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화.
블랙 나이츠, 블랙 폰은 앞으로 빠르게 달렸고, 화이트 폰 두 기는 화살을 날리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최대한 동료들의 피해가 적게, 속전속결로 몰아치겠다는 생각이었다.
“호오오, 소환사인가? 좋아, 나도 소환술로 상대해 주지!”
자하크가 호롱병 모양의 피리로 생전 들어 본 적 없던 기이한 소리를 냈다.
허공에 보랏빛 선이 그어지며 몸뚱이만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코브라 수십 마리가 공간을 찢고 나왔다. 마수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가공할 수준의 괴수들이었다.
놈들은 앞으로 내달리는 석양의 추적자들과 죄수들을 막아섰다.
“하아아!”
세현은 순간 기합을 내질러 ‘왕의 함성’을 발동시켰다.
순간 이동속도 버프를 받은 블랙 나이츠와 블랙 폰들이 코브라들을 옆에서 찌르고 들어갔다.
거기에 뒤쪽의 화이트 폰 두 기가 날린 화살이 놈들의 몸통을 관통했다.
거대 코브라들은 거세게 저항하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지만……
“수, 숫자가 너무 많구나!”
개떼처럼 몰려드는 숫자에는 장사가 없었다.
애초에 죄수의 숫자는 수백 명. 코브라들은 흡사 압사당하는 듯 애처롭게 죽어 갔다.
“할아범. 이게 끝이야? 상대를 해 줄 거면 수준을 좀 맞춰야 할 것아니야.”
“건방진 놈,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자하크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여 피리를 연주했다. 마치 지옥의 풍광을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으으으으윽!”
“살려, 살려 주세요!”
그러자 신나게 코브라를 두드려 패던 죄수들이 갑자기 귀를 막고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다. 아무래도 저 피리는 상대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석양의 추적자들은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는지 얼굴을 찌푸리는 정도에서 끝났다.
잠시 후, 자하크의 연주가 다른 형태로 바뀌자 그의 앞으로 여러 개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리고 마법진 안에서 구울, 데바 등의 하급 마물과 지니들이 한가득 쏟아졌다.
“샤이탄의 자식들이여! 저 놈들을 찢어발겨 뱀의 왕 자하크의 공포를 똑똑히 새겨 줘라!"”
그의 연주가 점점 더 현란해지며 템포가 빨라졌다. 그러자 놈이 불러낸 마물들의 눈이 붉게 변하며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추측건대, 자하크의 연주가 세현이 사용하는 ‘왕의 함성’과 비슷한 효과를 부여한 듯 보였다.
“세이메이, 앞으로 나가! 죄수들이 죽지 않게 지킨다!”
“넵, 주군!”
재빨리 소환수들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석양의 추적자들과 세현의 소환수, 그리고 자하크의 마물들이 크게 격돌했다.
세현은 의도적으로 소환수들을 강한 적들에게 붙여 최대한 석양의 추적자들의 피해를 줄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위기 상황이 올 때마다 세이메이가 시키가미와 포박술을 사용해 최대한 피해를 줄였다.
처음의 두 세력의 전력은 팽팽해 보였지만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세현 일행 쪽으로 승기가 기울고 있었다.
약 30여 분이 더 지나고, 세현은 자하크가 소환한 모든 마물들을 완벽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에 샤이탄님을 제외하면 나보다 더 뛰어난 소환사가 있을리가 없건만!”
“지금 봤으니까 이제 두 명이겠네.”
자하크의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며 눈에 띄게 지친 기색이었다. 조금 전의 연주로 수십 기의 마물에게 동시에 버프를 걸며 마력을 급격히 소모한 탓이었다.
“이이이이익!”
그는 분하다는 듯 악이 가득한 신음을 내뱉더니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세현은 더 이상 그럴틈을 주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딱-하는 소리를 내자 화이트 폰 둘이 동시에 화살을 날렸다.
파직-!
화살 한 발이 놈의 피리를 반 토막 내 버렸다.
푸욱-!
그리고 남은 한 발은 놈의 가슴을 꿰뚫었다.
자하크의 입에서 붉은 피가 꿀렁꿀렁 토해졌다.
“끄으으으으으…….”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바닥의 피리를 내려다봤다.
“인간, 인간들 주제에 감히 샤이탄 님께서 내리신 보물을 이렇게 만들어!”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마에 핏줄이 팽팽해졌다.
