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33화 (33/180)

# 33

33화.

세현은 Yes 버튼을 터치하며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당신이 괜찮다면, 고용하고 싶은데.”

“하하, 물론입니다! 괜찮고말고요.”

목소리를 가늘게 떨며 두 뺨이 묘하게 상기된 세이메이의 모습. 세현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 탓에 무의식중에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히익!”

그녀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세현은 손을 빠르게 빼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손이…….”

“사,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현 공.”

세이메이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세현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야말로.”

세현은 그녀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한 번 출력됐다.

[‘대음양사 세이메이’를 용병으로 고용했습니다.]

† † †

첫 번째 메인 시나리오 <벚꽃공주의 종언>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10층.

이곳의 메인 던전 제단은 10층에 있는 붉은색 성, 이른바 <뱀의 성>에 있었다.

10층 제단 근처에는 수많은 입주자가 각양각색의 이유를 가지고 모여 있었다.

“오로치 레이드 같이 달리실 분 구합니다!!”

“파티장 레벨 36에 C 클래스입니다. 보상은 N분의 1! 앞으로 세 분만 구합니다!!”

메인 던전을 공략을 통해 레벨링과 아이템 얻거나.

“재료 아이템 최고가로 매입합니다! 급전 필요하신 분들 환영합니다!”

“포션도 팝니다! 최저가로 팝니다! 10개 사면 1개 공짜!”

재료 아이템을 매매하는 상인이거나.

혹은…….

“씨발!”

“내가 얼굴도 모르는 붉은 왕관인지 뭔가 하는 놈을 뭔 수로 찾냐고!!”

누군가를 찾기 위한다든가 하는 이유였다.

“티, 팀장님. 진정하십쇼. 다른 사람들이 듣습니다!”

“하아…….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제단 구석에 앉아 있는 큰 체구에 호구같이 생긴 남자.

그의 이름은 정요셉, 팔콘 길드의 인사팀장이었다.

그는 길드장에게 명령받은 ‘붉은 왕관’을 찾기 위해 벌써 몇 주째 각층의 메인 던전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덕분에 사냥 따위는 꿈도 못 꾸고 있었고, 몸이 근질거려 죽을 맛이었다.

“그딴 괴짜 새끼가 뭐가 대단하다고…….”

분노로 가득 찬 요셉은 이를 빠득 갈았다.

애초에 A급 클래스인 백설희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길드장이 이 브레이브킹이라 불리는 괴한에게 보이는 관심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겨우 그 레벨에 그 정도 수준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적어도 B급 클래스는 되지 않을까 싶던데요.”

“대단하긴 개뿔.”

요셉은 눈치 없는 부하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미간을 구겼다.

“이시 키들이 눈깔 삐었냐? 그 정도 실력은 우리 길드에선 3군도 못 돼.”

부하들에게 한창 화풀이를 하고 있던 때였다.

“티, 팀장님! 저기 좀 보십쇼!!”

“왜 그러는데?”

부하가 요셉의 어깨를 다급히 흔들며 외쳤다.

“어? 저, 저거!”

불과 50m 남짓한 거리.

그토록 찾아 헤매던 붉은 왕관이 제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 잡을까요, 팀장님?”

“기다려, 멍청한 놈들아.”

요셉은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부하들을 뜯어말렸다.

‘저놈 주변에 저건 뭐야?’

붉은 왕관의 뒤로, 십 수 명에 달하는 음양사 무리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붉은색 텐구(코가 긴 일본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어 꽤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에 압도된 다른 입주자들은 자연스레 옆으로 물러나며 길이 터 줬다.

이를 지켜보던 요셉은 조심스레 스마트폰을 꺼내 그를 영상으로 촬영했다.

‘역시……. 뭔가 빽이 있던 놈인가? 어느 나라? 대기업이 뒤에 있는 놈인가?’

잠시 후, 붉은 왕관과 음양사들은 동시에 제단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기 중이던 부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팀장님? 저거 놓친 것 같은데요.”

요셉은 혀를 살짝 날름대며 작게 읊조렸다.

“저런 놈을 다짜고짜 데려갔다간 뒤탈 생길지도 몰라. 일단 보고부터 한다.”

