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42화.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빙빙 돌리지 말고 요점만 말해.”
[물론 아직 내 힘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 일부를 네게 빌려줄 순 있지.]
“네 힘을 빌리면 그 대가는 뭔데?”
[잡담은 여기까지 하지, 슬슬 일어날 시간이야.]
“야! 말 돌리냐? 야! 대답해!”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모래시계가 금빛 섬광을 사방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눈이 부신 탓에, 세현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오른손으로 그 위를 덮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허세현 님이 ‘인스턴트 던전-사형장’에 입장합니다.]
“일어나라!!!”
촤아-!
“아아악!”
벼락같은 불호령과 함께 차가운 감각이 몸을 때렸다.
세현은 발작하듯 소리를 지르며 정신을 차렸다.
온몸은 축축이 젖었고 앞에는 사형집행인으로 보이는 근육질의 남자가 구속구를 붙잡고 세현을 개처럼 질질 끌었다.
“죄송합니다, 입주자 나으리. 괜히 저 때문에 이 꼴이 됐군요.”
고개를 돌리자 퀘스트를 의뢰했던 노인이 세현과 같은 차림을 한 채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아, 사형장에 가는 거군.’
잠시 후, 위로 솟은 목책 위에 밧줄이 달린 사형장이 세현과 노인을 반겼다.
그 건너편엔 마치 콜로세움 같은 형태의 광장에 수많은 군중이 들어차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적이다!!”
“죽여라!”
거진 수천 명은 되는 사람들이 뭔가에 화가 난 듯 악을 쓰며 야채니, 돌이니 하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던지고 있었다.
퍽-!
“아아! 아파 이 새끼들아!”
그러던 중, 계란 하나가 세현의 머리에 맞아 더벅머리 아래로 줄줄 흘러내렸다.
거지나 다름없는 몰골은 둘째 치고, 비릿한 냄새와 끈적한 액체가 입으로 흘러내리니 기분이 더할 것 없이 더러웠다.
‘저것들 다 패 죽일까?’
세현은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이 괴로운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렇게 옷이 야채와 계란으로 범벅이 될 무렵, 사형대 반대편에 놓인 단상에서 중동의 마술사 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외쳤다.
“술탄님이 입장하십니다!”
그의 목소리엔 마력이 깃든 것인지 쩌렁쩌렁하게 사형장 전체에 울렸다.
군중들을 일순간 침묵했고 곧이어 요란한 의장대의 악기 연주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멧돼지같이 생긴 술탄이 하인들의 등을 계단 삼아 단상 위로 뒤뚱뒤뚱 걸어 올라왔다.
“술탄님!!!”
“한 번만 이쪽을 봐 주십시오, 술탄님!”
군중들은 아이돌 콘서트에라도 온 것처럼 술탄에게 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그들이 눈동자가 붉은 기운을 내뿜었는데 이에 세현은 의아한 생각을 품었다.
‘요술사가 미혹술 같은 걸 쓴 건가.’
정황으로 추측하건대, 소문과 달리 11층의 술탄은 기본적으로 성군이라고 할 만한 위인이 못됐다.
그런데도 군중의 반응이 저런 것을 보면 뭔가의 술수를 쓰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자, 이제부터 판결을 내리겠다.”
술탄은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활짝 펼쳐 읽기 시작했다.
“저기 저 두 역적은 며칠 전! 내게 도움이 필요하다며 성에 들어왔다. 나는 도움을 주고자 이들을 성에 들였고 성대한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했다. 하지만! 저놈들은 내 호의에도 불구하고 나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그래서 엄밀한 조사해 본 결과! 저놈들이 ‘사막유령단’과 관련이 있는 것을 밝혀냈다.”
“사막유령단이라…… 그거 하난 맞췄네, 이제부터 그놈들이랑 관련 있을 예정이거든.”
세현의 입꼬리를 싱긋 올렸다.
“자, 사형을 집행해라!”
술탄의 명령이 떨어지자 옆에서 대기 중이던 사형집행인이 세현과 노인의 등 뒤에 칼을 들이댔다.
“의자 위로 올라가라.”
두 사람은 순순히 밧줄 아래 놓인 나무 의자 위에 올라갔다.
세현은 양팔로 밧줄을 붙잡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좋아, 사막유령단인지 뭔지 빨리 좀 나와라.’
