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61화 (61/180)

# 61

61화.

“이유가 뭔데?”

“이번엔 설희 씨 역할이 중요해서요. 그 전까지 설희 씨랑 제 레벨을 빠르게 올려 보려고요.”

“음, 뭐 그렇게 해 준다면 우리야 좋지. 설희를 마크해 줄 인력도 딱히 없는 상황이긴 했거든.”

팬텀싱어는 레벨이 낮다고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번 전투에 백설희가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레이드를 준비한다면, 서큐버스 군단은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아아~ 안 돼 안 돼, 팬텀싱어고 나발이고 최종장 레이드가 장난이야? 괜히 30레벨짜리 끌고 갔다 송장 치울 생각 없어.”

사카린의 대답은 합당했다.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기 힘든 것이 레이드다. 그런 와중에 30레벨밖에 안 되는 백설희를 지켜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 보스의 광역 공격에 휩쓸려 죽을 확률이 높았다.

“남은 30일 동안, 설희 씨가 저랑 활동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그러면 이번 전투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제가 수준을 끌어올릴게요.”

“나야 뭐 상관없지만, 설희의 생각이…….”

사카린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설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게요.”

“뭐 그렇다면야 상관없지. 좋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같이 다니도록 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사카린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세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난 슬슬 갈 테니까 준비들 잘해라. 아 그리고 둘이 사고 치면 안 된다. 알지?”

“헛소리 말고 얼른 가세요.”

“농담인데 왜 또 정색을 하고 그러냐~.”

세현이 정색하자 사카린이 머리를 긁적이며 빠져나갔다.

그때 세이메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주군, 사고라니 뭘 말씀하신 겁니까?”

“그냥 그런 게 있어, 넌 몰라도 돼.

계속 곤란한 질문을 던지자, 세현은 세이메이의 정수리에 꿀밤을 먹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세이메이, 설희 씨. 나가서 밥이나 먹고 들어오죠.”

“주, 주군! 사쿠라신 근처에 맛있는 초밥집을 알아 놨습니다!”

세이메이가 흥분해서 외쳤다. 이에 설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세이메이 씨는 초밥을 좋아하시나 봐요.”

“좋아하고말고요! 한 번에 50조각을 먹을 자신도 있습니다!”

“50, 50조각이요? 그러면 탈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음식은 근성으로 먹는 것이니까요.”

“그, 그래요?”

세 사람은 세이메이가 말한 집으로 곧장 이동했다.

“다이묘님 아니십니까! 이쪽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장이 달려 나와 세현 일행을 좋은 자리로 인도했다. 명색이 하급 관료인 ‘다이묘’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에 특별대우를 해 주는 것이었다.

세현은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아 초밥을 주문하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잠시 후, 차가운 녹차가 나오고 초밥이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간장새우, 계란 초밥 같은 기본에서 오도로, 눈뱃살 같은 고급 부위까지 고르게 섞여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절로 나올 정도의 비주얼. 세현은 초밥 하나를 조심스레 입으로 밀어 넣었다.

‘미친, 이게 무슨 맛이야?’

F급 시절 세현은 항상 돈에 쪼들렸기에 항상 에너지 바나 싸구려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아파트 내에도 거주자들이 운영하는 맛집이 많지만, 가격이 꽤 나가기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주제에 이런 곳에 들리는 것은 꿈도 못 꿨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먹는 초밥은 세현에게도 아주 각별한 맛이었다.

“여기 오기를 정말 잘하지 않았습니까, 주군? 설희 공?”

“그래그래, 잘했어. 다음에 또 먹자.”

세현은 세이메이를 칭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앞으로는 이런 것도 종종 먹으며 살아야겠노라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와선 각자 방에 들어가 잠을 자기로 했다.

세현은 매트리스에 덜렁 드러누워 잠시 상념에 잠겼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환생 후, 지금까지는 단순히 복수심과 증오만으로 움직여 왔다.

하지만 복수에 성공한다면?

