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47화 (47/180)

# 47

47화.

그 직후, 거울 바닥에서 주황색 빛 잔영 수십 개가 일렁이며 솟아나더니 금세 사람의 형체로 변했다.

이들이 바로 시즌2 메인 퀘스트의 핵심 인물인 ‘석양의 추적자’들이었다.

“대마신 ‘샤이탄’의 뒤를 쫓고 있는 입주자인데, 살라웃 아재가 추천장을 줘서 왔슴다.”

세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추천장을 건넸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고양이 가면을 쓴 자가 이를 받아 들고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 샌드웜을 사냥하고 마신 이프리트를 물리친 소환사 영웅이라? 천하의 살라웃 왕자가 칭송할 정도이니 기대되는군.”

“다~ 운빨이죠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좋아, 그럼 그게 운이었는지 아닌지 테스트해 보지.”

고양이 가면은 별안간 품속에서 두 자루의 클로를 꺼냈다.

세현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서양으로 넘어와 ‘어쌔신’이라는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암살자 영웅 ‘하사신’. 이것이 대마신 ‘샤이탄’을 쫓고 있는 고양이 가면의 정체였다.

“제한 시간은 5분, 내게 한 번이라도 공격을 성공시키면 ‘석양의 추적자’는 당신을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아, 당신이 소환사라 들었으니 소환물을 쓰는 건 자유야.”

그 순간, 세현의 눈앞에 메시지 박스가 출력됐다.

[#. 메인 퀘스트 / 하사신의 시험]

- 5분 내로 석양의 추적자의 지도자 ‘하사신’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라.

▶ 퀘스트 보상: 타이틀 ‘석양의 추적자’.

민첩 +3

[수락하기]

‘후우…… 어떻게 요리를 해 볼까.’

세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퀘스트 수락이야 당연히 할 테지만 머릿속에 두 가지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소환수를 모조리 동원해 하사신을 때려눕히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이 직접 1:1로 그녀와 부딪혀 승리하는 것이었다.

여느 모로 봐도 첫 번째 방법이 상책이다.

하지만-.

‘내 자체의 전투력이 어느 수준인지 점검해 볼 필요도 있어. 항상 소환수에만 의지하면 정작 위기 상황 때 대처도 불가능할 거고.’

시즌1의 마사무네와 퀘스트 내용이 비슷한 듯하지만, 하사신은 퀘스트에 도전하는 입주자를 죽이지 않는다. 이는 세현의 전투 능력을 측정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물론 하사신이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F급 시절의 세현이 하사신을 상대로 인정을 받아 낸 것은 60레벨 중반쯤, 그것도 4~5번의 재도전을 거친 끝에야 이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정도였다.

“좋슴다, 한 수 부탁할게요.”

결심을 내린 세현은 [수락하기] 버튼을 터치한 후,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갖췄다.

세현은 ‘백염의 송곳니’를 양팔로 단단히 붙잡고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 반면, 고양이 가면은 여유 가득한 태도로 제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하아압!”

세현은 전신의 마나를 발끝에 집중시켜 튕기듯 앞으로 내달렸다.

맹렬한 기세와 함께 양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장창 백염의 송곳니가 고양이 가면의 흉부를 빠르게 꿰뚫었다.

“해, 해냈습니다, 주군!”

이를 본 세이메이가 환호를 질렀지만 세현은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꿰뚫었다 생각한 고양이 가면이 아무런 무게감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환사라 들었는데 창을 다루는 움직임도 뛰어나군, 어지간한 전사들보다 낫겠어.”

허공에 하사신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곤 조금 전 찌른 몸뚱이가 스멀스멀 녹아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봤을 때, 바닥 위에는 수십 개의 고양이 가면이 세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중 하나만 진짜라 그거지.’

세현은 거울 바닥을 내려다봤다. 수많은 분신 중 단 하나만이 거울에 그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필시 그것이 하사신의 본체일 터, 세현은 바닥을 보며 그녀를 쫓았다.

“술래잡기 재미있지! 나도 아주 좋아해!”