잠시 후, 술탄이 손을 들어 올리자 사형집행인이 나무 의자를 힘껏 걷어찼다.
순간 목에 밧줄이 파고들었고, 두 사람은 입에서 컥컥하는 소리를 내며 버둥댔다.
그 위로 군중들은 또다시 돌멩이나 과일 등을 던져 댔고, 두 사람의 몸은 만신창이가 돼 갔다.
‘제기랄, 스킬 써야 되나!’
버티는 것이 슬슬 힘들어 질 때쯤.
퍼엉-!
관중이 던진 돌멩이 중 하나가 공중에서 터지더니 순간 일대를 연기로 가득 메웠다.
“콜록콜록! 뭐, 뭐야!”
“죄수들을 잡아라!”
여기저기서 당황한 병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세현은 기다렸다는 듯 폰을 소환해 자신과 노인의 목에 밧줄을 썩둑 베어 냈다.
땅에 털썩 떨어진 두 사람은 연신 기침을 해 대며 몸을 추슬렀다.
그러던 중, 연기의 저편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이곳을 향해 곧장 달려왔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아아아아악!”
그림자들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병사들의 비명이 가까워졌다.
이윽고 그들은 연기를 뚫고 세현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두 사람! 빨리 이 옷을 입고, 가면을 쓰게나.”
그는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검은 가면과 로브를 건넸다.
두 사람은 잠시 고민하다 그것을 서둘러 입었다.
“당신이 사막유령단인지 뭔가 하는 그건가?”
세현의 질문에 검은 가면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가면을 살짝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보였다.
“안녕하신가, 영웅 입주자 씨.”
“아, 역시 당신이구만.”
“그래, 예전에 말했잖나? 언제 한 번 같이 일하자고.”
“일은 무슨, 나는 뺑이만 쳤구만.”
오른쪽 눈에 큼지막하게 흉터가 나 있는 30대 초 중반의 남자. 샌드웜 지옥으로 가는 관문의 수문장이자 조금 전 감옥에서 세현을 흠씬 두드려 팼던 남자였다.
그는 입꼬리를 씨익 추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자네 여자 친구도 같이 왔어.”
“여, 여자 친구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세이메이냐?”
“죄송합니다, 주군.”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을 볼 순 없지만, 민망해하는 감정이 그 너머로 전해졌다.
“자자, 로맨틱한 재회는 나중으로 미루자고. 병사들이 몰리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야 해.”
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가면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닌자같이 기민한 동작이 그들이 얼마나 숙련된 전사들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세현은 그 뒤를 따랐고, 블랙 폰은 노인을 품에 안고 내달렸다.
도중에 술탄의 병사들이 공격을 해 왔지만 검은 가면들은 능숙한 검 솜씨로 그들을 베어 내며 돌파했다.
그렇게, 이들은 사형장의 정문에 금세 다다랐다.
탈출을 앞둔 그때였다.
<이 천한 것들이!!!>
천지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사형장을 가득 메운 연기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러곤 앞쪽에 보랏빛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 딱딱하게 굳어져 문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검은 가면들이 그 위로 검을 휘둘렀지만 애꿎은 검날만 상할 뿐, 보랏빛 벽은 꼼짝도 하질 않았다.
“이게 무슨…….”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시뻘게진 술탄이 죽일 듯한 눈으로 모두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들이 사막 유령단인지 뭔가 하는 쥐새끼들인가 보군. 안 그래도 날파리처럼 거슬렸는데 이 자리에서 다 도륙을 내 주마.”
그의 손에는 자수정을 깎아 만든 것 같은 램프가 들려 있다. 그것의 주둥이에서 보라색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음악! 음악을 크게 울려라!!”
그가 외치자 군중들 사이에서 보랏빛 로브를 입은 요술사들이 일제히 품속에서 기다란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칠판을 긁는 듯한 기이한 음색을 뿜어냈다.
세현과 사막 유령들은 불쾌한 감각에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군중들에게 저 음악은 단순히 불쾌한 정도가 아닌 모양이었다.
“끄어어어억!!”
“사, 살려 줘!”
군중들은 고통스러운 듯 입에서 침을 흘리고, 눈을 뒤집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곤 잠시 의식을 잃더니 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좀비라도 된 것처럼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고, 온몸의 관절도 기괴하게 뒤틀렸다.
