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32화.
“파, 팔콘!!”
팔콘이라는 이름을 듣는 그 순간, 강철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명실상부 전 세계 랭킹 1위의 길드.
어지간한 국가 하나 정도와 맞먹는다 알려진 군사력, 경제력의 소유자들.
자신들은 그런 집단의 인사팀장씩이나 되는 인물을 강도질을 하겠다고 건드린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세요!! 야 이 새끼들아 빨리 잘못했다고 빌어!”
강철은 온몸을 덜덜 떨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살려 주세요!”
“차, 착하게 살겠습니다!”
정요셉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비는 네 사람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넷 다 입 다물어. 더 징징대면 진짜 목을 따 버릴 거니까.”
“예, 옙!”
“니들 줘 팼던 ‘브레이브킹’이라는 인간 알지? 그 빨간 왕관에 가면 쓴 놈 있잖아.”
“네네.”
강철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내가 그놈을 좀 찾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아는 거 있으면 다 불어.”
“아, 아는 거요? 저는 별달리 아는 게…….”
퍽!
“커헉!”
강철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복부에 주먹이 날아 들어왔다. 입으로 피가 토해질 만큼 강한 충격이 전신을 흔들었다.
“기억이 안 나면 기억이 나게 해 줘야지.”
요셉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세현의 목을 졸랐다.
“히이이익……. 저, 저흰 진짜로 아무 것도 몰라요. 살려 주세요.”
“살려 준다니까, 간단하잖아? 니들이 아는 것만 불면 돼.”
“진짜에요!! 진짜, 아무 것도 모릅니다!”
퍽-!
“살려 주…….”
퍽-!
“아아아악!!”
계곡 안쪽에서 거듭해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30분이 지난 후.
“아씨, 이 새끼들 진짜 뭣도 아는 거 없었나 보네.”
계곡 아래엔 걸레짝이 된 네 남자의 몸뚱이가 피를 줄줄 흘리며 나뒹굴고 있었다.
그 위엔 피범벅이 된 정요셉이 시체를 발로 짓뭉개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그래도 속이 좀 풀리네, 최은철 새끼도 언젠간 이렇게 만들어야 되는데.”
조금 전까지의 호구 같은, 사람 좋은 느낌이라곤 느낄 수 없는 살인귀 그 자체의 얼굴이었다.
“왜 백설희 그년이 길드에 안 들어오는 걸 나한테 지랄이야? 다른 길드 들어간 년을 내가 어떻게 꺼내 오라고.”
요셉은 투덜투덜 대면서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시체들의 위에 손을 얹었다.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뒤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브레이브킹이라는 새끼. 어떻게 찾아야 하지? 그놈 못 찾으면 최은철이 또 지랄할 텐데.’
요셉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 그의 손끝에서 붉은 혈관이 뻗어 나와 시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혈관이 꿈틀대며 빠른 속도로 시체를 쭉쭉 빨아들였다.
한 5분이 지났을까.
표강철 일행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바닥에 남은 것은 피 묻은 옷과 주인을 잃은 마스터키뿐이었다.
요셉은 기지개를 켠 후, 스크롤 하나를 꺼내 북북 찢어 옷 위로 집어던졌다.
화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푸른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4일 후.
“으아아아아- 해냈다!!”
아마테라스의 미궁의 앞, 허세현이 철문을 박차고 나오며 양팔을 힘껏 들어 올렸다.
몸 군데군데 난 영광의 상처들은 미궁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측하게 만들었다.
‘진짜 더럽게 힘들었네.’
미궁 중간 중간 존재하는 환술 결계에 몇 번이고 빠져 개고생을 했다. 특히 거북이 요괴 갓파들이 발목을 붙잡고 늪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환상은 치가 떨리도록 끔찍했다.
‘그래도 나름 성과는 있었다.’
미궁을 돌파하는 것으로 세현의 레벨은 22가 됐다.
게다가 애초에 5일로 예상했던 클리어 시간도 하루나 더 단축했다.
20레벨을 찍으면서 소환 가능한 폰의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대로 오로치까지 바로 달린다.’
세현은 곧장 지하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미궁 앞을 지키던 병사가 안타깝다는 듯 세현을 맞이했다.
