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화.
[메인 퀘스트: 흑기사 안타르를 완료했습니다.]
[타이틀 ‘대뢰옥의 파해자’를 획득했습니다. 민첩 수치가 3 상승합니다.]
[포로 전원 구출 성공, 사망자 0. 퀘스트를 SSS급 수준으로 클리어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발생합니다. 인벤토리에 ‘하사신의 물건(패키지)’이 들어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퀘스트를 완료하자 보람찬 감정이 충만해졌다.
‘좋아. 보상으로 뭐가 들어왔는지 보자.’
세현은 기지개를 펴며 인벤토리에 있는 ‘하사신의 물건(패키지)’를 개봉했다.
“나이스!”
패키지 속에 든 물건을 본 순간, 세현은 반사적으로 입에서 탄성을 내지르며 허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은 흉측하기 그지없었지만, 기분이 좋은 탓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잠시 후 정신이 들었을 때, 세현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존재를 깨닫고 머리를 긁적였다.
“주, 주군…….”
“아니 세이메이, 그게 아니라.”
“흉측한 춤입니다!”
“휴, 흉측해서 미안하다.”
세이메이는 귀신이라도 본 듯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세현은 변명해 봤자 추해질 뿐이라는 걸 깨닫고 자포자기 한 상태로 인벤토리를 다시 열었다.
‘뭐 쪽팔리면 좀 어때, 이게 나왔는데.’
[#. 신발 / 쿠자이의 발]
- 천둥신 쿠자이의 발. 그가 지나는 곳엔 천둥소리가 가득 남는다고 한다.
등급: 유니크(C)
레벨 제한: 25
방어력: 150
▶ 추가 옵션(세트 효과)
- 천둥을 밟는 자(MP 200 소모): 천둥을 내뿜어 공중을 한 번 더 박차고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최대 1회)
- 천둥을 차는 자(MP 200 소모): 천둥을 내뿜는 강력한 발차기를 날립니다.
인벤토리에 들어온 것은 ‘쿠자이의 발’이었다.
공중을 박차고 한 번 더 뛰어 오르는, 이른바 2단 점프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유틸리티성이 강한 아이템이었다.
‘블랙 나이츠 리프 어택이랑 조합하면 시너지가 나겠지.’
이를 사용하면 세현은 좀 더 입체적인 전투를 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강적을 상대할 때는 ‘작위 수여’를 사용해 직접 전투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쿠자이의 발이 있다면 더욱 큰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즌2도 7부 능선을 넘었다.’
세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슬슬 시즌2의 마무리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전생에는 민들레 씨앗 레이드가 벌어진 이후 약 40여 일이 더 지나서 팔콘 길드가 샤이탄을 제거했다.
‘늦어도 30일 안에는 샤이탄을 공략해야 된다.’
전생과 동일하게 사건이 진행된다면, 굳이 30일 안에 공략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세현은 몇 번이고 전생과 현재에서 다른 점이 생기는 것을 봐 왔다.
게다가 팔콘 길드는 한참 예민해져 있는 것을 확인했기에, 최대한 빠르게 공략을 성공시키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현재 서큐버스 군단과의 동맹은 성사된 상황.
이 상황을 활용해 시즌2의 주역이 되려면 한 달 내에 최대한 레벨을 끌어올리고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퀘스트 난이도가 상승하는 걸 생각하면, 빠듯하다 못해 미쳤다 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그만큼 시즌2 최초 공략은 앞으로 지옥 같은 일정을 소화해 내야 해 볼 만한 큰일이었다.
‘바로 다음 퀘스트를 받아두자고.’
세현은 의식을 되찾은 안타르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다음 메인퀘스트의 시작 트리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안타르, 혹시 대뢰옥에 있을 때 샤이탄에 대한 정보를 따로 얻은 건 없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다름입니다.”
안타르는 고개를 들지 못한 체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명색이 영웅으로 불리던 그이기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적에게 붙잡혔던 것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기억나는 게-.”
다음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하사신이 세현의 앞을 막아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욕이 앞서는 건 알겠지만 질문은 내일 받도록 하지. 일단 안타르는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일 듯 보이니……”
“뭐, 상관없지. 그럼 내일 찾아올게.”
