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51화 (51/180)

# 51

51화.

앞으로 필요할 돈을 생각하고 있자니 아찔해지는 기분에 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주군,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이에 세이메이가 걱정스러운 듯 질문했다.

“아냐 아냐, 별생각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 민들레 씨앗이라는 것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아 민들레, 그거 준비해야지.”

일단 시즌2 메인 퀘스트는 여기까지 해 두기로 했다.

당장의 목표는 며칠 후 날아올 민들레 씨앗 레이드를 기회로 팔콘 길드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이었다.

애초에 목표로 하던 레벨은 달성했지만, 이것만으로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이번 레이드에 대한 철저한 사전 계획이 필요했다.

“흐으으음…….”

세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 † †

[내일 24:00분. 아파트 정상에서 민들레 씨앗이 날아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미?중국과 군사 연합 체계를 갖춰 입주자들과 함께 이에 대응할 것을 예고했으며…….]

[각국의 군과 입주자들은 비상대기 체제에 들어갔으며 피해 방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모두 군의 안내에 따라 예상 추락 지점에서 빨리 이탈하시기 바랍니다.]

19층이 공략된 지 99일째, 거대 괴물을 담은 민들레 씨앗이 퍼지기 하루 전.

뉴스, 인터넷, SNS 등 다양한 매체들은 민들레 씨앗에 대한 내용을 떠들썩하게 보도 중이었다.

첫 번째 씨앗이 지상에 착지했을 때 난 재산 피해는 수천조, 인명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여 명에 달했다.

세계대전급의 대재앙.

인류는 이것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사흘 전, 관리자들이 보낸 예고장에 적힌 민들레 씨앗 착지 지점 24개.

해당 지역에는 각국의 군대가 입주자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이미 진을 쳤고, 거주민들은 대피를 모두 끝마쳤다.

한반도의 민들레 예상 착지 지점은 공교롭게도 아파트 근방의 DMZ 지역.

남북한은 원형으로 구성된 민들레 씨앗의 예상 착지 지점을 중심으로 갈려 서로 간의 군대를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그 시각, 대한민국의 입주자 관리 행정구역 ‘관리사무소’ 중심의 광장.

이곳엔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소속의 입주자들.

시험에 합격한 지 6개월 이상 지난 입주자라면 누구라도 내일의 전투를 참가해야 하기에 이 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불철주야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입주자 여러분…….”

앞에 놓인 커다란 단상, 그곳에서 마이크를 잡고 외치는 남자는 놀랍게도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입주자 여러분, 여러분의 손에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는 내일 있을 작전의 중요성과 이번 임무의 중요성을 외치며 입주자들에게 선전을 부탁했다.

잠시 후, 내일 작전을 총괄 지휘할 군사령관들이 임무를 브리핑했다.

군은 이곳에 모인 입주자 전체를 크게 10개 대대로 나눴다. 그리고 각 조별로 맡은 구역을 방어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내일 어떤 특징을 가진 괴물이 나올지 모르는데다 입주자라는 집단의 특성상 완전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나온 방식이리라.

“자, 임무 브리핑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입주자 분들은 지정된 위치에서 내일 임무 개시까지 대기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리핑이 끝난 후 입주자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야, 저기 봐 봐.”

“와씨 존나 예쁘다.”

그런 중, 수많은 입주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최고의 소수 정예 길드로 평가되는 서큐버스 군단이 앞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쟤들이 서큐버스 군단인가 뭔가 하는 걔들인가?”

“한 번 들이대 볼까?”

“병신 뭐래, 너 같은 좆밥이 들이대면 바로 털릴걸? 괜히 상위 랭크 길드인 줄 아냐.”

“그냥 해 본 말이지……”

“하 그래도 존나 한 번 따먹고 싶지 않냐~ 강한 여자를 정복하는 게 또 맛이란 말이지.”

“미친 새끼, 너 그러다 진짜 뒤지는 수가 있어.”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 입주자들의 시선은 경외나 존경보다는 지저분한 욕망이 담긴 것이었다.

그걸 느낀 사카린은 가장 가까운 입주자 한 명의 앞으로 걸어가 다짜고짜 멱살을 붙잡았다.

“너, 방금 뭐라 씨부렸냐?”

