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38화.
세현은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뛰어!”
바로 뒤쪽에서 달리던 블랙 폰이 세현을 양팔로 안고 숨구멍을 향해 뛰었다.
마치 농구공이 골대에 들어가듯, 세현은 블랙 폰과 함께 안으로 빨려 들었다.
‘작위 수여!’
작위 수여를 발동시키자 블랙 폰이 연기처럼 흩어져 세현의 몸에 들러붙어 갑옷처럼 변했다.
4~5초 정도 지났을까? 세현은 바닥에 착지했다.
“후우….”
곳곳에 녹색 빛이 비치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거대한 동굴.
이곳은 거대한 샌드웜 퀸의 몸속이었다.
오로치의 송곳니로 만든 창, ‘백염의 송곳니’를 단단히 쥐었다.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지.’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무모한 작전.
하지만 정공법으로 현재의 세현이 이놈을 잡을 확률은 0%에 가깝기에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미 세이메에겐 놈의 숨구멍에 들어가는 데 실패하면 무조건 후퇴하겠다는 얘기도 해 놓은 상태다.
“가즈아아!”
세현은 놈의 심장이 있는 앞쪽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가는 도중 몸에 서식하는 기생충들이 공격을 해 왔지만, 제대로 된 적수는 되지 못했다.
잠시 후, 거대한 심장의 모습이 보였다.
집채만 한 심장은 원자로라도 되는 양 녹색 빛을 내뿜으며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었다.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보내 줄게.”
‘백염의 주인’을 발동시키자 창끝에선 백색의 화염이 일어났다.
세현은 백염의 송곳니를 앞으로 힘껏 내뻗었다.
화르륵!
샌드웜 퀸의 심장에 응축된 마나를 먹이 삼아 백염이 빠르게 솟구쳤다. 그러자 동굴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격렬히 흔들렸다. 극심한 고통에 샌드웜 퀸이 몸부림치고 있는 탓이었다.
‘빠져나가자.’
세현은 재빨리 자신이 들어왔던 숨구멍을 향해 달렸다.
마치 암벽 등산을 하듯 놈의 살점에 창을 박아 넣으며 위로 기어올랐다.
높이는 기껏해야 수십 미터, 하지만 놈이 발광 해 대는 탓에 몇 번이고 추락의 위기가 있었다.
그렇게 10분여를 아득바득 기어오르자 항문을 꼭 닮은 숨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저건가.’
숨구멍 끝에 놓인 사슬, 세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팔을 뻗어 그것을 잡아당겼다.
촤르르르륵-!
몸이 사슬에 쭉 끌려갔다.
잠시 후, 퀸의 몸속에서 빠져나오자 세이메이가 포박 사슬을 당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슬은 빠르게 짧아지더니 세현을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주구우우운!!”
잠시 후, 세현의 몸이 통통 튕겨지며 데굴데굴 굴러 세이메이에게 날아갔다.
“괜찮으십니까, 주군!”
“괘, 괜찮으니까 좀 피해 줄래?”
두 사람은 그대로 모래 위를 데굴데굴 굴렀고, 세이메이가 허세현의 위로 올라탔다.
“비, 비켜, 세이메이.”
세현이 고통을 호소하며 부탁하지 세이메이는 그제야 엉거주춤한 자세로 옆으로 물러났다.
<구어어어!>
그때, 저 멀리서 샌드웜 퀸의 포효가 들려왔다.
놈은 고통스러운 듯 입에서 피를 토해 내며 온몸을 꿈틀댔다.
저걸 반복할 때마다 녹색 물웅덩이가 생기고, 모래언덕이 하나씩 박살 났다.
3~4분이 지날 무렵, 놈의 몸뚱이가 서서히 둔해지더니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샌드웜 지옥을 호령하던 여왕이 죽은 것이었다.
뭐, 어차피 며칠 지나면 아파트에 규칙에 의해 다시 리젠될 테지만 말이다.
