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41화.
[‘침묵의 구속구’에 걸린 봉인 마법이 허세현 님에게 ‘침묵’ 효과를 걸었습니다.]
[허세현 님은 ‘스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허세현 님은 ‘인벤토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침묵 효과, 이는 스킬과 인벤토리의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태 이상을 말한다.
그건 폰 소환을 이용해 이곳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뜻했다.
“제기랄!! 이거 뭔데!!!”
세현은 답답한 홧김에 욕지거리를 뱉으며 애꿎은 벽을 양팔에 묶인 구속구로 퍽퍽 내리쳤다.
그렇게 감옥 안에서 한참 발광하고 있을 때, 감옥 복도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 혹시 샌드웜 퀸을 쓰러뜨렸던 영웅님이십니까?”
“댁은 누구쇼?”
“당신에게 퀘스트를 의뢰했던 자입니다. 저도 이곳에 갇혀 있습니다.”
“아, 그 할아버지?”
손녀딸을 찾기 위해 샌드웜 지옥에 가는 걸 의뢰했던 노인인 모양이었다.
“당신은 어쩌다 여기 와 있는데요?”
“술탄께서 저를 찾는다 하여 따라서 성 쪽으로 이동하다 괴한에게 습격당했습니다. 정신을 잃고 눈을 떴더니 이곳에……”
‘역시 그랬구만?’
세현은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대강의 흐름을 이해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할아버지, 그동안 술탄이랑 손녀, 할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얘기 좀 다 해 봐요.”
“네? 그건 왜…….”
“다 쓸 데가 있어서 그러니까 말해 봐요. 여길 빠져나가는 데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 그럼…….”
세현의 다그침에 노인은 자신이 그간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손녀딸이 어떻게 실종되었으며, 술탄과 자신의 사이는 어떠했으며, 또 어쩌다 샌드웜 퀸을 찾아가게 됐는지까지 말이다.
‘음, 그런 거였구만.’
세현이 생각을 정리하던 중-.
복도 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죽을 놈들끼리 오손도손 사이가 좋구나.”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세현의 앞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비대한 체구의 중년 남자, 11층의 술탄이었다.
세현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하며 물었다.
“술탄 나리~ 저를 왜 여기에 처박으셨습니까? 졸렬하게 술에 약까지 타서 말이야.”
“곧 죽을 놈이 허세를 부리는구나.”
“허세는 무슨~ 팩트를 말한 거지.”
술탄은 한쪽 눈썹을 찡긋 올리더니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고약한 놈! 주제를 파악해라!”
그는 겁을 주려는 듯 허리춤에 달린 시미터(곡도)를 뽑아 철창에 힘껏 휘둘렀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고, 놀란 세현이 뒤로 나자빠지며 엉덩이를 찢었다.
“기껏 귀찮은 놈들을 샌드웜 밥으로 줬더니, 네놈 덕분에 그것들이 다 풀려나지 않았느냐!”
그때 복도 너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탄님!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에 술탄은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대꾸했다.
“입 닥쳐, 쓸모라곤 없는 노친네. 네 놈도 샌드웜 밥이나 되라고 보냈더니 운 좋게 살아 돌아와서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세현은 자신이 세운 가설이 맞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술탄, 네가 저 할아버지 손녀를 죽인 거지?”
“……뭐?”
세현이 말을 뱉은 순간, 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 당황한 표정은 곧 비열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호오? 어떻게 알았느냐.”
“너 같은 쓰레기한테 한두 번 당해 본 게 아니라서 냄새를 잘 맡거든.”
힌트는 노인의 말에 있었다.
일주일 전-.
노인의 손녀가 실종되고 온 동네를 뒤지며 찾아다닐 때, 가장 먼저 정보를 흘렸던 것은 술탄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가 샌드웜에게 잡혀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네.’
‘지, 진짜입니까, 술탄님?’
이런 얘기를 나눈 후, 술탄은 샌드웜 지옥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 허가증을 내줬다고 한다.
웬만한 입주자들도 받기 힘든 허가증을 힘없는 노인에게 그냥 내준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놈이 손녀를 죽인 거다. 노인이 이를 들쑤시고 다니면 귀찮으니, 샌드웜이 있는 곳으로 보내 뒷말이 안 나오도록 처리하려던 것이다.