세현은 상태 창을 띄워 그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 일반 몬스터 / 구울]
- 아랍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인간의 육체를 닥치는 대로 섭취한다.
등급: 일반(F)
레벨: 30
생명력 / 마나: 3200 / 100
“저 피리소리가 사람을 구울로 만드는 모양인데.”
“그렇군, 술탄은 그런 술법까지 부릴 수 있는 것인가…….”
세현의 말에 사막유령들이 흠칫 놀라 대꾸했다.
“어째요? 다들 구경만 할 겁니까?”
“그럴 리가, 일단 요술사들을 먼저 제거합시다!”
이 말을 뱉자마자 20여 명가량의 사막유령들이 군중들 사이로 빠르게 섞여 들어갔다.
구울로 변한 군중들이 게걸스레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사막유령들은 그때마다 시미터를 기민하게 휘두르며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켰다. 숭덩숭덩 구울들이 잘려 나가며 전방에 활로가 열었다.
이들의 무력 수준은 못해도 40대 초 중반의 입주자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요술사들에게 접근했을 때 발생했다.
“뭐, 뭐야 이건!”
목을 베어 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요술사들의 몸뚱이가 보라색 연기가 되어 뭉게뭉게 흩어졌다.
그 직후, 연기들은 다시 뭉치더니 거대한 문어 다리처럼 변이해 사막유령들의 몸을 옭아맸다.
“아아아아아악!!”
다행히 몇 명은 동료들이 화살이나 암기를 날려 문어 다리를 해체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막유령들에겐 지옥이 기다렸다.
그들의 몸이 묶이자 주변의 구울들이 기다렸다는 듯 팔과 다리를 산채로 뜯어 댔기 때문이었다.
“아하하하하! 네깟 놈들이 정말로 짐을 어찌할 수 있으리라 생각 한 거냐!”
그 모습을 보던 술탄이 즐거운 듯 외쳤다.
보라색 연기가 빠르게 그의 손에 들린 램프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상황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사막유령단 단장은 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외쳤다.
“술탄! 당신은 사악한 요술로 무고한 백성들을 세뇌하고 악행을 저질러 왔소! 우리 사막유령단은 신을 대신해 그대를 심판할 것이오.”
“뭐? 신이라고? 아하하하하!!”
술탄은 미친 사람이라도 된 마냥 악당 웃음을 뱉어냈다. 그러자 램프에서 뿜어 나온 보라색 연기가 그의 눈, 코, 입, 귓구멍으로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 그의 형태를 변이시켰다.
<천한 것들은 정말 똥오줌을 못 가리는구나!>
잠시 후, 그는 거대한 마신 지니로 완벽히 변 해있었다.
<내가 곧 신이니, 너희들은 응당 나의 말을 따라야 한다!>
[메인 퀘스트 ‘뱀과 술탄의 노래(2/3)’를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빨갱이’를 획득했습니다.]
- 보상: 체력+1
[새로운 메인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 메인 퀘스트 / 뱀과 술탄의 노래(3/3)]
- 술탄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를 쓰러뜨리고 성을 해방해라. 노인이 죽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적정 레벨: 45
▶ 보상 : 타이틀 ‘지니 봉인자’
- 지능: +3
[수락하기]
세현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수락하기를 누른 후, 술탄의 상태 창을 열어 스텟을 확인했다.
[#.보스 몬스터 / 자울라눈]
- 지니 일족의 상급 마신인 이프리트. 보라빛 연기를 다루는 요술에 능수능란하다 알려져 있다.
등급: 유니크(C)
레벨: 50
생명력 / 마나: 13000 / 15000
‘시즌2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50제 유니크 보스를 상대해야 되는 거냐…….’
보통 시즌 2 초입부 몬스터들의 레벨이 30~35 사이를 오간다.
그런데 갑자기 50레벨 유니크 보스가 나온다? 눈앞의 자울라눈이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저기 저 구울들도 문제야.’
놈의 주변에는 군중을 세뇌시켜 만든 수천 마리의 구울이 있었다.
아무리 세이메이와 세 마리의 폰, 그리고 사막 유령들이 함께해도 지금의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였다.
‘이건 작위 수여를 써도 힘들어.’
세현은 최대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자울라눈은 틈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