세현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상체를 들었다.
‘일단 하루 여유가 생겼군.’
어쨌든, 적어도 다음 날까지는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세현은 하루 동안 뭘 해야 할지 몇 가지 선택지를 떠올렸다.
시즌2의 최초 클리어를 결심한 이상, 하루도 허투로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일단 그것부터 해 놔야겠어.’
세현은 결정을 내린 후, 곧장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 † †
8층, 벚꽃국에 위치한 허세현의 집.
골목 안쪽에 위치한 목조 건물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선이 깔끔하게 떨어지고 마당이 넓고 잘 꾸며져 있어 고즈넉한 느낌이 있었다.
실내는 햇빛이 잘 들고 보온도 잘돼 머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늑함을 제공했다 .
이런 집의 한가운데, 세이메이가 반상에 앉아 다소곳이 앉아 차를 따르고 있었다.
“말차의 맛이 참 좋군요. 주군. 한 번 마셔 보세요.”
“아, 어 으응. 이따 마실게.”
반면 세현은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손톱을 딱딱 깨물고 있었다.
세이메이는 그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
“주군, 걱정되십니까?”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세현이 말을 끝마칠 무렵-.
나무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너머에는 익숙한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은 강아지상의 백설희, 한쪽은 고양이상에 보라색 머리를 한 사카린이었다.
“하이~!”
“안녕하세요, 사카린 씨.”
세현은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온다고 차도 준비해 둔 거야? 고마워!”
사카린은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 미소는 남자라면 간이고 쓸개고 빼 주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세현은 그녀의 무서움을 알고 있기에 그것이 딱히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 두 분다 한 잔씩 드시지요.”
세이메이가 두 손님에게 곧장 차를 내었다.
“크으으~ 좋다!”
사카린은 그 뜨거운 차를 탄산음료 먹듯이 벌컥벌컥 원샷해 버렸다.
“자, 그래서. 브레이브킹 님께서 나를 이렇게 직접 부른 이유가 뭐야?”
“아니, 좀 천천히 마시고 잡담도 하다가 얘기를 시작하는 게 보통 아닙니까?”
애초에 차를 준비해 놓은 것도 천천히 얘기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사카린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성격이 좀 급해서 말이지. 피차 바쁜 거 아니까 본론부터 가자고.”
“시즌2, 최종장 공략. 서큐버스 군단은 언제쯤 진행하실 거예요?”
사카린은 잠시 고민하다 답을 했다.
“60일 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럼 늦어요. 30일 후에 트라이하죠.”
보스 공략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에 60일은 결코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보통의 길드라면 보스 공략에 앞서 인력을 세 팀으로 쪼개는 것이 정석.
첫째, 보스의 패턴을 파악하고 레이드 전략을 수립하는 ‘정찰조’.
둘째, 필요한 아이템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아 길드원들에게 보급하는 ‘보급조’.
셋째, 보스 레이드 시 1선에 나서기 위해 레벨링에 목숨을 거는 ‘선봉조’.
이렇게 세 파트 각자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후에야 원활한 공략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인원이 10명 남짓한 서큐버스 군단은 이런 업무 분담이 어렵고 이에 따라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나마 있는 60일을 30일로 줄인다?
이건 헛소리를 넘어 막말에 가까웠다.
“한 달이나 시간을 단축시킨다? 뭔가 방법이 있어서 한 말이지?”
“물론, 숨겨 둔 카드가 있습니다.”
“오호라~ 자신만만한 걸 보니 뭔지 궁금한데?”
그 말에 사카린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빙긋 올렸고, 백설희와 세이메이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내가 뭘 도와줘야 되는지 말해 봐.”
세현은 곧장 서큐버스 군단이 해야 될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사카린은 내용에 대부분 동의했고, 사소한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은 실시간으로 잘 조율이 됐다.
“그리고…… 저를 서큐버스 군단 길드원으로 이름을 올려 주세요.”
“오? 갑자기 왜 마음이 변한 거지?