“당신, 미궁에서 도망쳐 나온 거요? 몰골이 말이 아니군.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고…….”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아마테라스의 미궁은 20~30레벨 대 입주자 10인 파티가 들어가도 보통 클리어에 10일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혼자서 미궁에 쳐들어간 입주자가 4일 만에 미궁을 빠져나왔다?
상식적으로 중도 포기를 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도망은 무슨, 삼신기 다 모아서 나왔구만.”
세현이 자신 만만한 얼굴로 세 개의 아이템을 꺼내 내밀었다.
쿠사나기의 검. 야타의 거울. 야사카니의 곡옥.
아마테라스의 미궁에서 얻을 수 있는 세 개의 비보가 확실했다.
그러자 불쾌했던 병사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호, 혼자서 4일 만에 미궁을 돌파했다고?”
“놀라는 건 나중에 하고 바쁘니까 빨리 갑시다. 꾸물대다 오로치 깨어나면 어쩔 겁니까?”
“아, 알겠으니 따라오십시오.”
병사는 공손한 태도로 세현을 벚꽃공주의 방으로 인도했다.
세현이 방 안으로 들어서 삼신기를 내밀자 벚꽃공주는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놀랍군요. 혼자 미궁에 들어가셨다 들었는데. 불과 나흘 만에 미궁을 돌파하시다니…….”
“뭐 대단한 거라고.”
세현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되묻자 공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꾸했다.
“출중하신 입주자께서 도움을 주시니 마음이 든든할 따름입니다.”
벚꽃공주는 벌떡 일어나 세현에게 작게 고개를 숙인 후 작은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내일 오로치를 다시 막기 위해 원정대를 보낼 겁니다. 부디 그때도 함께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내일 출발 시간까지 여기로 오면 되는 거죠?”
세현은 흔쾌히 벚꽃공주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방을 나서려는 와중,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입주자님.”
“으음?”
“혹시, 대음양사 세이메이 공을 알고 계십니까?”
세현은 작게 놀라며 되물었다.
“그건 왜요?”
애프터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 벚꽃공주가 이런 대사를 뱉은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장안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현 공께서 그분과 각별한 사이시라지요 ”
‘음, 타이틀이 영향을 미친 건가?’
추측하건대 세이메이 퀘스트를 진행하며 얻은 ‘음양오행을 아는 자’ 타이틀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타이틀이나 선행 퀘스트의 클리어 유무에 따라 이후 퀘스트 내용이 달라지는 건 아파트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제가 뻔뻔하다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혹, 세이메이 공과 인연이 있다면 도움을 청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일의 원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퀘스트 발생을 알리는 메시지 박스가 떠올랐다.
[#. 애프터 메인 퀘스트 / 벚꽃공주의 소원(4/4)]
- 오로치의 봉인을 강화하라.
#. New(연계 퀘스트 발생!)
- 대음양사 세이메이에게 공주의 서찰을 전달해 도움을 받는다.
적정 레벨: 30
보상: 세이메이의 지원
[수락하기]
‘오, 뭔가 있나 본데?’
미소를 머금은 채 퀘스트를 수락하자 벚꽃공주가 서찰 하나를 건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세현은 곧장 세이메이가 있는 아베노 신사로 향했다.
† † †
끼이익-!
신사의 거대한 나무문을 양팔로 힘차게 열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허세현 공, 오랜만입니다!”
그러자 음양사 옷을 차려입은 흑발 미인이 반가운 듯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평소의 이미지와 다른 귀여운 모습에 순간 세현의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을 받았다.
세현은 괜히 헛기침을 두세 차례 내뱉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세이메이 씨, 벚꽃공주가 이 서찰을 전하라던데.”
“고, 공주님께서요?”
흠칫 놀란 세이메이가 서찰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곤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세현 공께선 공주님을 도와 오로치의 봉인의 강화하시는군요.”
세이메이는 자신에게 서찰을 줘서 고맙다는 듯 환한 얼굴로 세현을 올려다봤다.
“요괴의 봉인은 음양사의 책무! 흔쾌히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출정을 준비해서 내일, 약속된 장소에서 뵙겠습니다.”
“고마워. 아, 그리고 저번에 그거 말인데…….”
“저번이라 하면?”