세현은 다시 돌진했다. 거진 50~60레벨 근거리 딜러 클래스에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여태 획득한 많은 수의 타이틀들이 세현의 스펙을 끌어올린 덕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하사신에게 따라붙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게 땅만 쳐다봐서는 발끝에도 닫지 않을 텐데.”

고양이 가면은 돌진하는 세현의 정수리를 사뿐히 즈려 밟고 반대편으로 깃털처럼 가볍게 뛰어 올랐다.

‘남은 시간 3분. 지금 속도로 따라잡는 건 힘들겠고.’

정수리를 밟혔다는 것과, 순수한 육체 능력만으로 시험에 통과할 수 없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세현은 언제나 그렇듯 차분히 머리를 식히며 다음 수를 떠올렸다.

‘이거라면 해볼 만하다.’

소환수를 사용하지 않고 한 방 먹일 수 있는 작전 몇 개가 머리에 그려졌다.

세현은 그중 확률이 가장 높은 최상의 수를 선택했다.

“이번엔 진심으로 갑니다. 다칠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요 ‘하사신’ 아줌마.”

“음, 내 이름을 어떻게……”

세현은 당황하는 고양이 가면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하아아아!”

세현은 함성을 내지르며 장창을 있는 힘껏 앞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방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무기를 버린다는 것, 보통의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게 무슨!”

하사신은 놀란 목소리로 외치며 몸을 왼쪽으로 비틀어 처음 날린 창을 피했다.

하지만 그 직후, 곧장 들어온 세현이 다시 창을 찔러 왔다.

채앵-!

가까스로 그녀는 세현의 공격을 받아 냈다.

“창이 두 자루였군!”

“한 자루만 쓰라는 법은 없으니까?”

세현은 블랙 폰에게 장착해 놨던 창을 인벤토리에 미리 넣어 놓았다. 그리고 이를 인벤토리에서 소환해 곧장 쓴 것이었다.

나름 좋은 시도였기에 쉽게 막혀 버린 게 조금은 아쉬웠다.

“흐아아압!”

세현은 쉴 새 없이 창을 휘둘렀다.

찌르기, 발차기, 심지어는 주먹까지.

공격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페인트를 섞어 퍼부었다.

하사신은 이를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빠져나가며, 종종 분신으로 공격을 가해 시선을 분산시켰다.

“입주자, 왜 소환수를 쓰지 않는 건가?”

그녀가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세현은 이때다 싶어 허공을 빠르게 찔렀다.

퍼엉-!

하지만, 그녀의 발끝에서 순간 전기가 뿜어지며 다시 한 번 몸이 위로 떠올랐다.

‘쿠자이의 발!’

천둥신 쿠자이의 힘이 담긴 신발 ‘쿠자이의 발’. 하사신은 그것의 능력을 사용해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도약한 것이었다.

그녀는 세현의 머리 위에 사뿐히 올라타더니 살짝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소환수를 꺼내라.”

“싫거든~!”

아무래도 소환사인 세현이 소환수를 꺼내지 않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현도 한 고집하는 성격이기에 그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세현은 순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면 머리 위에 서 있는 하사신이 중심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하사신은 몸을 살짝 휘청거린 후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도약했다.

세현은 그 타이밍에 맞춰 그녀의 등을 향해 창을 던졌다.

“소용없는 짓이다.”

퍼엉-!

물론 하사신은 이번에도 쿠자이의 발로 공중을 차고 이를 가뿐히 피해 냈다.

“소용 있을 걸.”

세현은 그를 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을 벗어 손가락에 빙글빙글 돌려 곧장 전방으로 날렸다.

왕관이 추락하고 있는 하사신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무슨 짓을!”

빠아아악-!

파열음과 함께 그녀의 고양이 가면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가면 속에 감춰져 있던 주황빛 머리가 공중에 흩날리며 구릿빛 피부를 가진 건강한 느낌의 미녀가 얼굴을 드러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하다니.”

예상치 못한 기습에, 하사신은 당황한 듯 입을 벙끗거렸다.

