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55화 (55/180)

# 55

55화.

10분 전.

“프링X스 인간들이 달라붙는다! 떨쳐 내!”

“절대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몰려온다!”

사카린과 서큐버스 군단은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했음에도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몇십 분간 유리한 고지에서 괴수를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이 바닥에 감차 칩을 뿌릴 때마다 자라나는 감자 뿌리와 프링X스 인간들이 파상 공세를 펼쳐 왔기에 버티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자연스레 체력이 떨어지다 보니 보스에게 주는 데미지도 줄어들었고, 준비했던 포션들도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인가.’

사카린은 지금 상황을 충분히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팔콘과 노동당에 갈등을 일으킨 것 까진 좋았지만, 남은 전력만으로는 이 거대 괴수를 잡기 어려워 보였다.

여태 사카린의 초인적인 전투 센스로 놈의 HP를 많이 빼냈지만,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얼굴에 타격을 주고 있는 숫자는 10명 내외였다.

슬슬 한계가 오는 게 당연했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면 ‘그걸’ 쓸 생각도 해야겠어.’

사카린은 자신이 숨겨 왔던 비장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길드에 이를 노출하고 싶지 않은데다 후유증이 크기에 자제하고 있지만,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질 터였다.

차라리 팔콘과 노동당이 전선에 복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번 열면 멈-출수 없어용!!>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 프링X스는 입에서 바닥을 향해 수백 개의 씨앗을 뱉어냈다.

그 씨앗들은 빠르게 거대한 감자 줄기로 자라나 다시 한 번 서큐버스 군단을 덮쳐 왔다.

“제기라아아아아알!”

사카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비장의 한 수를 발동시키기 위해 한쪽 손을 까득 깨물어 피를 이마에 덧칠했다.

그렇게 스킬을 발동시키려던 찰나였다.

“영웅! 드으으으으으응장!!!”

지상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곳을 바라보자 검은 중갑옷에 말의 하체를 가진 전사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등에는 붉은 왕관에 가면을 쓴 남자, 브레이브킹이 업혀 있었다.

“뭐하는 거야?”

사카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지까지 뛰어 들어온 그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브레이브킹은 다시 또 외쳤다.

“올라간다아아아아! 올라가니까 도와!!!”

“역시 똘기 충만하네.”

그의 엉뚱한 모습에 사카린은 피식 미소 지으며 자신의 사슬낫을 지상으로 내던졌다.

사슬낫은 여의봉처럼 쭉쭉 늘어나 지상에 처박혔다.

“땡큐!”

브레이브킹과 검은 중갑옷의 전사는 사슬을 발판 삼아 위로 내달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런 도중, 세현은 고승의 염주를 꺼내 두 알을 미리 입에 욱여넣었다.

프링X스의 어깨 위를 지나갈 즈음, 세현은 ‘백염의 송곳니’를 위로 힘껏 집어 던졌다.

흰색 창이 괴수의 머리 뚜껑과 얼굴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처박혔다.

“나이츠, 뛰어!”

외침과 동시에 블랙 나이츠가 리프어택을 발동시켜 메뚜기처럼 폴짝 뛰었다.

그러곤 중간 지점에 박힌 장창을 발판 삼아 다시 한 번 위로 올랐다.

세현과 블랙 나이츠는 순식간에 놈의 머리 뚜껑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실로 순식간에 벌어진 기습이었다.

‘작위 수여.’

그 즉시 블랙 나이츠가 연기가 되어 세현의 몸에 들러붙어 검은 갑옷으로 변했다. 작위 수여로 블랙 나이츠의 능력을 흡수한 것이다.

“뚫려라!”

세현은 백염의 송곳니를 한 자루 더 꺼냈다. 그리고 창을 꽉 붙잡고 프링X스 머리에 얹어진 플라스틱 뚜껑을 세차게 찔렀다.

그걸 반복하기 두세 번, 뚜껑 위에는 꼭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구멍이 생겨났다.

세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으랴으랴으랴!”

아래로 추락하는 세현의 눈에 원통형 공간이 펼쳐졌다.

