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57화 (57/180)

# 57

57화.

“주군, 아~주 좋으시겠습니다.”

“엥?”

고개를 돌리자 세이메이가 보였다.

“아주 여성분들께 인기가 많군요. 설희 공도 그렇고, 사카린 공도 그렇고 이번에는 다른 분들까지!”

“응, 너 화났냐?”

“화 안 났습니다!”

세이메이가 버럭 소리지르며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내가 뭔 실수라도 했나?’

세현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 채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석양추적자 단원들이 세현을 보며 쑥덕댔다.

“와, 완전 저거 완전 바람둥이…….”

“입주자들은 저런 사람을 두고 카사노바라고 하더군요.”

“다들 그만하게, 원래 영웅은 호색이라고 하지 않나!”

다들 지금 상황을 오해하는 것 같았다.

‘아오, 퀘스트고 나발이고 다 던전 안에서 죽도록 던져 버릴까.’

일일히 대꾸하기도 피곤했다. 어차피 이번 임무에서만 보고 말 사이들이기에 세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충넘겼다.

잠시 후.

제단의 줄이 모두 줄어들어 드디어 세현 일행의 차례가 왔다.

[#. 인스턴트 던전 / 대뢰옥 ]

- 이교도들의 우두머리 <뱀의 왕 자하크>가 만든 거대한 감옥. 감옥 깊은 곳에서 온갖 고문이 자행되며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적정 레벨: 50

적정 인원: 5~10인

[입장하기]

입장하기 버튼을 누르자 세현 일행이 한번에 던전 안으로 전송됐다.

“으아아아아!”

비명 소리에 뒤덮인 대뢰옥의 모습이 펼쳐졌다.

황색 벽돌로 만들어진 복도를 중심으로 쇠창살이 덧씌워진 방이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었고, 각 쇠창살에는 전기가 파직파직 소리를 내며 흘렀다.

아마 저것을 손으로 잡았다간 전기구이가 되고 말 것이다.

“살려 주시오! 나는 죄가 없습니다 간수님!”

“닥쳐!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죄수들의 비명에 간수들이 철창을 검은 몽둥이로 쾅쾅 두드렸다. 그때마다 엄청난 스파크가 튀었고 죄수들은 놀라 나자빠지거나, 심한 경우는 실금을 하기까지 했다.

간수들은 그들을 동물 보듯 하며 천박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황혼의 추적자 단원 하나가 이를 빠득 갈며 분노한 듯 읊조렸다.

“저런… 간악무도한 놈들! 우리의 동지 안타르도 분명 고통 받고 있겠지. 서두릅시다!”

“자, 잠깐만! 야야 진정들 해!”

단원들은 무슨 분노 조절 장애라도 있는 양 칼부터 뽑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뭐, 뭐야 네놈들은!”

“석양의 추적자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간수들은 놀라 뒤로 물러났다.

촤아아악-!

예리한 검격이 반월 모양으로 그려지자 간수의 허리가 잘리며 내장을 토해 냈다.

“끄아아아악! 침입자다! 침입자야!!!”

간수의 단말마가 대뢰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복도 저 너머에서 발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이곳으로 경비 병력들이 물밀듯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광고를 해라, 광고를……’

초장부터 대뢰옥 전체에 ‘우리가 여기 왔다!’라고 대놓고 알려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상황이야 어쨌든 석양의 추적자 단원들은 도리어 기세가 등등했다.

Level 22. 혼혈의 흑기사 안타르

“석양의 빛으로 악을 처단해라!”

“아, 이런 또라이 같은 놈들……”

세현은 이번 임무가 쉽지 않을 것을 직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신에 굴복한 놈들은 모두 죽여 버려라!”

“우리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석양의 추적자 멤버들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곳에 몰려온 경비병력의 숫자가 대략 50~60명은 됐음에도 그들은 별다른 피해없이 그들을 도륙냈다.

“벌레 같은 샤이탄의 이교도 놈들…… 죄 없는 자들을 이곳에 가두고 고문했겠다!”