아파트에서 최고가 된다면?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그 이후에 자신이 뭘 위해 살아야 할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F급이던 시절은 하루하루 생존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다음에 시간이 나면 집을 좀 꾸며 볼까? 벽지도 좀 바꾸고 애완동물도 좀 키우고.’

‘맛있는 건 또 뭐가 있나? 아파트에 맛집이 있으면 찾아봐야겠다.’

세현은 잠시 망상에 빠졌다.

잠깐의 행복감이 지금까지의 고통과, 또 앞으로 견뎌 내야 할 고난들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했다.

천천히, 하지만 기분 좋게 세현의 눈꺼풀이 서서히 감겨들었다.

Level 24. 폭풍 전야

다음 날. 세현 일행은 다시 메인 퀘스트를 시작했다.

일단 석양추적자 아지트를 찾았다.

“안타르, 알게 된 사실들을 말해 줘.”

세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루 동안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안타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악마의 힘이 깃든 ‘네 개의 석상’에서 샤아틴의 신도들이 의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하크는 그 의식을 주도하는 일종의 신관이었고요.”

“어떤 의식인데?”

“샤이탄을… 소환하는 의식이라고 들었습니다.”

“흠~ 그럼 그 석상을 얼른 때려 부숴야겠네.”

옆에 있던 하사신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석상들의 위치는 막흐잔을 통해서 알아냈다네.”

하사신은 미리 준비를 끝내 놓은 모양이었다.

“내 지휘하에 2개의 석상을 공격할 생각이네. 병력을 붙여줄 테니 자네가 두 곳을 맡아 줄 수 있겠나?”

[#. 메인 퀘스트 / 소환 의식 ]

-샤이탄의 신도들이 그의 힘이 봉인된 네 개의 석상에서 부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부활 의식이 완성되기 전에 석상을 습격해 파괴해라.

적정 레벨: 55

[수락하기]

세현은 수락하기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사신은 품속에서 작은 지도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법 스크롤 두 장을 함께 건넸다.

“뭡니까?”

“석상이 위치가 표시된 지도와 석상에 걸린 보호 마법을 파괴할 수 있는 마법 스크롤입니다.”

“오호 땡큐, 그럼 바로 다녀오겠슴다~!”

세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인벤토리에 챙긴 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지트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사막 도마뱀을 타고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표시된 위치에는 거대한 신전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악마의 모습을 형상화해 놓은 석상이 있었다.

그 주변으로 수백의 신도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산 제물을 바치며 공양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꽤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세현은 겁에 떨기보다는 호기심으로 들떠 있는 상태였다.

‘새 소환수들의 위력을 테스트하기 딱 좋겠네.’

블랙 비숍과 화이트 나이츠.

세현은 왕의 명령으로 새로운 두 소환수를 먼저 내보냈다.

화이트 나이츠는 ‘영광의 가속’ 버프로 엄청난 속도로 가속해 적들이 채 반응조차 못할 정도로 공격을 퍼부었다.

‘속도 하나는 엄청나네.’

1레벨임에도 체감상 순간 가속도는 블랙 나이츠의 배는 빨라 보일 정도였다.

거기다 블링크 스킬로 짧은 공간을 도약하기까지 했는데, 두 개의 스킬을 활용한 기동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이교도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 채 빠르게 목이 썰려 나갔다. 블랙 나이츠에 비하면 데미지는 낮지만, 극한의 기동성을 가진 소환수였다.

잠시 후, 이번엔 블랙 비숍이 능력을 발휘했다.

블랙 비숍이 양손에서 푸른 기운을 뿜어내자 시체가 된 이교도들이 몸을 일으켜 아군을 공격했다.

거기다 데미지를 1.5배 증폭시키는 증폭 저주를 넓은 범위에 흩뿌렸다.

그러자 블랙 비숍이 되살린 이교도들은 한 마리에 최소 적 이교도 3~4마리를 상대해 냈다.

몬스터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영혼 착취로 마나가 끊임없이 수급됐고, 블랙 비숍은 사자 부활과 증폭 저주로 전선을 만들어 냈다.

머릿수가 필요한 다대다 전투에 능한 모습이었다.

두 소환수 모두 세현이 기대를 만족시켰다.

