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34화 (34/180)

# 34

34화.

“세현 공.”

“으응?”

고개를 돌리자 세이메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저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봉인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 재앙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로치는 다시 힘을 길러 몇 번이고 다시 벚꽃국을 공격해 올 테지요 그러니…….”

그때, 세현의 눈앞에 메시지 박스 하나가 출력됐다.

[신규 퀘스트 발생!]

- 발생 조건: 대음양사 세이메이와 ‘오로치’ 공략에 성공.

[#. 히든 메인 퀘스트 / ‘오로치의 영멸’]

- 대음양사 세이메이가 함께 오로치를 영멸시키자 제안합니다.

- 우라시마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 탈출해야 합니다. 우라시마의 문은 15분 후 소멸합니다.

현재 남은 시간: 14분 54초.

- 퀘스트 완료 후 ‘애프터 메인 퀘스트’ <백염의 오로치>는 영구 소멸됩니다.

발생 조건: ‘대음양사 세이메이’와 함께 <백염의 오로치> 전투에서 승리.

적정 레벨: 40

클리어 보상: 타이틀 ‘오로치를 영멸한 자’, 올스탯 +5

권장 인원: 10

#. 입주자의 숫자에 따라 보스의 스테이터스가 변경됩니다.

▶ 1명 ? 기본 스펙 X 0.5배

▶ 5명 ? 기본 스펙 X1.5배

▶ 10명 ? 기본 스펙 X 3.0배

[수락하기]

‘어라, 이런 퀘스트가 있었어?’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이메이와 함께 온 덕에 다른 퀘스트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히든 메인 퀘스트’였다.

그 말인즉, 단 한 사람만이 이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이 내가 아파트의 주인이 되는 걸 원하는 모양이야.’

7년 후 미래에서 온 세현조차 모르는 숨겨진 퀘스트. 이걸 앞선 퀘스트들이 겹겹이 겹쳐져 찾아낸 것이었다.

이건 말 그대로 천운이라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시간제한이 15분이라……’

이 말인즉슨, 15분 내로 보스를 잡지 못하면 반대 차원에 갇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걸 의미했다.

세현은 이를 딱딱 깨물며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지난 시간, 수많은 싸움을 겪으며 세현이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었다.

아파트는 위험한 일을 할수록,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달성할수록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이번 히든 퀘스트의 보상 ‘오로치를 영멸한 자’ 타이틀은 여태껏 봤던 그 어떤 타이틀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적정 레벨 40짜리 퀘스트를,

겨우 20레벨을 갓 넘은 입주자가,

그것도 15분 이내에 클리어한다?

이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하 씨, 왜 하필 이럴 때 그놈 얼굴이 떠오르냐.’

운명의 장난일까, 세현의 머릿속엔 그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벌레라도 되는 마냥 무참히 밟아 죽인 죽여 버린 최은철의 곱상한 얼굴.

분노는 세현의 이성을 단번에 마비시켰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야.’

세현은 수락하기 버튼을 망설임 없이 누른 후, 세이메이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가자, 세이메이. 빨리 처리하자고.”

“네!”

세이메이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오로치를 영멸시키는 겁니다! 이건 아베 가문의, 모든 음양사에게 영광의 순간으로 기억될겁 니다.”

“오오오오오!”

두 사람이 앞서 소용돌이로 뛰어들자 음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함께했다.

[허세현 님이 ‘오로치의 공간’에 돌입합니다.]

시공의 폭풍을 뚫고 도착한 곳은 기괴한 장소였다.

사방에 기괴한 문양과 글씨가 새겨진 백색의 공간.

그 반대편에 상처 입은 오로치가 혓바닥을 날름대며 세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의 머리 위로는 HP 바가 선명이 떠올라 있었다.

‘남은 HP는 20만 내외인가. 아까 같은 전략으론 10분 내 클리어는 불가능해.’

세현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빠르게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블랙 폰이 쿠사나기의 검을 들고 오로치를 상대하며 음양사들이 속박술과 디버프로 서포트하던 전투 방법.

이 방법은 위험성은 낮지만, HP 20만을 10분 내에 빼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방법이다.

남은 시간은 13분, 시간 내에 오로치를 쓰러뜨리고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생각해라, 생각해…….’

그 순간 한 가지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작위 수여!’

소환수와의 결합을 통해 힘을 강화하는 스킬. 얼마 전 누라리횬을 사냥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었다. 게다가 스킬의 위력은 이미 백설희를 통해 확실히 검증이 된 상태였다.

“세이메이,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전력으로 서포트해 줘.”

“아, 알겠습니다!”

세현은 망설일 틈도 없이 쿠사나기의 검을 든 블랙 폰에게 손을 얹고 작위 수여를 발동시켰다.

[작위 수여가 발동됩니다.]

[허세현 님에게 ‘블랙 폰’의 능력이 전이됩니다.]

순간 블랙 폰의 몸이 빛을 발하며 분해되더니 세현의 몸으로 날아들어 검은 중갑옷으로 변이했다.

강력한 힘이 전신에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100% 승리는 장담 못하지만 해볼 만은 하다.’

승리의 가능성을 잡은 세현이 쿠사나기의 검을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전신의 마나를 양팔에 집중시키자 검신에서 핏빛 아우라가 뭉게뭉게 뿜어졌다.

“크아아아아!”

검은 전사, 아니 세현의 몸뚱이가 오로치를 향해 벼락처럼 달렸다.

† † †

작위 수여를 사용한 지 딱 9분 34초가 지난 시간-.

콰드드드득-!!

“죽어어어어! 죽어 이 뱀 대가리야!!!”

포효와 함께 오로치의 마지막 머리가 갈라졌다.