“네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붉은 뱀이 그려진 손수건, 저 할배 손녀딸 물건 아니냐?”
세현은 손가락을 들어 영주의 가슴 부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붉은 뱀, 그것은 노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봤던 가문의 징표였다.
추정하건대 저 손수건은 실종된 손녀의 것이리라.
영주는 손수건을 꺼내 들어 잠시 보더니 콧김을 뿜으며 바닥에 내쳤다.
[타이틀 ‘진실을 알게 된 자’를 획득했습니다.]
- 지능 +1
그 말을 뱉는 순간 타이틀 획득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냥 술탄이 짜증나서 막 지껄였는데, 우연히 얻어걸린 모양이었다.
“호오…… 이 손수건을 보고 알았다라?”
잠시 후, 술탄은 품속에서 수건을 꺼내 봤다. 그리고 콧방귀를 뀌며 그를 바닥에 내치고 발로 짓밟았다.
“멍청한 놈인지 알았는데 예리한 구석이 있구만. 그래, 그 무녀 계집은 내가 죽였다.”
“정말입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술탄님! 정말 당신이 제 손녀를 죽인 겁니까?!”
노인은 충격을 받았는지 철창을 거세게 흔들며 외쳤다.
“아아 그래~ 잠깐 가지고 놀려 했더니 하도 발악을 해대는 통에 말이야. 실수였지 실수.”
“어휴~ 쓰레기 새끼네.”
세현은 양손의 중지를 모두 펼쳐 현란하게 회전시켰다.
술탄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천한 것, 어디 발악해 봐라. 어차피 네놈들은 곧 사형이니까.”
“눼에눼에~ 아이고 무서워라~!”
“시끄러!”
영주는 시미터로 괜히 철창을 한 번 더 두드리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놈이랑 왔던 계집년은 내가 잘 데리고 놀다가 죽여 주마.”
“아~ 네에~ 해 보세요~.”
세현은 술탄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골라 썼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말인즉, 놈의 말이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했다. 세이메이는 아마 무사히 성을 탈출해서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컸다.
“아하하하하하!”
놈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감옥을 빠져나갔다. 감옥에는 절규하는 노인의 흐느낌만이 남았다.
“자아, 어떻게 해야 여길 빠져나가나.”
세현은 자리에 주저앉아 손가락으로 이마를 딱딱 두드렸다.
‘스킬은 못 쓰고, 그렇다고 아이템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내에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면 죽는다.
스킬을 쓸 수 있다면 간단한 문제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봉인된 상태기에 꽤 난감한 상황이었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생각해라 생각을…….’
기본적으로 아파트는 클리어할 수 없는 퀘스트를 주지 않는다. 뭔가의 방법이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를 찾지 못할 뿐이었다.
세현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모두 건드려 보기로 했다.
“할아버지, 뭔가 대책 없어요? 슬픈 건 이해하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할 것 아닙니까.”
“이 힘없는 노인이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괜한 일에 끌어들인 것 같아 죄송할 뿐입니다.”
그는 이미 초연한 자세로 죽음을 기다리는 듯했다.
도움을 받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달은 세현은 일단 방의 이곳저곳을 뒤졌다.
‘분명 뭐가 있을 텐데.’
벽돌을 두드려 보고, 옷 속을 뒤져 보고, 철창을 두드려 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 두 시간여, 세현은 아무런 힌트도 찾을 수 없었다.
“젠장! 이거 정말 뒤지는 거 아니야?”
홧김에 미친 척 구속구로 철창을 두드렸다.
하지만 깡- 깡- 하는 소리가 감옥에 울려 퍼질 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때 복도 너머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러워, 이 역적 놈의 자식아! 샌드웜 퀸 때려잡은 게 뭐 대수냐!!”
잠시 후 나타난 간수가 별안간 문을 따고 들어와 세현을 발로 자근자근 밟았다.
악에 받친 세현은 맞는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간수의 얼굴을 똑똑이 바라봤다.
‘뭐야, 저 인간.’
간수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오른쪽 눈에 난 흉터의 30대 초중반 즈음의 남자.
샌드웜 지옥에 들어갈 때, 허가증을 검사하며 오지랖을 떨었던 수문장이었다.