세현의 한마디에 모두가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팔콘 길드가 제 뒤를 밟고 있어서요. 그걸 떨쳐 내려면 길드에 들어가는 것 밖에 답이 없거든요.”
여러 방법을 떠올렸지만 결국 세현이 내린 유일한 답은 이것뿐이었다.
어차피 길드를 가져야 한다면 그나마 길드원의 숫자가 적고, 개인 활동을 보장하며, 실력도 확실한 서큐버스 군단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왜 하필 우리 길드야?”
“네?”
“왜 하필 우리 길드냐고. 솔직히 조건 좋은 다른 대형 길드들도 많잖아.”
사카린의 반문은 타당했다.
단순히 팔콘의 압박이 부담이라면 더 큰 규모의 다른 길드에 들어가는 게 유리할 터. 굳이 서큐버스 군단을 고집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세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사카린 누님 광팬이거든요.”
“엥?”
“엄청 팬이라고요. 전투 스타일도 사카린 누님 영상보면서 많이 베꼈고, 설희 씨한테 서큐버스 군단 추천한 것도 제가 직접 했어요.”
사카린은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하하하하! 뭐야 귀엽네, 귀여워. 겨우 그런 이유였어? 뭐 믿어 줄게! 내 팬이 어디 한둘이여야 말이지.”
그녀는 촉촉해진 눈을 닦아낸 후, 세현에게 오른손을 펼쳐 내밀었다.
“뭐 좋아, 바로 길드 명단에 넣어 줄게.”
세현은 사카린의 손을 붙잡고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뭐 고맙긴 한데 괜찮아요? 원래 서큐버스의 군단은 여자길드원만 받는 거 아닙니까?”
“엥? 아냐아냐!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들어와서 헛짓거리 하는 남자 놈 몇 놈 밟았더니 괜한 소문이 나서 그래. 딱히 남자는 가입 금지라거나 하는 규칙은 없어. 나도 잘생긴 꽃미남 길드원이라면 언제든 대~ 환영이라고!”
“꽃미남이라…….”
세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카린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러니까 가면 좀 벗어 봐. 같이 길드 활동하려면 네 이름이랑 얼굴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되겠지?”
“후우…….”
세현은 조심스레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이름은 허세현이고, 백설희 씨랑 입주 시험 볼 때 같은 조였습니다. 그때 친분이 좀 생겨서 어찌 저찌 이렇게 됐고요.”
“흐음~ 별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네.”
사카린이 앞으로 바짝 다가가더니 오른팔로 뺨을 쓰다듬었다. 세현은 그 팔을 떼어 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자, 일단 이거 빌려드릴 테니까 받으세요.”
세현이 내민 것은 ‘요괴왕의 장막’ 두 벌이었다.
최초 세현은 요괴왕의 장막을 여섯 벌 제작했다. 그중 한 벌을 서큐버스 군단에 팔고 나머지는 소환수들과 세이메이가 나눠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마법을 받아 내는 건 한두 명이면 족하다. 동료가 된 이상, 서큐버스 군단에 건네주는 것이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이거 정말로 빌려줘도 돼?”
사카린이 놀란 얼굴로 대꾸했다.
“네.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요괴왕의 장막에 달린 부가 옵션, ‘요괴왕의 불꽃’은 활성화 돼 있는 동안 사용자의 마법 저항력을 100%로 만들어 준다.
이는 공격 패턴 대부분이 마법 계통 공격인 샤이탄을 상대할 때 아주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는 사용자의 마나를 1초당 1%의 소모하기에 아무리 마나 포션을 들이킨다 해도 회복 속도를 감안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최대 지속 시간은 130초 내외라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 요괴왕의 장막이 세 벌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리 많은 마나를 소모하는 ‘요괴왕의 불꽃’을 써도 세 명의 입주자가 번갈아 가며 마나를 회복하며 탱킹을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사카린은 요괴왕의 장막이 두 벌 생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조건을 말해 봐. 이 정도면 꽤 큰 조건일 것 같은데?”
“시즌2 시작하기 전까지, 설희 씨가 저랑 같이 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말을 꺼내자 사카린과 설희, 두 사람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