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어떻게 된 거야. 그때 그 몬스터들을 어떻게 네가 소환한 거야?”
“아, 그때? 자작극 벌이느라 죽는 줄 알았지. 저것들 내 소환수야.”
“홀리 쉿,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헨더슨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자리에서 죽는 건 자신들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다 동료들에게 작게 읊조리듯 말했다.
“우리……. 도망칩시다.”
“응? 무슨 개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서 도망쳐야 된다고!”
하지만 동료들은 헨더슨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세현은 한쪽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몽땅 죽여 버려.”
그러자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블랙 폰과 블랙 나이츠가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가 창을 뻗었다.
“미, 미친, 뭐 이리 빠른…….”
콰드득-!
갑작스러운 기습, 한 명의 입주자가 반응조차 하지 못한 체 몸이 세로로 갈라져 버렸다.
골목 안쪽에 피의 분수와 내장이 흩어졌다.
“으아아아아! 이 새끼가!”
콰득-!
이를 본 다른 동료가 무기를 휘두르며 저항해 봤지만, 후방에서 날아든 커다란 화살 한 방이 그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박살 내 버렸다.
“히익, 히이이이이익!”
동료들의 피로 전신이 범벅된 헨더슨은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는 바지를 축축하게 적신 채 입을 벙긋거렸다.
“사, 살려 줘 제발! 나는 가족도 있다고!”
그러곤 곧장 세현에게로 기어가 한쪽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세현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니들이 여태 뜯어먹은, 죽여 온 인간들은 가족이 없냐?”
“다시는! 다시는 그런 짓 안 할 테니까!”
“구라치고 있네.”
세현의 입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 직후-.
“아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헨더슨의 등에서 피가 솟구쳤다.
후방에 대기 중이던 블랙 폰이 그의 등에 창을 박아 넣은 탓이었다.
“개 같은 놈! 개 같은 노오오옴!”
죽어 가는 헨더슨은 눈물 콧물을 짜내며 저주의 말들을 퍼부었다.
“아 거참 시끄럽네.”
콰드드득-!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잡아 뽑아 버리자 그제야 조용해졌다.
“후우-.”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헨더슨의 머리를 대충 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것은 인간 허세현이 처음으로 벌인 살인이었다.
‘살인을 해 놓고도 죄의식이 전혀 안 드는구만.’
그럼에도 죄책감이나 죄의식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면의 억눌린 무언가가 해방된 기분과 함께 쾌감이 전신을 감쌌다.
[인간 따위는 내가 준 힘으로 많이 죽여 봤지 않은가?]
그때. 머릿속으로 하나의 사념이 들려왔다.
“허억!”
“괜찮으십니까, 주군!”
그 목소리에 놀라 뒤로 흠칫 물러나자 세이메이가 세현의 몸을 등에서 받쳤다.
“미안해, 세이메이. 처음엔 적당히 손만 봐 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아닙니다. 주군이 의미 없이 살육을 벌이실 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뭐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야 고맙지.”
흥분했던 머리가 식고, 세현은 바닥에 늘어진 살덩이들을 보며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후우, 그건 그렇고 이걸 뒤처리를 어떻게 한다.”
“그런 일이라면 제게 맡겨 주시지요.”
세이메이는 손으로 허공에 뭔가의 진을 그려내 오니를 소환했다.
놈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자연스럽게 바닥에 너부러진 사체들을 입으로 구겨 넣었다.
오니는 태생 자체가 ‘식시귀’. 놈에겐 고급 요리나 다름없는 입주자의 사체를 마다할 리가 없는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세이메이는 시키가미를 이용해 벽과 바닥에 흩뿌려진 피마저 말끔히 제거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Level 19. 접근
빈 콜라 캔이 수십 개 쌓인 책상.
“움냐움냐.”
창백한 피부에 잠자리 안경을 낀,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의자에 쪼그려 앉아 왼손으로 감자 칩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녀의 이름은 신지영.
그녀는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자신이 만든 영상을 재생시켰다.
[제목: 브레이브킹 ‘샌드웜 사냥’]
“크~ 내가 편집했지만 정말 끝내준단 말이야.”
재생되고 있는 영상은 가면에 왕관을 쓴, 자신을 브레이브킹이라 칭하는 기인의 전투를 담은 것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그의 전투 영상은 신지영의 몸값을 올리고 있었다.
메일을 열면 산더미처럼 쌓인 의뢰 메일과 10배 가까이 올라간 영상 단가가 이를 증명했다.
[Jangbob: 브킹 클라스 오져따리 오져따. 소환수들 겁나 센거 보소 ㅋㅋㅋ]
[Kumtata: ㄹㅇ멋있다. 사슬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소-오-름]
[Dolchen: 솔직히 최은철도 이 정도면 긴장해야 된다고 봅니다. 인정? 어 인정~]
5천만이 넘는 조회수, 수만 개의 리플.
이는 브레이브킹의 인기를 구체적 수치로 증명했다.
“후잉, 언제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단 말이야.”
지영은 브레이브킹을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을 둘째 치고 자신의 삶을 바꿔 준 것에 고마운 마음을 느끼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미 몇 번이고 메일을 통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하지만 그는 일방적으로 영상을 보낼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메일 주소를 단서로 인터넷에서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것조차 가계정인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브레이브킹, 겁~나 잘생겼겠지?”
지영은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최고 미남들의 모습을 매칭시키며 제자리에서 의자를 뱅글뱅글 돌렸다.
그때였다.
띵동-.
“누.구.세~~요? 택.배.가 왔나~?”
지영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몇 개월 전에 예약했던 한정판 미소년 피규어가 배송왔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여기가 영상제작자 신지영 씨 댁입니까?”
“오, 오잉?”