공간 전체를 감자 줄기가 뒤덮었고 그 위로 수천, 수만 개의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실로 감자 지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잠시 후, 달려 있던 감자들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지며 안에서 프링X스와 감자튀김 형태의 몬스터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비켜비켜, 시간 없어!”

세현은 백염의 송곳니를 들고 몸을 팽이처럼 쉴 새 없이 회전시키며 추락했다.

감자 몬스터들이 믹서에 갈리듯 찢겨 나가며 퍽퍽 튕겨 나갔다.

그렇게 1분여 동안 내려가서야 세현은 바닥에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여러 덩굴들이 얽혀 있는 바위만 한 거대 감자가 중심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감자 주제에 인간과 같은 얼굴이 새겨져 꿈틀대며 붉은 빛을 뿜어냈는데, 그게 묘하게 징그러웠다.

‘커플러가 말했던 게 저거구만.’

‘프링X스 괴수의 머리 뚜껑을 따고 들어가세용.’

‘가장 깊은 곳에, 커~다란 감자가 놓여 있는데 그게 놈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핵이랍니당!’

세현은 커플러의 말을 떠올리며 망설임 없이 창격을 날렸다.

콰아악-!

백염의 송곳니가 감자의 이마를 꿰뚫자 그 자리에서 백염이 커다랗게 타올랐다.

이놈은 괴수의 전신으로 동력을 공급하는 마나 덩어리나 다름없기에, 백염의 송곳니의 화염에 약한 것이었다.

<으아아아앙! 아파요옹!>

놈은 묘하게 커플러를 닮은 말투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 직후, 쩌억-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가더니 달걀이라도 되는 양 내부에서 무언가가 감자를 깨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인간 정도의 크기, 갈색 머리카락에 5:5가르마를 가지고 근사한 콧수염을 기른 근육질의 남자였다.

“……저거 프링X스 통에 그려진 마스코트잖아.”

세현은 이 괴수를 디자인한 놈의 센스에 경악했다.

[#(민들레 씨앗) 보스 / 프라임 오브 포테이토(P.O.P) ]

- 감자의 정수를 담은 지배자. 그는 모든 감자를 사랑한다고 한다.

등급: 유니크(C)

레벨: 50

생명력 / 마나: 10000 / 8000

‘핵을 파괴하면, 그 안에서 마지막 보스가 나올 겁니당! 그 놈을 제거하면 승-리! 에용.’

저놈이 마지막이라 그거지?’

커플러가 전해 준 정보에 의하면, 놈은 거대 괴수의 조종사쯤 되는 몬스터였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이 무지막지한 보스를 그나마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세현은 놈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괴승의 염주와 포션들을 집어삼켜 만전의 상태를 만들었다.

“회오리 감자로 만들어 주마.”

몸 주변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일어나며 세현의 몸뚱이가 전방으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블랙 나이츠의 스킬인 ‘차징’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콰득-!

창끝이 순식간의 놈의 심장을 파고들었기에 세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오호호홍, 잡았어용!>

놈은 몸을 파고든 창을 양팔로 붙잡더니 앞발을 뻗어 세현을 뻥 차 버렸다.

세현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면에 처박혀 주저앉았다.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내장이 뒤틀리는 격통이 찾아왔다.

“이 새끼, 일부러 공격을 유도한 거냐.”

놈은 귀찮다는 듯 자신의 심장에 박힌 ‘백염의 송곳니’를 뽑아 양팔로 들었다.

구멍이 난 심장부에서는 감자 줄기가 뻗어 나와 그 안을 순식간에 재생시켰다.

<멋지지용? 기술명은 포테이토 페이크!>

놈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양손을 세현에게 처박았다.

격한 파쇄음과 함께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다행히 세현은 피격 직전에 가까스로 몸을 뒤집어 공격을 피해 냈다.

“네 공격, 안 멋지거든!!”

그리고 잠시간의 틈을 노려 놈의 왼팔에 양다리를 올려 걸었다. 이종 격투기에서 종종 사용되는 기술, ‘암바’를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콰드득- 콰드드득-!

