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화.
[블랙 나이츠 / 레벨 1 > 레벨 4(이)가 됐습니다.]
[블랙 나이츠 / 레벨 4 > 레벨 8(이)가 됐습니다.]
레벨과 함께 블랙 나이츠의 스텟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나이츠는 구울들 사이를 메뚜기처럼 펄쩍펄쩍 뛰어나며 전장을 휘저었다. 그 덕분에 세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한숨을 덜 수 있었다.
그때, 보스 자울라눈이 분노했는지 이를 빠득며 읊조렸다.
<이런 쥐새끼 같은 것이…. 까불지 마라!!!>
그는 온몸에서 보랏빛 연기를 뿜어내더니 그것을 무수히 많은 검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족히 수백 자루는 돼 보이는 연기 검이 블랙 나이츠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이미 10레벨을 넘어간 블랙 나이츠는 아득히 빠른 속도로 모든 검을 피해 냈다.
가끔 한두 자루가 진행 방향으로 들어오면 양팔로 ‘백염의 송곳니’를 휘둘러 가볍게 쳐 냈다.
그리고 심지어는.
콰득-!!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던 자울라눈의 몸뚱이에 일격을 가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엔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핏줄이 선명하게 일기 시작했다.
<이 내가 천한 것들에게 무슨 망신을…….>
데미지는 크지 않았지만 공격을 허용했다는 것 자체가 놈에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자울라눈은 모든 보랏빛 연기를 회수해 블랙 나이츠에게 집중시켰다.
계속 되는 십자포화, 하지만 블랙 나이츠는 모든 공격을 피해 내며 계속해서 놈의 신경을 긁었다.
그렇게 시간은 서서히 지나가 이윽고 5분이 모두 지나갔다.
“어이!! 돌아왔네!!!”
성벽 너머에서 사막유령 단장이 나타났다.
그의 오른손에 붉은 뱀이 똬리를 튼 듯 칭칭 감겨 있는 특이한 디자인의 램프가 들려 있었다.
“자, 술탄! 이제 봉인될 시간이다!!”
단장이 램프를 앞으로 내밀자 자울라눈이 내뿜는 보랏빛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빨려 들었다.
<무, 무슨 짓이냐……!>
놈이 포효하며 주변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구울들 또한 명령을 받고 단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세현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막아야 해! 단장을 지켜!”
살아남은 사막 유령단원과 세이메이, 소환수들이 단장의 앞으로 달려들어 겹겹히 벽을 만들었다.
“버텨어어어어어!”
가장 앞에서 두 마리 오니가 구울 떼를 막아서며 방패 역할을 했다.
사막 유령들은 틈 사이사이로 시미터를 찔러 넣어 놈들을 떨쳐 냈고, 세현의 소환수들은 구울 무리의 중심으로 들어가 최대한 진형을 흩트려 놓았다.
<끄어어어어……!! 내가 이렇게!! 이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이윽고 자울라눈의 몸뚱이는 붉은 램프 안으로 완벽히 빨려 들어갔다.
[메인 퀘스트 뱀과 술탄의 노래(3/3)를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지니 봉인자’를 획득했습니다! 지능 +3 ]
[축하합니다! 허세현 님이 11층의 클리어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음성이 들린 직후-.
광기 가득했던 구울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제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하나둘씩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이건.”
“내! 내 몸에 피가!”
“꺄아아아아악!”
정신을 되찾은 군중들은 자울라눈에게 의식을 지배당하는 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경악했다.
사형장 내부에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혼란이 퍼져 나갔다.
그때 사막유령 단장은 술탄, 자울라눈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곳을 지배하던 술탄은 마신 지니 일족의 상급 마신인 이프리트 중 하나였소! 여러분은 조금 전까지 그의 환술에 걸려 끔찍한 짓을 저질렀소.”
그는 뱀 모양 붉은 램프를 위로 힘껏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술탄은 이 마법 램프에 봉인됐소. 지금 여러분이 정신을 되찾은 것이 그 증거요!”
연설을 듣고 있던 군중들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애초에 반역자로 불렸던 것이 ‘사막유령단’이기에 오해를 단번에 푸는 것은 어려웠다.
“너는 누구야!”