날카롭게 잘린 목덜미는 시뻘건 피를 사방으로 콸콸 뿜어 댔고 세현의 갑옷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붉은 왕관과 붉은 갑옷이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쿵-!

놈의 몸뚱이는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세현은 가뿐히 착지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작위 수여’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스킬 지속 시간이 끝나며 세현의 몸을 감싸던 검은 갑옷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세현은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빡셌다.”

간발의 승부였다.

지난 10분간의 전투 동안 세현의 HP가 5% 미만까지 떨어지는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음양사들의 속박술, 세이메이의 사역마를 이용한 슈퍼 세이브가 없었다면 세현은 이미 오로치의 이빨에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다.

이번 도전은 미쳤다 표현할 수밖에 없는 도박이었다.

[허세현 님이 ‘오로치’를 쓰러뜨렸습니다.]

[‘오로치를 영멸한 자’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보상: 올스탯+5

[허세현 님의 레벨이 24(으)로 올랐습니다.]

마스터키가 머릿속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전했다.

평소 같았다면 미친 사람 웃으며 즐거워했겠지만, 지금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제 3분 정도 남았나.’

차원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 탈출해야 됐기 때문이었다.

“자, 탈출하자!”

세현의 지시에 음양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차원문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세이메이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세현 공, 저기 저것은?”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 오로치의 시체가 녹아내리며 아이템이 한 가득 토해지고 있었다.

“어라?”

세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애초에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오로치는 죽이는 것이 아닌 봉인한다는 개념이다. 때문에 정석적인 공략으로는 놈에게 아이템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굳어졌기에 지금 상황이 익숙지 않았던 것이다.

‘왜 이런 당연한 생각을 못했을까.’

세현은 이를 악물고 오로치의 사체를 향해 내달렸다.

“세이메이, 먼저 가!”

“세현 공!”

작위 수여가 해제된 탓에 세현은 몸이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30초가 넘어서 오로치의 시체가 있던 곳에 도착했고, 허겁지겁 바닥의 아이템을 인벤토리로 전송시켰다.

[‘오로치의 독니’를 획득했습니다.]

[‘오로치의 껍데기’를 획득했습니다.]

[‘오로치의……]

모든 아이템을 챙기고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 나가려 했을 때. 저 멀리 놓인 차원문의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였다.

세현은 이를 악물고 내달렸다.

“제기랄, 제기라아아아알!”

차원문까지 거리는 못해도 1분은 족히 걸릴 터.

이대로 간다면 이곳에 남겨질 터, 세현의 머릿속이 하얘지고 있었다.

그때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시키가미에 타십시오!>

세이메이의 목소리였다.

잠시 후, 차원문 너머에서 커다란 새 형태의 종이 인형이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세현은 타이밍 맞춰 몸을 내던졌고, 종이 인형은 빠르게 방향을 틀어 다시 차원문으로 돌진했다.

“으아아아!”

간발의 차로 세현과 종이 인형은 차원문을 통과했다.

몸뚱이가 종이 인형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바닥에 널브러진 세현은 몸을 대 자로 뻗은 채 실성한 사람 마냥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댔다.

“미친, 진짜 골로 갈 뻔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과 함께 전신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주군!”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체를 일으키자 눈시울이 붉어진 세이메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세이메이, 덕분에 살았다.”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하자 세이메이는 세현의 품에 와락 안겨 들었다.

Level 12. 금의환향

오로치의 사냥이 끝나고 벚꽃성으로 돌아왔을 때, 수도 사쿠라신에는 사상 초유의 이벤트가 벌어졌다.

“감사합니다! 대 영웅이시여!”

“여기 좀 봐 주십쇼!”

벚꽃성에서 1km가량 떨어진 중앙 광장부터 성의 입구까지. 수많은 거주자들이 일렬로 늘어서 세현과 음양사 일행의 귀환을 축하했다. 그 열기는 인기 아이돌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뭐야 이거? 무슨 일인데!”

“젠장, 길이 막혀서 갈 수가 없잖아, 안쪽에서 퀘스트 받아야 되는데.”

도로가 거주자들로 붐비자 입주자들도 하나둘씩 끼어들어 이벤트를 관람했다.

인파는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도로를 한 20분쯤 걸었을까.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세현과 음양사 일행이 성문 앞에 다다랐을 때 너머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로 고생하셨습니다!”

분홍색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한 송이 벚꽃 같은 소녀.

벚꽃공주는 호위무사들의 틈을 뚫고 세현의 바로 앞까지 달려 나왔다.

“오로치를 완전히 해치웠다지요! 허세…….”

그 순간, 세현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공주의 입을 막고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여태껏 해 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탁인데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니까 내 이름은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 그럼 뭐라고 불러야?”

세현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브레이브>라고 불러 주십쇼.”

“으음, 알겠습니다.”

공주 앞에서 대놓고 ‘킹’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머쓱해, 뒤 한 글자를 빼 버리고 말했다. 벚꽃공주는 수긍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이브 공, 성내로 드시지요.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세현은 벚꽃공주와 함께 따라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성의 미로 같은 통로를 한참이나 걸어 들어갔다.

‘응, 여기는 방으로 가는 길이 아닌데?’

기억상 지금 가는 방향은 공주가 머무는 방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성의 구석에 놓인 작고 낡은 방이었다. 벽면에 걸린 일본 민화 스타일의 파도 그림이 인상적이다.

“너희들은 물러나라.”

“예, 공주님.”

공주는 대기 중이던 병사들을 물렸다.

그녀는 병사들이 완벽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벽에 달린 파도 그림 위에 손을 얹고 작게 중얼거렸다.

“파이오스, 무헤노 온노 온묘지, 라이제-타이.”

그 뜻을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언어였다.

덜컥!

‘해, 해리포터냐?’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림이 걸려 있던 벽면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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