블랙 나이츠의 터질 것 같은 말다리가 놈의 팔을 걸레처럼 쥐어짰다.

놈은 너덜너덜해진 팔을 늘어트리며 뒤로 나자빠졌고, 세현은 재빨리 위로 올라타 주먹을 연타했다.

“죽어, 죽어어어어어!”

퍽-! 퍽-! 퍽-!

세현의 주먹은 점점 더 가속해 발칸같은 기세로 놈의 얼굴에 공격을 쏟아부었다.

때리는 사람도 얼마나 공격을 퍼부었는지 의식하기 힘든 수준의 난타!

주먹이 내리 찍힐 때마다 프라임 오브 포테이토의 몸이 녹색 피를 내뿜으며 으깨졌다.

<억!! 으억!! 어어억!>

그렇게 수 백발의 주먹이 꽂히고 나서야 놈은 완전히 침묵했다.

[괴수 ‘프링X스 3형제’가 쓰러졌습니다!]

[허세현 님의 레벨이 40이 됐습니다.]

[‘폰 소환’이 최대 ‘5기’까지 가능해졌습니다.]

[허세현 님의 민들레 씨앗 괴수 레이드 기여도는 1위입니다.]

[괴수 퇴치 보상: ‘다이아몬드 패키지’가 인벤토리에 들어왔습니다.]

“헉…… 헉…… 헉…… 잡, 잡았다.”

마스터키가 음성으로 괴수가 쓰러졌음을 알렸고, 순식간에 4레벨이 올랐다.

이에 따라 40레벨을 달성해 화이트 폰 한 마리를 더 소환할 수 있게 됐다. 블랙 나이츠를 포함하면 무려 총 6기의 소환수를 부리게 된 것이다.

당장 장비값이 걱정됐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괴수를 잡은 보상으로 최상급 랜덤 박스, 다이아몬드 패키지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패키지는 최소 유니크급 이상 장비를 보장해 주는 박스. 상자 상태로 팔아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썩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평소의 세현이라면 비명이라도 지르며 엉덩이 춤이라도 췄겠지만, 아직 그럴 때가 아니었다.

쿠구구구-!

이 원통형 공간 전체가 붉은 실선으로 갈라지며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멀뚱히 있다간 압사당할 것이 분명하다.

“제기랄.”

세현은 리프어택을 활용해 떨어지는 파편들을 발판 삼아 위로 향했다.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어!”

그러던 도중, 추락하는 감자들에서 프링X스 인간과 감자튀김들이 세현을 향해 공격을 해 왔다.

죽기 전에 한칼이라도 더 먹이겠다는 악의가 느껴졌다.

거의 3분의 2가량 높이까지 올라왔던 세현은 놈들의 파상 공세에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커헉!”

가까스로 항전하던 세현은 결국 놈들에게 한 방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 번 중심이 무너지자 추가타가 연속으로 들어왔고, 세현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며 추락했다.

“제기랄, 이렇게 뒤지는 건가.”

떨어지는 와중, 위쪽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에 세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빛을 향해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에 팔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등 뒤에서 죽음의 기운이 아가리를 벌리고 세현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잡아!”

그때였다.

촤르르르르륵-!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서 뭔가가 빠르게 세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보랏빛 날을 가진 날카로운 사슬낫이었다.

세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날 부분을 피해 내며 사슬 부분을 한쪽 팔로 붙잡았다.

실로 간발의 차이였다.

사슬은 다시 줄어들기 시작하며 빛을 향해 솟아올랐다.

잠시 후, 정상 지점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사카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글쎄요, 하하.”

“가 봐, 여기 있다가 괜히 귀찮아지니까.”

“넵.”

사카린이 고갯짓하자 세현은 지상을 향해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쾅-!

지상에 충돌함과 동시에 두터운 블랙 나이츠의 다리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올랐고,

세현은 입주자들이 없는 방향을 향해 맹렬히 내달렸다.

“브레이브킹, 간만에 재미있는 게 튀어나왔어.”

사카린은 멀어지는 세현의 모습을 보며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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