† † †

메인 던전을 진행한 지 3시간째, 빠른 속도로 던전을 뚫고 지나온 공격대는 벌써 보스 룸 앞에 다다른 상태였다.

“후우……. 15분만 쉬고 보스 룸 들어갑시다.”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근처의 거주자들도 제각기 정비에 들어갔다.

“아우! 이놈의 가면 답답해 죽겠네!”

붉은 왕관과 반 가면을 벗어 옆에 놓고 세현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얼마나 빠르게 던전을 돌파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세현은 급한 대로 에너지 바를 꺼내 거칠게 베어 물었다.

‘그나저나, 왜 팔콘 놈들이 나한테 들러붙은 거지?’

던전에 들어오기 전, 세현은 팔콘 길드의 인사팀장인 정요셉이 근처에 있던 걸 목격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걸로 모자라 폰으로 사진까지 찍기에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거 냄새가 나는데.’

십 수 명의 음양사를 대동하고 전부 반 가면을 쓰는 등, 워낙 눈에 띌 만한 행동을 했기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팔콘 길드원들이 자신의 사진까지 찍는다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보다 더 조심해야겠어. 잘못해서 뒤를 잡혔다간…….’

심각한 얼굴로 고심하던 그때, 누군가가 어깨 근육을 주물렀다.

“응?”

고개를 뒤로 돌리자 순백색의 얼굴 하나가 방긋 웃으며 세현을 맞이했다. 그 아름다움은 순간 숨이 잠깐 멎게 만들 지경이었다.

잠시 멈췄던 숨을 내쉬자 세이메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근심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세현 공?”

“아냐아냐. 근심은 무슨. 아! 세이메이, 혹시 이거라도 먹을래?”

세현은 민망한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반쯤 먹은 에너지 바를 무의식적으로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음, 에너지 바라고 하는 건데…….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일단 먹어 봐. 너무 기대는 말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세현 공.”

세이메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에너지 바를 강아지처럼 덥석 물었다.

“우우움…….”

에너지 바를 우물우물 씹어 삼키던 그녀가 놀라듯 눈동자를 크게 떴다.

“이렇게 달콤한 음식이 있다니!!”

“마, 마음에 들어?”

“물론입니다! 맛있습니다, 세현 공! 이 음식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 그거 콜드브레이크라고 하는 건데. 맛있으면 나중에 또 사 줄게.”

의외로 반응이 너무 좋아 세현은 당황하며 대꾸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마워할 것까지는 없는데.”

세현은 머쓱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일단 할 일부터 하자고.”

붉은 왕관과 가면을 착용하자 다른 음양사들도 이를 따라 텐구 가면을 장착했다.

“가자.”

세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보스 룸의 문을 힘껏 밀어젖혔다.

철컹-!

거대한 철문이 열리며 그 너머에서 순백색의 공간이 나타났다.

<끼에에에엑!>

이 공간의 가운데에는 사슬에 온몸이 묶인 거대한 흰색 뱀이 있었다.

놈은 9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크기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건물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했다.

실로 ‘압도된다’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거대한 존재.

세현은 실성이라도 한 듯, 그런 상대 앞에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로치 사냥이라, 오래간만에 피가 끓는 기분이야.”

첫 번째 메인 퀘스트 <벚꽃공주의 종언>의 최종 보스 <야마타노 오로치>.

<아마테라스의 미궁>에서 삼신기 쿠사나기의 검, 야타의 거울, 야사카니의 곡옥을 반드시 얻어야 봉인할 수 있는 까다로운 보스다.

놈의 괴물 같은 맷집과 재생력, 다양한 공격 패턴은 수많은 입주자들의 생명을 뺏어 왔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놈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색 화염, 일명 ‘백염’이었다.

이 백염에 닿는 순간 입주자의 마나를 연료 삼아 빠르게 불길이 일어나는데, 불과 1~2분이면 모든 마나가 소진돼 스킬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오로치 공략은 백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피하냐에 달렸지.’

세현은 자신의 몸과 소환수에게 설치한 액션 캠코더에 녹화 버튼을 눌렀다.

‘이번 영상으로 브레이브킹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다!’