“정체를 밝혀라!”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은 금세 유령 단장에 대한 원성으로 바뀌었다.
단장은 자신이 쓴 가면과 로브를 벗어던지며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나는 몰락한 발리파 가문의 첫째 왕자 ‘발리파 이븐 살라웃’이라고 한다!”
그의 상체에는 사자를 형상화시켜 놓은 듯한, 휘황찬란한 문신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와, 왕자님!”
“진짜 왕자님이시다!”
그러자 군중들은 놀란 목소리로 웅성대더니 이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세현은 벙찐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러자 단장, 아니 살라웃 왕자가 세현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와 근사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고맙네, 덕분에 거사를 치를 수 있었어. 자네는 진짜 영웅이야.”
“하…… 영웅이고 나발이고 덕분에 죽다 살았다고 이 아저씨야.”
“하하, 미안하네. 내 보상은 똑똑히 확실히 하도록 하지.”
“보상이라면?”
“내가 이래 봬도 왕족인지라 자네 같은 입주자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 있다네.”
“오오! 그럼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세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Level 16. 동창회
퀘스트가 일단락된 후 살라웃 왕자는 세현을 자신의 아지트로 이끌었다.
아지트는 골목 깊은 곳, 허름한 음식점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장소였다.
얘기를 듣자 하니 음식점 주인이 왕족 신하 중 한 명이라는 모양이다.
전생에는 이 루트로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아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자,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보게.”
왕자는 낡은 상자를 들고 와 세현의 앞에 턱 하니 내려놓았다. 상자를 열자 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어떤가?”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금빛 자수가 놓인 신발과 세현의 쓴 것보다 화려하게 장식된 붉은색 왕관이었다.
[#. 신발 / 쿠자이의 발]
- 천둥 신 쿠자이의 발, 그가 지나는 곳엔 천둥소리가 가득 남는다고 한다.
희귀도: 유니크(C)
레벨 제한: 25
방어력: 150
▶ 추가 옵션 (세트 효과)
- 천둥을 밟는 자 (MP 200 소모): 천둥을 내뿜어 공중을 박차고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최대 1회)
- 천둥을 차는 자 (MP 200 소모): 천둥을 내뿜는 강력한 발차기를 날립니다.
‘쿠자이의 발이라.’
쿠자이의 발. 신발에서 천둥을 내뿜어 공격하거나 공중에서 2단 점프를 뛸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었다.
시즌5 구간에서 상위 호환인 ‘헤르메스의 장화’가 나온 후론 가치가 떨어지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대체재가 없다.
이것만 있다면 공중에서 활동 범위가 넓어지기에 훨씬 입체적인 전투가 가능하다. 근접 전투가 뿐 아니라 적들과 거리를 벌려야 하는 원거리 타입, 서포터 타입들에게도 큰 시너지를 내는 물건이다.
‘지금 나한테는 좀 아쉽지.’
문제는 현재 세현의 클래스가 위에서 언급한 것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브레이브킹’은 ‘소환사’ 타입. 소환수를 앞세워 전투를 이끌어 가는 게 정석이다.
물론 세현의 경우 워낙 전투 센스가 뛰어나기에 종종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 액세서리 / 잊혀진 왕의 왕관]
- 지금은 잊혀진 왕의 왕관, 선택을 받은 자만이 왕관의 온전한 힘을 끌어낼 수 있다.
희귀도: 유니크(C)
레벨 제한: 30
방어력: 10
▶ 추가 옵션 (사용자의 클래스가 ‘왕’일 때만 발동.)
- 왕의 함성 (MP 200소모): 함성을 내질러 주변 아군의 사기를 북돋습니다. 범위 내 소환수의 이동속도가 20초간 30% 향상됩니다.
‘오? 이거 나한테 딱인데?’
아군 이동속도를 20초간 30% 상승시키는 ‘왕의 함성’은 소환수를 부리는 입장에선 꽤 유용해 보였다.
하지만 사용자의 클래스가 ‘왕’일 때만 사용 가능하다는 제약 조건이 마음에 걸렸다.
“살라웃 아저씨, 이 왕관 혹시 한 번 잠깐만 써 봐도 됩니까?”
“뭐 그러게, 써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
세현은 일단 블랙 폰 하나를 소환한 후, 왕관을 머리에 얹고 왕의 함성을 사용했다.