문 앞에 서 있는 건 택배 기사가 아니었다. 검은 정장에 안경을 쓴 거구의 남자가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던 것이다.
“히이익-! 교회 안 다녀욧!”
화들짝 놀란 지영이 반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러자 문이 닫히기 직전, 그 사이로 손바닥 하나가 불쑥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흐읍!”
정장 남자는 고통스러운지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놀란 지영은 곧장 방으로 달려 들어가 호신용으로 사 놨던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어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가, 가까이 오기만 해봐! 아주 뚝배기를 딱-! 소리 나게 쪼개 줄 테니까.”
“하아……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신지영 씨. 잠시 얘기 좀 하시죠.”
큰 덩치에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명함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지영은 폭탄을 건네받듯 손을 바들바들 떨며 그것을 조심스레 빼냈다.
[팔콘 길드 / 인사팀장]
- 정요셉
HP: 010-XXXX-XXXX
“으잉! 파파파, 팔콘 길드으으!”
신지영이 화들짝 놀라며 명함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곤 곧장 스마트폰을 이용해 정요셉에 대한 내용을 검색했다.
산적 같은 덩치에 쥐똥만 한 눈, 안경과 꽉 끼는 검은 정장까지.
눈앞의 남자는 정말로 세계 랭킹 1위 길드 ‘팔콘’의 인사팀장이었다.
“팔콘 길드가 무,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영상 의뢰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팔콘 길드라면 외주 비용도 엄청날 게 분명했다. 지영은 돈방석에 앉은 자신의 미래를 잠시 상상했다.
하지만-.
“아뇨. 그냥 뭣 좀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아. 네.”
짜게 식은 지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브레이브킹’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입주자의 영상을 신지영 씨가 만들고 있는 게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브레이브킹에 대한 정보를 좀 알려 주시죠. 이름, 나이, 사는 곳, 키. 뭐든 좋습니다. 맞는 정보라면 보수를 드리겠습니다.”
“음, 싫은데요?”
“네?”
지영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인사팀장 정요셉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내 VIP 고객 신상을 왜 댁들한테 알려 줘요? 내가 한국 쇼핑몰이야, 은행이야? 나 영상 편집자지, 신상 정보 팔아먹고 사는 사람 아니거든요.”
“금액이 이 정도여도 말입니까?”
정요셉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자 그 위에는 숫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허어어얼~ 0이 몇 개야?’
거기엔 몇 년을 놀고먹어도 괜찮을 정도의 금액이 찍혀 있었다.
신지영은 자신이 브레이브킹의 정보를 1도 모른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최대한 태연한 척 대꾸했다.
“내, 내내 내가! 도, 돈 때문에 고객 신상을 팔 사람처럼 보여요?! 나, 여장부 신지영! 그런 쏴람 아닙니다!!! 나가요 나가!!”
“후회하실 겁니다. 팔콘 길드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놓으시면 앞으로 좋은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씨 이 아저씨가, 지금 나 회유하는 거예요?! 경찰 부르기 전에 빨리 나가요!”
탕-!
지영은 문을 닫고 그대로 주룩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호흡을 크게 하며 가까스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지영은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으로 갔다.
그리고 이메일을 열어 브레이브킹에게 보낼 메시지를 적어 나갔다.
† † †
가마네스의 담수호 위로 보름달이 어스름하게 내리쬐는 깊은 밤.
수십 명 에 달하는 경비들이 한 손에 횃불을 들고 순찰을 돌고 있다.
왠 담수호에 경비가 이리 삼엄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물이 귀한 시즌2 구간에서 이곳은 엄연히 중요한 기간 시설이다.
쿵-!
그러던 중, 밤의 적막을 깨고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빨리 확인해!”
근 서른 명에 달하던 경비원들은 부랴부랴 소리가 난 장소로 달려갔다.
“뭐야 이건?”
“저, 적이다!”
그곳엔 흰색 몸뚱이를 한 3m 가량의 거인이 술이라도 취했는지 제자리에서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리고 있었다.
“거, 겁먹지 마!”
경비병들은 놀란 얼굴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거인을 향해 용감히 무기를 휘둘렀다.
펄~럭-!
“에엥?”
목숨을 건, 용감한 일격!
이에 흰 거인의 몸뚱이가 흩어지더니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떨어졌다.
병사들은 바닥에 떨어진 거인의 잔해를 들어 올려 멀뚱히 쳐다봤다.
“이거…… 종이 아니냐?”
그 시각-.
짙은 어둠이 드리운 담수호 아래.
검은 옷을 입은 두 남녀가 물 아래로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는 커다란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트리톤’이라 불리는 물건으로, 일정 시간 동안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유틸리티형 아이템이었다.
잠시 후 담수호 바닥에 도달한 두 사람은 석판 위에 놓인 손잡이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석판이 옆으로 밀려나며 그 너머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발산되는 새로운 공간이 나왔다.
마법으로 뭔가 결계가 쳐져 있기라도 한 것인지 그곳엔 물이 조금도 들이차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천천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어 착지한 후, 입에 문 트리톤을 빼냈다.
“후우, 도착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주군.”
“고생은 무슨, 이제 시작이지. 일단, 장비부터 갈아입자.”
세현은 인벤토리를 조작해 젖은 옷 대신 ‘요괴왕의 장막’을 장착했다.
혹시나 물에 젖을까 봐 다른 잠시 벗어 뒀던 것이다.
“저…… 주군.”
“응?”
세이메이는 뭔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옷을 갈아입도록 잠시만 자리를 피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미안,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입주자인 세현은 버튼 몇 번 조작하는 것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하지만 세이메이는 실제로 입은 장비를 벗어야만 교체할 수 있었다.
세현은 부랴부랴 자리를 피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