“일단 죄수들을 해방합시다!”

추적자들은 창살에 전류를 흘리고 있는 마법 장치들을 파괴하고 문을 열었다.

“나으리들, 저희도 감옥의 해방을 돕겠습니다!”

“옳소! 이교도들을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저희 같은 피해자가 없을 겁니다.”

죄수들은 감옥에서 뛰쳐나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딱히 아무 것도 안 해 줘도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를 다 하고 있었다.

“세이메이, 우린 뒤에서 팝콘이나 먹고 있자.”

“넵! 먹는 거라면 뭐든지 좋습니다.”

“아니…… 진짜 팝콘을 먹는다는 건 아니고.”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들은 시체가 된 병사들의 장비를 착용했다. 그 숫자가 이미 30명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뭔 놈의 퀘스트가 이렇게 흘러가냐.’

그 광경을 본 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의 입주자라면 거주자 동료가 늘어난 것에 기뻐하겠지만, 지금 여기 모인 거주자들은 세현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최대한 많은 동료를 살려야 좋은 보상을 받는 세현의 입장에서 딱히 반길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아씨 몰라, 그냥 숟가락이나 얹자.’

세현은 그냥 소환수들을 대충 펼쳐 놓고 위기 상황이 다가올 때마다 간섭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어 갔다.

“세이메이, 전방은 내가 볼테니까. 너는 뒤쪽을 보면서 동료들을 최대한 지켜.”

“네? 제가 저들을 지키라고요?”

세이메이가 곤란한 얼굴을 하며 석양의 추적자 단원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들은 광전사라도 되는 양 적들에게 검을 휘두르며 일방적으로 적을 학살했다. 도리어 이들에게 당하는 대뢰옥의 병사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 일단은.”

“최대한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한 블록을 클리어한 후, 세현 일행은 대뢰옥의 다음 구역으로 이동했다.

구역을 넘어가자 그곳에는 조금 전 간수들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로브를 두르고 마법 구체를 사용하는 술법사 ‘데바’들과, 하급 마신 지니가 등장해 거센 반격을 해 온 것이다.

이는 대뢰옥이 단순한 감옥이 아닌 대마신 샤이탄의 지배하에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증거였다.

“앞으로! 앞 구역으로 간다! 대뢰옥을 완전히 파괴하고 뱀의 왕의 목을 베는 거다!”

“죄수를 석방하라, 모두 무기를 들어라! 대뢰옥 안에서 흑기사 안타르를 구하자!”

매 구간을 돌파할 때마다 적들의 저항도 거세졌지만, 일행에 합류한 죄수의 숫자도 늘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석양의 추적자 단원들은 미친개, 아니 미친놈들 같았다.

세현은 언제서부턴가 그들을 지키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소환수들을 그냥 전투에 합류시켰다.

그렇게 대뢰옥의 9개 구간을 돌파하고, 마지막 블럭인 고문실 문 앞에 도착했다. 이즈음 가니 세현 일행을 따르는 죄수들의 숫자는 수백을 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군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세현이 혀를 내두르며 고문실 문을 열려는 찰나였다. 석양의 추적자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단원 한 명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자네! 결전에 나서기 전에 연설이라도 하게!”

“여, 연설?”

“그래, 연설! 지하드(성전)에 나설 때는 모두의 사기를 북돋워야 하지 않겠나!”

“꼭 해야 됩니까?”

“해야지! 자네는 영웅이니까!”

“그래도 그건 좀…….”

세현이 적당히 빼려고 하자, 석양추적자 단원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며 외쳐 대기 시작했다.

“영웅!”

“영웅! 영웅!”

“연설! 연설!”

“한 마디 해 주십쇼!”

그러자 죄수들도 그를 따라 외치며 고문실 앞에는 함성이 가득해졌다. 고문실 안에 있을 적들에게 우리가 여기 왔노라 광고를 하다 못해, 그냥 훤히 알려 주고 있는 격이었다.

‘이 미친 놈들아, 그만해!!’

세현은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 소동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알았어! 연설할 테니까 다들 좀 조용!”