“아아악!”
콰드드득-!
입에서 포효가 뿜어지더니 주변에 충격파가 일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살라웃 왕자가 뒤로 넘어졌고, 건물 전체가 일순간 흔들렸다.
[왕의 함성의 효과가 20초간 적용됩니다!]
“오오오오, 된다 돼!!”
메시지가 들려온 직후, 세현은 블랙 폰을 움직이게 해 봤다. 눈에 띄게 빨라진 것이 느껴졌다.
세현은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이런 아이템이라면 당연히 써 줘야지.’
세현의 클래스 ‘브레이브킹’은 이 아이템에서 지칭하는 ‘왕’에 해당하는 모양이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자네 대단하군, 그 왕관은 진정한 왕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전설이 있는데 말이야.”
“아, 그게…… 그러니까…….”
귀찮아 지는 것이 싫어 변명거리를 찾으려던 찰나.
왕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꼭 그런 것도 아니었나 보군. 소환수를 부린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모양이야.”
“아아, 뭐 그런가 보네. 뭐 어쨌든, 난 이 왕관이 마음에 들어요.”
“그래, 알겠네.”
살라웃 왕자는 기꺼이 잊혀진 왕의 왕관을 건넸고 세현은 머리의 붉은 왕관을 이것과 교체했다.
마사무네에게 가져다준 후, 도색을 해서 붉은색으로 만들어 쓰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살라웃 아저씨는 샤이탄에 대해서 아는 것 좀 없어요?”
세현은 시즌2 마지막 보스인 샤이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의도치 않게 메인 퀘스트 루트가 꼬일 수도 있기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 놓고 싶기 때문이었다.
“흠, 그가 매우 사악하며 마신들의 왕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잘 모르겠군…… 자네, 샤이탄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조금?”
“하하하하! 역시 영웅다운 기상이군! 좋아, 사내라면 모름지기 그 정도 포부는 있어야지.”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왕자는 품속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 세현에게 건넸다.
“이건 뭡니까?”
“내 추천장이네, 이걸 가지고 ‘석양의 추적자’라는 조직을 찾으면 자네를 도와줄 거야. 우리 ‘사막유령’도 이들에게 많은 도움과 조언을 받았다네.”
‘오, 석양의 추적자? 다시 제대로 된 루트를 탈 수 있겠는데.’
<석양의 추적자>.
그들은 지니, 이프리트 같은 마신들의 최정점의 선 대마신 ‘샤이탄’을 쫓는 비밀 조직이다.
시즌2 메인 퀘스트의 경우, 11층이 일종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그들을 만나는 것이 보통의 흐름이었다.
“고마워요, 살라웃 아재.”
세현은 흡족한 미소와 함께 그의 추천장을 받아 들었다.
† † †
“이건 전자레인지고, 옷은 저 박스고……. 책상은 마지막에 배치하자.”
세현은 분주히 움직이며 방 안에 널린 물건들을 정리했다.
얼마 전, 부동산에 내놓았던 방이 빠져 본격적으로 아파트 8층집에 이사를 왔다.
월세도 아끼고, 동선 낭비를 줄일 수 있는 1석 2조의 효과였다.
물론 오늘 이사는 좀 고생스러웠지만, 소환수들을 이용한 덕분에 그닥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청소 끝! 으자자자. 좀 쉬자, 세이메이.”
“넵, 주군!”
짐 정리가 끝나고, 세현은 세이메이와 함께 방을 한 번 싹 청소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간만에 부지런을 떨었더니 괜히 피곤한 느낌이었다.
세현은 지쳤다는 발을 꼼지락거리며 새하얀 천장을 바라봤다.
“하아,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고아 출신의 허세현.
남들보다 못한 악조건이지만 이를 악물고 평생을 바득바득 살아왔다.
일용직을 전전하며 돈을 모으고 밤에는 잠을 줄여 공부했다.
그래서 대학을 갔고 체육 선생님이라는 꿈을 꿨다.
물론 지금은 그 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번듯한 집에서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소한 감동이었다.
괜히 붉어지는 눈시울에 세현은 코를 훌쩍였다.
지이잉-!
그때, 바닥에 대충 던져둔 스마트폰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