“내 진짜 힘을 보여주마!”
그러자-
콰득-!
양 어깨에 있던 두 마리의 뱀이 자하크의 머리통을 물어 터뜨려 버렸다.
‘다음 페이즈 시작이군.’
세현은 자하크의 다음 패턴이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머리가 터져 버린 자하크의 목에서 살덩이가 부풀어 올랐다. 몸 전체가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자하크를 점차 다른 무언가의 존재로 변이시키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완전히 변이를 끝마쳤을 때 모두의 앞에는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모두! 찢어 발겨 주마!>
양어깨에 두 개의 뱀 머리가, 중간에는 용의 머리가 달린, 총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녹색의 ‘삼두룡’.
놈은 입에서 녹색 연기를 뱉어내며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다.
세현은 곧장 놈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 보스 / 마룡 자하크]
- 뱀의 왕 자하크의 진정한 모습.
등급: 에픽(B)
레벨: 90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어째 퀘스트가 너무 쉽다고 했지.”
그를 본 세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책도 있었기에 당황스러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용이다! 마룡이다!”
“겁먹지 마라, 석양의 추적자들이여! 마신 샤이탄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응당 저런 마룡도 상대해야 하는 법!”
“으아아아아아!”
하지만 문제는 석양의 추적자들이 겁도 없이 놈에게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이 미친놈들아! 멈춰!”
세현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뜯어말렸지만, 그들은 겁도 없이 자하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종이의 춤!”
세이메이의 외침과 함께, 종이 방벽에 솟아올라 석양의 추적자들을 막았다.
종이 방벽은 점점 커져, 자하크의 몸 주변을 거대한 구체로 감싸기 시작했다.
석양의 추적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멀뚱거렸다.
“잘했어, 세이메이!”
세현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세이메이를 칭찬했다.
‘세이메이, 혹시 석양의 추적자나 죄수들이 당할 것 같으면, 시키가미로 보스랑 격리시켜 버려.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는 세이메이에게 미리 주문해 놓았던 부탁이었다. 석양의 추적자나 죄수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자, 들어가자!’
세현이 다시 외치자 소환수들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이 구체의 위쪽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구체 위쪽에는 이들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남아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착지할 수 있었다.
<크흐으…… 이곳에 묻어 주마, 오만한 입주자.>
종이 방벽 내부에는 자하크가 혀를 날름대고 있었다.
세현은 즉시 작위 수여를 사용해 블랙 나이츠의 힘을 자신에게 종속시켰다.
그러곤 다시 한 번 ‘왕의 외침’을 발동시키며 자하크에게 달려들었다.
놈은 가운데 얼굴의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러자 녹색 액체가 전방으로 크게 뿜어졌고 세현이 이를 아슬아슬 피해 냈다.
치이이이익-!
이에 닿은 바닥이 연기를 뿜으며 빠르게 녹아내렸다.
놈이 다시 한 번 브레스를 뿜으려 아가리를 벌리는 찰나, 세현이 놈의 콧잔등 위로 뛰어올랐다.
콰드득-!
그리고 그 위에 백염의 송곳니를 박아 넣어 입을 관통시켰다.
이걸로 놈의 가운데 얼굴은 한동안 브레스를 뿜지 못할 것이다. 그 틈을 타, 나머지 소환수들은 양어깨에 달린 두 개의 뱀 머리를 공략했다.
다소 저항이 있었지만, 용 머리를 제압당하자 놈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뱀 머리와 꼬리를 이용해 물리적 공격을 가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주변을 감싸고 있던 종이 방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거대한 규모의 종이 방벽을 오랜 시간 유지한 탓에 세이메이의 마력이 다했기 때문이었다.
이즈음 세현도 블랙 나이츠와 분리됐다. ‘작위 수여’ 또한 지속 시간인 10분이 다 지났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해!’
세현은 이를 악물고, 소환 해제된 블랙 나이츠가 가진 백염의 송곳니를 소환해 다시 한 번 놈의 미간에 박아 넣었다.
<끄어어어어어어!>
놈이 괴로운 듯 온몸을 뒤틀며 발광했다.
“영웅! 저자는 진정한 영웅이다!”
“석양의 후예들이여! 영웅을 도우라!”
그 모습을 본 석양의 추적자들이 감격한 듯 달려들었다. 그리고 무서운 기세로 자하크의 몸뚱이에 공격을 퍼부었다.