[허세현 님이 ‘샌드웜 퀸’를 쓰러뜨렸습니다.]
[‘사막의 악마를 잡은 자’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보상: 올스탯+3
[허세현 님의 레벨이 26(으)로 올랐습니다.]
머릿속으로 레벨 업과 타이틀 획득을 알리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세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새, 샌드웜 퀸을 쓰러뜨려 주시다니!”
그는 이미 손녀를 찾은 것처럼 감격에 차서 세현에게 넙죽 절을 했다.
“감사는 됐으니까 손녀나 찾아요. 후딱 끝내고 돌아가게.”
“아, 네. 그래야죠!”
세 사람은 샌드웜 퀸의 둥지를 향해 이동했다.
“세이메이, 시키가미로 저 사람들 좀 다 꺼내 봐.”
“알겠습니다.”
세이메이는 종이 인형을 사용해 사람들을 둥지에서 모두 꺼내 모래 바닥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사이, 세현은 샌드웜 퀸의 사체에 다가갔다.
‘이거 이번에 써먹어 보자.’
손에 들린 것은 <채집의 단검>. 사망한 몬스터의 시체를 이것으로 갈무리하면, 추가로 재료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한 시체 당 최대 5회의 갈무리가 가능했다.
[갈무리에 성공했습니다! 샌드웜의 갑피를 획득합니다.]
[갈무리에 성공했습니다! 샌드웜의 갑피를 획득합니다.]
[갈무리에 실패했습니다!]
[갈무리에 성공했습니다! 샌드웜의 체액을 획득합니다.]
[갈무리에 성공했습니다! 샌드웜의 체액을 획득합니다.]
“오, 대~박.”
단순히 단검을 몇 번 대는 것으로 세현은 무려 4개의 아이템을 추가로 얻었다.
못해도 1~2백만 원어치 아이템을 추가로 얻은 셈이기에 세현은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시체가 녹고 추가로 드랍되는 재료 아이템들까지 꼼꼼히 챙겼다.
그런 와중, 다른 한쪽은 초상집 분위기가 펼쳐졌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여기 있어야 하는데!!!”
둥지에서 꺼낸 사람을 모두 확인해도 노인의 손녀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 손녀가 있을 것이라 강하게 믿고 있던 모양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망 가득했던 그의 얼굴엔 일말의 기대도 남지 않았다.
‘혹시 내 감이 틀린 건가?’
세현은 이번 퀘스트가 다른 무언가로 연결될 것이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샌드웜 퀸까지 다 잡아도 별일이 없는 걸로 봐 꽝인 것 같았다.
나름 소득은 있었지만, 솔직히 조금은 아쉬웠다.
“그건 그렇고, 이 많은 거주자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글쎄요. 시키가미와 소환수들을 최대한 이용하면……”
“그래 봤자 3분의 1도 못 데려가.”
게다가 바닥에 늘어선 수백 명의 거주자들을 보자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왔다.
이들 모두 샌드웜의 마비 독에 당해 의식은 없지만 살아 있는 상태다.
산 사람을 사막에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골치가 아팠다. 두세 명이면 모를까, 백 명이 넘는 사람을 모두 데려가는 건 무리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이 입주자!”
고개를 돌리자 관문에서 만났던, 오른 눈에 흉터가 있는 수문장이 병사들과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맞다, 저놈들이 있었지.’
세현은 그들을 향해 손을 작게 흔들자 수문장이 대뜸 오른팔을 내밀며 악수를 요청했다.
“샌드웜 퀸을 사냥하다니…… 자네 정말 대단하군!”
“뭐 운이 좋았어요.”
“저 괴물이 운이 좋다고 쓰러뜨릴 수 있나!”
“진짜로 운이 좋았어요.”
그냥 빈말이 아니라, 운이 좋았다.
숨구멍에 세현이 들어가지 못했다면 절대로 쓰러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하하. 겸손하기까지! 영웅의 자질을 모두 갖췄군!”