“케헤헤헥! 그게, 다들 아름다우시다고…….”

“니가 뭐라고 평가질이야, 오징어같이 생긴 게.”

빠악-!

사카린은 상대의 중요한 곳에 힘찬 니 킥을 날려 버렸다.

남자는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고간을 양손으로 붙잡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히에엑!”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한 입주자들은 괜히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혹여나 사카린과 시선을 마주쳐 화를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남자 구실도 못하는 새끼들이.”

사카린은 콧김을 푹 내뿜으며 군중 사이를 빠져나갔고 서큐버스 군단 길드원들이 뒤를 따랐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입주자들이 그녀들의 앞을 막아섰다.

“볼 때마다 기운이 넘치시네요. 사카린 씨.”

“그쪽은 볼 때마다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흘러넘치네. 역시 머~기업 도련님이라 그런가 아주 산유국이야 산유국.”

말끔하게 한쪽으로 넘긴 포마드 머리에 또렷한 이목구비의 흰 얼굴. 팔콘의 길드장이자 한성 그룹의 후계자 중 하나인 최은철이었다.

그는 사카린을 향해 악수를 청했다.

“얼굴도 예쁘신 분이, 말 좀 곱게 하세요. 그래도 다 같이 인류를 위해 싸우는 입주자 동료들 아닙니까?”

“동료는 개뿔, 남 얼평이나 하지 말고 내일 레이드나 잘해.”

“하하, 물론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은철의 시선이 사카린을 지나 옆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전 펜싱 금메달리스트 백설희가 서 있었다.

“그쪽에서 우리 쪽 인원을 빼돌리셔서 저도 조~금은 예민해져서요.”

“뭘 빼돌려, 침이라도 발라 놨어? 가입하고 싶지도 않은데 억지로 들이댔다며. 원래 치근덕대는 남자는 여자한테 인기 없어, 등신.”

“역시 그렇겠죠? 뭐, 백설희 씨도 모쪼록 그쪽에서 잘됐으면 좋겠네요.”

“얘는 또 뭐래, 가자 얘들아.”

사카린은 최은철의 어깨를 밀치며 그 사이로 빠져나갔고 서큐버스 군단도 그 뒤를 따랐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입주자들이 또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왜 저래? 원래 저렇게 사이가 안 좋았나?”

“와 진짜 사카린 저년 개또라이네. 천하의 최은철한테 저 지랄 하는 거 보소. 저게 걸크러쉬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입 함부로 나불대지 마라. 지금 잘못 놀리면 진짜 피똥 싼다.”

조금 전의 분위기가 단순한 상위권 길드 간의 견제라고 보기엔 너무 험악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들과 같은 평을 내렸으리라.

잠시 후, 서큐버스 군단이 이곳을 완전히 벗어났을 무렵.

최은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살기등등한 눈으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저 씨발 년, 언젠가는 찢어 죽여 버려야지. 그래서 상어 밥을 만들어 줄 거다.”

옆에서 은철의 중얼거림을 들은 임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혹여나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 †

8대대의 베이스캠프.

130여 명에 달하는 조원들은 캠프 뒤편에 마련 된 간이식당에서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하여간 저 머저리 같은 놈. 괜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재벌 2세, 3세들이 쓰레기로 나오는 게 아니야! 안 그래?”

식당 한가운데, 보라색 긴 머리를 한 고양이상의 미녀가 험악한 말을 내뱉으며 밥을 퍽퍽 퍼먹었다.

그녀는 이번 작전에서 8대대의 통솔을 맡게 된 사카린이었다.

오른편에 앉은 백설희는 눈치를 힐끔힐끔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그게 너 때문이냐? 최은철 그 미친 나르시즘, 변태, 재벌3세 호로 잡놈 스레기 때문이지.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마~!”

사카린은 아재같이 호탕한 웃음을 뱉으며 설희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흐아암~ 배부르다. 우리 설희, 밥 다 먹었어?”

“넵!”

“그럼 나랑 잠깐 산책이나 좀 하자.”

두 사람은 조용히 식당을 빠져나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때, 길드 생활은 좀 할 만해?”

“헤헤, 덕분에요.”