잠시 후, 하나둘씩 자하크의 마법에서 풀려난 죄수들이 몸을 일으켜 공격에 가세했다.
“으아아아아! 저분들을 도와라!”
“원수를 갚는 거다!”
놈은 꼬리와 뱀 머리를 이용해 반격하려 했지만, 마나 포션을 먹고 회복한 세이메이가 포박술로 이조차도 원천 봉쇄해 버렸다.
수백 대 일의 상황, 자하크는 샌드백이 돼 버렸다.
쿠우웅-!
채 15분도 되지 않아 자하크의 HP가 바닥났다.
그는 앞으로 허무하게 고꾸라지더니 몸은 쪼그라들어 원래의 보잘것없는 노인으로 돌아갔다.
“가, 감히 네놈들이 나를…… 이히히히히히!”
세현은 자하크의 앞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그리고 창을 거꾸로 잡고 그 끝을 놈의 심장에 겨눈 후,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크게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저주받을지어다!”
자하크는 자신의 입에서 녹색의 침을 뱉었다.
이는 놈이 마지막 생명을 쥐어 짜낸 최후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녹색 증기가 몸에 닿으려는 순간-.
치이이이-!
세현의 갑옷, 오로치의 장막이 백염을 내뿜어 녹색 액체를 흔적도 없이 태워 버렸다.
“이것마저…… 안 통하는 건가. 으흐흐, 뭐 상관없어 어차피 그분이 곧 오실 테니까.”
“그래, 곱게 죽어.”
악의가 가득한 자하크의 얼굴에 세현은 그대로 창을 내리꽂았다.
퍼억-!
관통된 얼굴에서 녹색 피가 흘러나오더니 놈의 몸뚱이가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뱀의 왕 자하크’를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의 관리자가 저장할 수 있는 경험치의 최대량에 도달했습니다. 소환수에게 경험치를 부여하세요.]
‘오, 경험치가 벌써 다 찼나.’
세현은 즉시 경험의 관리자를 켰다.
[경험치를 부여할 소환수를 선택해 주세요.]
1. 화이트 폰A / 레벨 29
2. 블랙 폰B / 레벨 23
3. 블랙 나이츠 / 레벨 24 (소환 불가 상태 - 이유: 작위 수여 사용)
4. 화이트 폰B / 레벨 19
5. 블랙 폰C / 레벨 16
[화이트 폰A / 레벨29 > 레벨30(이)가 됐습니다.]
[블랙 폰B / 레벨23 > 레벨 30(이)가 됐습니다.]
세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먼저 30레벨에 근접한 두 폰에게 경험치를 몰아줬다. 최대한 빨리 소환수를 진급(프로모션)시키는 게 유리하다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두 폰이 30레벨에 도달하자, 세현의 눈앞에 추가로 메시지 창이 출력됐다.
[‘화이트 폰A’이(가) 레벨30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클래스 ‘화이트 나이츠’(으)로 진급(프로모션)이 가능합니다!]
[‘블랙 폰B’이(가) 레벨30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클래스 ‘블랙 비숍’(으)로 진급(프로모션)이 가능합니다!]
‘오케이, 새로운 소환수다.’
세현은 화이트 폰을 ‘화이트 나이츠’로 전직시켰다. 소환수의 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남성형인 블랙 나이츠와 다르게 화이트 나이츠는 여성형의 신체에 보다 매끄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 소환수 / 화이트 나이츠]
- 브레이브킹 군단의 히트맨 역할을 하는 백색의 기사. 빠른 기동력과 공격력으로 적의 약점을 노린다.
- 레벨: 1
- HP / MP: 1600 / 1100
- 힘(35) / 민첩(183) / 지능(41) / 체력(43)
▶ 패시브 스킬
- 기사도: 아군을 향해 움직일 때 이동속도가 10% 상승합니다.
▶ 액티브 스킬
- 영광의 가속(소모 MP 200): 화이트 나이츠의 신체를 5초에 걸쳐 서서히 가속합니다. 가속 버프는 50%에서 시작해 최대 300%까지 증가합니다.
- 블링크(소모 MP 150~500): 1m 내외의 짧은 공간을 도약합니다. 도약하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MP소모가 많아집니다.
‘역시 블랙 나이츠랑은 능력이 다르군.’
화이트 나이츠는 블랙 나이츠에 비해 데미지나 체력이 낮은 대신 기동력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