세현은 쑥스러운 마음에 콧잔등을 긁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음양사를 용병으로 고용하는 거 말이야.”
“아, 안 그래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죠, 세현 공.”
세이메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뒤로 돌았다. 그러곤 뒤쪽에 놓인 나무문을 양팔로 활짝 열어젖혔다.
“안녕하십니까, 허세현 공!”
그 너머엔 십여 명의 음양사가 무릎을 꿇고 세현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이렇게 대접받는 것도 괜찮네.’
세이메이는 손을 가로로 크게 그었다.
“이중 마음에 드는 음양사 한 명을 고르시면 됩니다. 아베가의 이름을 걸고 세현 공께 충심을 다할 것입니다.”
“오호라.”
세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근처를 빙 돌았다.
음양사들에게 다가갈 때마다 위로 [상태 보기]라는 박스가 출력돼 능력을 볼 수 있게 했다.
‘23레벨에 속박 능력, 21레벨에 식신 소환 능력, 다 비슷비슷하군.’
음양사들의 능력은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돼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확실히 전투력에 보탬이 될 터였다.
‘뭐, 적당히 속박 능력 있는 음양사로 고를까.’
세현은 대충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음양사 한 명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로 할게.”
“아, 네.”
그러자 세이메이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세이메이 씨, 뭔가 곤란할 이유라도 있어?”
“그건 아니지만…….”
그 순간, 세현의 머릿속으로 메시지가 들려왔다.
[‘대음양사 세이메이’의 호감도가 높습니다.]
[허세현 님은 ‘대음양사 세이메이’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에엥? 뭔 소리야.’
그 직후, 세이메이의 위로 [상태 보기] 박스가 떠올랐다.
세현은 고개를 갸웃대며 상태보기창을 띄웠다.
[#. 거주자 / 대 음양사 세이메이]
- 음양사 가문 아베가의 수장, 벚꽃국 최고의 음양사라 알려져 있다.
- 클래스: 대음양사
- 등급: S(크로니클)
- 레벨: 32
- HP(2500) / MP(5500)
- 힘(230) / 민첩(215) / 지능(610) / 체력(250)
▶ 패시브 스킬
- 음양오행술(MP 소모 없음): 세이메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주변 아군의 지능을 15% 증가시킵니다.
▶ 액티브 스킬
- 속박 (MP 2% 소모): 단일 대상 하나를 2초간 속박합니다.
- 식신 ‘오니’ 소환 (MP 20% 소모): 오니 두 마리를 소환합니다.
- 종이의 춤 (MP 5%소모): 종이 인형 ‘시키가미’를 소환합니다.
‘대음양사’라는 칭호에 어울리게 세이메이는 다른 음양사들을 압도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토끼와 사자 수준의 차이, 이런 그녀를 용병으로 부릴 수 있다는 생각에 세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이런 수준의 용병을 고용할 수 있는 건가?’
기억이 맞는다면 음양사를 고용했던 입주자는 세이메이를 용병으로 고용하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세이메이를 고용할 수 있는 건 뭔가의 조건이 작용했다는 걸 의미했다.
‘내가 획득한 타이틀들이 혹시 세이메이의 호감도에 영향을 준건가.’
타이틀, 스텟, 클래스, 착용 아이템, 상호작용 등등…….
거주자들은 입주자에 대해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며 호감도를 가지게 된다.
이 호감도에 따라 간혹 히든 퀘스트 같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나 보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워낙 사례가 적기에 이에 대한 정보를 개인이 얻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거 완전히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세현의 입장에선 천운이 따라 줬다.
일반 음양사가 아닌 세이메이를 고용할 수 있다는 건, 전술의 폭과 전투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뭐 나야 좋지. 능력도 좋고, 미인이기도 하고.’
세현은 흡족한 미소로 세이메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이메이 씨, 혹시 당신을 고용할 수도 있나?”
“지, 진심이십니까?”
순간 세이메이가 목소리를 떨며 대꾸했다.
“당연히 진심이지, 여기 있는 음양사들 중에 당신이 최고잖아?”
“하, 하지만…….”
세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하자 눈앞에 메시지 박스 하나가 떠올랐다.
[‘대음양사 세이메이’를 용병으로 고용하시겠습니까? Yes/No]