“아니, 운이 좋았다니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일 한번 같이 해 보는 게 어떻겠나?”
“뭐 상황 봐서요.”
심드렁하게 대꾸했지만, 수문장은 멈추지도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내 당장 영주님께 자네의 이야기를 드리겠네. 크게 기뻐하시겠지!”
“그건 아무래도 좋은데, 일단은 여기 바닥에 널린 사람들 좀 어떻게 해 주실 수 있어요?”
세현은 바닥에 늘어선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흔쾌히 제안을 수용했다.
“물론이지! 이 사람들은 우리가 책임지고 도시로 이송하도록 하겠네. 자네들은 이만 돌아가도 좋아.”
“네네, 그렇게 하죠. 세이메이, 우린 돌아가자.”
“네, 주군!”
두 사람은 실의에 빠진 노인을 남겨둔 채 다시 도심지로 이동했다.
† † †
<바이퍼의 사원>.
20층에 위치한 수많은 사막 신전 중 하나의 이름으로, 하체는 뱀, 상체는 인간 여성인 뱀 수인들이 출몰한다.
현재 시점에서 랭커가 아니면 몇 분도 못 버틸 정도로 어려운 던전이다.
“왼쪽에서 파고들어, 내가 정면으로 간다.”
그런 던전의 한가운데, 보라색 머리를 휘날리는 미녀를 중심으로 10여 명의 입주자들이 보였다.
이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바이퍼들을 빠르게 학살하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바이퍼들은 불과 40여 분간의 전투에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후우~ 조금 쉬었다 하자.”
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고양이상의 미녀, <서큐버스 군단>의 길드장 사카린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다른 멤버들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편한 자세로 앉아 휴식을 취했다.
“자, 여기 회복 포션 챙겨 둬. 디버프 걸린 것 있으면 다 해제해 두고.”
사카린은 멤버들을 일일이 만나며 부상 상태, 소모성 아이템의 수량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사카린은 한 여성에게 미소를 띠며 넌지시 물었다.
“그쪽 신입, 이름이 백설희라고 했나. 우리가 싸우는 걸 본 소감은 어때?”
“헤헤, 대단해요.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슈퍼히어로 같았어요.”
설희는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사카린은 그게 나름 마음에 들었는지 아저씨같이 웃으며 설희의 등짝을 두드렸다.
“하핫, 너도 잘했어! 버프 덕분에 사냥 속도가 평소보다 단축됐으니 말이야.”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아직 레벨이 낮은 백설희지만, 그녀의 직업인 <팬텀싱어>의 특성 덕분에 충분히 도움이 됐다.
안전한 후방에서 노래로 광역 버프를 걸어 줘 길드의 사냥 효율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성장해서 조만간 전투도 같이하자고. 뭐 한두 달이면 되겠지?”
“하, 하하.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설희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뺨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사카린은 그런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이야 장난, 그냥 앞으로 기대한다는 소리.”
서큐버스 군단은 <아라비안나이트>의 최초 클리어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이를 위해 하루 8시간 전투, 8시간 수면, 8시간 정비의 사이클을 돌리고 있었다.
말이 쉬워 하루에 8시간 사냥이지, 하루에 잡아 대는 몬스터의 숫자만 수천 마리다.
매일 100m 달리기를 8시간 연속으로 하는 것과 다른 게 없는 강행군이었다.
“사카린 언니. 잠깐만! 지금 마켓 경매장에 이상한 물건이 올라왔는데?”
그러던 중, 길드원 한 명이 사카린의 얼굴 앞에 스마트폰을 불쑥 내밀었다.
화면에는 아이템 아이콘 수십 개가 리스트 형태로 출력되고 있었다. <아파트 마켓> 어플 화면이었다.
“응? 이건 뭐야.”
화면에 출력된 아이템을 보는 순간 사카린의 눈이 크게 떠지며 몸이 자연스레 앞으로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