“너 때문에! 우리 같은 병사들이! 힘들어지잖아 이 새꺄!!”
툭-.
세현을 신나게 두드려 패는 와중, 간수의 소매에서 작은 종이 쪼가리가 자연스레 떨어졌다.
“사형 시간까지 입 닥치고 있어, 또 소란스럽게 하면 그때는 입을 꿰매 주마!!”
그가 신경질적으로 감옥 문을 닫고 나간 후, 세현은 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허겁지겁 주워 펼쳤다.
[사형 집행할 때 구출, 마음의 준비를 해 둘 것. 여자는 우리와 함께 있음, 걱정하지 말 것. - 사막유령단.]
“오호라, 이렇게 진행된다 그거지?”
<사막 유령단>.
그들은 11층 이곳저곳에서 소문을 들을 수 있던 역적 집단이었다.
11층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면 이들과 어떤 형태로든 엮이는 게 보통이다.
아마 사형을 집행하는 순간, 이들이 뭔가의 도움을 주는 형태로 퀘스트가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종잇조각에는 메시지뿐 아니라 푸른색 쇠고리가 함께 들어 있었다. 세현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걸로 구속구를 풀라 그거군.’
곧장 고리를 구속구의 구멍에 쑤셔 넣자 고리에서 뿜어진 푸른 기운이 안으로 흘러 들어가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구속구가 해제됐다.
[‘침묵의 구속구’의 ‘침묵’ 효과가 제거됐습니다.]
[허세현 님의 스킬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허세현 님의 ‘인벤토리’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나이스.’
다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흥분됐지만 세현은 일단 감옥을 박차고 나가는 것을 참았다.
‘마음 같아선 다 때려 부수고 나가고 싶지만, 조금만 참자.’
괜히 움직였다가 퀘스트 동선이 꼬이면 도리어 골치 아파질 확률이 높았다.
“괘, 괜찮습니까, 입주자님?”
“그럼 괜찮고말고요. 할아버지. 우리 안 죽을 거니까 걱정 말아요.”
노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고 세현은 자신감 가득한 어투로 대꾸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됐지만 이젠 체념하고 모든 걸 받아들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끝까지 발악하면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아니, 잘못한 게 없는데 뭘 체념을 해? 죽으려면 할배 손녀 죽인 술탄이 죽어야지, 안 그래?”
“입주자라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는 정의로운 자가 살아남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간악하고, 힘이 강한 자들이 살아남을 뿐입니다.”
그의 훈수에 세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
“입주자라 모른다고요? 할배가 아파트 밖에 못 나가 봐서 모르나 본데 바깥세상은 훨씬 더 지옥이야.”
“그렇습니까…….”
대화가 끝난 후, 세현은 일단 풀려 있던 구속구를 느슨하게 다시 잠가 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1~2초 만에 풀 수 있을 수준이었다.
“할배, 이따 사형장에 끌려갈 때 저 깨워 줘요.”
세현은 퉁명스레 말하며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노인은 이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 † †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꽤 위기에 빠진 것 같구나.]
눈을 뜨자, 거대한 빌딩 같은 크기의 모래시계가 우뚝 솟아 있었다.
세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위기는 무슨 위기, 조금 전에 쪽지 받은 거 못 봤냐? 어차피 이거 퀘스트잖아.”
[하지만 네가 원하는 시점에 적을 만나는 건 아니겠지.]
“흠-.”
센 척을 했지만, 상대의 말이 맞았다.
세현은 벌써 11층의 최종 보스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아직 제대로 레벨링이 되지 않았다.
승률이 0%는 아니지만, 솔직히 지금 싸운다면 죽을 확률이 꽤 될 것이다.
“그런데 너는 내가 죽든 말든 너는 왜 그리 신경 쓰냐?”
[그릇이 죽으면 나도 소멸하게 되니까. 내가 힘을 되찾을 때까지, 네 놈은 최대한 오래 살아 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파트의 시스템은…….]
‘이놈 역시…….’
세현은 모래시계에서 음성을 내뱉는 존재가 누구인지 정확히 떠올릴 수 있었다.
세현을 죽게 했지만, 또 살게도 만들어 준 불길한 존재.
그의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