† † †

<키에에에엑!>

흰색의 거대한 뱀, 오로치는 전신에서 선분홍핏 피를 뿜어내며 괴로운 듯 몸부림쳤다.

‘벌써 3페이즈라니, 음양사들이랑 같이 온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풀리네.’

전투에 돌입한 지 3시간째.

1페이즈에서 야타의 거울로 놈의 분신들을 제거한다.

2페이즈에선 야사카니의 곡옥을 사용해 놈의 주 무기인 백염을 약화시킨다.

남은 건 놈의 머리 9개에 각각 새겨진 봉인 문자를 쿠사나기의 검으로 파괴하는 것뿐.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위험하다.

오로치에게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찢겨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터.

하지만 지금의 세현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 상태면 3페이즈도 쉽겠어.’

근거리 전투에 특화된 블랙 폰이 둘이나 있기 때문이었다.

세현은 곧장 쿠사나기의 검을 블랙 폰 하나에게 장착시키고 명령을 내렸다.

“오로치 이마에 봉인의 문자가 있을 거다. 그걸 쿠사나기의 검으로 찔러 버려.”

명령과 동시에 블랙 폰들이 앞으로 총알처럼 튕겨 나갔다.

오로치는 약이 바짝 올랐는지 거칠게 포효하며 아홉 개의 머리를 동시에 앞으로 뻗었다.

“세이메이, 속박!”

“전원 속박술을 전개해라!”

세이메이의 외침에 음양사들은 일제히 속박술을 펼쳤다.

사방에서 뿜어진 적빛 사슬들이 오로치의 머리를 단단히 묶었다.

하지만…….

화르르륵-!

오로치의 머리들이 일제히 백염을 뿜어내자 속박의 사슬들은 맥없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야사카니의 곡옥으로 약화된 백염이라 해도 마력을 태우는 데 특화됐기에 스킬로 만들어 낸 사슬 따윈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사이에 2~3초의 틈이 생겼고, 쿠사나기의 검을 든 블랙 폰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드드드득-!

첫 번째 머리의 이마에 쿠사나기의 검이 거칠게 박혔다.

<끼에에엑!>

비명 소리와 함께 이마의 봉인 문자가 빛을 내뿜더니 놈의 머리가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이렇게 반복하길 9번, 블랙 폰은 불과 20여 분 만에 9개의 머리 모두 검을 박아 넣어 3페이즈를 클리어했다.

오로치는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진 상태였다.

‘3시간 20분이라. 클론 보스인 걸 고려해도 미친 속도야. 거기다 영상도 잘 뽑혔고.’

처음 팔콘 길드가 오로치 공략에 성공했을 때 걸린 시간은 장장 14시간. 세현이 음양사들의 도움을 받고, 온전한 오로치가 아닌 클론 보스를 상대하는 것을 고려해도 3시간 20분의 기록은 경악할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 과정은 여러 대의 액션 캠코더를 통해 잘 녹화해 놓았다. 이걸 신지영에게 맡기면 분명 괜찮은 퀄리티의 영상이 나올 것이다.

괴승 타쿠앙, 아마테라스의 미궁, 거기다 이것까지 유튜브에 연달아 공개했을 때 어떤 반응이 올지 상상하니 세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잠시 밝은 미래를 상상하며 상념에 잠겨 있던 그때.

<끼에에에에엑!!!>

코끼리 정도 크기로 작아진 오로치가 겁에 질린 듯 발광하더니 주둥이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토해 냈다.

‘끝났군.’

저건 <우라시마의 상자>라는 물건으로 차원을 넘는 포탈을 여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대로 저놈이 포탈 너머로 도망치면 애프터 퀘스트는 종료된다.

촤아아-!

우라시마의 상자가 열리자 그 안에서 검은 소용돌이를 뿜어졌고 오로치는 그 안으로 몸뚱이를 밀어 넣었다.

[‘오로치’가 시공간의 너머로 도망칩니다.]

[‘오로치를 다시 봉인한’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지능+3

‘좋아, 타이틀도 얻었겠다. 클리어 보상만 챙기고 바로 시즌2로 이동한다.’

생각을 정리하던 때,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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