그러자 거짓말 같이 고문실이 조용해졌다.

세현은 부담스러운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떠오르는 대사들을 최대한 빠르게 머리에서 조합했다.

“주,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되도록 살아남읍시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단지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쏟아졌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번 사냥 영상에서 신지영에게 연설 부분 만큼은 꼭 편집해 달라고 얘기해야겠다 생각했다.

“세이메이, 잠깐 얘기 좀 하자.”

“네?”

고문실에 돌입하기 전, 세현은 작게 귓속말을 건넸다.

“이번 전투에서 네가 좀 해 줘야 할 게 있는데. 그게 그러니까…….”

내용을 들은 세이메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군.”

“잘 풀리면 이번에도 맛있는 거 사 줄 테니까 부탁한다.”

“최소 치킨 두 마리, 그리고 먹어 본 적 없는 음식을 더 사 주십시오!”

묘하게 소박한 소원이었다. 세현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고, 고문실의 문을 열었다.

“자, 마지막 구역으로 돌입합니다!”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자 앞에 펼쳐진 광경에 모두의 얼굴이 혐오와 역겨움으로 일그러졌다.

“우웩, 이게 무슨!”

“악마 같은 놈들.”

고문실 안은 말 그대로 무간지옥이었다.

각종 고문 기구에 구속된 죄수들은 다 말라비틀어져 인간인지 시체인지 구별조차 불가능했다.

이미 죽어 시체가 된 자들은 구더기가 들끓거나 머리 세 개를 가진 악마견의 먹이가 돼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꺾이는 것 같은 잔혹한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풍경의 한가운데, 차라리 미라라고 느껴질 정도로 비쩍 마른 노인이 보였다. 그는 불로 달궈진 쇠꼬챙이로 죄수를 찌르며 고문하고 있었다.

양 어깨에는 두 개의 뱀 머리가 솟아 있어 그가 상급 마신이자 이곳 대뢰옥의 주인인 <뱀의 왕 자하크>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문하던 죄수의 명치에 쇠꼬챙이를 푹 찔러 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선명한 죽음의 비명이 고문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잔인한 광경에 거주자들은 하나도 빠질 것 없이 등골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흐흐흐, 역시 죽음의 순간에 내지르는 비명만큼 짜릿한 게 또 없지!”

자하크는 쇠꼬챙이를 빼내더니 선혈이 쏟아지는 구멍으로 뱀 머리 하나가 파고들었다.

뱀의 입에는 죄수의 심장이 딸려 나왔고, 뱀은 그것을 게걸스레 씹어 먹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은 흡사 순수한 악, 그 자체였다.

세현은 그 즉시 상태창을 열어 놈의 스펙을 확인했다.

[#. 보스 / 뱀의 왕 자하크]

- 대마신 샤이탄의 힘을 모시는 뱀의 화신. 그가 실은 인간이 아닌 용의 일족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진실을 알게 된 자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기에……

- 등급: 유니크(C)

- 레벨: 85

“흐음, 바깥이 소란스러운 게 네놈들 때문인 모양이군.”

뱀의 왕 자하크는 심장을 꿀꺽 삼킨 후, 몸을 틀어 이곳에 몰려든 수백의 죄수들을 시뻘건 눈동자로 노려봤다.

그 소름끼치는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죄수들은 그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모두를 훑어본 자하크는 세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혀를 날름대며 한마디를 보탰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 놈이 왔어. 냄새가 나, 너는 ‘바깥’의 인간이군. 먹고 싶어.”

“변태 할배냐? 나를 먹긴 왜…….”

세현이 대꾸하려던 찰나였다.

“자하크!!! 이 포학무도한 놈! 정의의 심판을 받아라!”

“이건 지하드다! 우리의 분노를 받아라!”

석양의 추적자 단원들이 고래고래 소래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다 죄수들도 그 기세에 휩쓸려 뒤를 따랐다.

“야, 니들 내 말 끊어 먹지 마!”

세현은 부랴부랴 소환수를 모두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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