고개를 들자 그녀의 시야에 손가락으로 V자를 해 보이는 허세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때, 왕관 공격 쓸 만하지?”

“인정할 수밖에. 소환사가 소환술조차 쓰지 않고 내 가면을 벗겨 내다니.”

하사신은 애초에 그가 왕관을 쓸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분했지만, 세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석양의 추적자’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보상: 민첩+3

그녀는 몸을 털고 일어나 세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다란 딘 하사신’. 대마신 샤이탄의 뒤를 쫓는 ‘석양의 추적자’의 칼리파요.”

“브레이브라고 불러 줍쇼~!”

두 사람은 서로 통성명을 한 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샤이탄을 죽이는 게 당신들 목표지?”

“그렇다. 대마신 샤이탄의 힘은 이 세계의 백성들을 도탄에…….”

“아아, 잡설은 생략하고. 뭘 도와주면 됩니까?”

“샤이탄은 실체가 없는, 악의 정점에 있는 반신과도 같은 자. 인간의 힘으로 제거하기 위해선 먼저 그를 약화시키고 힘을 모아야만 하지.”

“알아요 알아~ 그래서?”

“자네가 우릴 도울 방법은 두 가지가 있네. 샤이탄을 섬기는 이교도들의 신전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모으거나.”

세현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몬스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쪽의 퀘스트가 유리하겠지?’

세현은 약 2주 후, 민들레 씨앗 레이드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퀘스트 동선을 짜야만 했다.

“이교도의 신전을 파괴하는 쪽이 좀 땡기는데.”

“전투를 선호하는 모양이군. 뭐 좋아, 그럼 이곳에서 가까운 가다메스에서 우리 단원을 접촉해 정보를 받도록 하게.”

세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메시지 창이 출력 됐다.

[#. 메인 퀘스트 / 대마신의 추종자들(1/3)]

- 13층의 마을, <가다메스>에서 석양의 추적자 정보책을 만나 ‘샤이탄의 추종자’들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적정 레벨: 50

[수락하기]

수락하기 버튼을 터치한 후 곧장 가다메스를 향해 이동했다.

† † †

공기조차 희박한 아파트의 정상, 어지간한 빌딩 하나의 크기를 상회하는 거대한 민들레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민들레의 줄기 부분에 위치한 거대한 연구실.

이곳은 ‘씨앗’에 실어 보낼 괴물을 만드는 이른바 ‘시드메이커’라 불리는 관리인들이 머물고 있다.

이곳은 수백여 개의 유리관이 들어차 있어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런 연구실 구석에 놓인 회의실. 10명의 시드메이커들은 이곳에 모여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씨앗에는 어떤 놈을 넣어야 하려나…….”

“그 크라켄인지 뭔지 하는 놈을 모티브로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나는 해산물은 질색이야.”

온몸에 이끼가 낀, 골렘을 연상시키는 시드메이커가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이름은 ‘스핀쿨러’. 시드메이커들의 팀장을 맡고 있는 관리장이다.

그는 약 2주 후 날려 보내야 할 씨앗에 어떤 괴물을 태울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3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쓸데없는 걱정처럼 보이겠지만 이들에겐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이 씨앗을 날리는 것은 모든 관리인의 주인 ‘두 개의 의지’를 위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쇼다.

그 때문에 그녀들을 만족하게 할 근사한 괴물을 만들어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시드메이커들의 입지가 작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니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서 이건 어떻습니까?”

분위기가 한 창 침울한 때, 시드메이커의 막내가 밝은 얼굴로 자신이 생각한 괴물의 그림을 선보였다.

거기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스파게티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막내야, 그건 뭐냐?”

“FSM(플라잉 스파게티 몬스터)라는 종교의 신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이게 유행이래요! 공격 패턴은 몸의 스파게티를 촉수처럼 날려서 공격하고, 미트볼 폭탄을 날려서 범위 공격을…….”

“누가 쟤 입 좀 틀어막아라.”

스핀쿨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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