사카린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너 어쩌다 우리 길드에 지원한 거야?”

“네?”

“이제 와서 이런 얘기 하는 것도 좀 웃긴데, 팔콘 놈들 스카우트를 거절한 이유가 궁금해서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길드가 어디 빠지는 건 아니지만 팔콘 만큼 대우는 못해 주잖아?”

“그럴 리가요. 서큐버스 군단도 충분히-.”

항변을 하던 중, 사카린이 바로 끊고 들어왔다.

“거기다가 저번에 ‘요괴왕의 장막’ 경매 낙찰 받은 거. 그땐 그냥 직감이라고 얼버무렸지만, 거짓말이지?

설희는 잠시 고민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꾸했다.

“……아는 분이 도와주셨어요. 누군지 말씀은 못 드리지만 ”

“흐음, 그 아.는.분이라는 게 누군지 궁금한데~.”

“죄송해요. 그것만큼은 절대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때, 배후에서 음성 변조기로 만들어진 듯한 기괴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카린 님, 괜한 사람 곤란하게 만들지 말세요.”

“누구야?”

그 즉시 사카린이 보랏빛 화염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뿜어냈다.

화염은 그 일대를 순식간에 태워 밝혔다.

“무, 무슨 짓이야! 주, 죽을 뻔했잖아!”

음성이 들려오는 곳엔 붉은 왕관에 가면을 쓴 남자가 몸에 흰 화염을 두르고 서 있었다.

사카린은 그 화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나를 태우는 화염을 몸 주변에 일으켜 잠시간 마법 저항력 100% 상태로 만드는 ‘요괴왕의 불꽃’. 최근 경매장에 올라왔던 아이템 ‘요괴왕의 장막’의 부가 옵션이었다.

“오호라, 니가 경매장에 요괴왕의 장막을 올렸던 놈이구나?”

“빙고! 그리고 설희 씨가 방금 말한 그 아는 사람, 그게 바로 접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개인적으로 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지는데?”

사카린은 이번에 자신의 주력 무기인 사슬낫을 꺼내 빠르게 회전시켰다.

헬리콥터 프로펠러라도 돌아가는 듯, 엄청난 풍압에 주변의 나무가 흔들릴 정도였다.

붉은 왕관은 곤란하다는 듯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다급히 외쳤다.

“워워워, 진정해요 진정. 난 거래를 하러 왔어요. 분명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일 겁니다.”

“거래라?”

“네, 내일 레이드에서 동맹을 맺었으면 해서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엿을 먹이고 싶은 놈이 있거든요.”

“내가 널 뭘 믿고?”

왕관 남자는 즐겁다는 듯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음~ 여기서 힌트. 제가 왜 하필 서큐버스 군단에 요괴왕의 장막을 넘겼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팔콘 길드에 넘겼으면 못해도 두 배는 값을 더 받았을 텐데.”

“음, 내가 너무 예뻐서?”

“…….”

사카린의 대답에 세현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답은, 팔콘 길드에 한 방 먹이고 싶어서입니다. 어때요, 확 끌리지 않슴까?”

“싫은데?”

“아 왜 또!”

사카린이 단칼에 대꾸하자 붉은 왕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뭘 믿고 너 같은 수상한 놈이랑 같이해? 신분을 밝힌다면 모를까.”

“그게 좀 개인적인 사정으로 곤란해서…….”

“그럼 동맹도 안 하면 되잖아.”

붉은 왕관, 허세현은 사카린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제길, 너무 안일하게 찾아왔나.”

자신의 기억에 서큐버스 군단은 팔콘 길드와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사이가 나쁘다.

그 때문에 세현은 팔콘을 엿먹이자는 제안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애초의 예상보다 사카린은 경계심이 많았다. 한 길드의 수장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저~기 사카린 님,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는 게?”

“흠,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세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재차 부탁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사카린은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더니 설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설희랑 지인이라고 했지? 설희가 네놈의 신원을 보증하면, 동맹을 생각해 보지. 혹시나 네가 우릴 배신한다면 백설희가 모두 책임지는 걸로.”

“아, 그건 좀.”

세현이 곤란하다고 대꾸하려던 찰나, 설희가 끼어들어 외쳤다.

“네, 제가 보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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