‘이 정도 성능이라면 이번 퀘스트 정도는 둘만 써도 낙승이겠어, ‘

세현은 두 소환수를 앞으로 치고 나갔다.

콰드득-! 콰드드득-!

“샤이탄 님께 영광을!”

“순교하라!”

이교도들은 갖은 마법, 무기, 심지어는 폭약을 동원한 자폭 공격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세현의 소환수들에 ‘왕의 함성’, 설희의 하모니를 통한 광역 버프가 더해지자 이런 저항은 무의미했다.

수 시간 동안 학살에 가까운 전투가 벌어지며, 이교도들은 경험치와 골드가 돼 버렸고 세현 일행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봉인에 도착했다.

‘저걸 파괴하면 되겠지.’

석상은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의 등 뒤로 날개가 크게 뻗어 나간 형태를 하고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 위에 금빛 장식이 정갈하게 새겨졌고, 주변에 무형의 금빛 방어막이 석상을 감싸고 있었다.

세현은 방어막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하사신에게 받은 마법 스크롤을 꺼내 찢어 버렸다.

그러자 불길한 느낌의 보라색 기체 덩어리가 퍼져 방어막에 엉겨 붙었다.

치이이이이-!

금빛 방어막이 서서히 녹아내리더니 완전히 해제돼 버렸다.

세현 일행은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석상 앞에 바로 섰다.

쩌저저저적!

석상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금빛 섬광을 강렬하게 내뿜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석상의 껍데기가 파괴되며 황금빛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리석은 자여! 진정 파멸을 원하고 있는 것이냐!>

놈은 분노한 듯 외치며, 양손검을 단단히 붙잡았다.

세현은 상태 창을 곧장 열어봤다.

[#.보스 몬스터 / 수호자 ]

- 석상에서 깨어난 수호자, 그의 정체를 아직 알 수 없다.

등급: 에픽(B)

레벨: 75

“설희 씨, 미리 말한 대로 갑니다!”

“네엡!”

세현은 그 즉시 작위 수여를 사용해 블랙 나이츠의 힘을 설희에게 이전했다.

검은색 중갑옷이 설희에게 덧씌워지고, 그녀의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한동안 보스 몬스터는 무조건 백설희가 잡는다.’

앞으로 30일, 세현의 목표는 백설희의 성장이다.

그걸 달성하기 위해선 그녀는 더 많은 전투 경험뿐 아니라, 빠른 레벨 업이 필요했다.

작위 수여를 통해 인위적으로 스테이터스를 뻥튀기시킨 후 보스를 잡으면 보다 빠른 레벨 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아아아압!”

작위 수여로 강해진 백설희가 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세현은 왕의 함성으로 이동속도 버프를 발동시켰고, 블랙 비숍은 증폭 저주를, 세이메이는 포박술과 시키가미를 활용해 설희를 지원했다.

챙-! 챙-! 챙-!

금빛 로브를 입은 존재와 설희가 호각지세로 전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수많은 아군의 서포팅을 받으며 설희는 조금씩 상대를 밀어붙였다.

블랙 나이츠의 고유 스킬인 리프 어택과 차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보스에게 치명상을 누적시키며 HP를 깎아 냈다.

잠시 후, 설희의 레이피어는 금빛 존재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고 그의 마지막 HP는 한 톨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다.

<필멸자여! 네가 저지른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보스는 원통함에 찬 외침과 함께 수백 가닥의 금빛 깃털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보스 전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백설희’님의 레벨이 30 ▶ 32(으)로 상승했습니다.]

마스터키가 백설희의 레벨 업을 알리는 음성과 메시지 팝업을 출력시켰다.

‘잉? 설희 씨가 레벨업한 게 왜 나한테 보이냐?’

작위 수여를 통해 설희가 단독으로 보스를 잡을 경우, 많은 경험치를 얻을 것이라는 건 이미 예측했다.

하지만 레벨 업을 알리는 음성과 메시지 팝업이 뜨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아파트는 다른 입주자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거 혹시?’

세현은 그 지점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바로 ‘경험의 관리자’를 실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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