야 사용 가능한 기능이었다.
“으아아아아!”
하사신의 모습은 한 마리 까마귀와 같은 형태로 변해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샤이탄과의 일전을 위해 숨겨 오던 비장의 한 수였을 터다.
“자, 가라 입주자!!”
하사신이 자신의 날개를 흔들자 순간 돌풍이 일어나더니 세현 일행의 몸을 포탈을 향해 날렸다.
“어딜!”
샤이탄이 자신의 스태프를 들어 휘두르자 포탈 근처에 수십 마리의 지니들이 연기처럼 솟아났다.
“하아아아앗!!”
하사신이 벼락같이 날아와 지니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세현 일행은 가까스로 포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지트의 풍경은 점차 멀어져 갔고,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시즌2, 메인 퀘스트의 스토리 연출이 종료됩니다.]
“허억… 허억….”
잠시 후, 세현 일행은 아지트의 입구가 있는 사막의 미로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세현 씨?”
설희는 그제야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인식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최종장만 남은 거예요. 남은 시간 동안은 레벨 업이나 하자고요.”
“아하, 넵넵!”
세현이 포탈이 있던 곳으로 다가가자 주먹만 하게 쪼그라든 작은 섬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원래는 사람 키의 두세 배 정도 크기였던 포탈이 조금 전 폭발로 작게 쪼그라든 것이었다.
그러자 눈앞에 팝업창이 출력됐다.
[#. 메인 퀘스트 / 아라비안나이트-최종장.]
-포탈이 열리기 전까지, 석양추적자 아지트에 있는 샤이탄을 영멸시켜라.
적정 레벨: 100
[수락하기]
자동으로 퀘스트가 수락됐고, 세현은 일단 아지트를 빠져나와 앞으로 할 일들을 빠르게 복기했다.
‘일단 돌아가서 장비부터 맞추자.’
최종장 직전까지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7일. 세현은 남은 22일간 샤이탄을 쓰러뜨리기 위한 완벽한 준비를 끝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과 소환수, 더 나아가 세이메이와 백설희의 장비 아이템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때 가서 준비하면 일이 꼬일 수 있기에 미리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